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ㅣ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라한 장풍 대작전!' 이 영화는 나온지 한참 된 영화이지만, 최근에서야 보게 되었다. 유치할 것 같아서 보지 않았는데, 보고나서는 나름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여러 달인들의 모습이 나온다. 머리에 한 가득 짐을 이고 가는 아주머니, 리어카 가득 짐을 싣고도 힘들이지 않고 가는 아저씨 등이 스쳐간다. 우리가 생각하는 달인이란 그런 사람이지 않은가? 공부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일만 꾸준히 하다보니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 이런 편견을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예는 뭐니뭐니해도 개그콘서트의 '달인을 만나다'라는 꼭지일 것이다. 김병만은 여러 달인 행세를 하며 나온다. 그가 진정한 달인이 아님이 곧 폭로되긴 하지만, 여기에 그려지는 달인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달인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런 편견을 더욱 극단적으로 희화화시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달인은 떳떳하게 말한다. "~ 해봤어요?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아?" 쩝~~ 근데 난 말을 해야겠다.

달인의 모습??
그런 달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 깨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사실 이 책은 그린비 출판사에서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라는 기획으로 나온 6번째 나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리즈를 꾸준히 읽어온 사람이라면 그런 '달인'을 생각하며 이 책을 읽진 않을거다. 하지만 문제는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저자인 고미숙씨는 이 기획의 첫 번째 작품인 '호모 쿵푸스'에서부터 달인은 그런 게 아니라 공부를 통해 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더욱이 가장 본능적이며 원초적인 '사랑'이란 것에 대해 말하는 이번 책에선 더욱 그 어조가 절실하다. 배우지 않아도 사랑은 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사랑은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굳이 사랑을 배우려 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운명처럼 이루어진 사랑에 사람들은 괴로워하며 아파한다.사귀는 중에도, 헤어지고나서도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긴 매한가지다. 그러면서도 늘 '다음엔 예쁜 사랑을 할 수 있을거야'라는 환상만을 가지고 산다. 그런 아이러니한 현실을 보며 저자는 말한다. '앎의 크기가 내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앎의 열정이 없는 존재가 운명적 사랑을 한다는 건 우주적 이치상 불가능하다. 주류적 척도로부터 벗어나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열정, 자본과 권력의 외부를 향해 과감하게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내공. 공부는 무엇보다 이 열정과 내공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이런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쿵푸(?)다. 쿵푸를 해야 사랑이 도래하고, 그 때 사랑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운명을 건 도약'이 된다(18p)' 그렇다. 나의 앎의 크기가 사랑의 크기를 결정하며, 나 자신의 크기도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조차 배워야 한다. 배워야만 운명을 건 도약을 할 수 있으니까. 무조건 사랑만을 해서는 '사랑과 연애의 달인인 호모 에로스'가 될 수 없다. 그건 자신의 애정결핍만을 드러낼 뿐이니까. 그런 조바심을 버리고 사랑이란 본질에 대해, 그리고 현실이 유포한 거짓된 사랑에 대해 배우고 익혀 진정한 사랑, 나만의 가치를 지닌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연애개론서나, 지침서가 아니다. 메뉴얼처럼 어느 하나 하나의 행동을 통제하고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오히려 이 책에선 그런 류의 책들을 아주 극렬히 비판한다. 어떻게 타인을 정해진 메뉴얼에 따라 오늘은 손을 잡고 1주일 뒤엔 입맞춤을 하는 등등으로 정형화할 수 있겠는가~ 그건 사랑이라기보다 형식화된 인간의 한 단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요긴한 어떤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말고 다른 책을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위의 내용에도 나와 있다시피, 주류적 척도(국가, 화폐, 외모지상주의, 성적지상주의 등)에서 벗어나 어떤 인연들을 만들고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고민을 다룬 책이다. 고로 이 책을 보는 내내 내가 가진 생각들이 허물어지고 전복되는 듯한 혼란과 아픔이 찾아올지도 모른다.(아니 꼭 그와 같은 찌릿찌릿한 충격을 겪어 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아픔들과 고민들을 견뎌내며 고민할 수 있다면, 우린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변화될 것이며 늘 맘 속으로 그리듯이 '사랑과 연애의 달인'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운명을 건 도약' 그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바뀜으로 다른 인연의 장에 들어 가는 것이니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사랑은 흔히 대상을 선택하는 문제처럼 생각된다. 그래서 아직 솔로인 사람들은 흔히 "아직 내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라는 말로 자신이 혼자임을 변호하기도 하고, 헤어진 연인들도 "그 사람은 이렇고 저런 점이 다 맘에 들지 않아서 진즉 헤어지려고 했어"라고 말하곤 한다. 모든 문제를 대상으로 환원하면 사태는 단순해진다. 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지 다른 사람을 선택한다면 그런 문제는 전혀 없을 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으니까. 그렇게 미봉하듯 사태를 처리하면 다음에도 그와 같은 상황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는 나 자신인 거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그와 같은 악순환에서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다. 모든 사랑의 문제를 대상으로 환원함으로 내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았던 내 자신이 문제일 뿐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한마디로 대상만 잘 고르면 만사형통이라 여기는 것이다. 사랑에 실패한 건 대상을 잘못 골랐기 때문이고, 아직까지 사랑을 못해 본 건 '이상형'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 상식적인 말이지만, 사랑 따로 대상 따로 나 따로가 아니라, 나와 사랑과 대상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 사랑과 대상과나 사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 나아가 사랑하는 대상,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15p)"
사랑의 문제는 나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고, 그걸 어떻게 외부로 표출하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에 대한 앎의 크기가 세상과 타자의 크기를 규정하며, 당연히 그런 크기에 따라 만나게 되는 타인이 결정되는 것이다. 기존의 관념들에 휩싸인 사람들은 사람을 만날 때 그런 잣대로 만나게 된다. 자신의 학벌이 높으면 그런 학벌을 가진 사람만을 만나려 할 것이며, 돈이 많으면 돈이란 잣대로 사람을 만나려 할 것이다. 거기엔 학벌과 화폐만이 인간관계의 끈이 될 뿐, 인간성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와 같은 척도가 관계를 망치는 해악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 자체의 본질은 멀리하고 수단으로만 상대를 대하니 말이다. 바로 인간을 수단화하지 않고 주체적인 존재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런 깨어있는 존재가 나누는 사랑이 어찌 예전에 나누던 사랑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존재를 건 도약'이라고 할만 하다. 주류적 가치에 포섭되지 않고 내가 내 자신의 주체가 되어 나의 길을 만들어가고 그 길 위에서 맘껏 사랑과 열정을 나누는 '호모 에로스'가 되는 것이니까. 이 책에는 유독 '장길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들이야 말로 주류적 가치를 넘어선 사랑을 했던 '사랑과 연애의 달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그들이 그렇게까지 주목 받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보거나, 장길산이란 소설을 읽어보시길^^
저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시절인연'으로 보고 있다. 봄이 오면 겨울은 가듯 시절인연이 오면 당연히 그 사람과의 만남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시절인연이 가면 둘은 당연히 헤어질 수밖에 없는 거란다. "'실연은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랑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실패란 없으며, 사랑이 끝난 다음엔 실패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따져 봐도, 사랑과 실패라는 개념은 공존불가능하다. 사랑은 대상이 나를 선택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어 가는 시공간적 인연의 장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연은 없다! 생명이 그 자체로 기쁨인 것처럼.(127p)" 죽고 난 뒤엔 내 존재 자체가 없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도 없듯(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실연 자체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이 이제 막 실연의 아픔을 겪은 사람에겐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도 실연당했을 땐, 나만이 가장 슬픈 사람인양 혼자 아파하고 혼자 죽네 사네 했으니까.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런 관계들을 통해 조금씩 새롭게 변해갔던 내 모습과, 시공간적 인연들과의 얽매임이 있었던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누군가와 사귀고 헤어짐으로 난 전혀 다른 인연의 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실연이란 현실을 통해 느껴야 할 건, '날 배신했다', '헤어졌다'라는 자체가 아니라, 내 자신이 어떻게 달라졌고 무엇이 한계였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둘 사이의 시절인연을 음미해보는 것이다.그렇게 수많은 변곡점을 지나면서 공부하고 공부하다보면 어느 순간 또다른 시절인연을 만나게 되는 법이다. "일단 인연이 교차하기 시작하면, 수많은 변곡점들이 생기게 되면서 그러다보면 시절인연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모든 게 내 맘과 같지 않아~'라고 자포자기했거나, 극도로 의기소침해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덩달아 텔레비젼과 세상이 유포한 유치한 사랑놀음 말고 진정한 사랑의 가치에 대해 탐구해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제발 다른 걸 하지 말고 이 책만 파고 들기를 희망한다.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니까. 이 책을 곱씹어 '호모에로스'가 될 수 있다면, 그대와 함께 그대 곁에 있는 사람들은 좀더 행복해질 것이고 이 세상은 조금 더 환해질 것이다. 그런 사랑과 애정의 진정한 혁명이 이 책을 계기로 각 개개인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간절히 원하면 당연히 이루어진다. 천 리 밖의 공간, 사회적 통념, 시간의 벽, 어떤 난관도 간단히 뛰어넘을 수 있다. "당신은 어차피 저를 좋아하실 겁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미리 좋아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작가 이외수는 지금의 부인을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프로포즈했다고 한다. 당시 부인은 '미스 강원'이었고, 자신은 빈털터리 거지에 가까웠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 사랑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걸 수 있가고 확신했기에 가능한 일이다(186p)"
달인은 어느 순간 갑자기 되는 게 아니다. 내 안에 내공이 차곡차곡 쌓여 그게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존재와 세상에 대한 비젼을 품고 맘껏 공부의 향연으로 풍덩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나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을 포용하기 위해 나아가며, 그렇게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워 당당히 무쏘의 뿔처럼 홀로 나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호모 에로스가 되어 봤어? 되어 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