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블랙'.
그 블랙은 '유혹'이고, 나는 '매혹'당한다.
까맣고, 새까만, 그 까망의 유혹.
그렇다. 블랙, 나를 사로 잡는 '까만 유혹'은 그녀의 까만 머리결.



그녀의 등을 타고 내려 앉은 까만 머리결이 물결처럼 출렁일 때,
나는 블랙 스네이크에 휘어감긴 듯,
아득한 기분을 느낀다.

나는 그렇게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는 듯,
아래로 쭉쭉 내리뻗은 새까만 블랙의 매력을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알 수가 없다.
그 블랙이야말로 '궁극의 블랙'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더구나, 그 블랙은 블랙 패션과도 너무도 어울린다.
물론, 그것은 콩깍지가 씌인 나의 동공 때문이 아닌가도 싶지만.
나는 그 머릿결을 그래서 '까만 유혹'이라고 부른다.
어느 하나, 삐져나간 것 없이 까맣게 물든 그녀의 머릿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블랙이 다른 어느 색깔보다 요염하고 관능적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녀의 까만 머릿결을 통해 처음 알았다.

나를 사로 잡는 차가운 블랙의 유혹,
그것은 바로 그녀의 까만 머릿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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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의) '매혹'은, 치명적이다.
빠지면, 도리가 없다. 있는 것, 없는 것, 줄 것, 안 줄 것, 그런 것, 가릴 게재가 없다. '진짜 매혹'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벌거숭이가 돼야 한다. '남의 마음을 사로잡아 호림'이라는 '매혹'의 정의를 따르자면, 매혹은 곧, 권력과도 통한다. 사로잡는 자와 사로잡히는 자의 관계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관계와 다를 바 없다. 매혹은 그렇다. 마음을 사로잡혔는데, 어찌하란 말이냐. 어쩌면, 마음은 감옥으로 향한다. 이른바, '마음의 감옥'. 매혹은, 그렇게 우리를 옥죈다. 매혹을 뿜는 자, 세계를 가질지니. 매혹을 당한 자, 무릎을 꿇어야 하나니. 경배하고, 추앙하라. 매혹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매혹이, 때론 나를 지탱한다.
나는, '매혹'을 원한다. 매혹 없는 생은, 많이 끔찍하다. 마음이 사로잡히는 것, 하나 없다면 그것은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쭈그렁한가. 그 무엇이건, 매혹은, 전 생을 걸쳐 꾸준하게 있어줘야겠다. 그건 감성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무릇 신산한 생을 지탱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나에게 오라, 팜므파탈. 제발 와줘, 팜므파탈.^^; 나는, 그러면서도, 걷잡을 수 없는 '매혹'이 덤비면 어찌하나, 노심초사하는 왕소심한 마초다. 그렇기에, 나의 매혹은, 얼쭈 '스크린'에서 이뤄진다. 알다시피, 스크린 속의 '매혹'은 어떤 치명상이나 내상을 부여하지 않는다. 즉, 안전하다. 소심한 작자는, 스크린을 통해 뇌살을 당하고, 매혹에 한없이 빠져든다. 매혹신의 강령.

탕웨이, 나의 새로운 매혹, 하악~
나의 스크린 속, 첫 번째 매혹은, 우리 (장)만옥 누님이었다. 좋아하는, 아름다운 배우들은 차고 넘쳤지만, 나는, <화양연화>를 보면서, 허거거걱...꺼윽꺼윽... 만옥 누님은, 매혹 그 자체였다. 무엇으로 그 아름다움과 뇌쇄를 설명할 것이오. 그 쪽진 머리와 실루엣은, 나를 매혹으로 물들여놨다. 뱀처럼 내 마음을 휘감는, 늪으로 내 마음을 유도하는, 그럼에도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매혹. 또 다른 매혹은, 스칼렛 요한슨. 나는, 그 입술을 보면, 그것에 풍덩 빠지고 싶다. 그리고 약간 물 건너 지나갔지만, 나카야마 미호. 그런데, 얼마전, 그 유명한 <색, 계>(色,戒, 2007)를 보고, '포스트 장만옥'으로 덜컥, '탕웨이'를 임명하고 말았다. 만옥 누님이 아직 정정하심에도, 나는 탕웨이의 뱀같은 유혹에 넘어갔다. 아흑. 넘어간다~는 말도 안하고 그냥 넘어가더라, 털썩. 바야흐로, 탕웨이가 내게로 왔다.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이런, 이 미친 놈의 매혹!


아아, 탕웨이.
코는 낮고, 입술은 작았으며, 젓살까지 찰랑. 얼굴은 또 어찌나 작던지. 나도 모르겠다. 이건, 평소 내가 넘어가던 매혹의 '조건'이 아니다. 어찌 이런 일이. 허나, 따지고 보자. 매혹에, 조건이 있을 수가 있나. 이러이러하니, 난 매혹당하련다, 이런 건 없다. 마음을 사로잡는 건, 순간이다. 어떤 순간이 확, 마음을 낚아채는 것이다. 나는, 낚였다. 탕웨이에. 숨도 쉬지 못할만큼의 격렬한, 그 쎅스 씬이 아니었다(나는, <색, 계>의 그 유명한 쎅스 씬들보다, 이대장(양조위)와 막부인(탕웨이)가 처음 나눴던, 전화통화 씬이 더욱 섹시하고, 관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쎅스 씬은 너무 슬퍼서.ㅠ.ㅠ 그 형형한 눈빛, 내 마음을 불을 지른 탕웨이의 눈빛.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의 몸짓에 나는, 홀딱 넘어간건가. 포스트 장만옥, 탕웨이. 다음 작품을 보고선, 앞의 수식어를 탈착여부를 결정하겠지만, 기냥 이참에, 선언할까보다. "나는, '탕닥후'(탕웨이 오타쿠)~" 탕웨이는, 마음을 사로잡은 눈부신 색, 그리고 천상과 지상을 오가는 계. 스물 여덟, 이제 막 농익기 시작한 여신. 하악.

나를, 매혹시키는 또 다른 것.
물론 나도 이 영화, 지나친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나 여성을 탈색시킬만큼 과도하게 감상을 덕지덕지 발라놨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신파극 맞긴한데, 매혹에 빠진 내가 제대로 그런 것이 보였겠어.^^; 뭐, <색, 계>는 많은 컨텍스트도 품고 있지만, 여기서 그런 것은 언급않고. 그저 매혹, 그 하나에만. 하악. <색, 계>를 보면서 2년 전 부산영화제에서 만났던, 관금붕 감독의 영화, <장한가>를 떠올렸다. 당시 나는, <장한가>에 '매혹'됐었다. 개거품을 물었다,면 거짓말이고, 그해 나의 최고의 영화로 꼽았을 정도니까. 당나라 백거이의 장편 서사시 제목인 <장한가>에서 정수문이 분한 '왕치아오'에 나는, 뻑갔다. 그 일생도 일생이지만, 40년대 상하이의 풍경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고보니, <색, 계>도 40년대 상하이. 나는, 어쩌면 40년대에 약간은 매혹됐는지도 모르겠다. 경성의 40년대 또한 나를 사로잡곤 했으니까. 상하이와 경성의 고혹적인 풍경이, 이들 주인공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내겐, 어떤 매혹의 요소가 됐을 수도 있겠다. 이보다 약간 앞선, <완령옥>(그러고보니, 만옥누님이 완령옥 역할을 했었다!)도 그렇고.

아, 매혹이여, 절정이여~
<색, 계>에서 탕웨이는 말한다. "뭘로 사로잡아요? 내 몸으로? 당신은 그를 몰라요. 연기라면 그가 몇 수 위죠. 날 안을 때마다 그는 마치 뱀처럼 내 안으로 파고들어요. 난 노예처럼 그를 받아들이고 충실히 내 역할을 다해 그의 맘을 얻어내죠. 내가 피를 흘리고 고통의 비명을 질러야만 그제서야 절정에 올라요. 그는 내 반응이 가짜가 아니란 걸 알죠. 이러다 사로잡히는 건 내가 되고 말 거예요!" 어흑, 내가 치고싶은 대사였다. 탕웨이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매혹시킬 것인가. 한편으로, <색, 계>가 혹시 탕웨이의 절정은 아닐까, 화양연화가 아닐까, 때이른 걱정도 한다. 별걸 다 걱정하는군. 쯧. 탕웨이는, 이제 시작인 것을. ☞ [탕웨이] 말로 할수 없는 것을 연기하다

아 어쩌면, 나는 당신이, 빠져든다... 나, 빠져나오기 싫어....

 
그리고, 알고보면 더 재밌는, <색, 계>의 실제 사건. ☞ 영화 '색, 계'의 실제 모델 띵무춘과 쩡핀루


뱀발. <색, 계>. 다시 보고 싶지만, 탕웨이 아닌 다른 것을 볼 수 있을까. 저리도 슬픈 섹스는, 대체 마음이 어떤 시츄에이션일 때 가능한거야. <색, 계>의 양조위에 대한, 이야기는 불필요하겠지만, 마지막 장면은 정말 침대가, 우는 것 같았다. 막부인(혹은 왕치아즈)이 총살 당하던 그날, 이(양조위)가 막부인의 빈 침대에 앉아 글썽이던 눈물. 이가 일어난 뒤 보여지는 구겨진 침대시트. 그리고 그것을 뒤돌아보는 이의 그림자. 흑. 어찌, 침대 하나로 이렇게 사람을 울리오. 징하다, 이안. 가만보니, 그 침대. 알고보니, 침대는 과학도 아니었소. 침대는 눈물이더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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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배가 보낸 계절 정보 업데이트 메일. 선배는, 어제(18일)부로 '진짜' 겨울이라고 했다.

그냥 보면서 징했다. 아무 것도 아닌데. 그래, 계절 인식에 착오가 없어야 한다.
 
선배가 '진짜' 겨울을 들먹인건, 첫눈 때문이리라. 그래, 첫눈이 내렸다.
나는 몸살 기운으로 골골거렸지만, 첫눈이 그렇게 들이닥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래도 몸 아프니, 첫눈이고 뭐고. 여느때 같으면 그 눈을 맞고 한없이 감상에 빠져들었겠지만. 쯧.

첫눈은, 약속이다. 첫눈 오면 뭐하자, 어디가자, 친구건 연인이건, 첫눈은 어떤 약속과 함께한다.
물론 올해 첫눈, 딱히 뭔가하겠다는 계획은 없었지만, 이렇게 보내버리니 아쉬운 감도 있네.
그땐, 그런 약속들이 있었는데... 첫눈에 씻기울 그런 감정들도 있었는데...

물론 아파서 그랬겠지만, 벌써 나는 첫눈에도 시큼해진, 감성 노화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웅.

첫눈과 어떤 맥락도 없이 지껄이는 것이지만, 선배 말 마따나 역시나 한국은, 서글퍼.
오직 한 사람의 입에만 매달린 형국하곤. 대선도 결국 그 입에 좌우되겠고, 우린 그 입의 향배에 따라 대통령을 만나겠지. 어떤 정책도, 비전도 없고, 창의성이라곤 눈귀코 씻고 찾아봐도 없는.

첫눈.
그 언젠가 나도 첫눈 오는 날,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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