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인리히 뵐과 쌍벽을 이루는 전후 독일 현대 문학의 거장 권터 그라스는 좌파적인 작품으로 인해 노벨문학상 수상이 늦어졌던 대표적인 작가중의 하나로 새삼 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당시에 크게 반향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매번 제일순위에 위치했던 작가였습니다. 워낙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쓰디쓴 (사실은 지금 시간이 훌쩍흘러서 보게 되면 그의 지적 하나 하나가 틀리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병들어 가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통열하게 비판하고 있고, 그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있지만요) 지적들로 인해 알러지반응 같은 불유쾌한 감정을 던져주고 있었지만 퀀터 그라스의 사유는 어찌보면 정말 정확한 지적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죠. 무엇보다 근현대 독일이라는 나라가 세계사에 던졌던 거대한 파장에 대해서 통열한 자기반성과 비판으로 역사적 책임에서 회피하지 않는 모습은 비단 작가로서의 소명뿐만 아니라 일개 소시민으로서의 최소한의 염치를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양철북> 이라는 작품은 세계에 권터 그라스라는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면서 전후 독일문학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하는 작품으로 오랜 세월동안 세계 독자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작품으로 강렬한 언어 구사와 암시적인 이미지, 반어와 역설 그리고 풍자로 가득한 서사적인 표현 기법으로 독자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죠. 이에 반에 교회와 신성에 대한 모독 그리고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인해 또 다른 독자들에게는 격렬한 비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양극단의 평가로 인해서 더욱더 세계 문단에 주목받는 작품이자 작가로 기억되는 경우도 흔하지 않는데요. 작품을 바로보는 시각에서 전혀 다른 영향을 불러온다는 그 자체가 이번 작품이 갖고 있는 묘한 매력이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세인들에게 격한 반응을 불러왔다는 것은 이번 작품의 근간에 깔려 있는 사유에서 우리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할 것입니다.


          세살때 자기 스스로가 성장을 멈추었던 난쟁이 오스카라는 주인공의 시각으로 1899년부터 1954년까지의 독일 역사를 개괄하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현재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는 오스카의 회고를 기반으로 자신이 겪었던 독일의 현대사를 되돌아보는 형식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정신병원이라는 현재와 오스카 어머니의 탄생비화를 비롯한 과거의 회상속에 담겨져 있는 오스카 가족사를 통해서 당시 이데올로기의 아노미상태였던 독일과 파시즘과 나치즘으로 격변하는 독일의 실상을 풍자와 반어 그리고 역설에 가까운 서사들로 묘사하고 있어 다소 혼란스러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지만 작품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사유는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죠. 오스카라는 난쟁이는 귄터 그라스 자신의 현현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출생지나 부모의 직업등 여러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인물이자 당시를 살았던 독일시민을 대변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양철북> 이라는 작품은 그야말로 한마디로 제단할 수 없는 수 많은 역설과 반어 그리고 풍자 여기에 교회와 신성에 대한 모독 포로노그라피보다 더 외설적으로 서사되는 부분들...로 점철되어 있지만 내러티브 전반에 깔려있는 사유는 그야말로 아주 단순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작품으로 봐야할 듯 합니다. 정상적이지 못한 오스카라는 인물이 정상적이지 못했던 시대를 탐미하는듯 보이지만 한편으로 정상적이지 못하기에 어둡고 깊게 숨어져 있는 비정상적인 것들을 제대로 간파할 수 있다는 역설이라야 말로 이번 작품의 주된 모티브로 시대가 그러했으니 나 하나의 개인도 어쩔 수 없었다라는 자기 합리화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기도 하죠. 귄터 그라스는 자신의 현현인 오스카를 등장시켜 당시 독일을 지배했던 이데올로기에 철저한 자기반성과 각성 그리고 전후 독일에 불어 닥친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비판을 동시에 담고 있기도 하죠. 귄터 그라스는 자신이 직접 온 몸으로 겪었던 역동과 불운의 시대를 오스카를 비롯한 약간은 비정상적인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당시 독일사회가 앉고 있었던 체제의 결함과 사유들을 고스란히 전달해줌으로서 시대의 불운으로 돌릴 수 있는 시민들의 자기합리화에 메스를 가하고 있기도 합니다.


          작품 플롯이나 내러티브의 전개 여기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상황묘사등에서 귄터 그라스 특유의 필치를 엿볼 수 있고,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성애의 서사들이 그야말로 압권으로 다가오는 작품이죠. 밀란 쿤데라의 서사와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하면서 인간 본성의 관음성과 내면 깊숙히 봉인해 버린 성에 대한 야릇한 생각들을 살짝 끄집어 올리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와 신성에 대한 작가 나름의 사유들은 비록 종교인 입장에서야 모독수준으로 폄하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병원과 과거를 넘나드는 스트럭쳐가 다소 혼란을 주기도 하고, 오스카와 나라는 화자가 믹싱되어 가독성을 높여주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속에는 수 많은 사유의 표출들을 담고 있는 의미심장한 단어와 서사들로 넘쳐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 무엇보다 작품속의 반어와 역설 그리고 풍자가 표방하는 의미가 그로데스크하고 유머스럽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귄터 그라스의 메시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와 더불어 행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초 도매상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9
존 바스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포스터모더니즘의 대가 존 바스의 <연초 도매상> 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엔 아주 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모호한 입장이란 뜻은 본 작품의 장르를 우선 특정 지울 수 없고 (형식은 피카레스크 양식을 취하는 듯 보이지만) 내러티브를 떠받치고 있는 스토리의 전개 역시 독자들의 머리속을 모호함으로만 가득 채우고 있고, 여기에 실존의 역사와 가공된 역사가 뒤범벅이 되어 어느 것이 진짜 역사인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송두리채 앗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존 바스의 <키메라> 라는 작품에서 보왔듯이 작가는 이번에도 각종 실체적인 역사와 작품들의 패러디를 맛깔나게 끌어내면서도 이러한 패러디가 정말 패러디인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게 해 놓은 설정들이 수도 없이 작품속에 내재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혼란과 동시에 색다른 기쁨을 선사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요. 정말 작품의 후반부의 결말부분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스토리가 등장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전개되어지는에 대한 독자들의 의지마저 꺽어 버리죠. 그런데 작품을 읽는 내내 독자들의 내면속에 일종의 알 수 없는 바향타가 번쩍 거리스면서 대충의 내러티브를 이해하게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존 바스가 아니라면 써내려갈 수 없는 작품이라는 단언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작품의 키는 역사라는 객관적이고 팩트적인 기본 전제에 대한 의문과 부정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을 가지고 이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막상 작품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기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가정에 대한 실체를 강간당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자연스럽게 그런 부정이 정당하다는 강력한 자기 합리화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 존 바스가 추구하는 모티브에 홀라당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살아 가면서 변덕과 이해관계가 시키는 대로 우리의 과거를 어느 정도 조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모두가 지금 이 순간 빚어서 모양을 만들어야 하는 점토와 같다" 라는 사유가 대변하듯이 역사가 고스란히 팩트만을 담고 있지 않다는 논거가 바로 이번 작품의 키 워드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존 바스는 이를 대변하기라도 하듯이 포카혼타스와 관련된 『버지니아 통사』,『비밀 역사』,『개인 일기』등과 같은 역사물을 가공하여 마치 팩트의 역사가 어쩌면 가공된 역사라는 강한 의구심을 던져주고 있죠. 물론 문학작품이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자행되는 일련의 역사 이야기이지만 독자들에겐 상당한 설득력을 암시하고 있는 의미있는 이야기로 남기에 더욱 더 혼란을 가중시키기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마냥 역사의 가공에 대한 스토리와 이야기가 서술되었다면 이번 작품은 굉장히 따분하고 재미없는 그저 그런 패러디물로 전락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죠. 존 바스는 바로 여기에 또 다른 흥미거리를 첨부해서 작품의 눈높이를 사정없이 직하방으로 끌어 내리는 마법을 보여줍니다. 성적인(sewual) 첨가물의 플롯은 그야말로 이번 작품을 백미로 장식하고 있는 부분인데요. 다소 황망스럽고 유머러스하게 묘사되고 있지만 인간 본연의 성적인 욕망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을 결코 불쾌하게 만들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중 내내 쉴세없이 던져지는 성적인 묘사와 서사들은 마치 인간의 근원적인 목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갖게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성적인 첨가물과 역사의 가공이라는 극과 극의 플롯이 물과 기름과 같은 이질성을 띠지 않고 자연스럽게 혼합되어 내러티브를 아주 부더럽게 만들면서 작품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또 하나 눈여겨 봐야할 점이 있는데요. 바로 담배 (연초) 라는 농작물입니다. 당시 시대상을 비추어봤을때 담배는 일종의 제국주의를 대변하는 착취의 상징이었다고 볼 수 있는 데요. 담배라는 농작물을 통해 17세기 식민지 아메리카의 실상과 그로 인한 원주민들의 피해 여기에 영국본토에서 소외되었던 이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인물들) 의 또 다른 2차적인 피해등 아메리카 식민지 역사를 통찰하고 있는 대표적인 심벌리즘이기도 한데요. 작가는 바로 연초 도매상이라는 타이틀을 제시하면서 일련의 자기반성적인 역사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존 바스는 이러한 역사적 아픔을 마치 에브니저를 통해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면서 부각시키는 것 같이 서술되지만 한발 비켜서서 관망하는 모습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무슨 거대한 담론 (가해자와 피해자) 을 끌어 낼려고 하는 조직적인 의도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주인공인 에브니저 쿠크의 심성에서 간파할 수 있는데요. 거의 돈키호테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에브니저를 통해 이 무거운 담론들을 지고 가게하는 설정 자체에서 우리는 존 바스의 의도를 엿볼 수 있죠. 그렇다고 돈키호테의 현현을 보는 듯한 에브니저의 사고와 행동들이 막연하게 흥미위주의 가십거리로만 상징될 수 는 없다고 봐야합니다. 순수와 순진 그리고 지식 여기에 제3자적 역사관찰자의 시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의 패러다임이 녹아 있는 인물로 상징되기에 돈키호테만큼의 애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에브니저 쿠크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면면 역시 이질적이고 이분법적인 모토를 상징하는 인물들을 대거 등장시켜 그야말로 향연의 파티속으로 이끌고 있죠. 조안 토스트를 필두로 상당히 저속한 (당시 계급사회 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부류의 인물들의 등장과 옷매무새나 생김새의 묘사등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상당히 격이 떨어지는 계층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어휘나 용어는 굉장히 철학적이고 정치적이면서 세상을 통달한 면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상류계층 (니콜슨 총독이 대변하는) 이라할 수 있는 귀족들의 언어가 통속적이고 상스럽게 묘사되고 있는 반면 이들의 대화내용은 상당한 수준의 의미를 내포한 심오한 삶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한때 매춘부였으며 순회 포주 역활을 하는 메리 멍고모리의 인생관을 대변하는 일련의 서사들에서 이번 작품의 모토이기도 한 역사의 가공이라는 작가의 의도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정말 유니크하고 개성넘치는 등장인물들의 등장과 이 등장인물들의 제각각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거대한 프레임을 형성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이번 작품의 백미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을 가지고 있기에 완독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등장인물들 각각의 이야기와 세편의 역사적 문건에 대한 이야기까지 겹쳐서 줄거리의 맥락을 잡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 밝혀지는 내러티브의 정체를 느끼게 되는 일종의 쾌감은 가히 압도적이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린의 날개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들이라면 마음 설레게할 또 다른 작품이 선을 보였네요. 바로 <기린의 날개> 라는 작품인데요. 무엇보다 전작인 신참자』이후로 컴백한 가가 교이치로의 등장만으로도 그저 반가운 작품일 것입니다. 유가와교수와 더불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양대 산맥인 가가 교이치로는 유가와교수와는 사뭇 다른 케릭터로 사건의 중심에서 내러티브 전반을 끌어 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해왔기에 이번 작품에 기대를 거는 독자들이 많으리라 여기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형사가 하는 일이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자이고 그런 피해자를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이 또 다른 형사의 역활이다" 라고 가가형사는 전작인신참자』에서 사촌동생이자 동료인 마쓰미야 슈헤이에게 말하죠. 그리고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독자들은 절로 수긍하게 되면서 왜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내러티브로 작품을 집필했는지에 대해서 절로 느끼게 되죠. 해당 작품뿐만 아니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가형사의 엑기스만을 표현하는 독백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볼 수록 매력이 넘치는 케릭터로 독자들의 뇌리속에 기억되고 있죠. 사건 해결이 중심이 아닌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 본연의 심성과 그로 인해서 연관된 인물들 그리고 사회전반의 메시지와 부합되면서 가가 교이치로는 일종의 힐링 코치 같은 역활로 다가오죠. 한마디로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을 다 아우르죠.


          그래서 이번 작품의 관전 포인트는 뭐니 뭐니 해도 가가 교이치로의 귀환입니다. 사실 사건과 사건의 해결과정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지만 왠지 가가형사의 등장으로 인해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 되네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섭렵한 독자들이라면 알고 있듯이 가가 교이치로 일명 '가가형사' 는 유가와 미나부 교수(갈레레오 탐정) 와 더불어 사건 해결사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케릭터입니다. 가가와 유가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많은 작품속에서 사건 해결사로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역활을 수행하고 있는데요. 상당한 비중감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사건의 해결은 물론 그 사건과 연관관계에 있는 인간 본연의 심리상태 및 사회와 인간간의 관계성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의문점을 풀어주는 키역활을 하고 있죠. 마치 히가시노 게이고 자신의 분신을 등장시켜 작품을 끌어가는 역활을 부여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의 케릭터가 비슷한듯 하면서도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명철한 추리력과 그에 걸맞는 추진력에 있어서는 별반 차이가 없지만 가가형사의 경우 전직이 교사였던 만큼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떠나 상당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반면에 유가와교수의 경우 냉철한 과학도의 입장에서 사건을 정리하는 역활을 수행함으로써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케릭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해결사보다 가가형사나 유가와교수의 등장은 작품을 유독 기다리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팬층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독자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케릭터이죠. 그런데 말이죠. 히가시노 게이고는 근래 들어 이들 양대 케릭터에 대한 약간의 변화를 주고 있는 듯 한데요. 우선 유가와교수의 경우 전작인 『한여름의 방정식』에서 그 동안 보여왔던 까칠한 면모에서 상당히 진일보한 인간적인 면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신선한 흥미를 선사했죠. 그리고 여기에 이번 작품에서는 가가형사의 또다른 면모를 선보이면서 기존의 이미지 타파에 돌발구를 찾을려는 시도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여의고 3년이 지난시점에서 시작되는 스토리는 그 동안의 가가형사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 즉 유가와교수 빰칠정도의 까칠한 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가가형사 팬들에게는 다소 당황스러운 느낌마저 주는데요. 한편으로는 스토리의 전개만큼이나 가가형사의 행보가 주목받게끔 하는 역활을 하죠. 물론 그런 외향적인 변신 속에는 여전히 인간미 넘치는 전형적인 가가형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만 나름의 변신이 독자들에겐 흥미거리로 다가오고 내러티브속으로 한청 더 빨려들어가는 역활을 합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이러한 케릭터의 변화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사건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인 추리스릴러라는 대전제에 부합되는 일면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건의 중심에서 사건과 인간관의 관계를 풀어가는 해결사로써 정형화되고 고정된 가치관으로 일관하는 것보다 그 상황에 맞춰진 약간의 변화가 인간본연의 모습과 작품의 사유에 걸맞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일방적이고 초인간적인 히어로가 아닌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인간다운 케릭터의 민낯이 오히려 더 현실감이 있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듯 이번 작품은 가가형사의 재림과 맞물려 아주 단순할 것 같은 사건이 산재은폐, 경제 양극화, 하이에나같은 언론등 그로 인한 인간성 상실등의 스토리가 전개되면 될 수록 현대사회 전반이 가지고 있는 부조리와 부조화라는 복잡한 담론으로 옮겨 가면서 내러티브의 전개와 더불어 가가형사의 변신이 기가막히게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왠만한 독자라면 캐치했겠지만 그리고 이러지 않으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요. 여하튼 니혼바시 다리의 사건에서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분위기가 확 전환된다는 거죠. 그러한 전환의 중심에는 역시 가가형사의 예리한 추리와 그에 맞는 인간중심적인 사건해결의 모습이 단연 돋보이는 역활을 하고 있고요. 물론 스토리의 극적인 대 반전 역시 볼거리로 남게 되죠. "살인 사건이란 게 암세포와 같아서 일단 생겼다 하면 그 고통이 주위로 번진단 말이지. 범인이 잡히든 수사가 종결되든, 그 고통에 의한 침식을 막기가 어려워" 라는 가가형사의 독백처럼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건 이후 당사자와 그 주변인물들에게 사건이 미치는 영향과 그들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파 미스테리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는 달리 부차적인 설명이 필요없는 작가이죠. 이미 일본전역을 평정했고 국내에서도 미미여사라는 애칭과 더불어 많은 팬덤을 가지고 있는 유명 작가입니다. 기존 본격 추리소설 장르에 인간사회의 문제를 접목해서 세칭 사회파 미스테리라는 장르의 완성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하나 하나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심도깊은 담론들이 녹아나 있습니다. 일본 중세시대를 배경으로하는 시대추리에서부터 판타지요소가 가미된 작품 그리고 SF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재와 테마를 가지고 이처럼 맛깔나게 작품을 창작해내는 능력에 경의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문제 전반에 대한 독자들의 시각를 업그레이드시킨 장본인이라고 보여집니다. 무엇보다 타인과 끊임없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에게 대해서 미야베 미유키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회구성원들이 필히 한번쯤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할 근원적인 이유를 제시하고 있죠. 이번 작품 <이유> 역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심도깊은 담론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비록 발표된지 제법 많은 세월이 흘러지만 미야베 미유키가 작품속에서 표방하고자 하는 사유는 지금도 우리에겐 진행형이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고 함께 고민해야할 화두 이기도 합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유> 라는 작품으로 120회 나오키상을 만장일치로 수상하게 되었고 일본전역의 독자들에게 그녀 이름 석자를 공고히 다지는 계기가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유> 는 그동안 미야베 미유키의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도 상당히 유니크한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요. 우선 작품의 스트럭쳐 자체에서 부터 독특하죠. 르포르타주방식을 도입해서 무인칭의 시점으로 작품의 내러티브를 시종일관 끌어 간다는 것인데요. 그러다보니 상당히 드라이한 맛을 시종일관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부동산 버블이라는 경제 대재앙이 스며드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타워팰리스 같은 부의 상징인 반자루 센주기타 뉴시티 타워에서 발생한 일가족 4인 살인사건을 르포의 대상으로 출발하는 작품입니다. 작품의 주된 스토리 격인 과정은 르포형식을 기반으로 했기에 관련자들의 인터뷰가 전면에 부상하고 결말에 이르기까지 관계자들의 인터뷰가 내러티브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살해당한 4인의 인터뷰는 존재할 수 없지만 그를 제외한 거의 모든 관계인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는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좀 우린 이번작품의 또 다른 흥미로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흔히들 접하게되는 르포형식의 작품들이라고 해도 대게의 경우 주인공 1인칭의 시점이나 전지적 작가시점의 견해가 필연적으로 개입되어 작품의 교통정리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감정을 살짝 터치하게 마련인데요. 이번 작품속에서는 이러한 외부적인 간섭이나 감정의 증폭을 유도하는 관제시스템 같은 의도된 작가의 역활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시작해서 결말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관련인들의 인터뷰로 매조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은 혼란스럽고 번거스러운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부분도 틀림없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내용들에 대한 숙지와 기억 그리고 다시 앞에서 행했던 인터뷰의 복기등 작품이 중반부로 향하면서 이러한 반복적 학습은 더 심한 유혹을 가져 오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신의 한수를 볼 수 있죠. 이러한 대중없는듯한 마치 교차로에서 신호등이 고장한 차량과 사람이 한테 뒤엉킨듯한 인터뷰의 진행들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인지못하는 사이에 원할하게 교통정리가 되어간다는 점인데요. 물론 이런면이 없다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라고 할 수 도 없겠지만요. 하여튼 관련인들과의 인터뷰가 진행될 수록 그 속에 교묘하게 담겨져 있는 진실과 트릭들을 독자 스스로 찾게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또 하나의 신의 한수는 인터뷰를 하는 관련인들의 범주의 크기라는 점인데요. 르포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물론 각오 정도는 하고 있었지만 정말 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많은 관련인들이 등장하는 점에서 다소 당황스럽죠. 대게의 작품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야 정말 주연을 제외하면 손에 꼽을 정도로 갈무리 될 정도이고, 다른 르포형식의 작품들을 보아야도 얼추 그 범주가 그리 상상을 뛰어넘는 것은 아닌데 <이유> 의 경우 정말 엄청나다고 할 수 있는 관련인들이 등장합니다. 이름만 거론된 관련인이 무려 48명이 등장하고 그에 사건의 목격자, 가족과 지인, 지역주민, 학교친구, 회사동료등을 포함한다면 엄청난 수에 이르게 될정도로 방대한 인원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만 거론된 것이 아니라 실재로 이들이 인터뷰에 응대하고 그 기록을 남기면서 진행되는 이번 작품의 범주는 어마어마하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그러니까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인물들의 인터뷰를 세밀하게 음미해보면 바로 여기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신의 한 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거죠. 주연과 조연을 막론하고 인터뷰에 응대했던 영향력이 떨어질것만 같은 인물들의 심리묘사나 삶의 흔적들을 짧은 인터뷰내용만으로 독자들은 금방 캐치하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아 왜 이러한 인물들의 인터뷰가 등재하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터뷰의 내용들 만으로도 내러티브의 연결고리가 전혀 빈틈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죠. 참 이점이 이번 작품의 구조적인 백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죠. 르포라는 아주 드라이한 방식과 산만할 정도로 인터뷰에 응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왠지 객관적인 작품의 신뢰도를 높이면서 마치 팩트를 다루는듯한 뉘양스를 풍깁니다. 정말 사건을 충실히 다루는 본격추리장르의 원형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온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구조적인 틀이 하나씩 무차별적으로 그러니까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면서 독자들은 사건이라는 원형에서 거꾸로 그 내막을 들여다 보게하는 묘한 충동을 받게되고 그에 이끌려서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인물중심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거죠. 바로 이점에 이번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요. 미야베 미유키는 결국 작품의 스트럭쳐의 중심을 사건에서 인물중심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간과 사회의 관계성쪽으로 아무런 저항없이 끌어당기는 거죠.


          역시 이번 작품속에서도 미야베 미유키는 독자들에게 많은 담론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심화로 인한 계층 획일화의 고착, 흔히들 말하는 금수저, 흙수저의 논란에서부터 부동산버블로 인한 개인의 파산과 신용불량자의 양산 그리고 인한 가족의 해체에 이르기까지 현재 일본만이 안고 있는 사회문제가 아닌 우리의 현실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중 "돌아갈 곳도 없는 것과, 자유로운 것은 분명하게 다른 것이다" 라는 메세지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또 다른 면을 인식하게 하죠. 사회구성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가족은 어쩌면 산업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불필요한 요소처럼 비쳐질지 모르지만 가족의 해체나 붕괴는 산업자본주의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기본기저라는 점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무슨 무슨 체제를 떠나서 가족 그 자체만으로 아주 많은 의미와 버팀돌의 역활을 하고 있는게 사실이죠. 미야베 미유키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가족과 그 구성원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를 던져 줍니다. 작품의 제목이 왜 <이유> 일까 생각해보니 어쩌면 가족과 그 구성원간에는 그 어떠한 이유가 존재할 수 없기에 작품 제목으로 선정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가지게 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이후 모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말입니다. 늦은밤에 이 책을 손에 잡았다가 시간 가는줄 모르고 새벽녘까지 완독하는 바람에 다음날 스케줄이 엉망진창 비몽사몽으로 변해 버렸으니까요. 예전에 스티그 라르손의 작품 첫 시리즈를 이 처럼 접하고 나선 다시는 이 양반의 작품은 멀쩡한 대낮에 읽어야겠다고 다짐을 했으니까요) 읽어 내려간 작품입니다. 국내 독자들에겐 낯선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 이라는 작품인데요 뭐 밀레니엄 시리즈의 작가 역시 당시만 해도 국내 독자들에겐 생면부지 였으니까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이기도 하고 그저 작품의 제목이 요즘 들어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의 집중을 받고 있는 최모씨를 연상케하는 타이틀 달고 있어서 그런지 호기심반 기대반으로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까지 읽은 보람이 있었다는 거죠. 뭐 그렇다고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담론이 대단하다거나 세칭말해서 문학성이 넘실거린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부담없이 그러면서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정도랄까요. 그런데 이 작품은 한번 손을 데면 끝장을 보게 하는 매력이 무수히 많이 산재되어 있는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중도 포기할 수 없는 오기가 발동하게 하고 도저히 그 끝을 확인하지 않고선 못버틸것 같은 유혹이 아주 강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제목처럼 우리에겐 한번쯤은 혹은 지금도 여전히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목록이 마음 깊숙한 곳에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뭐 없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요.. 피터 스완슨은 바로 이런 아무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은 욕망의 한줄기를 테제로 이번 작품의 동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추리 스릴러와 범죄 스릴러의 기법이 가미되어 있고 여기에 심리 스릴러가 두가지의 원형을 꽉 잡고 있어 시종일관 숨막히는 전개에 독자들은 한시도 헛눈을 팔 수 없게 합니다. 도입부에서 릴리는 "솔직히 난 살인이 사람들 말처럼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썩은 사과 몇 개를 신의 의도보다 조금 일찍 추려낸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뭔가요 " 라는 말을 하죠. 바로 이 말이 이번 작품의 실체 즉 핵심적인 모티브가 된다는 점은 왠만한 독자라면 간파할 수 있습니다. 비록 추리물이지만 작가는 거추장스러운 일련의 복선과 설정들을 확 걷어 버리고 바로 핵심을 찌르는 정공법으로 독자들을 도발하는데요. 이어서 바로 이어지는 릴리와 테드의 살인 계획 그리고 그 계획을 위해서 둘간의 파트너쉽을 증폭시키는 곁가지의 설정들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독자들을 한번 살짝 비트는 전개를 보여주죠. 아마도 이런 전개가 없다면 왠지 조미료를 제거한 무미하고 드라이한 밋밋한 느낌을 받게 될거라는 걸 아는듯이 작가는 내러티브의 방향을 살짝 비틉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새로운 인물들과의 심리게임을 통해서 뻔한 아주 뻔한 내러티브를 뻔하지 않을것만 같은 방향으로 풀어버립니다.


          릴리와 테드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만 같은 그러면서 상당히 자연스러운 커플 (사실 테드와 미란다보다 오히려 더 어울린다라는 느낌을 주는데요. 막상 스토리를 다 간파하게 되면 릴리와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물론 전적으로 남성의 시각에서요) 의 등장과 그리고 연이어 등장하는 미란다, 브래드, 킴볼 형사등과의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흥미를 배가시키고 있죠. 등장인물들의 시점에서 각자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기법이 이번 작품을 더 흥미롭게 하는 열쇠인데요. 각자 자기 처지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상대를 보고 평가한다는 플롯이야말로 죽여도 마땅한 사람들과 기막히게 일치하는다는 느낌을 주니까요. 여기에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물론 릴리에게 한정되어 있지만요) 설정들을 통해서 독자들을 잠시 헷갈리게 하는 면도 있지만 굳이 이 부분을 작가의 의도된 설정이라고 평하기 힘드네요. 그 만큼 과거 시점에 대한 무슨 복선을 깔고 있다기 보다는 그냥 스토리의 전개상 자연스러운 설정으로 봐야할 듯 합니다. 그 만큼 큰 임펙트는 없다고 봐야겠죠. 그저 릴리의 사이코패스적인 심리상태를 깔아주는 정도니까요.


          이번 작품은 누구나 한번쯤 그저 마음속에서나마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정말 실천해 옮기는 릴리라는 여성을 통해서 나름의 대리만족 같은 기분도 자아내게 합니다. 물론 현실속에선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왠지 릴리에게 일종의 동정심 내지는 공감대를 갖게 한다는 점에서 독자 스스로가 당황스러울 수 도 있습니다. 이런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충분한 개연성을 유발한다고 보여지네요. 특히 결말 부분 릴리의 아빠가 보낸 편지의 내용은 독자들로 하여금 정말 많은 생각과 추측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유도하고 있죠. 릴리의 행동에 공감하는 독자들과 설마 그래도 사이코패스일 뿐이야라고 여기는 독자들 양측의 추측과 결과는 사뭇 다르게 판명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이 부분이 이번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고 피터 스완슨이라는 작가의 차기작을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