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메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0
존 바스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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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랫만에 제대로된 문학작품을 대면했다는 느낌을 받았네요. 물론 제대로된 작품이란게 노벨문학상이 선정하는 기준의 잣대와는 맞지 않을수도 있는데요. 뭐 문학성이 대단히 뛰어나던가 아니면 대중적인 예술성이 뛰어나던가 뭐 이런 고차원적인 잣대의 기준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도 있는 작품입니다.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인 존 바스의 <키메라> 라는 작품인데요. 상당히 유니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천일야화』와 『그리스 신화』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작품의 출발점에서부터 상당히 친근하고 가독성 높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을 대면하기전에 고전을 패러디한 작품이라 약간의 기대감과 더불어 뭐 평범한 패러디에서 끝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드는 작품인데요. 막상 작품을 대면하고 나니 이런저런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제대로 증명해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패러디도 이런 경지에 까지 올라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네요.


          결론부터 언급하자면요 정말 한마디로 패러디의 바이블을 보는듯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동안 우리들은 상당한 패러디 작품을 대면했습니다. 속칭 버전2라는 개념으로 패러디한 작품들이 많았는데요. 독자들의 반응은 처음에는 신선한다는 느낌을 받지만 사실은 정말 버전2로만 기억속에서 남는 작품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 입니다. 원작을 뛰어넘는 강렬한 포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원작에 비해 패러디한 작품이 별개의 개체성을 획득한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종류의 작품으로 변질된 경우가 왕왕있어죠. 영화계에서 흔히들 말하는 버전2가 원판보다 흥행을 끌기에 힘들다는 속설처럼 문학계에서도 패러리라는 기법은 상당한 모험수를 둔 기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P.D 제임스의 <죽음이 펨벌리로 오다> 라는 작품처럼 완벽한 형태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도 있지만 대게의 경우 쓸쓸하게 퇴장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면에서 존 바스의 <키메라> 는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면서도 흥미 만점의 또 다른 작품의 세계를 만끽하게 합니다.


          우선 '키메라' 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의 외관적인 특성에 맞추어 작품의 틀을 크게 『두냐자디아드』『페르세이드』『벨레로포니아드』라는 세가지의 이야기로 컨셉을 잡았다는 점인데요. 키메라가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염소, 꼬리는 용인 형태로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듯이 존 바스는 『두냐자디아드』『페르세이드』『벨레로포니아드』세가지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별개인듯 하면서도 상호연관성을 갖춘 스토리로 틀을 잡았습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틀속에서 '천일야화', '페르세우스신화', '벨레로폰신화' 의 각각의 별개의 원전을 패러디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내러티브의 출발자체가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마치 키메라라는 존재가 머리, 몸통, 꼬리중 어느하나 없이는 성립되지 않듯이 존 바스의 이번 작품 역시 기본적인 별개의 원전들이 하나의 형태로 이어진다는 발상자체가 기본적인 패러디작품과는 차별화시키는 역활을 합니다. 이정도면 틀에서부터 왠지 모를 포스감이 느껴지죠.


          내러티브적인 면에서도 이 작품이 과연 패러디계열의 작품일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차별화되어 있는데요.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런 원전의 내용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하게 됩니다. 원전의 주인공들의 비중에서부터 이야기의 흐름자체 역시 색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세헤라자데가 아닌 동생인 두냐자데가 화자로 등장하고, 페르세우스나 벨레로폰 역시 그 비중을 떨어뜨리고 새로운 화자들을 중심으로 설정하면서 원전과의 유사성 보다는 상이성이 강조되는 내러티브를 보여주는데요. 여기서 존 바스의 신의 한수를 볼 수 있죠. 무엇보다 존 바스 자신의 현현인 '마신', '메두사' ,'폴리이도스' 등의 인물을 등장시켜 리얼리티를 더 강조하게 됩니다. 이러한 리얼티는 왠지 원전보다 이 패러디본이 더 사실일것만 같은 느낌마저 자아내게 하면서 새로운 신화 이야기에 독자들을 눈을 매료시키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물론 상당히 많은 각주들과 시점의 왜곡(존 바스의 의도되고 계획적인 설정으로 보이는데요) 화자의 모호성들이 내러티브를 꾸준히 따라가기엔 역경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의도된 장치들로 인해서 <키메라> 라는 작품이 갖는 독립성을 높여주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합니다. 원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의 접근과 그 방향성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실험적인 장치적 설정들이『두냐자디아드』『페르세이드』『벨레로포니아드』세편의 이야기로 재탄생하는 결과를 가져다 준다고 봐야겠죠. 기존의 '천일야화', '페르세우스', '벨레로폰' 의 이야기를 뛰어넘는 새로운 신화의 창조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리고 왠지 이 세편의 이야기가 사실일것 같다는 느낌을 절로 갖게한다는 거죠.


          존 바스는 패러디라는 기법을 사용하였지만 원전과의 유사성보다는 패러디작품의 상이성에 촛점을 맞추어 새로운 신화 이야기라는 맛깔나는 작품을 창작해 냈습니다. 작품의 구조적인 틀에서부터 세이야기의 등장인물들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내러티브의 독창성까지 더해 패러디라고 할 수 없는 또 다른 영역의 패러디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바로 이러한 부분들이 이번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으면 이번 작품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정체성을 부여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성향이 신화적인 이야기틀과 접점을 찾아가면서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단 한순간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의미심장한 서사들이 깔려 있고 세이야기가 하나의 큰틀에서 상호연결작용을 하고 있어 큰줄기에서 이야기 순환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독특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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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TAS 2016-03-26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독을 망설이던 작품이었는데 리뷰가 큰 도움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