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을 접하면.

"나는 어떤 왕도 섬기지 않는 세계 시민으로서 글을 쓰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실러, 1784년 11월, 문예지 <라이니센 탈리아>.

 

나는 언제고, 저런 선언을 하면서 글을 쓰고 커피를 내릴 수 있을까? 

 

가령, 이렇게?

나는 어떤 자본도 섬기지 않는 세계 시민으로서 커피를 만드는 것이다.

 

허수경 시인의 말씀을 약간 바꿔서,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젊은 시인들과 젊은 노점상들과 젊은 노동자들에게 커피를 만들어주면서 아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 나는 실러의 저 명징하고 육중한 선언처럼 할 자신이 없다... 저 짧은 글에는 실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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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마구마구 카페에 가고 싶어진다. 비가 올 때, 낙엽이 우수수 쏟아질 때, 햇볕이 넘쳐날 때, 구름이 멋진 날, 너무 추운 날……. 모든 날씨는 카페를 부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거기에 있다.                 - 이명석, 《모든 요일의 카페》 중에서 -

 

그들은 이곳에서 모이곤 한다. 

한꺼번에 함께 오는 것은 아니다. 하나둘 따로따로 온다. 

물론 때로는 혼자, 커피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러운 모임이다.

여긴 일종의 아지트인 셈이다. 무슨 현안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친목 모임도, 비밀 결사체도 아니다. 그냥, 그들은 '따로 또 같이'다.  

 

때론 그들은 격론을 펼치기도 한다. 

몇 주 전에는 아예 새벽을 넘길 기세여서, 커피하우스 클로징을 맡겼다. 옛다, 문 닫고 가세요. 

다음날 이야길 들어보니, 꼴딱 새벽을 샜단다. 동이 틀 때까지 다양한 토론과 격론을 펼쳤단다.

무슨 혁명을 꾀하는 혁명가들 같은 면모도 있다. 

 

가만 들어보면, 주제도 다양하다.

선거와 민주주의, 사랑의 종말, 학교(교육)의 불가능성, 공정무역과 경제체제, 음악과 나가수, 아이돌의 품평회, 여자와 남자의 차이, 그야말로 종횡무진, 종횡사해다. 

다양한 담론이 오간다는 것, 견해의 다름(차이)을 인정한다는 것.

이들이 느슨하게 계속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요인이 아닐까, 이 커피집 아저씨는 생각해 본다.  

 

오늘은 3명이 모였는데, 두 여성 이야기로 꽃이 핀다.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잠시 껴들었었는데, 코코 샤넬과 전혜린.

말하자면, 20세기 여성해방에 기여한 사람들이다.

어제가 두 사람의 기일이었다. 전혜린은 1965년에, 샤넬은 1971년에. 각기 47주기, 41주기.

물론 차이는 있다.

전혜린은 31세에  스스로 세상에 절연을 선언했고,

87세로 생을 마감한 샤넬의 마지막 말은, "결국 사람은 죽는구나!".

 

 

 

 

 

우선 코코 샤넬.  샤넬, 스타일 혹은 혁명의 또 다른 이름

커피 하는 내 입장에서 비약하자면, 그녀는 테이크 아웃 커피점을 융숭시킨 시발점이다. 

무슨 말이냐고? 

생각해 봐라. 이른 아침, 머리를 찰랑이며 회사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 여인이 있다.

검은 트위드 자켓을 걸치고, 무릎을 약간 넘기는 적당한 길이의 치마와 레깅스로 조합한 그녀,

숄더백을 어깨에 걸치고 있다.

그녀, 회사 부근에 위치한 공정무역 커피점에서 마다가스카르 천연바닐라빈라떼 한 잔을 시킨다.

잠시 향과 맛을 보더니,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회사로 들어선다. 천연바닐라빈과 커피의 조합이 향기롭다.

 

그 모습, 코코 샤넬 덕분이다.

그녀는 여성의 몸과 마음을 죄던 코르셋으로부터 여성들을 탈주시켰다.

장례식에만 입던 검은 옷을 일상화시키고, 거리를 빗자루질하던 드레스를 무릎 위로 업했다.

핸드백에 끈을 달아서 두 손을 자유롭게! 두 손으로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 수 있게 한 것이다.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저지드레스, 카디건 슈트, 샤넬 슈트, 나팔바지, 단발머리, 트렌치코트, 터틀넥스웨터, 리틀블랙드레스, 샤넬 No.5 등.

하나로 정리하면, 이른바 샤넬 스타일의 시작이요, 독창적인 시그니쳐 룩. 불필요하고 허세 가득한 쓸모없는 복장은 꺼져라!

20세기 복식 혁명을 일군 장본인, 샤넬.

 

에브리바디, 샤넬 스타일!

여성을 옷뿐만 아니라, 시대의 속박으로부터도 해방시킨 그 스타일.

당신에게 샤넬 제품이 없을지 몰라도, 샤넬 스타일은 있다.

 

 

"아저씨, 샤넬을 어떻게 그리 알아요?" 

 

"내 안에 샤넬이 있거든. 하하. ^^;; 샤넬이 세상을 휩쓸 땐, 이런 말도 있었어. "샤넬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여자가 아니다." 몰랐지? 니들에게도 샤넬이 있어! 너 안에 샤넬 있다!"

 

"이 아저씨, 여하튼 예쁜 여자라면 다 알아요. 밝힘증이라니까. 호호."

 

"야, 니들이 날 제대로 아는구나." 

 

"샤넬도 살아있을 때, 너희들처럼 커피하우스를 들락거리고 그랬어. 다른 사람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세계를 생각하느라."

 

"아, 그래요?" 

 

"그럼. 샤넬의 유명세만큼 사교계 거물이었거든. 다들 그녀를 만나려고 안달이기도 했지. 장 콕토, 피카소, 달리, 스트라빈스키, 헤밍웨이, 콜레트, 그레타 가르보, 마를레네 디트리히... 숱하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교류를 나눴거든. 돈이 많으니까, 그들을 후원하기도 했고."

 

"우와~ 우리한테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호호."

 

"이 아저씨가 있잖아. 하하. 샤넬은 장 콕토가 알코올 중독이 됐을 때 치료비를 부담해주기도 했고,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을 작곡할 수 있도록 후원도 했어. 대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겐 도움을 안 주고, 자신이 도와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들한테는 드러나지 않게 도왔대. 나는 완전히 다 드러나게 도와줄게. 하하." 

 

"에이, 밤9시가 넘으면 1000원에 커피 팔면서, 아저씨가 뭘 도와요?ㅋㅋ"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였다. 

 

샤넬이 그들과 교감을 나누고 토론했던 커피하우스, 혹은 카페, 또는 살롱.

1875년에 문을 연 이 곳은, 원래 중국산 비단을 파는 가게였다.

그 비단 가게의 이름이 레 되 마고였는데, 카페로 바뀌면서도 그것을 유지했다.

19세기에는 베를렌느, 랭보, 말라르메 등 상징주의 시인들이 단골이었고,

20세기 들어와서도 바타이유, 브로통, 피카소, 생떽쥐베리, 자코메티 등이 이곳을 찾았다.

사르트르, 보부아르 등도 단골이었는데, 1933년에는 레 되 마고 문학상이 제정될 정도로 이곳은 하나의 문화적 유산이 됐다.

 

재밌는 건, 커피하우스도 이념에 따라 구분됐다.

20세기 초반 유럽에 파시즘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지식인들은 레 되 마고에 모여 파시즘을 성토하거나 대책을 논의했다.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의 아지트였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도 이곳의 단골이었다.

두 사람이 날마다 독서와 토론으로 열을 올리자, 그들을 보기 위한 구경꾼도 들끓었다. 

그런데, 여기에 반발한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레 되 마고 대신 옆의 드 플로르를 찾았다. 

당시 보수파들이 주로 드나들던 드 플로르에, 진보진영 지식인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점령했다. 

더 재밌는 건, 사르트르도 레 되 마고의 난방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드 플로르로 둥지를 옮긴 것.

자신들의 진영을 뺏긴 보수주의자들은 레 되 마고로 건너갔다.

 

두 카페, 정체성(?)이 바뀌었다.

레 되 마고는 보수주의자들의 아지트가 됐고, 드 플로르는 진보주의자들의 아지트가 됐다.

물론 다소 기계적인 구분이지만, 공간을 만드는 것이 결국 사람이다보면,

사람들이 커피하우스라는 공간을 그렇게 규정하는 일도 생긴다.

오늘날도 그런 전통(?)이 좀 남아있단다.

진보 지식인들은 레 되 마고는 피하고, 반대 진영은 카페 드 플로르를 꺼린다는. 사소하고도 강박적인 전통.

 

 

 

"그러니까, 니들도 여길 만들 수가 있어. 너희들 보고 사람들이 몰려들 수도 있고."

 

"와, 그럼 여긴 우리 같은 얼치기 진보들의 놀이터가 되겠네요. ㅋ 아저씨, 괜찮겠어요?"

 

"나는 대세를 따르는 사람이라서 상관없어. 하하."

 

"근데, 샤넬은 어떤 진영이었을까요? 애매해. 애정남이 있어도 정하질 못할 거 같애."

 

"장 콕토가 한 말이 그에 대한 답이 될 것 같은데... 이랬거든. "매력적이면서 호감을 주고, 인간적인가 하면 잔인하며, 때론 너무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여자. 분노, 변덕스러움, 친절함, 유머, 반짝이는 생각, 검소함, 그리고 관대함이 샤넬이라는 다시 없을 독특한 여자의 모든 것이다." 캬, 멋지지 않아? 다시 없을 독특한 여자의 모든 것! 니들도 좀 그래봐라. 그럼 내가 커피 후원은 '학실히' 할게."

 

"칫, 뭐야. 그럼 아저씨, 전혜린 알아요?"

 

"응, 그럼 알지, 당연히!"

"우와~ 아저씨 같은 사람도 알아요? 호호."

 

"야야, 말도 마라. 한참 열풍이 지났을 땐데, 나 때만 해도 전혜린, 하면 자지러지는 여자애들 많았어.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지. 요절 때문에 신화가 된 거고.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캬. 감수성 돋는 소녀들이 어찌 뻑 가지 않겠니."

 

"장 콕토가 했던 그 말을 한국에 적용하면, 전혜린이 그럴 것 같아요."

 

 

전혜린은 문학소녀들의 만신전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 여자를 스무살 초반에야 읽었다. 멋도 모르고 읽었고, 강렬했다. 어찌 이런 글을.

열정과 광기 사이. "1세기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평가에 비해 그녀가 세상에 남겨 놓은 유산은 터무니 없이 부족해 뵌다.

인식의 갈망으로 불타올랐지만, 그녀를 감당하기에 세상은 지나치게 견고했다.

그녀의 재능을 받아줄만큼 세상은 대범하지도, 과감하지도 못했다. 아니, 쫌생이였지.

 

그녀는 스스로 휘발했다. 

이 빌어먹을 가부장적이고 경직된 사회의 견고함을 깨부수고자 했으나, 그녀 이전의 혁명적 여성들도 그러했듯. 제길.

그녀는 지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느 조용한 황혼에 길가의 주막에 쓰러져 있는 집시가 있거든 나라고 알아줘!"

집시에겐 머물 곳이 없다. 혁명을 용서하지 않는 이땅은 그녀를 애써 무시한 것이 아녔을까.

 

 

"오늘 우리 주제가 그거였어요. 어떻게 세상과 싸울까. 여성은 어떻게 이 견고한 세상과 싸워야 하나."

 

"와우, 이 아저씨도 도울게. 뭘 해줄까? 찐한 커피 한 잔, 더 줄까? 하하."

 

"좋아요. 그게 어디야. 커피로 혁명하는 거지, 뭐. 우리가 잘 되면 여기도 뜬다니까요. 아저씨, 우릴 믿어봐요."

 

 

 

전혜린의 단골 커피하우스, 학림.

그녀가 죽기 하루 전, 1월9일.

하늘은 맑았지만, 날씨는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질만큼 추운 날이었다.

그녀는 당시 서울대 문리대 앞의 동숭동 학림다방 오른편 맨 구석 창가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밤색 코트를 입고 검은 혈액을 마시면서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혼자 있었다.

지금도 학림은 그 자리에 있다. 1월10일, 전혜린이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한파가 몰아치는 오늘.

전혜린과 샤넬을 떠올리고 이야기하는 청년들에게, 나는 은근슬쩍 혁명의 꿈을 싣는다.

부디, 너희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다오. 못난 어른들이 땡깡으로 허술하게 만든 세상에 함몰되지 말고.

'남들만큼, 남들 보기에'를 들먹이며, 똑같아지기를 원하는 어른들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길.

몰개성 말고 스타일. 샤넬 스타일. 전혜린 스타일.

 

 

 

내 커피는 그런 너희들을 위한 것이거든. 바로 이 순간의 샤넬을 위해, 전혜린을 위해.

내가 커피하우스를 하는 이유. 커피아저씨로 남아있고픈 이유.

 

1월10일의 메뉴는, 그래서 '샤넬 No.전혜린'.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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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9시의 커피]'하쿠나 마타타'로 떠올리는 프레디 머큐리

   
  내 가슴과 당신의 가슴이 서로를 단단히 안고 있어요. 
지금은 그 둘을 떼어놓을 수 없지요. 나의노래, 당신의 노래.
내가 가진 모든 빛과 그림자를 동원하여 나의 뿌리가 깊이 들어가 당신을 발견합니다.
나의 꽃이 세상의 빛을 볼 날을 기다리는 그곳에서    -이사벨 베어먼 버처
 
   

그는 늘, 에스프레소를 즐겨한다. 한 잔 마시고, 또 한 잔 마신다.   

그는 에쏘를 시키곤, 그림을 그린다. 가만보면, 만화인 것 같다. (사실 그림체가 뛰어난 것 같진 않다. 하긴,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덥수룩한 차림새에, 예술가 '삘'도 좀 난다. 그런 사람 있잖나. 좀 더 알면, 재밌고, 흥미로우며,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 그는 그런 사람 같았다.   

죽을 날을 받아둔, 혹은 현대 의학으론 완치될 수 없는 병을 지닌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건, 어떤 것일까?

요즘 내가 '삘' 받은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지형(김래원)이 그런 무모(!)한 돌진을 한다. 알츠하이머 환자 서연(수애) 옆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소망 하나, 그러니까 닥치고 사랑, 그 하나 때문에. 두 사람, 그저 사랑을 한다. 언젠가는 잊고 말겠지만, 그까이꺼 대수냐.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겠다는 두 사람의 약속, 나는 그것이 참 아프면서도 감탄한다. 밤9시의 커피가 졸졸졸 흘러내릴 때 담기는 내 마음이다.  

얼마 전 개봉했던 구스 반 산트의 <레스트리스>도 빼놓을 순 없겠다. 부모의 죽음 이후 은둔자로 살아가는 에녹(헨리 호퍼, 작년에 돌아가신 데니스 호퍼의 아들 되겠다!)과 3개월을 선고받은 말기 암 환자 애너벨(미아 와시코브스카)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진다.' 침울해야 할 이야기인데, 그들의 사랑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름답다. 그들은 살 수 있는 데까지 살아내고, 사랑할 수 있는 데까지 사랑한다. 한 마디로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살고 사랑한다.  

알고 보니 이 남자, 럴수 럴수 그럴 수가. 어느 날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그녀의 병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욕망이 솟구치다니, 내가 병적인 걸까? 아니면 이건 무의식적인 자기 파괴일까?'

헉, 이건 또 뭔가요. 병. 그가 사랑하는 그녀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양성보균자란다. (참고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AIDS는 다르다. HIV는 AIDS의 원인 바이러스나, 무증상 HIV감염상태는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AIDS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즉, HIV감염인 중 일부가 AIDS환자인 셈이다.)

AIDS보균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라니. 이건 또 무슨 드라마요, 영화인가, 했다. 물론 전도연과 황정민이 주연했던 <너는 내 운명>도 있었고, 그것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니, 세상에 없을 일은 아니렸다. 

그랬거나 이런 상황, 진짜 만만치 않다. 실존적 고민은 물론이요, 삶의 가치관과 생을 송두리째 흔들고 바꿀 수 있는 상황 아닌가. 그가 늘 마시는 에쏘는, 그런 그를 드러내는 커피가 아니겠는가.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그의 상황이 덤덤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덤덤함이 외려, 그가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랑을 한다는 건,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병이 걸렸든 아니든. 하지만 쉽지 않음은 분명하다. 누구나 죽지만, 누구도 죽는 걸 의식하면서 살아갈 순 없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곧 죽을 운명임을 알면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랑한다는 것.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있을까. 

AIDS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가령, <천일의 약속>의 알츠하이머 환자한테 까였다고 지랄독설하는 향기의 엄마(이미숙)를 보라. 그런 편견 혹은 차별이 종횡무진하는 세상에, AIDS에 대한 세상의 지독하고 악랄한 혐오를 감안하면, 오 마이 갓! 세상의 차별적 시선이 AIDS라는 병보다 더 마음을 깎아내릴 것이다.ㅠ.ㅠ 매순간 그렇게 마음을 다치며 상처를 견뎌낼 여자도 그렇지만, 그 여자 옆에서 함께 버텨야 할 남자는 어떻고. 

나는 어떤가. 다른 사람은 어떨까. AIDS라는 단어를 접하고,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대놓고 더럽다며 막말하는 사람, 있겠지만 흔하진 않을 거다. 아마도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일 게다.

가장 흔한 반응은 깜짝 놀라며 곧 이해하는 척하지만 경계하는 쪽이 아닐까. 반사적으로 내게 가까이 오지 마시라, 는 표정과 몸짓을 보이며. 다른 하나는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해하고 격려하려는 쪽. 과연, 나는 어느 반응을 보일까. 후자라고 믿고 싶지만, 아마 내게도 일말의 불안과 공포가 똬리를 틀고 있진 않을까. 


그는 종종 와서, 에쏘를 찾았다. 어쩌다 알게 됐지만, 그와 나는 동갑이다. 나는 그를 위해 전용 에쏘를 만들었다.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생의 엑기스를 위해.

"그저 내 지성을 믿었어요. 나 스스로 이에 대한 판단과 판단에 대한 점검을 해낼 거예요." 

그는 또박또박 그리 말하고 있었다. 자기를 지킬 수 있고 보호할 정도의 지성. 지금처럼 엄혹한 시대에 그것은 쉽지 않다. 그에겐 그런 지성이 있다. 쉽지 않은 상황을 행복으로 치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게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호감을 가진 여자였지만, 처음부터 그와 맺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 여자는 이혼을 겪었고, 아이도 있었다. 어느 날, 자신의 집에 그녀를 불러 오붓한 저녁식사를 나누고 있었단다.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그녀는 이 관계가 끝나지 않길 바라는 바람을 고백하면서 더 깊은 이야길 꺼냈다.

"난 에이즈 환자예요. 양성이에요, 양성보균자죠. 내 아들도요."  

그녀의 고백이었다. 얼마나 힘들게 이야길 꺼냈을까. 충분히 그것을 알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아득함 같은 것?...

"절벽에서 떨어지는 아찔함이었어요. 똑... 딱... 심장이 멎었다 다시 뛰는 줄 알았어요. 아니면 새 심장으로 완전히 바뀌었거나."

그는 에쏘를 한 잔 더 시켰다. 아주 진하게 달라고 했다. 지독하게 진한 에쏘.

그들은 맺어졌다. 그래야 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도 그를 사랑한다. AIDS 따위, 시궁창에게나 내동댕이칠 무엇. 그들은 서로에게 어떤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고르에게 도린, 레논에게 요코, 달리에게 갈라, 프리다에게 디에고, 릴케에게 살로메, 그 반대의 경우여도 마찬가지일. 그들 각자에게 당신이라는 존재는, 무채색의 세상을 바꾸게 하는 놀라운 색깔이었다.

"난 그녀가 정말 좋아요. 예전부터 줄곧 그랬어요. 게다가 우린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맞는 커플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게 이런 것 아니에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맞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걸 바라면서도 그건 로망이요, 그저 꿈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엄하고 험한 세상이 본디의 그들을 바꾼 까닭이다. 먹고사니즘, 자본이 요구와 강요에 무릎 꿇은 때문이다.  
 

 

 

그는 쉽게 설명한다. 이따금 성기에다 20분의 1밀리짜리 얇은 고무를 끼워야 한다는 이유로, 그녀가 좋고, 그녀와 있을 때의 행복을 포기할 순 없잖아요? 아무렴! 평생 콘돔을 껴야 한다고 사랑을 포기할 순 없다. (물론, 누군가는 그 사소한 이유로 포기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그건 사랑이 딱 그만큼이라는 뜻이다!)   

그는 말을 잇는다. 

"알다시피, 실제로 이건 전혀 불편하지도 않아요. 콘돔 없이 시시하게 하느니 그걸 끼고 화끈하게 하는 게 낫잖아, 안 그래요? 하하"

콘돔이 하나의 의식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이들 커플로부터 처음 알았다. 이 얇은 고무는 바이러스의 침투를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들이 섹스라는 사랑을 할 때, 하나의 의식이 됐다.  

그들이라고 당황했던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세 번째 관계에서 콘돔이 터져버렸단다. 와우~ 듣는 나도 깜짝 놀랐다. 서로, "빌어먹을"을 계속 외치며, 자정에 의사한테 전화를 건다고 호들갑도 떨었단다. 그의 기분은 어땠을까. 허공에 붕 뜬 기분이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시간이었어요. 이 여자는, 옆에서 당신에게 행복이 되고 싶지, 위험이 되고 싶지진 않아, 라고 울면서 말하는데, 괜찮다고 했지만, 깊은 불안에 휩싸여 있었어요."

다행하게도,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 없음을 알렸단다. 운 좋은 건, 그들의 전담의는 세상의 많은 지질한 의사와 달랐다. 환자를 편안하게 해줬고, 무엇보다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다. 그는 생전 처음, 완벽한 자격을 가진 전문가가 자신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다고 말했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단다. "HIV는 감기처럼 마구 전염되지 않아요. 아시다시피, 이 빌어먹을 것이 꽤 까다롭게 굴거든요. 하하." 섹스한다고 바이러스가 무조건 옮는 것, 아니다!

나는 늘 이 남자에게 에쏘 한 잔을 더 준다. 내가 그의 행복을 위해 줄 수 있는 작은 마음이다. Especially for you. 꼭 그말을 덧붙여서. 에쏘에는 그런 뜻이 포함돼 있음을 알려주면서. ^^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행복해지는 거예요. 또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뿐이고.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난 결코 상대를 보고 진심으로 감탄해본 적이 없었어요. 매혹이나 존경에 관해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감탄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이 감탄은 기쁨과 함께 기꺼이 상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게 하거든요." 

그도 그지만, 나는 그 여자도 참 멋지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라고 왜 처음에 동정심이 없었겠나. 허나, 그녀는 그것을 없애줬다. 방금 그가 말한 그런 이유로. 그 여자는, 신발 속의 모래알처럼 귀찮게 따라다니던 그의 일말의 동정심마저 말끔히 제거해버리도록 만들었다.    

이 남자, 빙충이(!)처럼 자신의 여자에 대해 말했다. 그녀에게 이렇게 얘기해줬단다.

"당신은 무엇보다 장난삼아 관계하지 않은 유일한 여자야. 섹시하기도 하고 강하면서도 약한 여자지. 게다가 늘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게 멋진 세상을 꿈꾸게 하고…. 마치 내가 근사한 남자가 된 것처럼 날 으쓱하게 만들거든. 사실 당신은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에, 삶에 필요한 재능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야."

그의 표정은 한 없이 행복해보였다. 부러웠다. 젠장, 이런 레어템 같은 여자를 득템하려면,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하는 거지?!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인 건가. ㅠ.ㅠ  


그는 성공한 남자다. 유명해지거나 어떤 권력이나 돈을 획득해서가 아니다. 그는 그것들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랑을 획득했으니까. 무엇보다 자신의 여자의 행복을 사랑할 줄 아는 남자니까.

랠프 왈도 에머슨이 '무엇이 성공인가(What Is Success)?'라는 詩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감으로써/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세상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지 말라. 그저 되어가는 대로 받아들여라"고 말했다. <천일의 약속>에서 지형 엄마가 지형과 서연의 사랑에 대해 그랬듯, 그들의 사랑을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그저, 사랑의 운명을 따랐을 뿐.

나는 내 동갑내기 만화가의 사랑을 위해, 12월1일 밤9시의 커피는, '푸른 알약'이라는 에쏘 메뉴를 내놓는다. 그 사랑의 향을 당신도 함께 맡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주겠다. ^.~

12월 1일, 세계 AIDS의 날.

그와 그녀를 생각하면서 나는 커피를 뽑았다. 그의 이름은 프레데릭 페테르스(프레드), 그녀의 이름은 카티.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푸른 알약》이다.  

실화다. 에이즈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지만, 소재는 소재일 뿐, 그냥 그들의 따뜻하고 행복한 사랑이 있다. 다만, 조금은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삶이 있다. 울고 웃을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다. AIDS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우리의 차별적 시선을 의식하는 건, 그저 덤이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세상의 많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만큼 그들 역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서연과 지형, 애너벨과 에녹도 그렇듯, 프레드과 카티의 사랑, 혹독한 듯해도, 그렇게 혹독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삶은 물론 상대를 사랑할 줄 아니까. 살 수 있는 데까지 살고, 사랑할 수 있는 데까지 사랑하는 것. 그만한 축복,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 길지 않다. 사랑도 모르거나 사랑을 모른 채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시대다.

알겠지? 12월1일의 커피, '푸른 알약'이 알싸하고 아름다운 풍미를 품은 이유! 그리고, 이날 온다면, 이런 형이하학적인 비밀도 살짝 알려주겠다. 프레드가 알려준 거다.ㅋ  

프랑스에 가서 콘돔을 사용하게 되면,
'마닉스 엥피스 002'를 써 보란다. 끝내준단다.
반면, '세일로'는 형편없어!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마닉스 엥피스 002를 쓰기 위해서라도, 프랑스에? 하하, 농담이다.^^;

무엇이 성공인가? _ 랠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서 존경받고
어린아이에게서 사랑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에게서 찬사를 받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운 것을 식별할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게서 장점을 발견해내는 것  
건강한 아이를 하나 낳든
한 뙈기의 밭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감으로써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What is success? _ Ralph Waldo Emerson

To laugh often and much;
To win the respect of intelligent people
and the affection of children;
To earn the appreciation of honest critics
and endure the betrayal of false friends;
To appreciate beauty;
To find the best in others;
To leave the world a bit better, whether by
a healthy child, a garden patch
or a redeemed social condition;
To know even one life has breathed
easier because you have lived;
This is to have succeeded.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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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밤9시의 커피]존 레논 `커피`덴셜 : 라이터의 비밀
    from 맺고,따고,볶고,내리고,느끼고,사랑하라! 2011-12-09 02:10 
    큰별 생일 축하해~ 이 남자, 어제도 라이터를 놓고 갔다. 버릇이다. 자주 오는 건 아닌데, 어째 오늘도 왔다.꼭 자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한 행위같기도 하다. 내가 여기 왔다 갔음. 라이터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남자, 아우라는 딱 예술가다. 어째 보면 예수를 닮은, 오다기리 죠와 살짝 엇비슷한, 그러고 보면 히피풍이다. 동그란 안경은 존 레논의 것이다. 자주 오는 건 아니다. 커피 취향도 남다르진 않다. 드립커피를 즐겨한다는 것
 
 
 

김수영
시인 김수영. 詩로, 술로, 노동으로, 온몸으로, 시대와 사회에 저항한 사람. 대개는 시대가 시인을 만든다. 시인은 시대속에서 부대낀다. 허나 어떤 시인은 그 등장만으로 새 시대를 연다. 나는 김수영이 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詩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새로운 시인의 등장이었다. 

이 너절하고 졸렬한 야만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오롯이, 詩다. 자본과 폭력앞에 詩想이 떠오르지 않는 시대니까. 희망을 노래하고 온몸으로 희망을 뿜던 송경동 시인이 구속됐다. 

그 개새끼들은 詩를 모른다. 詩가 왜 필요한지, 시인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시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시인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시인은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녔다지 않나. 시인의 아픔이자 숙명이다. 송경동 시인이 우리 앞에 나선 것은 그런 까닭에서였을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詩를 말하는 것'이 사치가 된 시대, '시인이 나선 것'이 죄가 된 시대, 죽은 시인의 시대. 누군가는 그래도 아직 다른 나라보다는 시집이 많이 팔린다며 안도하지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시인을 척결하고자 자본과 국가는 혈안이 돼 있는데, 무슨 희망 따위를 말할까.  
  

 

김수영이 필요하다. 이젠 우리가 김수영이 돼야 하지 않을까. '난닝구' 입고도 저런 미친 존재감을 발할 수 있는 사람. 저 포스, 저 아우라는 정직한 자기성찰과 반성, 일상성에 대한 수용과 폭력을 향한 저항을 할 줄 알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진정한 시인이란 선천적 혁명가"라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는 혁명가였다. 요절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혁명은 좀 더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2011년 11월27일. 김수영 탄생 90주년. 너에게 김수영을 권한다. 지금, 김수영이 필요한 시간.

시인을 석방하라던 이라영 씨의 말, 나도 그녀 말을 따른다. "시를 행한 죄-시인을 석방하라" 

 


수애
그런데 사실은... 있잖아... 지금, 김수영보다 수애가 더 좋아. ^^;;
수애가 지금 내겐 곧 詩이자 시인이란다. 더 정확하게는 서연, 이서연(<천일의 약속>).
저토록 강인하고 지적인 여자, 뭣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사랑을 할 줄 아는 여자. 우히~

그녀가 3년이라는 축복을 부여받았으면 좋겠다. 천일이잖아. 천일의 약속. 천일동안.


강릉
정작 커피축제 때는 못갔다. 커피향 가득한 공간이 된 강릉의 향기가 궁금했는데, 허난설헌을 만나기 위해 강릉을 갔다. 400여년 전 스물 일곱에 요절한 허난설헌은 어쩌면 시대가, 사회가 죽인 타살이 아니었을까.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받아야했던 멸시와 굴욕. 

강릉 초동마을의 늦가을.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은 없었고, 詩가 있었다. 허봉, 허초희(허난설헌), 허균, 시인이자 사회를 바꾸고 싶던 개혁가들의 자취가 덕지덕지. 조선, 한국, 그 앞선 시대 모두 이땅에선 기득권이 바뀐 적이 없다. 개혁이건, 혁명이건 성공하지 못했다.

강릉의 커피는, 커피대자본(들)의 획일적인 커피 맛과 향을 뒤집어주는 '커피혁명'을 바람.

스물일곱.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조플린, 짐 모리슨, 커트 코베인, 에미미 와인하우스가 요절한 나이. 그들은 결국 난설헌을 따르고 싶었던 거야. 난설헌이 스물일곱 요절의 시초였었어! 

그런데, 얼마나 예쁘고 총명했으면 난설헌이라고 불렸을까. 영정사진이나 조각은 너무 늙었고, 고전적이야. 재미가 없어. 강릉시의 미적 감수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난 아름다운 난설헌을 보고 싶어. 아름다운 여자, 난설헌. 수애 정도의. 

아놔~ 나 지금, 수애병인가 봐. 알츠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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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0일,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 랭보 한 잔

   
 

친구들이여, 이것은 하루 중 가장 유쾌하면서도 위험한 시간이다. 새날이 밝고 카페인이 퍼지면서 이 스파이스 걸(Spice Girl)에게는 스파이스, 즉 흥취를 돋울 시간이 아닌가. 아, 오늘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성취할 것인가! - 샤나 맥린 무어 

 
   

콩콩콩콩...  

세상에서 가장 향긋한 콩 볶기, 로스팅을 했다. 흠, 스멜스~ 귯! 사실, 이 콩. 그저께 정도엔 볶았어야 했다. 급한 다른 콩에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미안하다, 잔야. 탄자니아AA다. 탄자니아 사람들이 자연에 맞춰 빚은 커피. 

아로마와 플레이버, 최상이다. 특별히 공을 들였으니까! 맞다. 평소 다루지 않는 커피다.  

왜? 무슨 일이야, 으응? 

소녀들이 오는 날이거든. 소녀(들)밴드. 3인조 밴드다. 나는 그녀들을 '소녀'라고 부른다. 이 소녀들, 참 좋아한다. 꺄르르르르르, 넘어간다. 덕분에 나도 웃는다. 서른 안팎의 그녀들에게 소녀라는 호칭은 마법의 주문이다.  

"어이, 소녀들~"하고 부를라치면, 그들은 어느덧 입가부터 소녀가 돼 있다. 소녀미소를 지으며, "응~ 변태노총각 아자씨~"라고 응답한다. 소녀들은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일이 절대 없다.  

이유? 간단하다. 아저씨는 원빈(급) 만의 것이라나. 흥, 췟, 핏. 원빈이 갑자기 대한민국 아저씨 기준을 높여놔서, 아무에게나 아저씨라고 부를 수 없다는 어이 없는 이유다. 이, FTA 같은 년들, 하고 버럭하고 싶어도, 너무 심한 욕이라 참는다. ㅋ  

최수영 작가는 그랬다. "적어도 서른 아홉은, 아직은 소녀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19 29 39》, p.323) 살다보니, 점점 더 뚜렷해지는 것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슬픈 건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슬프지 않다. 더 슬픈 건, 작년과 다른 내가 되지 못하는 것. 어제와 다른 내가 되지 못하는 것. 

그러니까, 이 소녀들은 '좀 아는 여자'들이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이 자신을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하는지, 어떤 것에 감동하고 추하다고 생각하는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슬픈 것임을 안다. 스스로 힘을 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마음이 삭지 않는 이 소녀들은, 그래서 소녀임이 분명하다.  

재밌는 건, 이들은 우쿨렐레로 락 한다고 '깝죽댄다'. 아, 깝죽댄다는 표현이 거슬려도 어쩔 수 없다. 이 밴드 노래 제목 중의 하나다. '우리는 깝죽대는 깝죽이'. 지들 스스로 깝죽댄다고 하니까, 나도 그렇게 표현할 뿐이다. ㅎ 

"아자씨, 우리 24일에 여기서 공연해도 돼? 많이 시끄럽게 안 할게."  

"하하, 시끄럽게 안 하는 게 말이 돼? 근데 왜,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11월24일. YB의 새 미니앨범이 나오는 날이란다. 흰수염고래. 소녀들에게 YB는 하늘이다. 좋아 죽는다. <나는 가수다>에서 YB가 명예졸업 직전에 탈락하자, 소녀들은 하늘이 무너진양 슬퍼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에이, 설마~) MB의 음모론까지 몰고 갔다. YB와 MB의 한끗차이가 지구와 안드로메다 사이라면서.  

그녀들은 이른바 '프로', 직업적인 밴드는 아니다. 일종의 직장인 밴드다. 나는 그들을 잉여밴드라고 부른다. 물론 한 명은 직업적인 뮤지션의 꿈을 계속 키워가고 있지만. 그들은 그냥 논다. 헬렐레대면서 즐겁다. 음악적인 평가는 별개로, 듣고 있자면 어깨랑 발이 들썩들썩한다. 그러니 소녀지! 

커피는 그녀들에게 검은 혈액이다. 자신들의 음악적 힘은 커피에서 나온다나. 특히 카페인. 미친년들 놀고 있네, 하고 (농담) 던지면 맞팔이다. 지롤, 변태아자씨도 그러면서.  

우리는 그렇게 노는 사이다. ^^ 그런 오늘, 소녀들을 위해 콩콩콩콩 볶는 건, 나의 화답이다. 뭐, 같이 놀자고, 좀 끼워달라고 하는 거지.  

그런데 왜 탄자니아를 볶았냐고? 

다 이유가 있다규! 탄자니아.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하얀 산'이라는 뜻의 킬리만자로를 품은 곳. 마사이어로 '끝없는 평원'을 의미하는 세렝게티. 탄자니아하면 떠오르는 그 풍경에 섞인 깔끔하고 부드러운 신맛과 풍부한 바디감. 너트향이 스며있고, 밸런스도 좋은 탄자니아 커피. 탄자니아AA. 

  

아는 사람은 안다.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본명 파로크 불사라 Farrokh Bulsara). 그룹 퀸(Queen)의 리드보컬. 그의 고향이 탄자니아다. 프레디는 탄자니아의 유명한 휴양지, 잔지바르 섬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총독부 소속 공무원으로 종교 때문에 잔지바르 섬으로 이사를 왔고, 1946년 프레디는 태어났다. 

프레디는 일곱살까지 이곳에 살았다. 인도로 유학을 갔던 그는, 1964년 가족 모두 영국으로 다시 갔고, 그는 가수가 됐다.  

소녀들은 어쩌다 한 번씩 퀸을 연주했다. 특히, We Are The Champions나 We Will Rock You 혹은 I Was Born To Love You.   

나름 리드보컬 네멋 왈. "아자씨, 퀸 진짜 쩔지? 프레디 머큐리처럼 섹시한 남자가 그렇게 일찍 죽은 건 너무 억울해. 하늘이 자기 옆에서 노래 듣자고 그렇게 일찍 데려간 걸거야. 귀는 밝아가지고."  

실제로 그렇지 않나! 4옥타브를 오가는 엄청난 가창력. 비브리토 없는 깔끔한 보이스. 특히 허스키 보이스로 4옥타브를 넘나드는 환상. 나의 화답은 이랬다.  

"하느님이 비틀즈에 약간 질려서 그렇게 일찍 데리고 간 거 아닐까? 아니면 하느님이 남자라면, 동성애자거나. 욕심쟁이, 쯧."  

 

프레디는 1991년 11월24일, 떠났다. AIDS로 인한 기관지 폐렴이었다. 45. 요절이었다. 그는 죽기 전날에야 AIDS임을 시인했다.  

뭐, 상관없다. 그것이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다. 최소한 내겐 그랬고, 소녀들에게도 그랬다. 죽기 전까지 그는 노래했고, 음악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기억할 뿐이다.  

"아자씨, 프레디가 지금 살아있다면, 믹 재거보다 훨씬 더 섹시할텐데, 그치? 웃통 벗어던지고 그 허스키한 목소리로 살살 우릴 구슬릴텐데... 한국에도 한 번쯤 왔을 거고. 아까워!" 

"그래, 우리, 하루 날 잡아서 죽도록 퀸만 부르는 거야, 콜?"  

"콜" "나도 콜 쓰리~" 

나는 소녀들의 그말을 기억한다. 11월24일, 프레디 머큐리의 20주기. 그들이 레파토리를 준비해 올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는 나의 레파토리를 준비할 뿐이다. 탄자니아AA를 볶은 이유다. 

24일 하루만큼은 그래서, 밤9시의 커피에 다른 메뉴는 없다.  

오로지, 하쿠나 마타타.(설마... 무슨 뜻인지는 알지? <라이온 킹>에서 미어캣 티몬의 삶의 신조잖아!) 잔지바르 사람들은 하쿠나 마타타~ 하쿠나 마타타~ 흥얼거리는 것이 일상이란다.    

좆같은 한-미 FTA 체결로 꿀꿀하고 슬프고 분노가 차오르는 시절. 그래도 하쿠나 마타타! 외치시라. 잘 볶은 탄자니아AA가 대령한다. 소녀들의 퀸 메들리를 들으면서 하쿠나 마타타. 온통 하쿠나 마타타로 11월24일을 채우는 밤이다.

젠장, 하지만 한국(의 기득권)은 어쩔 수 없이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다. 

대다수 인민의 아픔과 고통, 슬픔에 면역결핍인. 혹은 한나라당 면역결핍 바이러스 (HIV, Hannara Immunodeficiency Virus)의 창궐이다. 이 바이러스에 양성반응을 보이면 정치적 AIDS(후천적 진실성 결핍증, Acquired Integrity Deficiency Syndrome)가 나타나거나, 지가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똥오줌 못 가리는 정체성 결핍 증후군(AIDS: Acquired Identity Deficiency Syndrome)을 드러낸다. 

12월1일 '세계 AIDS의 날'을 앞두고, AIDS에 대한 편견은 줄이되, 또한 위로 받아야 할 99%의 인민들을 생각하며, 11월24일의 커피는 하쿠나 마타타. 소녀밴드도 함께. 이 자리에 못 오는 당신도 프레디 머큐리의 음성과 함께.   

 


프레디의 고향, 잔지바르의 바닷가엔 프레디 머큐리 카페가 있다고 한다. 푸르른 바다를 향해 탁 트인 카펜데, 그곳에서 보면, 푸른 바닷가와 이글거리는 태양이 작렬한다네. 그래서 저것들이야말로 우리가 그리워하는 프레디 머큐리를 키운 것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단다. 

언젠가 그곳을 밟을 생각을 하며, 밤9시의 커피는 11월24일 탄자니아로, 고고씽! 

그러고 보니, 이 변태노총각 아자씨, 소녀밴드에게 신청곡 하나! (참고로 이 소녀밴드의 이름은 '깔맞춤 싱크로율'이다. ㅋ) 지금은 당최 찾아볼 수 없는 고시대 유물이지만, 고딩 시절, 여자로부터 처음 받은 카세트 녹음테이프. 그녀가 건네준 테이프에 녹음된 첫곡, 'Love Of My Life'. 내가 퀸을 만난 첫 번째 순간이었다. 

깔맞춤 싱크로율의 레파토리에 당연히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신청하련다. 하쿠나 마타나!  

인생을 채워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완전해질 수도, 완벽해질 수도 없지만, 사랑. 그것이 인생을 견디게 한다.  

안녕, 불세출의 프레디 씨. 탄자니아 커피는 참 고마워요. 당신을 만든 것에 이 커피도 있겠군요. ^^ 
   

   
 

나는 AIDS다. AIDS는 결코 나을수없는 불치의 병이기에
나의 음악과 나의 영혼이 묻혀 함께 이 세상 사라지기 전에
이 사실을 오늘에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팬들과 멤버들을 속여 정말 미안하다.

 끝없이 사랑과 죽음을 노래하고 싶었지만 나의 생은 유한한거 같다.
  내가 태어난 고향 잔지바르에서 지금 살고있는 런던의 생활까지
나는 나혼자의 생각만으로 살고 있었다 


 
   

늘 이기적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때문에 언제나 외로웠었다.
  나를 다른 백인들과 차별하는 영국인도 끝없이 나를 깎아 내리는 평론가들도 늘 지겨웠다.

이처럼 늘 나에겐 함께 해줄 이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이언과 존 그리고 테일러를 만난 것은
정말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만남이였다.

그리고 내가 검은 문을 열고 무대 밖으로 나가면 팬들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줬다
나는 무대에서는 늘 외롭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나의 음악보다도 나의 팬들을 사랑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 소원이 있다면 팬들은 제발 나의 마지막 죽어가는 모습이 아닌
나의 음악에 대한열정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언제 떠날지는 모르지만 죽기 전까지 노래하고 싶다.

- 프레디 머큐리의 유언 중 -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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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밤9시의 커피]사랑, AIDS도 막을 수 없는 그 무엇!
    from 맺고,따고,볶고,내리고,느끼고,사랑하라! 2011-12-04 00:04 
          내 가슴과 당신의 가슴이 서로를 단단히 안고 있어요. 지금은 그 둘을 떼어놓을 수 없지요. 나의노래, 당신의 노래. 내가 가진 모든 빛과 그림자를 동원하여 나의뿌리가 깊이 들어가 당신을 발견합니다. 나의 꽃이 세상의 빛을 볼 날을 기다리는 그곳에서-이사벨 베어먼 버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