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6일이 '세계 식량의 날'인 것은 재밌고도 아이러니하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가 창설(1945)된 것을 기념해 1979년부터 지정된 이날은, 짐작하다시피, '세계 식량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일깨우고 기아와 영양실조, 가난에 함께 맞서 퇴치하기 위'함이 목적이다. 

올해의 주제는 '식량가격 - 위기에서 안정으로'다. 기후변화와 잇단 자연재해로 식량수급에 차질이 생겼고, 그 때문에 계속 상승하는 식량가격과 각국의 민주주의 위기와 경제위기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식량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음에 대한 상기이자, 결의다. 월급 빼고 다 올라가는 현실이 그것을 방증한다. (물론 청와대에 서식하는 가카는 이 와중에도 내곡동 사저를 헐값에 사들이고, 사저에 정부예산까지 충당했다는 의혹까지 받는, 능력자(?)다운 모습을 보이신다.)

각국의 정치적 무능함 혹은 의도적 방치, 자본의 탐욕이 야합하면서 위기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특히, 지금 동아프리카에는 60년 만의 기근과 가뭄이 덮쳤으나, 구호만으로 해결할 수 없음에도, 세계(의 권력과 화폐)는 손을 놓고 있다.
 
그래, 재밌고 아이러니한 이유를 대자. 이날은 먹을거리(빵)을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빵이 없으면 고기(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라고 말했다고 오해 받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날(1793년)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빵이 없으면 고기(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라고 철없는 소리, 지껄이지 않았다. 그녀를 향한 악성 루머이자 악성 댓글!!!

지금, 식량을 둘러싼 거짓말과 위선이 99%의 평화와 생존을 강력하게 위협하고 있다. 최근 뉴욕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도 결국, "니들만 쳐먹는 거 더 이상 못 보겠다"는 뜻이다. 일자리 요구는 결국 먹을거리에 대한 요구다. 이집트, 카메룬, 멕시코 등에서의 식량부족으로 인한 폭동과 시위도 마찬가지다. 

'Occupytogether'(http://occupytogether.org)의 오늘의 구호는, "우리가 뭉칠 때다. 그들이 들을 때다. 세계 민중들아 일어나라"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 82개 나라 951개 도시에서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의 탐욕에 저항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당신도 물론 심적으로든 몸으로든 동참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99%니까.

점령하라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30년 동안 1%의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세계 경제 시스템을 창조해 우리의 인권을 공격하고 환경을 파괴했다. 이것이 당신과 일과 건강과 교육 등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이유였다. 신자유주의는 멈춰야 하고 우리는 민주주의와 경제정의로 나아가야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신자유주의 반대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컬럼비아대)는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개인화하는 시스템은 자본주의도 시장경제도 아니"라고 했다. 이 땅이 더욱 가관인 것이, 대통령마저도 퇴임 후 사저를 사들이면서 이익을 개인화한다. 그러니 대한민국 1%는 오죽하겠는가. 

당신과 내 주머니에서 꺼낸 공적자금을 '인 마이 포켓(In my pocket)'하고 번번이 보너스 잔치를 벌인다. 그럼에도 모든 부실과 실패의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고통분담'을 외친다. 99%의 굶주림은 안중에도 없다. 지 뱃대지만 채우면 그만이다. 1%의 DNA는 그렇다.

자, 이만하면 1%에 대한 저항은 필연적이고 반드시 일어나야 할 사건이다!
아큐파이. Occupy. 점령하라.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 Stay Hungry, Stay Foolish.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마리 앙투아네트(가 하지도 않은 말)에 대한 악성 댓글이 프랑스대혁명의 불씨를 지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문제가 아닌 부르봉 왕가의 사치와 부패가 곪고 곪아서 터졌다. 1%의 문제.

식량의 문제는 곧 생존이며, 이것은 당면한 현실의 문제로서 저항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1%만 배부른, 99%가 굶주리는 신자유주의·금융자본의 탐욕의 도가니가 민중들의 봉기를 돋는다.   

 

세계 식량의 날, 마리 앙투아네트의 기일이 맞물린 아이러니 뒤에는,
'점령의 날(10월15일)'이 일으킨 '세계적 변화를 위한 연대(United for global change)'가 있다. 혁명의 수순이 되어야 한다. 프랑스가 아닌 세계 민중이 일어날 것을 요구하는 혁명.  

다만, 주의할 점.
점령할 것은, 신자유주의 우산에 안주하는 탐욕의 1%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오해까지 점령하진 말자. 앙투아네트를 위한 나의 변호이자, 옹호다. 아래, 잡지 뷰즈에 기고한 글이다. 
  

[People View] 마리 앙투아네트를 악녀라 부르지 말라!
우리는 얼마나 마리 앙투아네트를 알고 있는가?

사실로 밝혀지지 않은 루머나 이야기가 빚어내는 비극을 우리는 잘 안다. 이른바 ‘악플’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허구’가 한 사람의 영혼을 잠식하게 되는 경우, 그 파장은 예기치 못한 곳으로 튀기도 한다. 허나 우리는 알면서도 잘못을 쉬이 저지른다. 알고 싶은 것만 알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습성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정면으로 대면하지 못해서, 대면할 용기가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혹은 진실과의 대면이다.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진실에서 먼 사실을 함부로 내뱉지 말 것. 주홍글씨를 새기고, 마녀사냥에 나서는 군중 심리에 휩쓸리지 말 것. 좀 더 알아보고 판단할 것. 많은 사람들이 그런 늪에 희생됐는데, 여기 한 사람도 그런 경우다.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1755.11.2~1793.10.16). 그녀에겐 어떤 오래된 오명과 악플이 덧씌워져 있을까. 진짜 앙투아네트를 대면해보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된장녀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 명문 합스부르크가의 황녀로 태어나 프랑스의 왕비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는 뚜렷하다. 엄청난 허영과 사치의 대명사. 한마디로 ‘된장녀’였다. 더불어 부당한 정치 간섭을 일삼고, 욕정·욕망의 화신으로 각인된 팜므 파탈 혹은 연인들을 두고 성적 방종을 일삼은 암캐였다.

아마도 가장 부당한 타이틀이 있다면, 프랑스혁명의 원인으로 지목된 ‘마녀’가 아닐까.

대부분 그것은 오해였다. 우선, 하나의 오해부터 풀자. 그녀가 빵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했다는, 철딱서니 없는 유명한 말이 있다. “빵이 없으면 고기(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이런 말, 하지 않았다. 과격한 혁명분자들이 목적을 추동하려고 만든 악성 댓글(루머)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여행≫ 저자인 안토니아 프레이저를 비롯한, 역사학자들 대부분이 그것이 유언비어였음을 강하게 신뢰한다. 

실제의 앙투아네트는 백성을 생각하고 정치에 관심 많은 왕비였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왕가 중 소작인의 옥수수 밭을 마차로 짓밟고 지나가기를 거부한 유일한 사람이었고, 루이16세의 사냥 중에 오발로 부상을 당한 농부를 농부의 집에서 3일 동안 간호하기도 했다. 왕비였던 그녀가 백성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녀가 남긴 기록을 보자.

“자신들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매우 잘 대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그들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분명해집니다. 왕은 이 진실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대관식 날을 평생(제가 100년을 산다 하더라도) 잊지 못할 겁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거처였던 베르사유 궁전. 루이 14세가 1682년 파리에서 거처를 옮기면서, 권력의 중심지가 됐다. 바로크 건축을 대표하면서 호화로운 건물과 광대하고 아름다운 정원, 뭣보다 궁전 깊이 위치한 ‘마리 앙투아네트 영토’로 유명하다.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이 영토에서 앙투아네트는 세간의 시선과 다른 모습이었다. 소, 말 등을 길렀고, 가끔은 직접 우유를 짜면서 전원생활을 꿈꿨다.

그러고 보면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주어진 ‘된장녀’라는 타이틀은 부당해 뵌다. 되레 진짜 좋은 된장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매주녀’는 어떨까. 백성을 생각하고, 소박한 전원생할을 꿈꾼 그녀는 좋은 매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물론 진짜 비극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는 유언비어가 앙투아네트를 영영 떠날 리 없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마녀다?
  

앙투아네트는 통설과 달리 날라리 왕비가 아니었다. 기품과 우아함을 갖추고, 아름다운 프랑스 언어를 구사했다. 덕분에 당대의 귀족 부인들이 닮고 싶어 하던 왕비였다고 전해진다.  

4명의 아이들에게도 각별하여, 특히 셋째 아들이 천식으로 고생하자 지극정성으로 이를 보살핀 좋은 어머니였다. 

그녀의 낭비벽을 지적하는 것도 당대의 맥락을 읽지 못한 처사다. 당시 프랑스 왕실의 사치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다만 루이16세가 유독 검소해서 ‘적자부인(赤字夫人)’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1785년 발생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이 사건과 무관한 그녀에게 타격을 입혔다. 실은 라 모트 백작부인이 목걸이를 입수하려 한 음모였으나, 앙투아네트로 변장한 창녀로 인해 그녀는 추문에 휩싸였다.

세계는 때론 엉뚱한 곳에 힘을 발휘한다. 악성루머(허구)를 통해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공력을 집중한다. 루머가 대중에게 사실이나 진실처럼 오도되는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세계에 발붙일 수가 없다. 그녀와 무관한 사건이었음에도, 그녀를 조롱·비방하는 글, 노래, 인쇄물 등은 허구를 사실로 바꿨다. 꼼짝 마라. 그녀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절대왕정에 대해 서서히 차오르던 대중의 분노에 맞는, 먹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대중은 결국 1789년 프랑스대혁명으로 이를 발화시켰다. 대혁명은 시민의식의 성장과 구제도의 모순이 결합된 필연적인 사건임에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앙투아네트는 필요 이상의 모함과 오해를 받은 것이 아닐까?

그것이 혁명의 추동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 순 있지만, 그건 승자와 역사의 관점이다. 앙투아네트라는 개인에게 그 비극은 정당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 후세에까지 잘못된 이미지로 낙인 찍혀 폄하된 비극은 아직까지 그녀를 휘감고 있다. 잘못된 사실과 진실 때문에 무덤에서까지 억울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녀를 프랑스 대혁명의 희생양으로 보는 시선이 일정부분 힘을 얻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녀는 1793년 10월16일, 기요틴(단두대)에서 꺾일 때까지 오해로 점철된 삶을 연명해야 했다. 그녀의 비호를 받던 귀족들은 일찌감치 그녀를 버리고 망명을 갔다. 혁명군의 감시를 받으며 생활하던 그녀는, 적군에게 프랑스군의 작전을 몰래 알려주고 있다는 루머에까지 휩싸였다. 그녀를 단두대에 세운 명분은 국고 낭비와 오스트리아와 공모한 반혁명의 시도였다. 베르사유의 장미는 그렇게 사라졌다.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역사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녀도 어쩌면 사랑을 갈구하고, 전원에서 자연을 가꾸며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던 평범한 사람이지 않았을까? 근거 부족하게 그녀를 욕망의 화신이자 팜므 파탈, 무뇌아적인 여인으로 여기고 싶진 않다. 역사의 거대한 물결 앞에서 비극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던 여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실과 진실에 대면하기. 이번 가을,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씻어주는 건 당신의 몫이다.


(※ 참고자료 : 위민넷, 위키백과, 두산대백과사전,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Marie Antoinette, the portrait of an average woman》(슈테판 츠바이크 지음|박광자 외 번역/ 청미래 펴냄),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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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1일. 커피 향 가득한 매장에선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무슨 노래가 저렇냐는 타박도 있었으나, 피아프는 굴하지 않았다. 그녀의 생이 그러했듯.   

 

에디트 피아프의 선율엔, 뭔가 퇴폐적인 커피가 어울린다.
그 퇴폐 커피에는 '빠담빠담'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참고로, 빠담빠담(padam padam)은 '두근두근'이라는 뜻이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은 두근두근댄다. 생을 사는 순간도 두근두근이었으면 좋겠다.
커피 같은 사랑의 순간들이 두근두근.

피아프는 계속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던 것이고, 계속 잘 할 수 있는 유일했던 것.

타인의 이해를 굳이 구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 같다.
타인에게 구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건 잘 알았을 테니까.
가벼운 위로가 때론 슬픔을 더 돋우는 법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구나 고통을 경험하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얻는다. 타인들은 그걸 극복하라고 격려하지만 사실 그게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제까지 울던 친구가 오늘 웃는다고 상처가 사라질 리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삶이 지속된다는 건 사실이다. 삶은, 어쨌든 지속된다. 그게 삶의 긍정적인 면이자 끔찍한 면이다. 삶의, 빌어먹을 속성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쨌든, 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던 걸 계속 한다. 상처와 슬픔은, 그냥 내버려둔 채 끌어안고 간다. 우리는 코린 베일리 래의 슬픔을 헤아리지 못한다. 다만 그녀가 하던 걸 계속, 잘하고 있다는 것만 안다. 타인의 이해란, 겨우 그 정도다.  - 차우진 -

2008년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낸 뒤 슬픔을 품고서도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깊어진 코린 베일리 래에 대한, 대중문화평론가 차우진의 글귀다. 차우진(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다.  

 피아프가 그랬고, 코린이 그랬다.
피아프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여전히 커피를 뽑고 있었다.

하던 걸 계속 하는 것이다. 무람하게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나도 그랬고, 그럴 것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이해도 겨우 그 정도.
그럼에도 나는 누군가 그 슬픔과 상처를 끌어안고 간다는 사실에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빠담빠담. 두근두근. 공감의 다른 이름.
10월11일, 오늘의 커피는 빠담빠담. 피아프의 48주기다.  
 


사랑하고 노래했으므로, 에디트 피아프


(* 김진숙 위원이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타워크레인에 오른 지 279일째다.
그를 지키는 정흥영, 박영제, 박성호 씨가 오른 지 107일째 되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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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12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삐아프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이 글 읽으니 여러 가지 욕구가 동시에 드는걸요. 우선 커피를 진하게 타 마시고 싶고,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반복 재생해서 듣고 싶고, 내 속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요. 타인의 공감은 그 정도이겠지만,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이 생긴달까요. 야밤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책을품은삶 2011-10-14 12:03   좋아요 0 | URL
진한 커피 한 잔을 듣고,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털어놓고,
이야기를 마시는 시간에 저도 동참하겠슴다~ㅎㅎ

저도 동감합니다.
타인의 사소한 공감이 위로가 될 수 있는 희망.
공감이 힘든 시대라서 더 없이 슬픈 지금-여기잖아요.

잘 읽어줘서 고맙슴다~
 

요즘, 제가 주야장천 듣는 노래(들)가 있어요.   
언제부터인가 늘, 이맘때, 12월8일 즈음해서 그래요.
맞아요, 존 레논이에요.
특히나 올해,
존 레논 30주기입니다.
ㅠㅠ 

 
그건, 별 도리가 없어요.
무방비입니다.

압력솥에서 밥 뜸들이기가 끝난 뒤, 신호가 오듯,
시간을 살면서 뜸을 들인 생체시계가 이맘때면 그렇게 작동합니다.

그러니, 주야장천으로 귀쏭쏭 뇌탁탁 노래는, 존 레논의 것이지요.

1980년, 마흔이었습니다. 
존 레논의 나이가 그랬어요. 1980년의 12월8일, 집앞에서 열혈팬을 자처한 마크 채프먼의 총탄에 불온했던 혁명적 몽상가는 저격을 당합니다. 탕탕탕탕.

몹쓸 '저격의 꿈'에 탄피처럼 내동댕이쳐진, 존 레논.
역설적이게도, 저격은 요절이라는 신화적 외피를 둘렀다지요.
특히나, 전지구의 정치경제 지형도를 바꾼 레이건 대통령 당선 직후였던 그 시절.
혁명적 아이콘의 죽음은, 시대의 변화를 예감한 징후적 사건이었음에 분명하겠죠.

아, 그러고보니 저도, 곧 마흔을 바라보는 시절.
물론 신화도 전설도 영웅도 될 생각이 추호도 없을뿐더러, 그럴 깜냥도 못되니,
어떻게든 무조건, 가아늘고 기일게, 버티고 견디는 것이 사명인 가장 보통의 남자. 


그 사랑, 중독됐습니다.
존의 노래(들)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훌륭하지요.
거기에다 그 노래가 품고 있는 혁명적 운동성과 실천을 생각하면, 어휴.

저 같이 소심쟁이 장삼이사야 그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을 품고 있는데,
뭣보다 저는, 그의 사랑(오노 요코에 대한!)에 중독당한 사람 중의 하나지요.

1966년 11월9일.
스물여섯, '예수보다 위대한' 밴드의 멤버였던 그의 시간은 그날 이후, 방향을 달리해 돌아갔다죠. 당시 서른셋의 오노 요코를 만났던 그 순간, 모든 것이 바뀌는 순간. 재밌게도, 오노는 당시 존이 비틀스의 멤버인지도 몰랐다더군요.

존의 시간은 그날 이후 오노를 향해 시침과 초침을 돌리게 됩니다.
음악 역시, 음악의 혁명에서 혁명의 음악으로.

알다시피, 그녀와의 만남은 비틀스 팬들이나 멤버들에겐 달갑지 않은 것이었죠.
존은 1969년 오노와 결혼했고(물론, 이후 한 번 헤어지도 했지만),
아울러 비틀스를 탈퇴했으며, 세상과 본격 싸우는 전사의 길을 걷게 되죠.

그 모든 것이, 이 죽일놈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라고 나는 감히 생각합니다).

혁명이니, 불온이니 긁적였지만, 결국 존은 탐미주의자가 아녔을까요.
아름다운 사람에, 아름다운 세상에 탐닉하고자 했던, 그리하여 법이 없고, 재산과 소유가 없으며, 국경따위도 필요없는 세상을 몽상(혹은 망상?)했던 사람.
그 중심엔 '오 마이 러브', 오노 요코!!!

오죽하면 이리 말했겠습니까. "태어났노라! 살았노라! 요코를 만났노라!"
누군가는 아따, 이거 뭔 닭살 멘트여, 라고 살을 벅벅 긁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 사랑, 솔직히 부럽지 않습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예술적·정치적 영감은 물론, 또 다른 세상을 향한 몽상적 영감까지도 불어넣고 받을 수 있는 동반자 관계. 그리하여, "우리는 같은 온도를 가지고 있군요!"라고 말할 수 있는 동맹적 사랑.

알다시피, 존의 압권적 퍼포먼스. 아아아!!!
유명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가 <롤링스톤>의 표지사진용으로 그들을 찍기 위해 찾아갔을 때, 존이 행한 그 사랑의 퍼포먼스.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다시 꺼내볼까요?
사진을 찍으면서 애니가 존에게 묻습니다. "당신, 오노 요코를 얼마나 사랑해?"

존, 아무말 없이 옷을 훌러덩 벗습니다. 그리고 오노를 꼭 껴안듯 매달려선 입을 맞춥니다. 쪼오옥~ 그리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던지죠.
"봤냐? 이게 내가 오노를 사랑하는 방식이야."
 
아, 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훌륭한 잡지표지 중의 하나인 <롤링스톤>의 1980년12월호 표지가 탄생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랑의 마지막 징표가 되고 말았다지요. 
사진을 찍고 몇 시간후,
그 남자의 가슴에는 그 여자만 있었는데,
엉뚱하게도 그 자리에 총알이 박히고 말았습니다...

사랑.
존과 오노의 것이 사랑의 모든 것이라거나, 사랑이라면 저 정돈돼야 한다며 땡깡부릴 생각은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랑은, 사랑하는 그들만의 것이겠지요.

그래도, 나는 오늘 그 사랑을 다시 떠올립니다.
아울러, 그 지독한 사랑을 '저격의 꿈'에 날려보냈어야 했을, 눈앞에서 사랑이 총탄이 맞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 오노 요코.
그렇게 홀로 남아 "존이 인류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그를 위해 기도해달라"던, 지금도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오노의 마음도 생각해봅니다.

눈이 나리고, 비가 흩날린 오늘, 12월8일.
당신을 생각했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고 있는 당신에게 내가 커피를 내려주고, 함께 땅을 밟으며, 그 시간의 공기와 냄새를 오감을 열어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나의 상상은, 존과 오노의 것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나는 다른 어떤 세상보다 당신이라는 세상에 편입하고 연대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장심이사입니다. 저격이나 암살 당할 깜냥이 아니기에, 나의 심장은 당신이라는 총알이 박힌 '저격의 꿈'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같은 온도를 지녔으니까요.
 

자, 그래요. 오늘 노래는, 존 박 아니고, 존 레넌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들려주고픈 이 노래, "
Oh my love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로 시작하는 이 노래, Oh My Love.  ^^
 
당신에게 그 언젠가, 우쿨렐레를 띵가띵가 치면서 들려주고 싶습니다.
아마도 그 어느해, 12월8일. 눈이 내린다면 더욱 좋을 그날, 존과 오노의 사랑을 만담처럼 나누며 들려주고 싶은 이 노래. 내 품에 안겨 잠든 당신에게, 나즈막이 들려주고 싶은 이 노래.
우리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탕탕탕탕.
 

참, 내일 개봉하는 <존 레논 비긴즈 : 노웨어보이>. 그러니까, '껌 좀 씹던' 시절의 , 비틀스 이전의 존 레논을 다룬 영화. 당신과 함께,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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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7일, 세계 빈곤퇴치의 날. 

1987년 10월17일, 세계인권선언(1948년)이 발표됐던 프랑스 파리의 트로카데로 11월11일 광장, 10만 명이 모여들었다. 빈곤퇴치운동에 평생을 바친 조셉 레신스키 신부(당시 70세)가 주도한 '절대 빈곤퇴치운동 기념비' 개막행사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5년 뒤, UN은 이날을 '세계 빈곤퇴치의 날'로 정하면서 절대적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국제적으로 함께 노력할 것을 결의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빈곤퇴치는커녕 양극화가 심해진다.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 하신 대통령은 '경제'가 뭔지도 모르시고, 부유한 나라, 부강한 국가를 만들겠다고 립서비스만 일삼으신다.

차라리 한 사람도 굶는 사람을 없애겠다고 말해야 한다. "가난은 국가도 구제못한다"는 오래된 신화(?)는 거짓이다. 국가가 스스로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더럽고 비겁한 변명이다. 가난은 국가가 구제해줘야 한다. 그렇게 하면 개인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고? 조까라마이싱. 국가가 가난한 사람을 내비두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중차대한 도덕적 해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경제학'을 다시 리바이벌 하자면,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라면 먼저 쓰러져가는 빈민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


"경제학의 목표가 많은 사람을 좀더 잘 살게 하는 것이라면, 먼저 가난한 이들을 보고 마음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교수) 
 

그러니까,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국가가 가난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경제학이 부자들만 배부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장하준 교수는 지난해 4월 만난 자리에서 그렇게 요구하라고 말했다.
그를 만난 나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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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든 선거든, 각자가 의사를 표시하고 모여야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장하준을 만나다



알다시피, 우리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고 마는 두발자전거 경제 체제에 있다. 멈춤 없이 내달려야 유지될 수 있는 경제시스템. 누군가의 이익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없는 지금의 자본주의. 돈이 없으면 인간의 존재감과 자존감마저 말살당하고 마는 엄혹한 시대.

작금의 경제공황은 그런 시스템 내부에서 암약한 탐욕이 곪아 터진 것이다. 그러니까 공황의 초기, 금융위기라고 지칭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금융, 특히 부실규모를 파악하기조차 힘든 파생상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성 바이러스를 퍼뜨리면서 우리의 탐욕을 조장했다. 그 설탕 묻힌 꽈배기 금융상품의 달콤한 감언이설은 우리의 이가 썩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만들었다. 결국 지금은 이를 송두리째 빼야 할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그는 그런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를 강력히 경고해 왔다. 지금이 결국 그런 시기다. 실물과 격리된 채 따로국밥으로 퉁퉁 불어터진 금융 파생상품과 영미식 신자유주의 혹은 금융자본주의가 불러온 파국. 그가 인식하고 있는 현실은 무척 비관적이다. 최근 인터넷매체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그는 “대공황보다 더 큰 위기”이며 “특히 파생상품이 많아서 끝을 짐작하기가 더 어렵고 위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사태가 좀 더 심각해져야 근본적 개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불온(!)한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저자답다. 개발도상국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흡혈귀 노릇을 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악행을 고발(?)한 그의 책은 대한민국 국방부에 의해 낙인이 찍혔다. 불온서적 꽝. 지나가던 개가 콧방귀를 꼈단다. 믿거나말거나. 덕분에 불온서적으로 지정됐던 책들이 더 잘 팔리는 현상을 낳는 긍정적 효과를 거두긴 했지만 말이다. 항간에는 국방부가 출판업계의 불황을 걱정한 나머지, 그런 노이즈 마케팅을 펼쳤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더불어 불온서적의 저자인 불온교수 장하준 교수도, 되레 지금-여기의 잘 나가는 ‘상품’이 됐다. 경제공황으로 심적 공황을 맞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되묻기 시작했다. 주류 경제체제인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파국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저발전의 원인을 문화적 비합리성이나 게으름 등에서 찾아 저들의 경제․사회적 지배를 공고히 한 서구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논박하는 장 교수의 얘기도 마침 먹혔다. 자본주의를 넘기 위한, 대안을 발견하기 위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조금씩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불온교수 장 교수는 현 정부가 많은 문제를 품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시장을 통제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통한 국가의 개입 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가 시장의 ‘심판’이자, 혼자 튀려는 시장을 통제하는 ‘컨트롤 타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말마따나, “천사처럼 행동하는 정부는 없”지만,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고 요구하며 행동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파국의 추가 진행을 막기 위한 방법도 그는 제시한다. 민주주의가 허용한 한도 내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운동을 하는 것. 블로그에 글을 쓰든, 선거를 통하든, 작은 힘을 하나둘 모아서 사회를 개선시키자고. 불가능한 소리라도 자꾸 요구하자고.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신자유주의에 역습을 가해야 한다. 학생식당의 밥값 인상에 반대해 데모를 펼쳐 결국 밥값을 내리게 한 가난뱅이의 ‘역습’마냥, 신자유주의에 똥침이라도 날리기 위해 우리에겐 지금 연대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복. 어째, 듣기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가.

그리하여, 지난 14일 서울 홍대 민들레영토.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은 11인의 독자들이 소담하게 그와 마주 앉았다. 장 교수를 향한 지상파 방송3사의 인터뷰 구애를 이기고 장 교수를 차지한 운 좋은 독자들. 유병선 경향신문 논설위원이 사회를 보고, 독자들의 질문에 이은 장 교수의 답변으로 진행된 화기애애했던 현장을 중계한다. 내 생각엔, 이건 1박2일의 코너가 마련됐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건 앞으로 읽는 여러분의 몫이다. 요구하라, 그러면 실행에 옮겨질 것이다.



Q. 책에서 실물경제를 강조해서 좋았습니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보고 싶은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요.

장 교수 : 사실 방법론적으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생물학과에 가보면 생물체 이해를 위해 DNA를 분석하거나 아프리카 고릴라 옆에서 지켜보기도 하죠. 어떤 이는 동물행태를 수학모델로 만드는 사람도 있고, 여러 방법을 써서 생명체를 연구합니다. 왜냐면 생명체는 복잡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경제도 엄청 복잡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방법이 공존해야 합니다. 제가 문제 삼는 것은 주류경제학자들이 우리 식으로 안하면 경제학이 아니다, 혹은 저급하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만 있어야 된다고 생각진 않습니다. 복잡한 현상을 이해해야 하니까요. 다른 접근 방법도 필요하고 어떤 이론이 주류가 돼야 한다고 생각진 않습니다. 핵심 신고전파경제학도 신자유주의로 흘러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걸 이용해서도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이론을 뽑아낼 수도 있습니다.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가 대표적이죠. 모든 학파에는 배울게 있습니다.

책에서 실물경제를 강조한 것이 좋았다고 해서 감사한데, (웃음) 금융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금융이 없었으면 자본주의도 없었어요. 금융이 필요하되, 실물에서 자꾸 떨어져 나가니까 문제라는 겁니다.

외환시장이 제일 좋은 예죠. 전 세계적으로 외환거래를 볼까요. 무역이나 해외실물투자를 위한 돈과 세계 외환거래량을 비교하면 1대100입니다. 1년에 3일하면 (외환) 실물 수요는 충족되는 거죠. 나머지 362일은 외환거래를 위한 외환거래입니다. 투기거래라고 봐도 좋고요. 그 돈이 몰려다니면서 우리와 같이 기축통화도 없는 나라에서 환율 널뛰기 등과 같은 폐해를 일으키는 거죠. 그래서 저는 금융을 실물과 더 근접시켜야 된다고 주장하는 거죠.

Q. 지금 전세계적으로 빈익빈부익부 심해지고 우리나라는 양극화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선진국도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 원인이 신자유주의 때문일까요, 다른 원인이 있을까요.

장 교수: 그 문제가 전세계적으로 심각합니다. 예외적으로 룰라대통령 들어서면서 빈부격차가 개선된 브라질 같은 국가들이 있긴 해요. 하지만 대부분 국가는 악화됐습니다. 그것이 꼭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한 게 신자유주의입니다. 1950년대를 보면 최고경영자와 일반노동자 월급 차가 30대1이나 40대1이었는데 지금은 스톡옵션이 아니면 300대1이나 400대1까지 차이가 나요. 스톡옵션을 포함시키면 1000대1까지도 갑니다. 이건 상층부로의 소득재분배를 위한 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88만원세대니 비정규직이 문제인데, 유럽에서도 100유로세대가 있지만 우리만큼 문제가 안 되는 게 일단 비정규직 비율이 우리만큼 높지 않습니다. 또 복지제도가 잘 돼 있어 비정규직이라도 기본생활이 보장됩니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이 겪는 고통이 상대가 안 된다는 거죠. 제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될 수 있으면 비정규직 안 쓰고 고용안정을 시켜줘야 합니다. 그게 불가능하면 복지국가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차원의 고용안정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유럽식의 복지국가를 만들어서 기본생활이 보장되게 해야 합니다.

국민들도 그래야만 진취적인 선택을 할 수가 있어요. 지난 10여 년 동안 의사, 변호사가 엄청난 인기직종이 됐습니다. 그전에도 인기였지만 외환위기 전까지는 지금만큼은 아니었어요. 경제학 상식으로 이해 안 가는 게 의사, 변호사가 늘어서 상대보수가 떨어졌는데도 되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고용이 너무 불안하다보니 그래요.

부모들도 공대나 과학자 같은 것 말고 자격증 따서 의사가 돼서 안정된 삶을 살라고 요구합니다. 개인적으로 2번이나 수술을 통해 살아나서 의사는 존경하고 고마운 직업이지만, 어느 나라도 70~80%가 의사가 적성인 국가는 없습니다. 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있는 거죠. 신자유주의에 의한 소득불균형이나 삶의 불안감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Q. 한국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부가 큰 권력을 가진 한편, 거기서 폐해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보면 고용안정이나 양극화 해소를 위해 국가에게 권력 주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신자유주의가 잘못됐다면 다른 대안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장 교수 : 저는 고등학교 1학년2학기까지 한 대통령 밑에서 살았어요. (웃음) 요즘 젊은 세대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이겠지만, 대학 때는 사복전경과 같은 장소에서 도시락도 먹고 그랬어요. 그렇게 살아서 독재에 대해 우려도 이해합니다. 지금 정부는 형식상으로는 민주화된 정부지만 안으로는 아니다보니, 정부에 그런 권력을 주는 게 옳으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결국 장기적으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건 정부밖에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그걸 싫어하죠. 그들이 전문가 운운하는 것도 국민들 얘기를 듣기 싫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가 묘한 게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반민주적인 게 많다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를 통한 국가 개입밖에 없다고 봐요.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규제 없이는 시장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방향 자체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그랬는데, 그러려면 왜 대통령을 한 거예요? 우리는 반대로 불행한 정치적 역사 때문에 개입과 독재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걱정은 이해하지만 너무 그렇게 생각하면 반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

Q. 중국과 러시아가 발전과정에서 처음엔 석탄 등을 많이 써서 지구온난화가 확대된 것 같은데요, 아프리카가 러시아 모델 등을 따라간다면 전지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장 교수 :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합니다. 아마 지금까지의 기술패러다임으로 온 세계가 작동되면 지구 환경이 견디질 못하겠죠. 대기 중 온실가스는 추산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65~85%가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비롯된 건데, 그래놓고선 개발도상국의 산업화를 제한하면 문제가 되죠.

예를 들면, ‘동네의 식량공급이 제한돼 있고 남은 게 없으니 먹지마라’, 후진국들한테는 그렇게 들리죠. 그걸 공평하게 하려면 선진국이 후진국에게 돈을 주던지, 친환경기술을 싼 값에 공급해주던지, 친환경기술을 촉진하고 후진국 환경에 맞는 기술을 만들어주던지 해야죠. 그런데 사실 선진국들, 그런 거 안 하거든요. 그러면서 산업화 말라고 하면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부당하게 느껴지는 거죠.

또 후진국 입장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게 친환경기술 개발할 능력이 없다는 거죠. 선진국들이 역사적 책임을 받아들이고 행동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정말 (지구온난화)문제가 심각해지면, 강제력으로 후진국의 산업화를 방해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쪽으로 가면 안 되겠죠.

지금 당장은 중국을 제외하고는 인도도 산업화 정도가 낮아서 그런 나라들이 산업화를 한다고 지구환경에 아주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겁니다. 그런데 20~30년 후면 그런 나라들도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런 때가 오기 전에 시스템을 만들고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제가 환경문제 전공은 아니라서 어디까지 얼마만큼 해야 한다 말은 못하겠습니다.


Q. 미국에서 이번에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관료들은 올드보이들이 귀환했습니다. 미국 행정부 인선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지요. 또 개도국한테는 유치산업이 유리하고, 선진국에겐 자유무역이 유리하다면, 그 선이 어느 정도에서 정의될 수 있는지요.


장 교수 : 폴 볼커(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인)는 레이건 시절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위원을 하면서 통화주의를 앞장서서 했던 사람이고, 로렌스 서머스(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는 미 재무부 차관하면서 IMF때 우리에게 자본시장을 개방하라고 윽박지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비서실장인 람 이메뉴엘은 공식적으로 월가 헌금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모아놓고 (금융시스템을) 고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요. 딘 베이커(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소장)라는 사람은 그걸 보면서 “오사마 빈 라덴을 데려다가 테러를 뿌리 뽑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어요.


그 사람들도 한심한 사람들이 아니라 예전과 똑같이 하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한쪽으로 쏠려 있는 사람들이라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기본적으로 회의가 들어요. 오바마는 원래 좌파도 아니지만 (정부에) 데려다 놓은 사람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집니다. 월가 이해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라. 상황이 (지금과) 많이 바뀌어서 그 사람들이 나가고 스티글리츠 교수와 같은 사람이나 다른 사람으로 바뀌기 전에는 기대하기 힘들 겁니다.

유치산업이 언제까지 유효한 거냐. 사실 이건 선진국에도 나라에 따라서는 유치산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뒤늦게 특정산업을 발전시키려는 경우에 말이죠. 가령, 유럽은 에어버스를 만들 때 엄청 보조해줬어요. 지금은 에어버스가 보잉을 뛰어넘는 회사가 됐지만, 당시 유럽 입장에서는 항공이 유치산업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죠.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디에 속하는지 보면, 국민소득, 제조업 생산성 등을 미국에 비교하면 40~50%정도 되는 나라에요. 그런 나라 같으면 아직 (유치산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수준이 70~80% 가면 그땐 개방해서 자극을 주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는 거고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유치산업 보호를 포기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Q. 우리 경제 현실을 보면 시장 안전판 역할을 할 공공적 성격의 금융기관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대한 견해와 방향을 듣고 싶습니다.

장 교수 : 우리나라 산업은행은 영어로 하면, 개발은행(Development Bank) 입니다. 상업은행들은 길게 꿔주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단기금융을 주로 하죠. 외국에서도 개발은행 중에 산업은행은 잘 한 경우로 평가하고 있어요. 중화학공업시대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고요. 그런 산업은행이 투자은행(IB)을 해야 한다고 요즘 얘기하는데, 걱정하는 건 IB는 산업은행이 원래 해왔던 것, 미국 IB들이 19세기말에 했던 기능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IB는 레버리지 높여서 금융을 위한 금융을 하는 곳인데, 저는 (산업은행이) 그 모델을 따르면 안 된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것을 뛰어서 민영화하는 게 능사냐는 거죠. 제가 산업은행 민영화 법안을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장기융자는 누가 할 것인지 모르겠네요. 그나마 있던 중소기업은행은 ‘중소’를 빼고 기업은행으로 만들고, 산업은행을 투기적 IB로 만들겠다니. 저는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할 기능이 뭔지, 옛날에 잘 한 게 뭔지 비춰보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과거 ‘재벌과 대타협해서 공생하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가령 지금의 삼성은, 사회적으로도 지배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당근과 채찍을 써야할까요.

장 교수 : 2003~2004년인가 SK소버린 사태 때, 재벌과 사회적 대타협하는 것을 얘기했어요. 도덕적 당위론적 차원이 아니라 현실론적으로 가능한 방법 중 전국민에게 좋은 방법을 고민하다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2005~2006년 한겨레에 기고하던 시기인데,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관련해 칼럼을 썼어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댓글에 이런 글이 있었죠. ‘외국에 오래 있어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삼성은 사카린 밀수를 한...’ 2003년부터 거르지 않고 언론에 기고를 했지만 독자댓글에 반응한적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했어요. (웃음)

그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세상에 깨끗한 자본이란 없습니다. 서양 자본들은 식민지를 착취해서 돈을 모은 거고 온갖 부정을 다 저질렀습니다. 카네기도 사설탐정 총으로 노동자들을 쏴 죽였어요. 그렇게 따지자면 차라리 사회주의 혁명을 하는 게 낫습니다. 저는 동조하지는 않지만, 일관성이라도 있지 않습니까. 소액주주 운동도 훌륭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소액주주 운동하는 분들이 얼마나 됩니까. 그래서 현실 가능한 방법 중에 뭐가 제일 좋겠냐고 생각하다보니 그런 주장을 내놨죠.

하지만 그것도 지금은 맥락이 바뀌고 있습니다. 자통법(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재벌들도 금융자본으로 변신하려고 꾀하고 있어요. 당시는 그게 아니었거든요. 당시의 맥락을 보면 법을 바꿔서 자본들한테 다른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는 거였죠. 복지가 될 수도 있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올바른 행동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얘길 한 거죠. 재벌을 하루아침에 없앨 수도 없고, 이걸 이용해야 하는데, 제 가치관으로는 복지국가 받아내는 게 맞다고 본 겁니다.
 



Q. 국가재정이 악화되는데 감세가 바람직한지, 1% 특권층한테 당신네들 혼자 성공한 게 아닌데 그것을 계속 강화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각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사다리 걷어차기’처럼, 우리도 자국 이익 때문에 걷어차고 차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장 교수 : 정부는 부유층 감세 등을 통해 지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본다면 경제위기 상황에서 수요를 부양하는 것이 필요하니까 정부재정 적자를 확대하는 게 맞을 수 있어요. 이를 위해 세금을 깎아주거나 지출 늘리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세금을 깎아주기보다는 지출을 늘려야 합니다. 경제규모에 비해 복지지출이 너무 형편없습니다. 국내총생산(GDP)대비 복지지출이 높게 봐도 9%가 안 되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 23%보다 낮은 것은 물론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적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보다 낮아요. 가난한 사람들의 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이 정부가 감세하겠다는 것은, 부자들한테 돈을 벌 수 있는 인센티브 더 줘야 부를 창출해서 모든 사람이 잘 살게 할 거라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경제성장이 잘 된 국가는 하나도 없어요. 1978년 중국처럼 지나친 평등주의를 풀어줘서 잘 된 적은 있지만, 더 불평등하게 만들어서 잘 된 적 없습니다.

부자도 혼자 잘 나서 성공한 것도 아니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기가 진 빚이 뭔가 생각하면 무조건 세금을 덜 내겠다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겠죠? 방향을 잘 잡아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감세하겠다고 하는 건, 이런 비유를 들 수 있겠습니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옆집의 잘 사는 살찐 사람이 다이어트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는 것과 같아요.


우리나라도 사다리는 이미 차기 시작했습니다. 선진국들만큼 공격적이지 않지만 WTO가면 선진국 편에 서서 얘기합니다. 또 우리도 선진국의 해적판을 보고 자랐는데, 지금 중국, 베트남에게 우리 것을 베낀다고 뭐라고 그러죠. 안 그랬으면 하는 게, 역사적으로 한국의 독특한 위치 때문이에요.

지금 선진국들은 동아시아에 비해 경제성장을 느리게 해서 예전에 자기네들 국가가 가난했을 때,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지적재산권 도용하면서 성장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일본도 그 세대는 이미 지나갔고 대만이나 싱가포르는 국제무대에서 정치적으로 목소리나 역할을 낼 수 없는 나라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라가 유일하게 한국인데, 한국이 그걸 안 끊으면 누가 끊겠어요.


Q. 책 마무리를 희망적으로 쓰셨습니다. 슈퍼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덕성도 다른 상품처럼 가격만 맞으면 사고팔 수 있고, 도덕적 의무도 사고팔 수 있는데, 너무 낙관적으로 쓰신 것은 아닌지요.

장 교수 : 학생들한테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20세기 초 사상가인 그람시는 이런 말을 했죠. 이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 현실은 냉혹히 판단하되,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조금씩이라도 발전합니다. 노예, 여성투표권 등 옛날에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이뤄졌어요.

사실 금융위기가 일어났는데도 덮고 넘어가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꾸기는 힘들지만 당장 안 되면 아이들 세대에서라도 좋아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현실을 몰라서 그러는 것보다는, 한 분이라도 (얘기를) 들어 주신다면 그런 분들이 모여서 사회가 좋아지고 바뀌지 않을까요. 



Q. 지금 정부는 비전도 없고 신자유주의를 가속화하려고 하는데, 이를 막으려면 시민들의 정치적 행동 밖에 없는 것인지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할 수 없다면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요. 

장 교수 : 민주주의에서 정부가 잘 못하면 국민의 책임이죠. (웃음) 어려운 문제입니다. MB를 찍은 많은 분들이 신자유주의 강화를 위해 그렇게 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죠. 하지만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걸 계속 알려야 합니다. 보궐선거나 지자체 선거를 통해 의사를 표현하고 주변을 설득해야 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 김수행 교수님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많은 이야길 나눴습니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각자 운동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글 쓰고 강의하는 것이 사회적 의무라고 생각하고요. 다른 자리에 있는 분들은 다른 형태로 할 수 있겠죠. 언론사에 충고나 비난을 할 수도 있고,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 다 같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습니다. 블로그를 통해서건, 선거를 통해서건, 의사를 표시해야죠. 개인의 힘은 작지만, 그것이 모여서 전체의 힘이 됩니다. 서 있는 자리가 각자 다르지만 작은 힘이라도 하나둘 같이 모여야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습니다.

Q. 옛 말에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요즘 금융위기를 보면 돈으로 흥한 자, 돈으로 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의 위기는 모두에게 조금씩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유동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금융이 공익성을 방기하고 수익만 추구하는 탐욕을 드러낸 거죠. 이번 위기의 요인과 전개를 어떻게 보시며,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장 교수 : ‘돈으로 흥한 자, 돈으로 망한다’는 말이 사실 맞는 말인데, 현실은 그렇게 안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국민들이 세금을 내서 메워주고 있거든요. (웃음) 실물과 괴리된 금융을 만들어서 이 지경까지 온 겁니다. 유동성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규제를 완화해서 주고, 만든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을 규제당국이나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런 파생상품들이 없어지고 소비자들도 그런 걸 안 써야 합니다.

선진국에서 의약특허 논쟁이 벌어졌을 때, 한 큰 제약회사 임원이 신문에 기고를 해서 ‘왜 우리가 아프리카 문제를 해결해야 하냐’고 적었어요. 그러나 저는 (그 회사가) 그런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기업체보다 사회적 책무가 더 크니까 규제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IB나 헤지펀드는 사실상 은행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규제를 더 받는 게 맞습니다. 사회적 책무를 봐서도.

어쨌든 천사처럼 행동하는 정부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고민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 낙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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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 101주년.

글쎄, 사실은 축하할 날인지는 모르겠다.
여성의 권리와 지위가 충분히 보장되고 향상됐다면,
진즉에 없어졌어야 할 날이 아닌가 싶어서.
그만큼 이 세계의 여성들은 여전히 억압받고 불익을 받고 있다는 것 아니겠나.

멀리 볼 것도 없다.
지금-여기의 현실만 봐도 여성들이 처한 상황은 '악'소리가 난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61%에 불과하고,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이다.
지난 1월 남성 취업자는 1만9000명 줄었으나,
여성 취업자는 8만4000명이 줄었다.(통계청)
(☞ "일하는 아줌마·할머니 '악' 소리 낼 힘도 없어요"
[3·8 여성의날] 구조 조정·임금 삭감 1순위…여성 노동자의 비애
)

지금의 공황이 빌미다.
사정없이 칼날을 내치는 수컷들의 비겁함은, 아무래도 역사적 전통인가.
마초노가다 출신 '박쥐(주. 거꾸로 읽을 것)'는 한결 더한 놈이다.
여성 인권이나 사회 참여는 여느 부문에서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마냥,
한참을 돌려놓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뒤떨어진 부분인데 더욱 매몰차다.
약자를 긍휼히 여기고 돌보는 것이 진정한 보수주의적 색채이거늘,
이 텐버드들은 무슨 '보수보수' 따라지 합창만 늘어놓지, 꼴통수구수컷들이다.
뇌 구조를 전면'보수(補修. 고쳐 수리함)'해야만 하는 보수주의자들이긴 허지.

어쩌다가, '본투비마초'가 세상을 움직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연재했었다.
별 대수롭지 않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한마디로 '놀랐다'.
그 여성들이 지닌 힘과 능력부터,
그것을 억눌렀던 시대나 사회(정확하게는 남자)의 흉포함까지.
나는 수컷들이 얼기설기 짜놓은 이 세상이,
얼마나 허구인지, 부시 같은지, 박쥐 같은지, 좀더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이 연재를 통해 나는, 빈말이 아니라,
가능하면 여성(여성의 탈만 쓴 '바끄네' 같은 여자수컷마초들 말고)들이 세상에 좀더 큰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고 확신하게 됐다.
이 모든 전쟁과 분쟁, 피는 온통 수컷들에게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할리우드 배우에서 지금은 사회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미아 패로'의 이말.

 

그리하여,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수컷이라면, 공감해야 할 이말.


남자는 맞아야 한다.
부제는, 성차별과 편견에 대한 수컷 반성기

아는 분이 낸 책이다.
양성평등 카툰모음집.
많이 사 주시라.
아, 그런데 맞아도 정신 차릴까.
맞아서 정신이라도 차리는 수컷은 그나마 가능성이 있으니,
여성들이여, 거둬주시라.

그리고 이 엄혹한 시대.
여성노동자가 일궈논 '여성의 날'.
여성들이 다시 들고 일어설 때,
나는 당신들 편에 서서 돌을 던지겠다고 약속한다.
 

☞ '여성의 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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