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드림
사라 바론 지음 / 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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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지 않게 이별을 겪은 이들을 위한 성숙하고 다정한 안내서. 그리움의 잔향을 새로운 인연과 맺은 관계의 성장 자양분으로 삼는다. 스토킹을 배제한 이별 공식의 표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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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일자리를 디자인하다 - 지역×크리에이티브×일자리
하토리 시게키 외 지음, 김홍기 옮김 / 미세움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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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연결’이었다. 

하는 일도 제각각, 살아온 배경·환경도 천차만별. 책 초반부, 별달리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이들이 ‘지역고용창출’이라는 빤한 목표로 모여 성과를 대충 나열한 작은 백서(白書)이겠거니 생각했었다. 책의 개요도 그리 말하고 있었다. ‘인구 15만 명의 일본 세토내해 최대 섬인 아와지 섬. 이곳에는 고용창출을 목표로 하는 ‘아와지 일하는 형태 연구섬’이 있다. 책은 4년 동안의 활동과 성과를 기록했다.’ 아와지 일하는 형태 연구섬? 익숙하지도 직관적이지도 않은 작명은 또 어떻고. 그런데 책을 넘기면서 제각각 풀어낸 이야기가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많은 것들이 연결되면서 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면서 불이 켜졌다. 

아, 이 조각들이 하나로 수렴되는 과정이 아와지 섬의 일자리 만들기, 더 나아가 공동체경제(마을경제)가 진화하는 과정을 드러낸 것 아닐까. 재미있는 연결이었다. 그것은 SNS의 교감 없는 연결과는 다른 무엇이었다. 책에서는 그것을 ‘편집’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과 별을 연결하여 별자리를 명명하는 것 같은 작업.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재료, 사람과 장소, 물건과 공간 등 모든 것이 연결됐다. 그것은 또 다른 흥미를 낳았다.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던 상황이 만들어졌고, 아와지 섬의 매력이 드러났다.


일자리 창출 플랫폼 

‘아와지 일하는 형태 연구섬’(아래 아와지)을 ‘디자인’(좁은 의미의 디자인이 아닌 공간과 정보, 사람의 종합적인 조율을 디자인이라고 하자)한 것은 다양함이었다. 수퍼바이저, 지역 어드바이저, 사업추진원, 실천지원자, 지역주민 등 다양한 관점이 모였다. 건축, 기획, 예술, 디자인, 농업, 자영업자 등 다양한 일을 하던 사람들은 제각각의 의도야 어쨌든, 아와지에 새로운 ‘별자리’를 만들었다. 혼자 빛나는 별은 없었다. 사람이 가장 창의적으로 되는 때는 자신이 하는 일이나 생활 형태와 다른 사람을 만날 때라고 했던가. 물론 그것이 되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은 태도다.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태도. 다른 사람에게는 없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다른 사람에게는 있고 내게는 없는 것을 알고 함께 머리와 몸을 맞대는 것. 행간에서 그런 과정을 읽을 수 있었다. 4년 동안 숱한 갈등과 어려움을 겪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숱한 실패와 어려움도 겪었을 것이다. 어떤 우정이나 좋은 관계를 확인하더라도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은 피곤이나 피로를 동반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을 충분히 즐기고 감내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시간과 관계의 축적은 또 다른 가능성을 낳는다. 무쓸모의 쓸모,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친구나 팔로어를 쌓으면서도 타자를 만나지 못하는 SNS의 연결과 다른 사회적인 연결 덕분이다. 아와지 섬이라는 특정 지역과 공간을 둘러싼 움직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무엇이었을 것이다. 아와지 섬의 매력을 생각하고 찾으며 의논하는 것이 계속 됐다. ‘어떤 사회에서도 일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연수’ 등과 같이 별의별 이름의 연구회가 만들어졌고 실천했다. 그것을 나는 ‘(일상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일(사업 혹은 프로젝트)을 즐기는 기술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어려움을 감내하는 기술. 더불어 아와지 섬이라는 자장 안에서 만들어진 매력이 가세했다. “도와주러 갔다가, 관계 때문에 갔다가, 그들의 천재적인 ‘자리 만드는 방법’에 반했다”는 말이 그것을 방증한다. 


사실, 민간과 행정의 연결(협치)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한국, 특히 서울의 마을공동체 사업에서도 ‘협치’는 쉽지 않은 과제다. 불협화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푸느냐’(솔루션)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사업 진행은 마냥 쉽지 않았다. 공공사업이니만큼 부담도 컸을 터. 협치는 필수지만 금성과 화성의 언어가 다른 걸 어떡해. 의식차이도 컸다. ‘우리가 지향하는 풍요로운 사회’라는 목표를 놓고도 해석은 제각각. 관공서에 맞춘 사업운영도 어려웠다는 실토도 나온다. 사업 초반부, “아와지 섬에서 사업의 시작은 효고 현의 협력을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에 달려 있었다”는 말은 협치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의 사례. 회의에서 NPO멤버 한 사람이 행정을 비판했다. 공무원은 당황했지만 또 다른 민간의 협치 파트너가 행정 비판 발언을 부정했다. 무작정 반대나 진영 논리가 아닌 다양함을 인정하고 합의를 이루자는 접근. 회의 결과는 좋았나 보다. 회의참석자는 이렇게 토로한다. “이런 동료가 있으면 일이 잘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결과는 우연히 나오지 않는다. 

순조롭지 않은 협치의 과정, 다양한 지혜를 모으고 조정을 거쳤을 것이다. 매뉴얼이나 절차가 축적돼도 자동으로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것이 현실. 어느 곳이든 이런 존재들도 있다. 행정에 의존하여 요구만 하는 주민, 무난한 대책과 성과에만 매달리는 공무원, 생활비 받듯이 보조금에 의존하는 단체. 아와지 섬에도 도와주기 위한 돈(보조금)이 사람과 지역을 망친 사례도 있고, 책에 실리지 않은 지뢰도 잠복해 있을 것이다.  

 

허나 완벽하고 어디에도 적용 가능한 솔루션은 없다. 

사람, 공간, 환경, 에너지 등 모든 것이 다르므로. 아와지 섬의 연결은 협력과 협치로 이어진 경우 같았다. ‘행복한 교통사고’라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연결했고 협력을 이뤘다. 다양한 관점이 결합했고 협동하는 지혜도 축적됐다. 그것은 이리저리 흩어진 천 조각이 바느질 한 땀 한 땀으로 연결됨으로써 근사하게 탄생한 조각보 같았다. 책 속의 이 말을 믿고 싶어졌다. 


“뜨거운 마음과 열정, 그리고 서로 협력하는 동료가 있으면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멋진 경험이었다. 행정과 민간이라는 장벽을 넘어 함께 사업을 성공시키겠다는 수평관계로 절차탁마했던 것도 대단히 기쁜 경험이었다.”(229쪽) 


이런 연결고리와 마음에 집중하자, 

아와지 섬 특유의 부가가치 상품 개발, 아와지 섬 특유의 관광투어 개발 등으로 이어진 마을경제 혹은 공동체경제의 확장은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다. 마을, 사람, 생활, 지역자원, 문화 등이 유기적으로 만나 일자리는 기본, 상품·서비스의 부가가치 향상은 물론 지속가능성을 갖춘 경제 형태와 이것을 지탱하는 일의 행태라는 또 다른 가치를 낳았다. 이는 취업을 위한 교육·기술향상, 지역 회사의 상품개발·마케팅, 사업 확대 등을 목표로 하는 우리 사회(마을경제)의 모습과 대비된다. 경제를 삶(생활)과 따로 떨어진, 돈을 버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건 너무 협소하다. 아와지는 액면 상으로 일하는 형태를 이야기하지만 이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연결된다.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게 만드는 공동체경제가 필요한 이유다. 인구 79만의 일본 후쿠이현의 사례를 다룬 《이토록 멋진 마을》에 나온 한 마을 상인의 통찰이 방향을 알려준다. “경제 행위란 본디 이타적 행동이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는, 서로를 지탱해주는 조화의 힘이다.” 


조화는 연결의 결과다. 

아와지의 탄생전야인 2011년 여름 열렸던, 요리사들은 섬의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하고, 도예가는 이를 담을 자기를 만들고, 누군가는 술을 들고 오는 등 한 사람 한 사람이 파티를 만드는 능력을 ‘셰어’하면서 시작한 ‘노플랜 파티(No Plan Party)’. 이 파티는 앞으로 변화될 아와지 섬의 모습을 함축했다. 기계적인 나눔(셰어)이 아닌 각자의 능력과 지혜를 모아 다양한 것을 ‘추렴’함으로써 혼자선 일어나지 않았던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낸 것. 이후 조금씩 확장된 관계는 연결을 거듭함으로써 아와지는 물론 아와지의 후생노동성 위탁사업 종료 후 ‘하타라보 섬 협동조합’으로 이어져 새로운 사업을 펼치고 있다. 공동체경제는 이렇게 진화할 수도 있다. 관계 속에서 살고 관계 속에서 가능성을 펼치는 것. 


책은 충분히 친절하지 않다. 

그것이 외려 나았다. 책 읽는 사람이 빈 공간을 상상하고 채울 수 있으니까. 책을 덮으면서 김규항 선생의 말을 곱씹었다. ‘세상은 평범한 사람의 삶에서 작은 가치들이 쌓일 때 조금씩 좋아진다.’ 책을 통해 만난 아와지 섬이라는 세상도 그랬다.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연결하고, 남과의 비교가치를 따지지 않는 태도. 어떨 때는 태도가 비즈니스를 만든다. 공동체경제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돈을 벌기 위해 판매를 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또 다른 가치를 건네주는 것. 


아와지 설립 준비를 위해 아와지 섬에 이주한 사업운영 구성원이자 주식회사 SHIMATOWORKS(섬과 일) 대표인 도미타 유스케의 말이 그 태도를 대변하고 있었다. “일은 실패하더라도 실패하는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저에게 중요한 것입니다.”(185쪽) 



일은 실패하더라도 실패하는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저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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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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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를 잃어버린 세상에 사람을 살리는 방법에 대한 면밀한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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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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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이 있어야만 삶은 삶이 될 수 있겠다. 짧은 편지글에 담긴 도반의 진심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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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행복사회 시리즈
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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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동료들과 함께 공정무역커피 노동자협동조합을 꾸리고 있다. 커피업을 내 업으로 삼기 이전에 나는 다른 업종에 종사하고 있었고 수차례 직장을 옮겼다. 행복하지 않았다. 누군가 행복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걸리는 것이 없는 상태라고 하던데, 늘 뭔가 소화되지 않은 더부룩함을 품고 살았다. 남들도 그러려니(실제로 많은 주변인들이 그렇게 살았으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억지 위안으로 꾸역꾸역 버텼다. 그 당시 직장을 옮길 때마다 나의 중요한 판단 기준은 이것이었다. 출근길 발걸음이 가벼운가? 회사 가는 길이 가뿐한가? 그러다 어느 날, 10여년을 배운 ‘도둑질’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도 좋은 것인가? 나름 성실한 직장인이자 계속 그 일을 하면서 한 직장에 오래 머문다면 ‘남들 보기에 그럴 듯한’ 자리나 위치에 오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내가 없는’ 조직형 인간으로만 살기는 싫었다. 근본적인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확하게는 하기 싫은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좀 더 내 몸을 놀려서 무엇이든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주변에서는 걱정의 소리를 쏟아냈다. 미쳤냐는 말도 들었고 다른 짓 하다가 돌아올 거라는 예측을 내놓은 사람도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은 ‘남들 보기에 버젓한’ 직업(직장)을 그만두는 건 무모해 보이는 한국 사회였으니까. 모를 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로서 살아가기로 했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하기 싫은 일을 계속 하는 것은 나를 죽이는 일이었다. 커피(업)를 선택했고 커피 사회적기업 등에도 몸을 담았었지만 좀 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히고 평등한 관계가 있는 직장을 위해 동료들과 노동자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온전히 주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선택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태도이자 자세였다. 이전의 직업과 직장이 남들 시선도 적당히 의식하면서 사회적인 인정(혹은 대접)까지 감안하고 돈(연봉)을 얼마나 받을 것인지에 초점을 뒀다면 이제는 온전히 내게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타인의 삶이 아닌 내 삶을 살아가기.

 

나는 그렇게 협동조합을 시작했다. 어떤 정교한 목적이나 이유를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전보다는 행복해졌다. 걸리는 것도 적고 내가 선택하고 자유를 누리며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때까지 오기까지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15년가량의 세월을 건너야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통해 접한 덴마크 사회에서 살 수 있었다면 나는 그 시간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15년이 마냥 아까운 것은 아니지만, 행복의 시간을 좀 더 누릴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더구나 지금의 일도 하기 싫은 일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때 나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장담할 수가 없다. 한국 사회가 적어도 밥벌이를 해줄 정도의 직장을 찾아 주리라는 믿음이 없다. 각자도생을 요구하는 이 사회에서 다시 직업을 바꿨을 때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갓 태동한 협동조합이 덴마크의 협동조합처럼 성숙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급여가 많고 안정된 직장을 ‘신의 직장’이라고 부른다. 나는 신의 직장 따위는 없다고 본다. 그 말에는 주체성이 결여돼 있다. 적당히 맞춰주고 많이 받겠다는 태도 같은 것. 그러므로 진짜 필요한 것은 ‘인간의 직장’이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가 보여준 덴마크의 직장이 그러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악을 써야하는 직장이 아닌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 직장이기만 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도나도 안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공무원 시험에 몰리고, 취업 잘 되는 것을 자랑처럼 내건 학과는 늘 문전성시다. 대학은 ‘취업사관학교’라는 타이틀을 거리낌 없이 내걸고 취업률을 뽐낸다.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닌 돈과 직업적 안정성에만 매달려야 하는 상황은 그만큼 우리의 극심한 사회적 불안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덴마크의 예는 달랐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교과서의 말이 사회에서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었다. 학교와 사회가 분리된 한국과 달리 덴마크는 일관적이고 통합적이었다. 평생을 식당 종업원으로 일한 아버지는 열쇠 수리공이 된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한 번도 아들이 판검사나 의사, 교수가 되길 바라지 않았다고 했다. “열쇠 수리공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필요하고 의미 있는 직업입니까?”라고 반문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브라보”를 외치고 싶었다.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출세나 돈, 권력(을 가진 직업)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한국에서 익숙한 부모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나는 한국 사회가 지옥을 자발적으로 임대했다고 생각한다. 그 지옥이 다이내믹하다며 지루한 천국보다 낫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 책에 나온 덴마크는 지옥이 인민들을 얼마나 고달프게 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만든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부러우면 지는 한국 사회. 불평등을 경쟁의 불가피한 결과물이라고 내세우며 사회적 비용을 아낌없이 무는 형태는 한국을 점점 더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든다. 요즘 한국 사회에 수시로 일어나는 ‘묻지 마 OO’는 잘못된 표현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쌓여서 마침내 터진 것이다.

 

덴마크를 표현한 ‘평등사회’는 한국 사회가 가야 할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로 신뢰하고 평등하면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든다는 사실을 덴마크는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점점 더 한국 사회가 무서워진다. 최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물었더니 돈이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꿈을 묻는 질문에는 건물을 소유하고 임대업을 하는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답변이 많았다. 아이들이 건물주를 꿈으로 말하는 사회. 지금 이 사회의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다.


오연호가 만난 덴마크 고등학생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꼭 좋은 집에서 살아야 하나요? 정말 중요한 건 좋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일이죠. 함께 어울려 일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내가 아는 30, 40대 아저씨들은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지만 아무도 그들을 루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덴마크에서는 좋은 집, 좋은 차, 멋진 이성친구가 꼭 있어야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아이 때부터 체득하고 있는 사회라니. 내 가슴에 이런 울림이 번졌다. 아, 이런 사회에 살고 싶다. 삶의 태도와 자세가 한국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돈이 삶을 행복하게 해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내가 갈 길은 내가 정하는 자유와 자율성으로 행복을 느끼는 사회는 어떤 곳일까. 내가 살아보지 못한 덴마크가 정말 궁금해졌다. ‘불평등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가 주는 안정감도 느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실업자들은 외롭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것은 다른 인민들의 도움이다. 세금을 내기 때문에 ‘걱정 없는 사회’가 됐다는데, 덴마크 인민들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공동체 의식이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정과 공동체를 강조하지만 이미 없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개인에게 주어진 짐만 무거운 한국 사회의 모습과 대비되고 있었다. 우리는 늘 ‘더 나은’ 삶을 원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실은 ‘더 많이 가진’ 삶을 원하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원한 것은 풍요로운 재산이었지, 풍요로운 정신은 아니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통해 나는 힘을 얻었다. 협동조합을 통해 좀 더 나은 삶과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변호사이자 에너지 관련 협동조합의 대표인 에리크 크리스티안센의 예가 그랬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수입이 많은 변호사가 왜 협동조합에 오랫동안 열정을 쏟아왔냐는 물음에 그의 답은 간단했다.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으니까요.” 아하, 우리는 우리 스스로 고용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했을 뿐인데, 그것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겠구나. 우리가 매일 같이 하는 행위가 나는 물론 우리와 사회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2년 가까이 협동조합을 꾸리면서 나는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것보다 진짜 협동을 하는 문화, DNA를 이식하는 것이 더 힘든 작업임을 느끼고 있다. 나나 동료들이나 제도권 교육을 통해 협동이나 협력보다 경쟁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성적을 중요시하는 교육(보다는 사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인생학교’를 다니고 있는 셈이다. 이전의 직업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벌고 직업적 차별도 받지만 나는 좀 더 행복해졌다. 덴마크의 속담에 가까운 ‘일을 시작할 때 미국 농부는 기계를 먼저 생각하고 덴마크 농부는 협동조합을 먼저 생각한다’는 말이 한국에도 언젠가 익숙한 말이 되는 날을 기대한다. 그것이 내 살아있는 동안에는 오지 않을지라도 나는 협동조합이라는 ‘삶의 태도’를 가능하면 계속 견지하고 싶다. 덴마크는 이미 그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하지 않았던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는 덴마크의 행복을 단순히 복지 제도에서만 찾을 수는 없음을 확인한 책이다. 독일도 복지 제도가 잘돼 있는데도 왜 덴마크인들이 더 행복한지에 대해 ‘태도의 문제’라고 덴마크 인민들은 말하고 있다. 덴마크에는 다른 사람이 큰 집을 갖고 있어도 친구가 좋은 대학을 다니고 연봉을 많이 주는 직장을 다녀도 부러워하는 문화가 없다고 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남과 비교해야 사는 삶이 주는 피곤함과 내가 아닌 남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회가 지옥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더디게 가도 자신의 힘으로 페달을 밟아 전진하는 자전거처럼, 나는 지금 내 선택이 나를 내 삶의 주인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다. 책의 표현대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주체성의 쾌감을 만끽하고 있다.

 

이전에 덴마크, 하면 떠오르던 안데르센(동화)이나 우유에 국한된 세계를 넓혀준 책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이다. 그리고 《인어 공주》가 덴마크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용궁에서 용왕의 딸로 호위호식하며 살 수 있었지만 인어 공주는 자신이 원하는 자유와 삶을 위해 물 바깥을 선택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휘게’하면서 살고 싶은 욕망을 감추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그 모든 남들의 부러움과 선망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덴마크였기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19세기 노르웨이를 잃고 독일에게 남부 땅을 크게 잃고 쪼그라든 나라에서 덴마크 인민이 선택한 주인의 길. 그러니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이 책에 있지 않다. 이 책 밖으로 걸어 나와 뚜벅뚜벅 자신의 발걸음을 걸을 때 길은 만들어진다. 


자, 우리도 함께하면서 새로운 길을 열자. 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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