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 쓰는 사람이 된다."
도정일, 채현국 선생님과 더불어,
내가 진정으로 존경하는 어른이자 노장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이다.
괴담을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를 짚어내고 성찰을 이끌어낼 줄 아는 글(쟁이)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망각의 과잉에서 탈피하고, 기억의 과잉을 걷어내는 것.
그리하여 제대로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고 움직이게 하는 힘.
그런 글과 글쟁이를 만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겐 필요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영면은 그런 면에서 너무도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오랫동안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다가 지난 17일 87세의 나이로 타계한 그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글을 쓴 사람이었다. 이야기하기 위해 살았고, 이야기하고 죽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이 집단적 슬픔과 고통의 기억을 잊지 않으면서 삶에 대한 통찰과 혜안의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글쟁이가 있으면 좋겠다.
윤민석은 그런 면에서 '노래'로 그것을 대신한다.
맞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사회도, 정부도, 믿을 수도 기댈 수도 없게 됐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지켜야 할, 끝까지 버려야 할 무언가가 우리에겐 있어야 한다.
에코가 말했듯, 자기 안에 있는 타자를 발견할 때 사람은 비로소 윤리를 얻는다.
커피노동자이자, 추출노동자, 조리노동자, 마감노동자로서,
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창립과 출범을 맞이하며, 떠오른 단상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내 노동윤리와 내 직업윤리가 제대로 작동하길 바라며, 지킬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이번 노동절의 내 선언은 "만국의 노동자여, 연결하고, 협동하라."
이번 주, 가보(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애칭)를 애도하는 주간이 될 것이다.
다행이라면, 내 주변에 가보를 알고 얘기할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
작년에 그와 가보의 알츠하이머에 대해 안타까움과 슬픔을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와 함께 '내 슬픈 가보의 추억'을 이야기하면 좋겠다.
그것이 '책의 날'에 하면 더욱 좋겠지만, 아니면 어떠랴.
중요한 것은,
가보가 이야기를 하게 된 것에도 '연결의 상상력'을 제공한 사람이 있던 덕분이었다.
아디오스! 가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