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9시의 커피]사랑, AIDS도 막을 수 없는 그 무엇!
17~18세기에 걸쳐 커피하우스는
문학가들의 생활의 중심을 점유하는 동시에,
근대시민사회의 주민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대중'으로 끌어올리는 데 한몫을 한 '독자층'을 만드는 거점이 되었다.
- 우스이 류이치로, 《커피가 돌고 세계史가 돌고》 중에서
이 남자, 어제도 라이터를 놓고 갔다. 버릇이다. 자주 오는 건 아닌데, 어째 오늘도 왔다.
꼭 자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한 행위같기도 하다. 내가 여기 왔다 갔음. 라이터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남자, 아우라는 딱 예술가다. 어째 보면 예수를 닮은, 오다기리 죠와 살짝 엇비슷한, 그러고 보면 히피풍이다. 동그란 안경은 존 레논의 것이다.
자주 오는 건 아니다. 커피 취향도 남다르진 않다. 드립커피를 즐겨한다는 것 외에. 그냥 하우스 블렌딩만 마신다. 담배를 많이 피우긴 한다. 라이터는 그래서 필수품인데, 올 때마다 놓고 가는 걸 보면 라이터는 꽤 많은 것 같다. 나는 이 남자 라이터만 따로 모아놓고 있다.
근데, 그 라이터들이 여느 라이터와는 조금 다른데, 예쁘게 생겼다.
"아저씨, 예술가들에게 상처나 고통 같은 건, 하나의 액세사리 같지 않아요? 꼭 뭔가 그렇게 있더라고. 그거 없으면 예술가 못해요? 그런 게 있어야 예술이 빛나보이나? 고통을 예술로 승화했니 뭐니. 한 법의학자는 그걸 창작병인가?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런 유전자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예술해요?"
"아뇨, 뭐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오늘 영화 한 편 봤는데, 아저씨 <노웨어보이>라고 봤어요?"
"존 레논?"
"예. 존 레논도 그렇더라고요. '엄마'라는 트라우마가 있잖아요. 다섯 살때 엄마가 존을 버리고 이모에게 맡기고 떠나고, 나중에 기껏 만났더니 열일곱에 교통사고로 죽어버리고. 엄마를 두 번 잃은 거에요, 그 남자. 전 그게 오노 요코와의 사랑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오노 요코한테서 엄마를 본 거죠. 물론 전 부인이었던 신시아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노웨어보이>는 그러니까,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고 음악에 빠진 한 평범한 소년이 어떻게 존 레논이 되고, 비틀즈에 이르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정확하게는 비틀즈 직전까지. 엄마를 두 번 잃고, 17파운드 기타로 출발해 폴 매카트니를 만나 비틀즈의 전신 '쿼리 멘'을 만든 존 레논.
흥미롭게 봤다. 엘비스라면 모를까, 존 레논이 지나치게 미끈거리긴 해도, 엘비스를 좋아해서 그랬겠거니 했다. 폴 매카트니를 만난 운명적인 날도 그려져 있고. 하긴 그날이 어쩌면 모든 것이 시작된 날이었다. 존과 폴이 만났던 그날. 비틀즈의 위대한 탄생!
이 남자, 라이터를 들더니 불을 붙인다. 하얀 담배 연기에 존과 폴의 만남이 묻어난다.
"이런 만남은 누가 성사시킬까요? 엄마가 느닷없이 당하는 교통사고도 신이 정교하게 짜놓은 시나리오 같고. 뭔가 딱딱 맞물리잖아요. 비틀즈의 탄생설화 같은 거."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 관계도, 비틀즈의 탄생 앞에선 고개를 숙인다. 대신 엄마가 대신한다. 존 레논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요충분조건. 아, 빠트릴 수 없겠다. 아빠처럼 존을 지켜주던 이모부의 죽음 또한. 그 모든 것이 존 레논 비긴즈를 위한 초석이자 디딤돌.
"존 레논이 라이터를 놓고 온 커피하우스가 있어요. 레논이 무척 좋아하던 라이터래요. 그것도 바로 전날에 샀던."
그는 라이터 사연을 오늘에서야 털어놓는다. 하긴 나도 그 전에 묻지 않았다. 차곡차곡 모아놓고만 있다. 이 남자의 얼굴은 딱히 라이터의 행방이 궁금한 얼굴과 몸짓이 아녔으니까.
"자전거를 타고 오노 요코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다가 라이터를 깜빡 잊고 안 가져온 걸 알고, 아차차했대요. 오노가 돌아가서 가져오자고 했는데, 그러자고 했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요. 내일 또 올거니까 그냥 가자고."
그 커피하우스가 있는 일본 가루이자와 지역은 여름 리조트였다. 뉴욕의 햄튼과 비슷한. 가루이자와 타운에서 자전거로 30분 떨어진 소나무 숲에 커피하우스가 있었다. 존과 오노는 션을 데리고 매일 갈 정도로 그곳을 좋아했다.
그들은 커피하우스 뒷마당의 그물침대에 누워 웃고 노래 부르며 하늘을 바라보며 오후의 시간을 보내곤 했단다. 피스~
그들이 바란 평화. 그 평화의 전 세계적인 전염.
그러나, 존이 말한 '내일'은 다시 오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장마가 시작됐고, 그들은 (호텔)방콕이었다. 그러다 재미가 없어져 뉴욕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평화 없는 세상에서, 그들의 뉴욕은 바빴다. 결국 그들은 가루이자와에 다시 가지 못했다. 라이터는 '영영' 이별인가보다 했다.
"1985년인가, 1986년인가, 존이 죽고 5년 후라고 했으니 그쯤 될 거예요. 오노가 거기로 가요. 아마 존과의 추억을 회상하기 위함이었겠죠.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커피하우스는 변함이 없었대요. 커피 한 잔을 마셨고, 떠나려는데, 주인이 와서는..."
그 라이터를 건네줬다. 5년 전, 커피하우스에 놓고 간 라이터. 주인장은 이리 말했단다.
"당신 남편이 지난 번 여기에 와서 두고 간 라이터를 돌려주고 싶네요." (Your husband left this the last time he was here, I’d like to return this to you.)
오노가 라이터를 켰다. 불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5년 전, 라이터를 두고 간 그 날이 불꽃속에 떠올랐다.
인생이란 네가 다른 계획을 세우는 동안 다 지나가버리는거야(Life is what happens to you while you’re busy making other plans). - 존 레논
"이 일상적인 평범한 일도 예술가들이 했대니, 뭔가 메타포 같지 않아요? 우리도 어쩌면 평화를 그렇게 깜빡 두고 온 채 떠나온 거 아닐까요? 그래서 내일로 미뤘다가 다시 찾지 못하고 있는... 그래서 제가 라이터를 놓고 가는 거예요. 존 레논이 와서 다시 찾아가라고. 하하."
그럴 듯했다.
평화는 존 레논이 깜빡 두고 온 라이터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남자, 평화를 바라는 히피였군. 나도 평화가 간절할 때는 그 가루이자와의 커피하우스를 찾고 싶다. 그물침대에 누워 어느 날의 오후를 만끽하고 싶다.
그리곤, 긴자를 찾아가는 거지. 백화점길을 따라 가부키 극장 쪽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카페 파우리스타'. 존과 오노가 역시 자주 왔다는 이 곳. 올드한 느낌의 커피하우스. 어느 날, 이곳에서 나는 'War is over'를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오늘. 아침부터 나는 주야장천 존 레논만 틀어놓고 있다. 1980년, 12월8일. 총성이 울렸다. 한 시대가 접혔다. 존 레논이 죽었다. 31년. 평화는 아직 오지 않고 있지만, 염원은 여전하다.
맞다. 오늘의 커피 메뉴는, War is over(Happy Christmas). 평화를 담아서 내린 커피.
밤9시의 커피에 울려 퍼진 존 레논을 듣곤, 일곱 명이 말을 건넸다. 그 중 한 여자의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고맙다며, 굳이 1000원을 더 꺼냈다. 음악 값이라며. 존 레논이 준 선물이로다. 민중에게 권력을. 전쟁이 끝난 자리엔 민중이 우뚝 서 있길.
그러니까, 나와 당신 민중들 모두에게, Happy Christmas!!!
(아울러, 큰별 생일 축하해! Happy Birthday To U~)
"민중에게 권력을! 즉각 민중에게 권력을! 우린 혁명을 바란다... 당신이 부리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가도 못 받고 노동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사실상 가지고 있는 것을 그들이 소유하도록 해달라. 우리가 전면에 나서 당신들을 끌어내릴 것이다..."
'Power To The People' 중에서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