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10월 9일.
Che를 내리는 시간.
혁명 품은 쿠바 커피.
46주기를 맞은 나의 리추얼.
詩月은 그렇게 혁명이 스러진 계절이다.
작정하고 붙잡지 않으면 그만 쉬이 놓치고 마는 계절처럼 혁명도 마찬가지.
그래서 Che는 詩다. 가능성만 영원히 봉인한 채 상상으로만 가능한 詩.
내가 사랑하는 몇 안 되는 남자 체 게바라의 46주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커피를 내리면서 詩를 떠올리는 일. 혁명이 미국의 총탄에 쓰러지지 않았다면, 세상은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체의 죽음은 이듬해 68혁명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나의 커피에는 그런 시적 상상이 함께 담긴다.
벤세레모스(venceremos).
10월 9일 내가 내리는 쿠바 커피의 이름이다. 당연히 내가 붙인 이름이고.
체 게바라, 편지 말미에 늘 이렇게 썼다.
조국이 아니라면 죽음을 (Patria o muerte)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Venceremos)
- 사령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Comendero Ernesto Che Guevara)
벤세레모스, 이 스페인어의 뜻은 이렇다. 우리 승리하리라.
글쎄, 체는 승리를 확신했을까. 확신 여부는 물론 중요하지 않다.
나는 체가 미국의 패악질이 얼마나 거대하고 강력한지 충분히 알고 있었으리라 본다.
그러니 아마도 그 승리,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체는 그럼에도 그렇게 뱉으며 끝까지 싸웠을 것이다. 패배를 향한 숭고.
나는 그 비관적 절망의 정의를 담아 벤세레모스 내려드린다. 혁명의 피 같은 커피를.
벤세레모스는 여러 차례 언급도 했지만,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이 노래, 세계에서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잡은 살바도르 아옌데의 1970년 인민연합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 사용됐다. 아옌데는 그러나 1973년 미국의 꼭두각시 피노체트에 의한 쿠데타로 9월 11일 목숨을 잃었다. 승리는 오래 가지 못했다.
벤세레모스 커피에 역시 혁명의 피가 묻은 이유다.
詩月엔, 커피와 혁명과 詩가 있다. 아름답다.
그리고 아름다운 당신이 있었다. 가능성만 영원히 봉인한 채 상상으로만 가능한 당신이라는 시 詩. 그해 시월에 당신이 왔고, 커피가 왔고, 시가 왔고, 혁명이 갔다.
나의 영원한 벤세레모스. 밤9시, 당신만을 위해 내린다.
커피 방앗간
그녀가 빻아 내리는 커피 속에는
굵은 무쇠 바늘 지나간 길이 있다
한 땀씩 건넌 자국 위에는
시린 봄을 건너는 탱자나무 검푸른 가시
칼날 세우는 소리와
봄 사과나무 창으로 드는 바람 소리
사랑을 잃은 여자들의 눈물방울이 맺혀있다
매운 시간을 건네는 소리들 소복 스민 커피 호로록
호로록 마시다 보면
겨울 소포 같은 두툼한 누비 바다에
가만히 능선을 넘어가는 발자국 소리와
늦은 자국눈 내리는 소리 비쳐든다
겨우내 살브랑살브랑 낮은 햇살 드나든
이 오지그릇 속에도 봄이 와
곱게 4월의 문을 열어놓는 집
빗살무늬 볕살 비껴 내리는
햇살 좋은 그 집
- 김만수 詩集, <바닷가 부족들>중에서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