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사회파 미스테리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는 달리 부차적인 설명이 필요없는 작가이죠. 이미 일본전역을 평정했고 국내에서도 미미여사라는 애칭과 더불어 많은 팬덤을 가지고 있는 유명 작가입니다. 기존 본격 추리소설 장르에 인간사회의 문제를 접목해서 세칭 사회파 미스테리라는 장르의 완성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하나 하나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심도깊은 담론들이 녹아나 있습니다. 일본 중세시대를 배경으로하는 시대추리에서부터 판타지요소가 가미된 작품 그리고 SF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재와 테마를 가지고 이처럼 맛깔나게 작품을 창작해내는 능력에 경의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문제 전반에 대한 독자들의 시각를 업그레이드시킨 장본인이라고 보여집니다. 무엇보다 타인과 끊임없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에게 대해서 미야베 미유키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회구성원들이 필히 한번쯤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할 근원적인 이유를 제시하고 있죠. 이번 작품 <이유> 역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심도깊은 담론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비록 발표된지 제법 많은 세월이 흘러지만 미야베 미유키가 작품속에서 표방하고자 하는 사유는 지금도 우리에겐 진행형이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고 함께 고민해야할 화두 이기도 합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유> 라는 작품으로 120회 나오키상을 만장일치로 수상하게 되었고 일본전역의 독자들에게 그녀 이름 석자를 공고히 다지는 계기가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유> 는 그동안 미야베 미유키의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도 상당히 유니크한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요. 우선 작품의 스트럭쳐 자체에서 부터 독특하죠. 르포르타주방식을 도입해서 무인칭의 시점으로 작품의 내러티브를 시종일관 끌어 간다는 것인데요. 그러다보니 상당히 드라이한 맛을 시종일관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부동산 버블이라는 경제 대재앙이 스며드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타워팰리스 같은 부의 상징인 반자루 센주기타 뉴시티 타워에서 발생한 일가족 4인 살인사건을 르포의 대상으로 출발하는 작품입니다. 작품의 주된 스토리 격인 과정은 르포형식을 기반으로 했기에 관련자들의 인터뷰가 전면에 부상하고 결말에 이르기까지 관계자들의 인터뷰가 내러티브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살해당한 4인의 인터뷰는 존재할 수 없지만 그를 제외한 거의 모든 관계인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는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좀 우린 이번작품의 또 다른 흥미로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흔히들 접하게되는 르포형식의 작품들이라고 해도 대게의 경우 주인공 1인칭의 시점이나 전지적 작가시점의 견해가 필연적으로 개입되어 작품의 교통정리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감정을 살짝 터치하게 마련인데요. 이번 작품속에서는 이러한 외부적인 간섭이나 감정의 증폭을 유도하는 관제시스템 같은 의도된 작가의 역활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시작해서 결말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관련인들의 인터뷰로 매조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은 혼란스럽고 번거스러운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부분도 틀림없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내용들에 대한 숙지와 기억 그리고 다시 앞에서 행했던 인터뷰의 복기등 작품이 중반부로 향하면서 이러한 반복적 학습은 더 심한 유혹을 가져 오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신의 한수를 볼 수 있죠. 이러한 대중없는듯한 마치 교차로에서 신호등이 고장한 차량과 사람이 한테 뒤엉킨듯한 인터뷰의 진행들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인지못하는 사이에 원할하게 교통정리가 되어간다는 점인데요. 물론 이런면이 없다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라고 할 수 도 없겠지만요. 하여튼 관련인들과의 인터뷰가 진행될 수록 그 속에 교묘하게 담겨져 있는 진실과 트릭들을 독자 스스로 찾게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또 하나의 신의 한수는 인터뷰를 하는 관련인들의 범주의 크기라는 점인데요. 르포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물론 각오 정도는 하고 있었지만 정말 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많은 관련인들이 등장하는 점에서 다소 당황스럽죠. 대게의 작품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야 정말 주연을 제외하면 손에 꼽을 정도로 갈무리 될 정도이고, 다른 르포형식의 작품들을 보아야도 얼추 그 범주가 그리 상상을 뛰어넘는 것은 아닌데 <이유> 의 경우 정말 엄청나다고 할 수 있는 관련인들이 등장합니다. 이름만 거론된 관련인이 무려 48명이 등장하고 그에 사건의 목격자, 가족과 지인, 지역주민, 학교친구, 회사동료등을 포함한다면 엄청난 수에 이르게 될정도로 방대한 인원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만 거론된 것이 아니라 실재로 이들이 인터뷰에 응대하고 그 기록을 남기면서 진행되는 이번 작품의 범주는 어마어마하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그러니까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인물들의 인터뷰를 세밀하게 음미해보면 바로 여기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신의 한 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거죠. 주연과 조연을 막론하고 인터뷰에 응대했던 영향력이 떨어질것만 같은 인물들의 심리묘사나 삶의 흔적들을 짧은 인터뷰내용만으로 독자들은 금방 캐치하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아 왜 이러한 인물들의 인터뷰가 등재하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터뷰의 내용들 만으로도 내러티브의 연결고리가 전혀 빈틈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죠. 참 이점이 이번 작품의 구조적인 백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죠. 르포라는 아주 드라이한 방식과 산만할 정도로 인터뷰에 응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왠지 객관적인 작품의 신뢰도를 높이면서 마치 팩트를 다루는듯한 뉘양스를 풍깁니다. 정말 사건을 충실히 다루는 본격추리장르의 원형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온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구조적인 틀이 하나씩 무차별적으로 그러니까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면서 독자들은 사건이라는 원형에서 거꾸로 그 내막을 들여다 보게하는 묘한 충동을 받게되고 그에 이끌려서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인물중심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거죠. 바로 이점에 이번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요. 미야베 미유키는 결국 작품의 스트럭쳐의 중심을 사건에서 인물중심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간과 사회의 관계성쪽으로 아무런 저항없이 끌어당기는 거죠.
역시 이번 작품속에서도 미야베 미유키는 독자들에게 많은 담론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심화로 인한 계층 획일화의 고착, 흔히들 말하는 금수저, 흙수저의 논란에서부터 부동산버블로 인한 개인의 파산과 신용불량자의 양산 그리고 인한 가족의 해체에 이르기까지 현재 일본만이 안고 있는 사회문제가 아닌 우리의 현실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중 "돌아갈 곳도 없는 것과, 자유로운 것은 분명하게 다른 것이다" 라는 메세지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또 다른 면을 인식하게 하죠. 사회구성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가족은 어쩌면 산업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불필요한 요소처럼 비쳐질지 모르지만 가족의 해체나 붕괴는 산업자본주의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기본기저라는 점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무슨 무슨 체제를 떠나서 가족 그 자체만으로 아주 많은 의미와 버팀돌의 역활을 하고 있는게 사실이죠. 미야베 미유키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가족과 그 구성원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를 던져 줍니다. 작품의 제목이 왜 <이유> 일까 생각해보니 어쩌면 가족과 그 구성원간에는 그 어떠한 이유가 존재할 수 없기에 작품 제목으로 선정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가지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