노래(음악)가 세상에서 가장 센 힘을 가졌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목)소리에 대해 좀 더 예민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굳이 예민해지지 않아도, 대번에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그런 (목)소리가 있다. 

왜 우리가 노래를 듣고, 음악을 곁에 끼고 사는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듣는 순간 마음이, 감정이 스르륵 허물어짐을 느끼게 하는 울림이 있다. 


사람이 (목)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 울림을 통해 좀 더 실감하게 됐다. 


남자건 여자건, 

목소리가 좋은 사람에게 우리는 마음 한 쪽이 기운다.   


노래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뒤흔들릴 수 있는지에 대한 가장 좋은 예. 

물론 목소리의 울림이 전제돼야 가능한 예. 


버나드 박의 Right Here Waiting, 봄밤의 울림으로 이보다 좋을 순 없다!


거참, 놀라운 힘이다. 

다른 거 따질 겨를 없이 귀를 통해 온 몸이 반응한다. 눈물은 그저 부수적인 결과물일 뿐. 버나드 박이 오늘 하루를 고이 접어준다. 다른 건 그저 묻힌다. 이 노래 하나로 충만한 밤이다. 


아마 봄밤이 목소리를 낸다면, 노래를 부른다면, 바로 이 목소리일 것이다. 

나는 봄밤의 노래에 귀를 쫑긋 기울이며 몸 전체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노래 부르는 남자가 못 된다면, 책 읽어주는 남자라도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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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도정일 교수님을 드디어...ㅠㅠ 

아마 2001년부터 시작됐으니 13년 만인가. 


뵙고 싶었다. 알현하고 싶었다. 

순전히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이들에게 가장 많이 권했던 칼럼이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좋았던 두 개의 칼럼 중의 하나. (나머지 하나는 김규항 샘의 '너에게 수영을 권한다')


블로그 이름이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로 정해진 것도 그런 이유였다.

(나는 그렇게 별소년이었으니까~ㅋ 별들사잇길을 놓고 싶었으니까!)



기억으론 세 번 단독으로 뵐 기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세 번 다 무산됐다. 기자로서 후배로서. 

전화통화는 단 한 번. 그때 한 번 보자고 하셨지만, 시간은 쏜살이었다.


지난해 1년 내내 편찮으셨던 몸이라고 하셨는데, 

쩌렁쩌렁, 때론 과격하게, 때론 감성적으로, 지성과 교양의 향연이었다.

존경하는 노장의 말씀이 공기 속으로 촉촉하게 젖어든 봄밤, 행복하였도다.


정일 교수님의 말씀에 별들이 촘촘하게 떴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을 짓는 이야기를 하실 때는 눈물이 별을 적셨다. 

건축가 고 정기용 선생님에게 부탁을 드렸단다.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세요." 정기용 선생님은 충분히 그 말씀 이해하셨고, 순천관은 비밀의 하늘정원이 만들어졌고, 2층의 별나라 다락방이 별을 품었다.


순천관이 문득 그리워졌다. 별들 사이에 길을 놓을 테다! 

다락방의 별들이 되고 싶어졌다. 별을 내 가슴에 촘촘히 박을 테다!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제1의 대상이 별이다. 호기심 없는 삶은 좋은 삶도, 행복한 삶도 될 수 없다. 칼 세이건은 7살 때 밤하늘의 별을 매일 쳐다보고 도서관에 가서 별에 대한 책을 매일 봤다고 한다. 


좋은 삶을 다시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주입한 행복한 삶은 좋은 삶과 거리가 멀었으니까. 


아마 내 생전, 한국이 좋은 사회가 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거나 공정한 사회가 되거나 아름다운 나라로 발돋움하는 건, 서울 밤하늘에 별이 쏟아지길 바라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좋은 삶을 사유하고 실천하며,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을 생전에 만나지 못해도, 그게 팔자지 모냐. 



'환대의 식탁'. 

정일 교수님이 힌트를 주셨다.  

[레미제라블]에 환대의 식탁이 나온다. 늘 천대받고 무시당하던 장발장이 밀리에르 신부로부터 생애 처음 환대를 받는다. 신부는 장발장을 오늘 저녁 우리를 찾아온 특별한 손님이라고 소개한다. 특별한 손님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장발장은 그 이후 삶이 바뀐다. 


정일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게 귀결됐다. 

"환대는 사람을 바꾼다."

 

식품정의(Food justice)의 일환으로 '환대의 식탁'을 만들면 어떨까. 

집으로 향하는 봄밤, 밤하늘 뒤로 숨은 별들을 끄집어 냈다. 그리고선 별들 사이에 길을 놓았다. 별들은 서로 빛을 내려고 경쟁하지 않는다. 연결과 협력, 협동으로 서로를 빛나게 해준다.  


내 좋아하는 당신에게, 도정일을 권한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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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시경 2014-03-28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귀한 책이고 기다렸던 책을 손에 들었을때의 떨림...이 책이 그래요~ 저두 지금 읽고 있는 중이랍니다^^

책을품은삶 2014-03-30 22:57   좋아요 0 | URL
아, 저도 떨림으로 가득하답니다.
아끼고 아껴서 읽고 싶은, 읽고 또 읽고 싶은, 떨림이 잔뜩 묻어 있는 책이에요.^^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응답하라 1994>가 막을 내렸다. 새삼, 지금까지의 내가 1990년대에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때 그 감성과 풍경, 익숙하면서도 애틋했다. 그때 내 곁에 머물면서 내게 감흥을 줬던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그리고, 아마도 지금 읽고 있는, 나를 흔드는 책들이 또 미래의 나를 만들 것임을. 이 책들이 2014년의 문을 열어젖힌다면 참 좋겠다.  


1. 인천상륙작전

윤태호. 믿고 보는 윤태호다. 한겨레 연재를 보고 있는데, 단행본으로 만나면 또 다를 것 같다. 지금의 한국은 분단이라는 상황이 만든 트라우마의 총합이다. 한국 사회에서 분단만큼 크게,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있을라고. 과연 우리는 제대로 인천에 상륙한 것일까. 역사 왜곡과 거짓이 비일비재하게 펼쳐지는 지금, 버릴 대로 버려진 안구와 달팽이관을 정화할 때다. 



2. 한국 식물 생태 보감

이런 책은 국가에서 상을 주거나 충분한 지원을 해야 한다. 국정원에서 댓글 다는데 펑펑 쓰는 돈, 이 책에 지원했으면 우리 사회가 이모양 이꼬라지는 아닐 터. 댓글 폭탄 터뜨리지 말고,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식물에 눈을 돌리는 게 훨씬 낫다. 382종, 비교 대상까지 합쳐 760종이란다. 이들을 제대로 아는 것, 삶을 제대로 꾸릴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 아닐까! 




3. 혁명의 영점

이젠 실토해야 한다. 가사노동이 모든 노동의 근원이다. 가사노동의 인정하는데서 진짜 혁명은 가능하다. 인류는 그 근원을 소외시킴으로써 탐욕을 채우는 길을 걸었다. 이 책이 제시한 가사노동과 복지의 관계는 지금 한국 사회의 복지담론에 적극적으로 대입해야 한다. 복지의 축소는 단순히 국가의 임무 방기뿐 아니라 '무급' 가사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 가사노동을 통한 노동력 재생산이 공장과 사무실에서 이뤄지는 생산만큼 가치가 없다는 거짓말! 입에 침 좀 바르시지, 요!



4.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사랑은 결국 타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다. 타자에 대한 책임을 우선시하는 윤리학을 전면에 내세우는 타자성의 철학. 레비나스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염된 단어 중의 하나가 사랑이다. 사랑, 사랑,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는 그것에 사랑은 발에 채이는 돌멩이가 돼 버렸다. 그리고 '진짜' 사랑은 실종됐다. 사랑의 부재가 지금의 현상이다. 과연 우리는 사랑을 회복할 수 있을까. 밀양, 쌍용차, 그리고 안녕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안녕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의 회복이다.



5.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서울, 재미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서울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모른다. 서울의 일상을 미시적으로 탐사한 이 책이 갈증을 풀어줄 것이다. 아니 갈증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르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것이 갈증이었고, 동시에 해갈됐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벤야민식 서울 읽기. 공간을 알아야 삶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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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오기 전, 12월30일은 별을 노래했던 시인 윤동주가 태어난 날(1917년)이었다. 


식민지 조국, 일제강점기의 폭압, 1차 세계대전 속에서 탄생한 시인의 운명이 순탄치 못한 것이야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우주를 방랑하는 히치하이커 같은 별의 운명처럼. 


그러고 보면 시인이 태어난 1917년은 러시아혁명의 발발로 격동의 20세기를 예고한 해이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한 해 앞둔 해이기도 했고. 


물론! 그 정치적 격동은 문화사적으로 1920년대 걸작의 시대를 열어젖힌 동력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를 관통한 뒤, 1920년대에 펼쳐진, 카프카,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로런스, 울프, 파운드, 루카치, 조이스, 엘리엇, 피카소, 달리 등이 열어젖힌 황금시대. 


지금 이토록 하 수상한 시절이 또 다른 걸작의 시대를 잉태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잡설을 긁적였다. 어쨌거나 지금은 먼저 스스로 '안녕'을 묻고, 남과 함께 안녕을 위해 손을 잡아야 할 때가 아닌가.   


섣달 그믐, 나는 이런 마음에 가까웠다. 


독일의 판화가 케테 콜비츠가 남편과의 생활에 지치고 자기 예술의 방향으로 고민하던 1913년 섣달 그믐밤, 즉 12월31일의 겨울밤, 이렇게 한 해를 결산했던 마음. 정확히 100년 전 어떤 마음의 되돌이표.  


"어쨌든 1913년은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죽지도 않고, 무기력하지도 않고, 상당히 내면적인 삶이었다." 


나는 남편도 없고, 저만의 예술 방향을 고민하지 않지만, 

2013년 마지막 날이라서 그랬겠지만, 100년 전의 마음을 꺼냈다.


 

그건 지나간 이야기고, 

올해, 이 詩가 품은 마음으로 잘 굴러서 생을 가꿔가야겠다. 

그리고 이 마음, 당신과도 나누고 싶다.  


별들이 온 힘으로 굴러서 해는 떠오르고

화분에 작은 싹 하나도

매순간 심호흡으로 자기 생을 밀어 올린다


[조향미,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중에서]



그리하여, 별을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으로, 

역시 내가 좋아라~ 하는 詩를 당신에게 새해 선물로 건넨다. :)

그래 우리, 별 하나 품고 살자. 해피 뉴이어! 



나만의 

별 하나를 키우고 싶다


밤마다 홀로 기대고 

울 수 있는 별


내 가슴속 

가장 깊은 벼랑에 매달아 두고 싶다

사시사철 눈부시게 파득이게 하고 싶다


울지 마라, 바람 부는 날도


별이 떠 있으면 

슬픔도 향기롭다 


[문정희_ 별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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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1 : 사랑하다 나는 오늘도 1
미셸 퓌에슈 지음, 나타니엘 미클레스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영원히 내 가슴 속에 각인돼 생을 이끌 그 순간. ‘사랑사고’라고 명명했던, ‘One Fine Day’로 각인된 그날 그 순간. 1996년, 어느 햇살 좋은 가을날의 주말. 내 설렘과 사랑이 시작됐고, 훗날의 용기와 통증을 동반하기 시작한 날. 누군가를 보고 ‘아찔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경험한, 그것은 어쩌면, 일생에 단 한 번 찾아올까 말까한 그런 순간이었다. 사고의 경위는 이렇다. 


우리의 접속장소였던 학원의 야트막한 정원에서 나는 음악에 마음을 맡기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싶었다. 가을햇살을 등지고 걸어오는데, 뭐랄까, 눈이 아득해졌다.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파란빛 재킷, 얼굴을 감싸는 챙 넓은 모자와 푸른 선글라스로 한껏 분위기를 낸 모습이 가을 햇살과 뒤범벅됐던 순간, 아주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심장은 박동속도를 높였고, 쿵쿵쿵 우렁찬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느닷없이 당하고야 마는. 준비도 예고도 없이 맞닥뜨리는, 사랑사고였다. 그렇게 작동한 심장을 부여잡고, 다운타운을 거닐다가 들어간 곳이 백화점 옥상 테라스에 위치한 커피하우스. 가을풍경이 잘 보일 것 같다며 들어간 그곳의 커피 한 잔 가격은 25센트. 가난한 학생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착한 가격. 커피와 함께 각자의 기억을 이식했다. 커피와 함께 한, 커피 향 같은 그녀와 마주한 그 순간,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김없이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누군가와 말을 섞고,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웃고, 어슬렁거리며 작은 고민과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젠 그녀 생각 없이도 보내는 날이 꽤나 많지만, 느닷없이 그녀가 떠올라선 그저 이렇게도 묻고 싶은 날도 있다. “잘 지내나요, 당신...?”


사랑은 그래서, 혁명이다. 모든 것을 바꿔버리니까. 송두리째 바꾸길 원한다면, 사랑 외에는 방법이 없다. 미셸 퓌에슈의 말, 절절하게 공감한다. 


“그 사람을 사랑한 이후로 나는 정말 엄청나게 변했어요. 그의 영향을 받아서가 아니라 사랑 자체가 나를 변화시킨 거죠. 요즘 나는 음악, 풍경, 햇빛, 인생, 모든 것을 즐겨요. 마치 모든 것이 한층 강렬하고 진실해진 것처럼 말이죠.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감상적인 된 걸까요? 사랑은 신비로 가득하다.”(pp.72~73)


신비하다. 그녀가 내게 번짐으로써 나의 생은 180도 방향을 틀었다. 신자유주의에 포획된 경쟁자로서의 촉은 꼬리를 내렸다. 사랑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녀 덕분에 나도 누군가에게 번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커피 한잔이 그런 번짐이고 싶었다. 뭣보다 그녀가 내게 건넸던 그 말처럼 ‘건강하게’ 사회에 썩어 들어가고 싶었다. 사랑의 의무.    


삶이 의무투성이라면 지겹고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나를 돌봐야 했다. 사랑하기에 가능한, 사랑받는다는 사실에 따르는 의무, 특히 사랑하는 상대가 가치 있게 여기는 나를 소중하게 돌봐야 할 의무. 미셸 퓌에슈는 “사랑이란 상대의 필요를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동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에너지가 전환된 것은 사랑하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길지 않다. 굳이 사랑을 기나긴 설명으로 채워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듯, 책의 한 줄 한 줄은 내 사랑에 느낌표를 찍는다. 건강하게 사회에 썩어 들어가기 위한 나의 모든 결정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다. 그 모든 과정은 어쩌면 모험이었다. 주류사회의 요구와 유혹에 늘 초연하게만 버틴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사랑하다’라는 행동의 철칙에 나를 견주어야 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내 사랑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묻고 물었다.


“사랑은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상대가 나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 걸맞은 인간이 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에너지는 엄청나다. 이 에너지는 진정한 개심(改心), 삶의 방식의 전적인 변화, 다른 가치 체계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p.92) 

 

누군가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형성하도록 도와준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다. 내 사랑에 대한 존경이자 태도이다. 사랑은 단순히 느낌이나 감정이 아닌 행동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니까. 실천함으로써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것, 《나는, 오늘도 1 : 사랑하다》가 건네준 귀한 속삭임이다. 


책은 사랑이 축복임을 새삼 알려준다. 사랑을 일개 감정으로 알고 있다면 오산이요, 오해다.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실존의 강력한 상징”이라는 미셸 퓌에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랑할 때 밖에는 삶이 아니다. 삶은 사랑하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냥 살아지는 것이다. 흉터가 남는다손, 아픔이 있다손, 그것을 피해선 안 된다. 


사랑에 대한 숱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방법론’과 ‘지침서’는 깡그리 무시해도 좋겠다. 이 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뭣보다 사랑을 감정이나 느낌이 아닌 행동과 실천의 것으로 꾹꾹 눌러 담으면 헤매기만 하는 당신의 사랑도 해방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무엇보다 돌봄으로 번지는 관계를 사랑의 핵심으로 삼을 것. 

  

“어느 경우든, 처음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이란 돌보는 것이다. 상대를 돌보고 관계를 돌보며, 또한 자신을 돌보는 것.”(pp.96~97)


사랑 덕분에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됐다. 내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됐다. 내가 누구인지 눈뜸으로써 사랑은 좀 더 크게 다가왔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언제나 사랑, 사랑을 할 것이다.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것이 삶이므로. 사랑이 나를 울게 하고, 사랑이 나를 파멸시키더라도, 사랑이 나를 나답게 하고, 나로서 살게 한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그러니까, 사랑은 명사가 아닌, 영원히 동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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