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3월7일의 냄새는 알싸했다. 안개 냄새 덕분이었다.  


봄안개의 밤이었다. 흡~. 봄이 밤이었고, 밤이 봄이었다. 

그 안개가 봄을 몽환적으로 만들었고, 냄새 덕분에 나는 충분히 봄이 될 수 있었다.


내가 볶고 내린, 

내 마음을 함께 흘려내린 커피를 오전 중 연신 맛있다며 마셔주었던 두 사람 덕분에,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였도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던 하루를 봄안개가 또 휘감았도다.  


아마도 그 커피와 안개에는 기형도가 블렌딩돼 있었다는 것을. 

차베스의 죽음에서 가장 가까운 내가 보유하고 있던 멕시코 치아파스 커피.

그 커피의 이름은 '기형도'였음을.  


그리하여, 

기형도의 [ 안개 ]가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봄밤. 3월 7일, 기형도 24주기(1989). 


1

아침저녁으로 샛江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邑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江을 건너야 한다.

앞서간 一行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空中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江에서 한 발자국도 移動하지 않는다.

出勤길에 늦은 女工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동안

步行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食口가 되고

멀리 送電塔이 희미한 胴體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는,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江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空氣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植物들, 工場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 당했다.

寄宿舍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三輪車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不幸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正午 가까이

工場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發水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邑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저녁으로 샛江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邑의 名物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株式을 가지고 있다.

女工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工場으로 간다




아울러, 

3월8일 오늘, 세계 여성의 날. 

빵(생존권)과 장미(인간의 존엄성과 인권)를 들고 나섰던 1908년의 오늘을 기념하며, 내가 아는 세상의 근사하고 아름다운 여성에게 조공하는 장미. ^^


오늘, 수운잡방에서는,

아름다운 여성 당신들에게 장미와 커피를. 어쩌면 덤으로 초콜릿까지.



@}-;--`--- 

@}->-- 

@>+-+--  

@}--,--`------- 


곧 수운잡방이 아름다운 당신을 맞이합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그 봄, 안개가 붑니다. 수운잡방이라는 안개. 당신의 마음을 감싸는 안개.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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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8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품은삶 2013-03-10 00:46   좋아요 0 | URL
장미와 초콜릿,
여성이라면 당연히 받아야할 권리죠.^^

받아주세요.ㅎㅎ
 

 이 넓은 우주에 우리뿐이라면 그것은 엄청난 공간 낭비 아니겠니?
(If it is just us, it seems like a awful waste of space?)

- 영화 <콘택트>에서 조디 포스터가 분한, Dr. 앨리 애로위의 대사

 

커피향 공유하는 커피 만드는 노총각의 독백..... 이랄까?`

된장, 감동 먹었다. 그 어떤 향긋한 커피향보다 더 진하고 강렬한 향이었고, 기똥차게 볶아서 내린 그 어떤 커피의 알싸함보다 짜릿한 맛이었으며, 행복감을 전파하는 커피의 고운 마음씨보다 더 강력한 행복 바이러스였다. 

 

조디 포스터. 쉰 한 살의 직업이 배우인 이 여자. 1월 13일, 한국시각으로는 14일, 제7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쳤다. 압축하자면, 이렇다. "나, 동성애자다." 커밍아웃. 물론,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 조디 포스터에 조금 이상의 관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철 지난 유행가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알고 있던, 나는 훅~ 갔다. 시상식이라는 공개석상에서 내가 누구인지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 여전히 '다른 나'에 대해 거부감과 차별을 내면화한 세계를 향해 똥침을 날릴 줄 아는 사람. 신선하고 멋있다. 그 카리스마, 반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뻔할 정도로.

 

왠 오버냐, 하겠지만,
전사 같은 강인한 이미지의 조디 포스터라지만, 공개석상에서 그런 고백을 위해선 얼마나 큰 마음 졸임과 고민의 순간이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라. 몇 번이고 심호흡을 가다듬고, 할까 말까를 놓고 번민을 거듭했을 순간. 그리고 마침내 입을 떼면서 다가왔을 환희. 그 심연 같은 마음을 이해하는 건, 스트레이트인 나로선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저 굳센 팔뚝에 매달리고 싶을 정도다. 이토록 사랑스럽고 멋진 여자라니.
이 여자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 나는 감사한다. 

 

 

 

대개의 경우, 시대가 여성상을 만든다. 그러나 드물게 어떤 여성은 등장만으로 새 시대를 열거나 세상에 스스로를 증명함으로써 견고한 세상의 벽에 금을 가게도 한다. 조디는 맞다. 후자다. 조디에게 훅 감동 먹으면서 나는 확인했다. 내가 혹하는 여성은 타인의 생이 아닌 자기만의 서사와 캐릭터로 자신의 생을 꾸리는 여성임을. 

 

내가 나임을 아는 것.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고? 천만에.
지금 물어보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슬퍼하고 싫어하는지.
어려운 일이다. 알면 알수록 거부하고 싶은 나도 있다.
그럼에도 나를 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를 알면,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조디는 그래서 삶을 기적으로 바꿨고, 그 기적으로 세상을 다시 변화시키는 놀라운 여성이다.
악전고투. 그리고 '내가 나'임을 증명하고 연출한다. 세상은 그것에 감동하며 바뀐다. 나는 조디가 '내가 나'임을 드러냄으로써 세상이 좀 덜 슬픈 곳이 되리라 믿는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음, 세상이 너무 좆 같잖아. 쉬파.

 

 

로자 룩셈부르크도 그랬다. 생뚱 맞지만, 조디의 외침을 들으면서 로자가 떠올랐다. 연관성? 없다. 단지, 1월 15일 즈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1919년 1월 15일, 사회주의 혁명의 꿈은 암살당했다. 만땅으로 마흔 여덟을 채우지 못한 채. 사랑과 혁명의 화신이었던 로자의 94주기.

 

그래서 15일의 커피는, 사회주의 국가의 커피로만 블렌딩한 혁명 커피, 로자.

 

또 15일에 슬픔이 뚝뚝 묻어난 이유는, 또 하나의 혁명이 시들었기 때문이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별세하셨다. 누구냐고? <감각의 제국>! 엉뚱한 장면 상상작렬하느라, 그 안에 품은 오시마의 혁명적 송곳을 놓친다면 아쉽고, 또 아쉽다. 그는 금기된 것을 깨부숨으로써 혁명을 꾀했다. 군국주의 일본의 국가적 광기와 검열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하고 비판했다. 로자 위에, 오시마의 스러진 혁명의 꿈이 겹쳐졌다.

 

그리고 나는 오늘,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조직의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 잠시 잊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문제에만 너무 매달리느라. 나는 아직 인간이 되긴 멀었지만, 삶이 점점 더 재밌어진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절망 뿐인 세상에서도 생은 그런 세상을 때론 배반하기도 한다. 물론, 잠시일 뿐이겠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찰나의 배신이 즐거운 것을.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말라는 법이 없다면, 그래, 그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조디 누나를 통해 꿈꾼다. 내가 누구인지 거리낌 없이 말해도 괜찮은 그런 세상.
지금, 혁명까지는 회의적이라도, 그런 세상, 내가 누구인지 말해도 괜찮은 세상,  

 

아름답다.

그런 세상에 어울리는 커피,

당신을 위해 짓는다.

 

 

뷰티풀 & 굿럭.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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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발견은

환각의 영역을 확장하고,

희망의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 이시도르 부르돈 -

 

오늘 12월 8일,

우리 커피하우스에 오는 인민에게, 하나 같이 상상해보자고 강권(?)하고 있다. (내일까지 그럴 거다, 뭐. :-)) 커피하우스의 콘셉트는 '이매진(Imagine)'이요. 커피메뉴도 '이매진'이다. 뭐, 어쩔 수가 없다. 시국이 시국이고, 시절이 시절이다. 호우시절 아닌 호설시절? 좋은 눈은 때를 알고 내린다.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눈. 그런 것은 아니고. 호가배(咖啡)시절이다.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커피를 건넨다. 12월 8일의 커피 짓는 내 마음이다.

 

 

이 두 여성은,

종종 우리 커피하우스를 찾는다. 커피 취향은 제각각이다. 신맛만 찾거나 단 것만 마신다. 이들은, 마을 빈 공간을 찾고, 셰어하우스(share house)를 추진하는, 마을을 짓는 건축코디네이터라고나 할까.

 

셰어하우스. 아직 이 단어가 한국에선 낯선데, 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의 공동주택(아파트)이 좀 웃기는 거다. 집들만 모여 있다. 안에 사는 사람들은 별다른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웃, 없다. 그래서, 셰어하우스는 주거에 커뮤니티와 라이프가 결합한 형태다. 이웃이 산다.

 

중요한 것은 공유공간이다.

공동 주방, 공동 식당, 공동 체육실 등 그들은 공간뿐 아니라 삶을 공유한다. 어쨌든 이들, 추진하고 있는 셰어하우스에서 커피 교육을 해달라고 조르고 있다. 커뮤니티 키친에 커피 향이 잘 배이도록 커피 기구 등의 배치도 해 달란다.

 

나는 얼른 셰어하우스나 지으라고 빙그레 웃는다. 실은 나도 기대하고 있다. 금호동의 'Y-House'정도만 돼도 좋겠다. 나는 이 하우스의 평상을 좋아한다. 마을사람들이 쉬고 논다. 이야기도 나눈다. 커피도 마신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 같다.

 

그녀들, 둘이서 뭔가 쑥덕이더니, 내게 묻는다.

 

"아저씨, 오늘 뭔 날이죠? 왜 오늘 '이매진'이에요?"

 

"노래!"

 

 

"노래?"

 

"아~ 이매진! 존 레논?"

 

"맞아, 맞아, 존 레논이 죽은 게 이즈음인데. 그쵸? 아저씨?"

 

"빙고~! 1980년 오늘, 뉴욕 맨해튼에서 오노 요코가 보는 앞에서 총탄을 맞았었죠. 그리곤 더 이상 노랠 부를 수가 없었어요. 그때가 마흔인데, 거의 내 나이. ㅠㅠ"

 

Imagine there's no Heaven(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봐).

It's easy if you try(하려고만 하면 쉬운 일이야).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우리 아래 지옥도 없고 위에는 오직 하늘만 있는)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for today(모든 인민이 오늘을 위해 나누며 사는 모습을 상상해 봐).

 

"아저씨, 오늘 되게 슬픈 소식 있었던 거 알아요? 부산에 어떤 여자가 굶어 죽었는데, 7개월 만에 발견됐대요. ㅠㅠ"

 

"에? 7개월? 주변에 친구도, 이웃도 없었대요?"

 

"3년을 사회적 외톨이로 지냈대요. 지병도 있었고, 히키코모리(외톨이)처럼 지내다가 생활고로 그만..."

 

무연사회, 무관심 사회. 우리도 점점 일본 사회처럼 돼가고 있다. 오늘을 서로 나누며 사는 것에서 멀어졌다. 얼마 전, 경기도 한 창고에서 할아버지와 장애를 가진 손자가 나무에 목을 매고 숨진 기사도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딸이 무직 상태에서 자신과 손자를 돌보느라 너무 고생하고 있는 것을 비관했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나누며 살 수 있는 이웃이 없는 것일까?

 

 

Imagine there's no countries(나라가 없다고 상상해 봐).

It isn't hard to do(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누군가를 죽여야 할 일도, 무언가를 위해 죽어야 할 이유도 없으며, 종교도 없는).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상상해 봐).

 

"얼마 전에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후속편인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을 봤는데, 정말 화나는 거 있죠. 어휴. 이스라엘이 신을 모시는 나라 맞아요? 아저씨, 왜 이스라엘 권력자들은 아무 죄 없는 아이와 민간인을 왜 끊임없이 공격할까요"

 

"휴, 그러게요. 평화. 이스라엘, 참 할 말이 없어요. 신의 이름으로 학살을 정당화하는 그런 태도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우리 모두, 나라도 없고, 종교도 없으면... 아저씨, 우린 평화롭겠죠? 정말 그럴 거 같애. 다 나라 걱정하고, 종교 강요하는 거 땜에 전쟁 나고 사람 죽는 거 같애."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1973년 4월 1일 만우절, 유토피아에서 따 온 뉴토피아(Nutopia)를 세웠다. 어디에도 없는 나라. 모든 사람이 싸우지도 않고 아무 근심없이 사는 나라. 이들은 건국선언문에서 이렇게 외친다.

 

"땅도 없고, 국경도 없으며, 여권도 없고, 오로지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뉴토피아에는 우주의 법칙 외에는 아무런 법규도 없다. 뉴토피아 인민은 모든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다. 뉴토피아를 안다고 인정하는 인민은 누구나 뉴토피아 시민이 될 수 있다."

 

 

 

물론, 당연히 뉴토피아는 이매진(1971년 발표)을 기반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매진은 두 사람이 만들었다. 존 레논이 작사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노래의 바탕과 가사는 오노의 생각이 밑거름이 됐다. 나라 없는 세상. 나라를 뺏긴 것이 아니라, 아예 어디에도 없는 나라. 존 레논이 40년도 더 된 시절에 했던 상상을, 지금 우리는 왜 하지 못할까? 이유가 뭘까? 나라조차 우리 인민의 것으로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어서?

 

Imagine no possessions(소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봐).

I wonder if you can(당신이 그럴 수 있을지 궁금하지만).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욕심을 부릴 일도, 배고플 이유도 없는 한 형제처럼).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모든 인민이 함께 나누며 사는 세상을 상상해 봐).

 

"아저씨, 우리들이 하고 싶은 셰어하우스가 많이 퍼졌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소유가 목적이 아니잖아요. 대신 모두가 사용할 수 있으니까. 존 레논이 말한 것과도 통하지 않아요?"

 

"하하, 그러네요. 그러니까, 나도 껴줘요."

 

"아저씨 함께하는 거 대찬성. 커피 향, 얼마나 좋을까?~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 자기 것처럼 아끼고, 그러면서 우리 모두의 것이 아니니까, 욕심을 부릴 일도 없고요. 회사도 그런 식으로 하면 얼마나 좋아요! 노동자 모두의 것이 되는 거, 노동자가 주체로 되는 거, 그게 경제민주화 아니에요?"

 

"커피노동자 입장에서 봐도, 경제민주화! 공허해. 대통령이 특정 직업군이나 처지를 대변한다고 하는 건 민주화가 아니잖아요. 김순자 후보가 그랬어요. "당신이 당신의 처지를 스스로 말할 때 세상은 바뀐다""

 

"이재용은 부회장 승진했던데? 대체 무슨 근거로 그 자리에 올랐는지 몰라. 그 집안은 쪽 팔리지도 않을까요? 검증도 안 되고, 회장 아들이라고 덜컥 황태자가 되고. 그네 타는 그 여자도 마찬가지죠. 지가 무슨 진짜 공주인줄 안다니까요. 재수 없어! 오늘 낮에도 광화문에서 또 빨간 옷 입고 설쳤다매?"

 

 

"그네 타듯 스트롱맨(strongman) 아버지한테 자신을 밀어달라고 보채는, 황상민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생식기만 여자'도 그렇고, 정권 교체와 새 정치만 공허하게 말하는 문안도 그렇고. 상상을 못하는 상상결핍증 환자들 같애요."

 

"아저씨는 누구의 국민이 되고 싶어요?"

 

질문을 받은 나는 섣불리 답을 할 수 없다. 나는 누구의 국민이 아닌, 이 땅의 시민이 되고 싶을 뿐이니까. 커피노동자로서의 시민.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 내기 위해 크레인에 오르고, 철탑, 송전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여야만 하는 나라. 나는 그런 나라의 국민이고 싶지 않다. 죽음을 각오하고 높은 곳에 올라도, 어거지를 쓴다고 땡깡을 부린다고 말하는 곳이 한국이라는 사회다.

 

"진짜 국가고 나라라면 말이죠. 모두가 부자가 되고 잘 살고, 선진국민이 되게 해 주겠다고 공갈 치는 게 아니고, 배 곪는 사람, 먹지 못해 죽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없게 하는 게 국가의 의무이자, 존재의 이유죠. 난 가난해도, 단 한 사람도 굶어죽는 사람이 없는 국가에서 노동자로, 시민으로 살고 싶어요."

 

 

You may say that I'm a dreamer(당신은 내가 꿈꾸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But I'm not the only one(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 만은 아냐).

I hope someday you'll join us(언제가 당신도 우리와 동참하길 바라).

And the world will be as one(그리고 세상은 하나가 될 거야).

 

국민대통합의 아이콘은, 이런 상상을 하는 사람들까지 하나로 만들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의 구호는 개뻥이다.

 

이로써, 오늘 밤9시의 커피 메뉴가 '이매진'으로 하나 된 이유를 알겠지? 함께 상상하고, 드리머가 되자는 거. 천국도, 나라도, 소유도 없는 세상.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나? 1000원에 이런 세상을 꿈꾸게 만드는 커피가 있다는 거, 그것도 참 멋지지 않아?

 

자, 내일까지 밤9시의 커피는 '이매진'으로 하나되는 걸로~

I hope today you'll join us!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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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편인가 묻는 당신에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허허실실한 나는, 굳이 따지자면,

 

요즘 읽을 게 없으면 버버벅대는 바그네 추종자들이 싼티나게 남발하는, 

심하게 오염된 그 말 아닌, 정통적인 의미의 '보수 우파'에 더 가깝다 할 수 있겠다.

(어설픈 자유주의자 성향이 있으나, 생을 걸고 지킬 신념 같은 게 없으니, '주의자'라는 직함을 붙일 순 없겠고~)

 

그러다, 우연히 접한 이 구호에 훅~ 갔다. 하악하악. 할할.

 

세상에, 세상에, 이렇게 섹시한 구호가 있단 말인가. 침이 고이고, 입이 떠억.

약간의 뻥을 덧붙이자면, 태어나서 이렇게 섹시한 선언을 본 적이 없다.

 

좌파의 시대! 좌파의 시대!! 좌파의 시대!!!

 

와,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저렇게 솔직대담한 돌직구에 나는 그만 훌러덩 넘어갔다. 비록 좌파는 아니지만,

 

과감히 베팅했다! 

 

후원금을 내도록 당기는 저 강력한 유혹의 돌직구. 꼴려서 방망이를 휘둘렀다!   

http://www.soonja.net/xe/supporting  

 

나는, 근래 저렇게 멋진 구호를 본 적이 없다. 당신은 어떤가. 

꼴리면 당신도 베팅하자. 


비록, 내 사는 동안 우리 사는 동안, 

저 구호가 실현되거나 빛을 보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저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얼마나 벅찬 일인가.    

 

청소노동자 김순자는 말한다.

"대통령 바뀐다고 사회가 바뀌진 않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처지를 스스로 말하기 시작할 때, 사회는 바뀝니다."

 

청소노동자 김순자, 백 번 타당한 말씀이다. 

나는 커피노동자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커피노동자이고 싶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을 만족시키기 위한 커피노동자, 그것이 나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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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스타가 되지 않겠다.
전설이 될 것이다.
로큰롤의 '루돌프 누레예프'가 되겠다!"

- 그룹 퀸, 프레디 머큐리

 

이것은, 그저 넋두리입니다.
어떤 의미도 부여할 필요, 없고요. 그저 커피 한 잔에 담긴 단상이라고만 해두죠. 특히, 여기 등장하는 남자 셋, 어떤 관련 없이 나열한 것에 불과해요. 커피를 만들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 생각의 가지들.

 

어제, 한 남자가 다시 '양보'를 했습니다.
그것, 깊이 파고들자면 양보라는 단어로 단순화할 수 없는 무엇이겠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습니다. '단일화'라는 말이 저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보다 더 좋은 말이 선뜻 떠오르진 않지만, 그는 자신이 걸어왔던 길에서 일단 '멈춤'을 합니다. 한 남자, 안철수입니다.

 

안철수라는 이름.
저는 단 한 번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안철수'가 세상을 바꿀 이름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자신만의 인장을 새기며,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어떤 초석이 될 순 있으리란 기대 정도는 했었죠. '혹시 어쩌면…'하고 살짜쿵 가슴이 뛰기도 했으니까. 진짜 이뤄야 할 무엇을 향한 과정으로서의 안철수. 그래서 그 이름, 개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열망과 또 어떤 바람이 섞이고 뭉쳐 '안철수'라는 단어로 표현이 된 것이겠죠.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살짝 울먹입니다. 
개별의 인간에게 새겨진 구체적인 존엄 같은 게 있었어요. 그 눈물과 그 발언의 실체는 내가 알 수 없는 심연이겠지만,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맺힌 구체적 존엄 앞에 나는 겸손해야 했어요. 그의 발표는 내게 꼭 어떤 '고백'처럼 느껴졌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맞아요. 그는 내 스타일, 내 타입, 아니죠.
그럼에도 덩달아 슬펐습니다. 슬픔이 찰랑거렸습니다. 이상하게도. 살짝 아프기까지. 이상하게도. 아마, 안철수라는 개인때문이 아니라, 안철수라는 이름에 묻은 어떤 마음들 때문이었겠지만. 실토하자면, 안철수라는 이름 아래 3040자문단의 일원으로 살짝 참여했습니다. 어쩌다 그런 것이었지만,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주고 있었나 봅니다. 슬프고 아픈 걸 보니. 그는 일단 멈추고 물러섰겠다고 고백했지만, 안철수라는 이름에 담긴 어떤 열망과 마음, 그것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안철수라는 이름의 약속이 계속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 아마 그럴 것이라는 기대, 갖고 있습니다.    

 

그 고백이 있고, 다음날입니다.
한 남자의 소식에 덩달아 그 남자를 떠올렸습니다. 아니, 그 남자는 며칠 전부터 계속 맴돌던 이름이죠. 더 정확하게는 노래. 그의 노래들, 며칠 전부터 듣고 있었거든요. 그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인도에서 자랐고, 런던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는 뮤지션입니다. 영원히 빛날 이름을 가진 멋쟁이입니다. 그 남자, 프레디 머큐리입니다.

 

 

 

프레디 머큐리라는 이름. 
그룹 퀸의 보컬리스트입니다. 지루하고 따분한 삶을 사는 것이 싫었고, 1971년 퀸을 만듭니다. 전설이 되겠다는 호언장담, 허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전설이 됐습니다. 그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대요. 음악을 듣는 사람들 심장박동을 더 빨리 뛰게 하기 위함.

 

그는, 퀸은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건 존 레논이 하면 될 일이지, 자신들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음악을 듣는 그 순간만이라도 심장박동이 뛰고 즐겁고 신나면 되는 것.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의 죽음이 세상을 조금 바꿔놓았습니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한 것!

 

그는 한 마디로 잘났습니다.
비아냥이 아니라, 진짜 그랬어요. 직접 음악을 만든 싱어송라이터였고, 공연을 기획하고 폭풍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무대에서의 끝내주는 퍼포먼스와 카리스마는 어떻고요.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는 직접 아이디어를 내는 기획까지. 음악으로 사람들 심장박동을 뛰게 하겠다는 그의 장담은 허세가 아니었던 거죠. 20년 내내 노래를 했고,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겠죠.

 

그의 이런 바람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난 온세상이 내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고, 내가 무대에 섰을 때는 모든 이들이 내 노래를 듣고 날 바라봐 주길 바란다. 어떤 형태로든 내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 좋다. 다만 30분이라도 사람들이 나로인해 운이 좋다고 느끼거나 기분이 좋아진다면, 찌푸린 얼굴을 펴고 잠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가치있는 일이다."

 

그는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의리남이었습니다.
잘난 그였기에, '퀸=프레디 머큐리'라는 등식을 떠올리기에 충분했기에, 주변에선 퀸을 탈퇴하고 솔로활동을 하라는 유혹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팀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죽는 날까지 밴드를 떠나지 않은 '의리자(者)'. 퀸의 성공에 기여한 자신의 몫은 1/4이라고 말했다죠. 물론 퀸의 리더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도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은 해봤다지만.

 

프레디가 세상을 떠난 1991년 11월 24일.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나는, 그해 그를 처음 알았어요.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 당시, 더벅머릴 길러서 완전 어설픈 반항아 록스타 같던 시절, 한 무리의 또래들 중에 나름 가장 예뻤던 여학생으로부터 다양한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선물 받았었죠. A면 첫 곡이 'Love of My Life'(B면 첫 곡은 광석 형의 '사랑했지만'). 퀸의 노래를 처음 들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라는 뮤지션도 처음. "오래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너무 지루할것 같다"면서도 "난 제발 에이즈만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늘 기도한다"던 그는, 결국 에이즈로 세상을 떠납니다. 고백한 다음날, 에이즈로 그 좋아하던 음악을 멈춥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폭풍 보이스도 이젠 안녕.

 

물론, 오해하지 마세요.
한 남자와 그 남자의 고백은 완전 다를 뿐더러, 퍼포먼스가 끝났다고 끝난 것 아닙니다. 안철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속 걸어갈 터이고,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는 21년이 지난 오늘도,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기억하고, 세상이 그의 음악을 영원한 전설로 인정합니다. "로큰롤의 '루돌프 누레예프'가 되겠다!"는 그의 말에 완전 수긍. '루돌프 누레예프'는 죽을 때까지 춤을 춘 전설의 발레리노입니다. 

 

두 사람, 위풍당당했습니다.
한 남자, 국민을 사랑하고,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자유주의자 면모를 보이면서 약속을 지킨다며 일단 멈춰섰습니다. 그 남자, 여자와 남자를 사랑하고, 물고기와 고양이를 사랑하며, 자신의 호언장담을 죽는 그날까지 지켰습니다. 두 사람 모두, 누군가의 심장을 뛰게 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 남자, 준수는 그렇게 두 남자를 기억합니다.
오늘, 내 좋은 커피 동료들과 찾은 커피하우스. 안타깝게, 탄자니아가 없습니다. 프레디 고향에서 날아온 향미로 한 남자와 그 남자의 향을 음미할까 했는데 말이죠. 아쉬워서 같은 네 글자짜리 온두라스 커피를 마셨습니다. 물론, 탄자니아와 온두라스, 서로 대륙은 다르지만 말이죠. 하하. 

 

11월 23일, 안철수가 대선후보로서의 행보를 멈췄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계속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약속 때문에라도!!) 
11월 24일, 프레디 머큐리가 뮤지션으로서의 노래를 멈췄습니다.
(전설로서 그는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호언장담 때문에라도!!)
그리고, 준수의 2012년은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달력에 남은 날짜는 그냥 덤.
(커피 만드는 남자로서 그는 계속 이야기를 만들 것입니다! 삶 때문에라도!!) 

 

오늘 밤9시의 커피는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를 준비했습니다. 그에 어울리는 노래는,
Don't stop me now. 지금, 날 막지 마.
그래, 모두 멈추지 마. 프레디도, 안철수도, 나도, 커피도.
나도 그들처럼, 관료주의에 잠식 당한 내 다른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상업영화 시스템으로 들어간 내 몸을 빼고, 독립영화를 다시 찍기로 합니다. 나는 그것이 어울리는 사람이니까요. 그것은 곧 다시 시작이며, 영원한 향기를 뿜어내는 일이기도 해요. 좋은 것만 누리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즐겁고 재미있게. 오늘 봰 윤광준 선생님도 내게 힘을 실어주셨어요! 

 

윤 선생님, 내게 이런 말을 남겨주셨습니다.
"커피의 향이 곧 좋은 삶입니다."

 

 

암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잘 찍은 사진 한 장' 같은 '잘 뽑은 커피 한 잔', 그것이 커피를 처음 할 때처럼, 내 삶의 영원한 목표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잘 뽑은 커피 한 잔'!  :-)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커피 한 잔에 담긴 한 세계의 모든 것. 커피 한 잔을 통해 사유하는 한 줌의 삶.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나의 커피.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

 

아울러, 철수 형과 프레디 형에게도 커피 한 잔씩 건네고 싶은 내 마음 한 자락.
내가 준비한 오늘의 커피 메뉴는, Don't stop me now.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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