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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당신에게 건네는 밤9시의 커피는,  


1. 천상의 목소리가 공명하는 지중해산 BC커피 with Maria Callas. 

BC는 칼라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눈치 챌 법한 비포 칼라스(before callas).

오페라는 칼라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절대 디바를 상징하는 수식어. 


그리하여, 이날의 커피는, 

BC(Blissfully Caffeinated 더 없이 행복할 정도로 카페인에 취한) 커피.


밤9시의 커피가 당신을 위해 함께 들려줄 음악은 La Mamma Morta. <필라델피아>의 잊지 못할 장면에 흘러나온 디바의 목소리. 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Andrea Chénier(안드레아 셰니에)'의 3막에 나오는 곡. 커피의 맛과 향을 더욱 짙게 만드는 음악과 영화가 있다오.  


탐 행크스와 덴젤 워싱턴의 <필라델피아>도 함께.  

2013년, 칼라스의 35주기.




2. 자유와 저항의 VJ커피 with Victor Jara. 

VJ는 그러니까, 빅토르 하라다.  


1973년 9월16일, 아옌데 대통령의 사망 후 5일 뒤, 

노래를 멈출 수밖에 없었던 칠레의 뮤지션. 

사회주의 아옌데 정권의 지지로서, 

모든 사람은 자유와 평등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이상을 노래로 표현했던 가수. 칠레 공산당에 활동하면서 라틴아메리카를 돌며 자유를 노래했다. 


그리하여, 벤 세레모스(Venceremos, 우리 승리하리라!)

<칠레 전투>와 함께하는 VJ커피. 

2013년, 하라의 40주기.



두 메뉴 중에 당신이 선택하시라! 

나의 왼손은 거들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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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5일은 독립커피의 날. 


이날의 커피는 과테말라,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등이다. 

중앙아메리카의 이들은 1821년 9월15일, 

에스파탸로부터 독립했거나 멕시코에 속한 상태에서 독립했다. 


밤9시의커피에서 독립의 맛과 향을 느껴보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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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샹니(我想你, 보고 싶어)

- <호우시절> 동하 (정우성)가 메이(고원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

 

어제(4월20일) 봄비.


봄비 냄새를 맡아본 사람은 알 거야. (꼭 귀도 함께 열어야 하느니!) 

코에 쏙쏙 박혀서, 알알이 혈관을 타고 내려가 심장부근에서 터지고야 마는 봄비 내음.


참으로 알싸했어.  

쌀랑한 봄기운과 따스한 봄온기가 공생하는 공기의 촉감. 


전날(4월19일)의 커피가 데워준 온기가 잔향을 남겼기 때문일까. 

서교동 수운잡방과 용답동 '마당'(청소년 휴카페 예정)을 오간 피로는 봄비에 씻겼다. 싱긋. :)


4월19일, 

53년이 된 '4.19혁명'으로 불리는(그날 용답동 술자리에서 누군가는 이를 강력하게 부정했지만. 그의 군대 이력과 꽐라 정도를 생각해서, 그냥 흘렸다.) 날에, 


 

그날과 함께 나는 커피를 볶고 내리면서, 다윈을 생각했어. 


남을 할퀴고 짓밟는 경쟁에 중독된 사람들, 다윈의 '적자생존'을 자기식대로 끌어들여 그것을 정당화하고자 여전히 애쓰고 있지.

《종의 기원》에 대한 치명적 오해.


다윈의 진화론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이용당했고,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이긴 자의 유전자만 진화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양 오도됐어.


허나, 다윈이 말하고자 한 바는 그것이 아녔어라구!

인간의 유래에서 그는 이리 말했어. "뿌리 깊은 육체적 본능이 아니라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이 인간 진보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다윈에게 인간의 자연선택은 완력이나 권력이 아닌, 종족이나 집단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사유하는 마음 혹은 지혜의 크기에 달려 있는 것이었지. 남을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이들이 개인의 유전자를 희생함으로써 부족 전체의 성공을 이끈다는 것이 다윈의 생각이었어.   


 

그런 다윈을 떠올리며 볶고 내린 커피는,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자란 커피. 

다윈의 131주기(1882. 4. 19)를 맞아, 다윈이 진화론의 아이디어를 얻고, 《종의 기원》을 낳게 한 곳.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커피가 재배되는 곳은, 산 크리스토발(San Cristobal)섬으로, 고도 800m 이상에서는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커피가 안개의 도움을 받아 잘 익어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어.

다른 식물군도 풍부하며, 특히 중앙에 솟아 있는 화산입구에서는 자연 용수가 흘러나와 호수를 형성하고 있다지. 이 호수는 섬 전체에 물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말이야. 


이곳의 커피 재배는, 

1875년 Don Manuel Jcobos가 버번종 종자를 들여와 심은 것이 시작이었어. 

수확시기는 11월에서 1월 사이인데,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커피는 아니야.  


 

 


 

꼭 이것이 아니라도, 이런 날엔 라틴아메리카의 것이 최고.

체 게바라가, 혁명이 으스러졌던 볼리비아의 슬픔을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고.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어떤 생각. 세계를 사유하는 어떤 방법. 이것, 에릭 홉스봄의 것. 


"생물학자 다윈처럼 역사가인 나도 라틴아메리카를 방문한 이후 이 지역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세계 전체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늘 역사 변화의 실험실이었다. 그곳에선 늘 짐작과는 다른 일이 벌어져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대부분의 통념을 밑동부터 흔들었다."       

        -《미완의 시대》(에릭 홉스봄) 중에서 -

  

문득, 그 커피, 최재천 교수님과 함께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 

다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이지. 



그렇게 지낸 다음날 흐른 봄비 속에 '장애인의 날'. 

시내를 관통하면서 만났던 장애인들의 평화적인 행진. 

버스 내 뒷자리에 앉은 한 꼰대는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알려고도 않은 채, 온갖 경멸 섞인 쌍욕을 해대더라. 대한민국의 잘난 애국자 나셨도다! 혼자 생각해도 그만일 것을, 줄곧 십여 분을 다른 사람 다 들리게끔 꽁알꽁알. 


그의 초라한 자아가 버스 안에서 서성였어. 

타인에 대한 경멸을 입밖으로 내뱉으면서 초라한 자아를 드러내고, 남을 낮춰야만 간신히 자신을 높일 수 있다는 결핍으로 얼룩진 모습을 버스 안 모든 사람들에게 내보이면서. 저이의 지질한 자아가 울고 있는 듯 보였어. 어떤 슬픔. 



그리고 봄비온 뒤 다음날. 

봄하늘은 맑았고, <호우시절>이 생각났었는데  말야.

와우 놀라운 건, 그런 날 채널을 돌리다가 만난 <호우시절>.



아, 그녀의 자전거가 다시 내 가슴속으로 들어오더라.  


나는 봄비 이후의 커피를 내렸어.  

그 커피 이름은 호우시절. 


메이(고원원)의 말이 그 커피의 향을 더욱 짙게 만드네. 


"동하, 꽃이 펴서 봄이 오는 걸까, 봄이 오니 꽃이 피는 걸까?"


나도 궁금해졌어. 봄비가 와서 좋은 걸까, 좋아서 봄비가 온 걸까?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는 법인가 봐. 


이 커피에 그리움을 담아, 워샹니...     


 

 

 


春夜喜雨(봄날 밤에 기쁜 비) 

                              - 두보 -


好 雨 知 時 節

當 春 乃 發 生

隨 風 潛 入 夜

潤 物 細 無 聲

野 徑 雲 俱 黑

江 船 火 燭 明

曉 看 紅 濕 處

花 重 錦 官 城


즐거운 비가 그 내릴 때를 알아

봄이 되면 내려 생을 피우는구나

바람 따라 밤에 살며시 내리니

세상을 소리 없이 촉촉하게 적시네

들길은 낮게 드리운 구름으로 어둡고

강 위에 배 불빛만 외로이 비치네

새벽녁 붉게 비가 적신 곳을 바라보면

금관성에 꽃들도 활짝 피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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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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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 물을 내리고 전등을 켜고, 깨끗한 물, 

그리고 맛 좋은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는 쉽다.

좀 더 어려운 것은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아마도 십 수 년 만.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았다.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쏟아지는 비로 온몸을 감싸면서,

묘하게 희한하게도 은근 기분이 좋았다. 


왜 그럴까, 속으로 궁금했다. 


그리고, 파리를 갔다. 정확하게는 스크린을 통해. 

<미드나잇 인 파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파리. 

길(오웬 윌슨)은 말했다. 파리는 비가 올 때 가장 아름답다고. 

그는 그렇게 비를 맞았다. 


십 수 년 만에 흠뻑 비를 맞은 날, 

파리도 비에 젖었고, 내가 몰랐던 파리가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도 비에 젖은 파리를, 그 빗방울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리라. 파리에 가야 할 이유. 


우디 앨런이 그린 파리. 

환상이겠지만, 비 오는 서울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말도 안 돼. 

사람은 그렇게 갖다 붙이길 좋아하는 존재. 아니, 내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직 이르지만, 만추(晩秋).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호우시절.

류준형 팀장은 여전했고, 그는 나와 수다를 떨어서 모처럼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박경민 대리가 4년 여 전 죽었다는 소식. 놀람과 슬픔이 범벅됐다. 

그는 내가 만난 가장 샤이한 홍보맨이었다. 한참 늦었지만 명복을 빈다. 부디.


엘살바도르 커피, 깊진 않아도 깨끗하고 맛있었다. 

어쩌면, 가을날의 선물. 고마운 당신이다.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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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바꾸는 것보다 종교를 바꾸는 것이 더 쉽다. 

세상 사람들을 카페에 가는 사람과 가지 않는 사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은 서로 다른 정신세계를 지니고 있다. 

그 중 카페에 가는 사람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우월하다.

- 조르주 쿠트린- 


우리 마을엔, 그리고 우리 커피하우스 단골 중엔 무명의 소설가가 있다. 아니, 무명(無明)이 아니지. 이름이 없다는 말, 내가 싫어하는 표현이니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가 있다. 그럼 어떤 소설을 펴냈느냐? 없다. 그의 가슴과 머리에, 그리고 이른바 '습작품'만 있다. 


굳이 따지고 들면, 소설가 지망생일 텐데, 나는 그런 것 패스. 등단이나 책을 내지 않았다고 '지망생'으로 규정하는 풍토, 별로다. 그는 내게 이미 문학가이자 소설가다. 그의 단편소설 몇 편은 그의 호의에 힘입어 읽은 적이 있다. 어땠냐고? 뭐, 내가 평론이나 비평을 할 처지는 아니다만, 실은 그저 그랬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그는 에스프레소를 즐겨한다. 그것도 리스트레또로. 한 번 더 나아가, 리스트레또를 아메리카노 잔에 마신다. 한 번 오면 죽치고 앉아 대여섯 시간을 노트북과 씨름하다가 간다. 아마도 또 어떤 소설을 쓰고 있으리라. 물론 중간중간 딴 짓을 하는지는 몰라도. 그런 그를 위해 두세 번 정도 리필을 해 준다. 그는 일일이 계산하지 않고 한 달에 자신이 먹을 만치의 계산을 한다. 늘 그보다 더 주긴 하지만.



오늘(8월18일). 그를 위해 특별히 준비했다.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그를 위한 커피 메뉴다. 커피를 건네면서 메뉴 이름을 말해줬더니, 눈치를 챘는지, 그가 말한다. 


"이거, 발자크 맞죠?" 


하하. 들켰다. 

"역시 소설 쓰는 사람이라 다르네요. 조심하세요. 독해요." 

"전 심장 발작은 일으키지 않으니까, 걱정마세요. 하하." 


8월18일, DJ의 3주기이기도 하지만, 커피 만드는 내겐 발자크가 우선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Honore de Balzac). 1850년 죽었으니 올해 162주기. 그는 '소설의 교과서'로 불린다. 발자크의 소설이 보여준 섬세한 구조와 사실적 묘사, 인물에 대한 탐구 때문인데, 그의 걸작 《고리오 영감》이 그것을 대변한다.  


아는 사람은 안다. 발자크, '커피 애호'를 넘어 '커피 개중독'이었다. 독일엔 'BALZAC COFFEE'라는 커피 프랜차이즈(1988년 시작)가 있을 정도인데, 프랑스 아닌 독일에서 그의 이름을 딴 커피 프랜차이즈가 있을 정도니, 의아하면서도 말 다했다. (캐나다 토론토에도 있다고 한다.) 



발자크는 커피에 죽고 살았다. 하루에 30잔(50~60잔에 달했다는 속설도 있다). 평생 3만 잔을 마셨다고 추정되는데, 그는 커피 없이 못 살았다. 그는 이른바 '소설 노동자'로 불렸다. 하루의 태반을 소설 쓰는데 썼다고 한다. 14~15시간을 소설 쓰는데 투여했다는 그는 그만큼 다산(多産)했다. 74편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숱하게 많은 단편을 내놨다. 


물론 그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빚을 갚아야 했다. 이른바 '생계형 소설노동자'. 여러 사업에 손을 댔으나 하나 같이 망했다. 사업가적 기질은 꽝이었으나 글쓰기만큼은 잘 했나보다. 미친 듯이 '이야기하기'를 써댔다. 그것을 위해 '커피'는 반드시 필요했다. 대체 얼마나 써대고 마셔댔는지, 이 기록을 보자.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이렇게 묘사한다. 

"한밤중에 일어나 여섯 자루의 촛불을 켜고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시작이 반. 눈이 침침해지고 손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4시간에서 6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간다. 체력에 한계가 온다. 그러면 의자에서 일어나 커피를 탄다. 하지만 실은 이 한 잔도 계속 글쓰기에 박차를 가하기 위함이다. 아침 8시에 간단한 식사. 곧 다시 써내려간다. 점심시간 때까지. 식사, 커피. 1시부터 6시까지 또 쓴다. 도중에 커피." 


도대체, 이 남자는 뭔가. 잠자고, 생리현상 처리하고, 식사 준비를 포함해 식사 시간과 커피를 제조하는 시간을 제하고 하루 15시간을 글쓰기. 그것도 매일. 미친 거 아냐? 소설을 쓰기 위해 그가 커피를 마셨다지만, 커피 만드는 내 입장에서 보면, 반대다. 


"제가 보기엔, 발자크는 커피를 마시려고 소설을 쓴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이게 말이 돼요? 커피가 소설인 이유죠. 죽음보다 지독한 서정이었고요. 하하. 이 정도면 덕후죠, 덕후. 커피 덕후. 커피 오타쿠."


"발자크에겐 커피라는 존재는 '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창작의 동력. 뇌 주름을 깨우고 상상력을 발동하고 생각의 엔진을 돌리기 위한 심장의 검은 석유죠. 근데, 전 아직도 궁금해요. 커피 때문에 정말 죽었을까요?" 


글쎄, 나도 모른다. 그는 심장질환으로 죽었다. 너~무 지나치고 과도한 커피로 인해 심장병을 얻었다는 얘기도 있다. 말하자면, 커피가 '발작'을 일으킨 셈인가? 


"그럼 행복했을까요? 커피를 그렇게 좋아하고 애찬하던 사람이 커피 때문에 죽었으니. 어떤 사람은 커피 애호가다운 죽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발자크가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커피도 너~무 지나치면 독이 된다. 그 지나침은 물론 보통의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한 방에 80잔을 들이키면 훅~ 간다.얼마 전 탈학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커피 강의를 하면서 이걸 알려줬더니, 묻는다. "선생님, 그렇게 마신 사람 있어요?" 글쎄, 나도 그건 모른다.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라는 책이 있던데,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저자인 엘리엇 부는 커피가 자살을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까?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카페인의 분자식은 'C8H1ON402'이다. 이것 10그램을 한 방에 먹으면 황천길이다. 카페인 10그램은 그럼 커피 몇 잔 정도냐! 일반 커피 잔으로 80잔 정도다. 그래서 80잔 얘길 한 거다. 조금씩 천천히 한평생에 걸쳐 죽여주는 독약이 될 수는 있겠다. 커피 때문이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어쨌든 최승자는 죽음 대신 '네게로' 간다고 썼다.(「네게로」라는 詩

"흐르는 물처럼/ 네게로 가리/ 물에 풀리는 알코올처럼/ 알코올에 엉기는 니코틴처럼/ 니코틴에 달라붙는 카페인처럼/ 네게로 가리/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매독균처럼/ 삶을 거머잡는 죽음처럼"


김갑수 선생은 한 술 더 뜬다. 《지구 위의 작업실》, '커피는 한 잔의 문학'이라고 했다. 

"250밀리그램 이상의 카페인을 먹었을 때 10퍼센트 정도의 사람에게서 불안, 초조감, 안절부절못함, 홍조, 다한증, 손발의 따가운 느낌, 구역, 구토증 등이 나타난다. 1그램 이상의 카페인을 먹었을 때는 극도의 불안, 초조감, 정신착란증, 환청과 부정맥이 있을 수 있다. 10그램 이상에서는 전신발작, 호흡부전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영혼의 상처 없이 문학은 가능하지 않다. 말하자면 커피는 한잔의 문학이다." 



"커피 하는 입장에선 어때요? '커피질'도 발자크만 하면 정말 쩔지 않아요?"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다. 덕후질도 저 정도면 확실히 쩐다. 뻬쩨르부르그 사람들이 특별히 주장했다는데, "사상보다도 예술보다도 돈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지독한 액체, 그것이 바로 커피." 커피가 서정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보다 더 잘 드러낼 수가 없다. 발자크에게도 그랬으리라. 


"커피, 정말 지독해요. 커피가 없었다면 발자크가 소설을 저렇게 쓸 수 있었을까요? 빚 때문에 죽으려고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 죽음보다 더 지독한 액체죠."


커피는 한편으로 불행을 극복하는 액체다. 그러니, 만날 빚더미에 눌린 발자크가 이렇게 읊어댔겠지. "불행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되라. 어떠한 지혜로도 불행을 미리 막을 도리는 없다. 그러나 그 불행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힘은 우리에게 있다."


홍대 부근의 한 카페, '무슈발자크'라는 커피가 있다. 무슈는 프랑스 사람, 파리라는 뜻이기도 하고, 아저씨라는 뜻도 있다는데, '발자크 아저씨'라는 그 커피 역시 진한 에스프레소가 아메리카노만큼 담긴다. 이 커피 주인장 역시 뭔가를 아는 사람인지라, 무슈발자크라는 메뉴 이름 옆에 '심장 주의'라는 경고(?)를 달았다. 이 커피를 100잔 마시면 소설가가 된다는 '믿거나 말거나'까지 말해준다고 한다.


나는 바란다. 부디, 이 소설가에게 나의 커피가 동력이 되길. 

발자크에게처럼 커피가 발작을 일으키는 대신, '심장이 건너뛴 박동'으로 그만의 소설을 완성하길. 

나의 커피가 그의 서정과 서사를 온전하게 결합하는데 도움이 되길.


소설가의 표정이 오늘 따라 밝다. 심장이 건너뛴 박동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밤9시의 커피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커피를 만들고 내린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커피가 위 속으로 미끄러지듯 흘러 들어가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각이 전쟁터의 대부대처럼 몰려오고 전투가 시작된다. 추억은 행군의 기수처럼 돌격해 들어온다. 기병대 군인들이 멋지게 달려 나간다. 논리의 보병부대가 보급품과 탄약을 들고 그 뒤를 바짝 따라간다. 재기 발랄한 착상들이 명사수가 되어 싸움에 끼어든다. 등장인물들이 옷을 입고 살아 움직인다. 종이가 잉크로 뒤덮인다. 전투가 시작되고, 검은 물결로 뒤덮이면서 끝난다. 진짜 전투가 시커먼 포연 속에서 가라앉듯이" (발자크, ‘커피송가’ 중에서)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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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2-08-19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 없이는 못살아도 또 밤 9시 이후의 커피는 못먹지만 ㅠㅠ 한 번 가보고 싶네요. ㅎㅎ

책을품은삶 2012-08-23 01:24   좋아요 0 | URL
네, 커피라이프는 언제나 자신에게 맞게 즐기시면 돼요~^^
즐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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