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도매상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9
존 바스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포스터모더니즘의 대가 존 바스의 <연초 도매상> 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엔 아주 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모호한 입장이란 뜻은 본 작품의 장르를 우선 특정 지울 수 없고 (형식은 피카레스크 양식을 취하는 듯 보이지만) 내러티브를 떠받치고 있는 스토리의 전개 역시 독자들의 머리속을 모호함으로만 가득 채우고 있고, 여기에 실존의 역사와 가공된 역사가 뒤범벅이 되어 어느 것이 진짜 역사인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송두리채 앗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존 바스의 <키메라> 라는 작품에서 보왔듯이 작가는 이번에도 각종 실체적인 역사와 작품들의 패러디를 맛깔나게 끌어내면서도 이러한 패러디가 정말 패러디인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게 해 놓은 설정들이 수도 없이 작품속에 내재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혼란과 동시에 색다른 기쁨을 선사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요. 정말 작품의 후반부의 결말부분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스토리가 등장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전개되어지는에 대한 독자들의 의지마저 꺽어 버리죠. 그런데 작품을 읽는 내내 독자들의 내면속에 일종의 알 수 없는 바향타가 번쩍 거리스면서 대충의 내러티브를 이해하게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존 바스가 아니라면 써내려갈 수 없는 작품이라는 단언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작품의 키는 역사라는 객관적이고 팩트적인 기본 전제에 대한 의문과 부정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을 가지고 이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막상 작품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기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가정에 대한 실체를 강간당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자연스럽게 그런 부정이 정당하다는 강력한 자기 합리화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 존 바스가 추구하는 모티브에 홀라당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살아 가면서 변덕과 이해관계가 시키는 대로 우리의 과거를 어느 정도 조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모두가 지금 이 순간 빚어서 모양을 만들어야 하는 점토와 같다" 라는 사유가 대변하듯이 역사가 고스란히 팩트만을 담고 있지 않다는 논거가 바로 이번 작품의 키 워드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존 바스는 이를 대변하기라도 하듯이 포카혼타스와 관련된 『버지니아 통사』,『비밀 역사』,『개인 일기』등과 같은 역사물을 가공하여 마치 팩트의 역사가 어쩌면 가공된 역사라는 강한 의구심을 던져주고 있죠. 물론 문학작품이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자행되는 일련의 역사 이야기이지만 독자들에겐 상당한 설득력을 암시하고 있는 의미있는 이야기로 남기에 더욱 더 혼란을 가중시키기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마냥 역사의 가공에 대한 스토리와 이야기가 서술되었다면 이번 작품은 굉장히 따분하고 재미없는 그저 그런 패러디물로 전락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죠. 존 바스는 바로 여기에 또 다른 흥미거리를 첨부해서 작품의 눈높이를 사정없이 직하방으로 끌어 내리는 마법을 보여줍니다. 성적인(sewual) 첨가물의 플롯은 그야말로 이번 작품을 백미로 장식하고 있는 부분인데요. 다소 황망스럽고 유머러스하게 묘사되고 있지만 인간 본연의 성적인 욕망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을 결코 불쾌하게 만들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중 내내 쉴세없이 던져지는 성적인 묘사와 서사들은 마치 인간의 근원적인 목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갖게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성적인 첨가물과 역사의 가공이라는 극과 극의 플롯이 물과 기름과 같은 이질성을 띠지 않고 자연스럽게 혼합되어 내러티브를 아주 부더럽게 만들면서 작품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또 하나 눈여겨 봐야할 점이 있는데요. 바로 담배 (연초) 라는 농작물입니다. 당시 시대상을 비추어봤을때 담배는 일종의 제국주의를 대변하는 착취의 상징이었다고 볼 수 있는 데요. 담배라는 농작물을 통해 17세기 식민지 아메리카의 실상과 그로 인한 원주민들의 피해 여기에 영국본토에서 소외되었던 이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인물들) 의 또 다른 2차적인 피해등 아메리카 식민지 역사를 통찰하고 있는 대표적인 심벌리즘이기도 한데요. 작가는 바로 연초 도매상이라는 타이틀을 제시하면서 일련의 자기반성적인 역사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존 바스는 이러한 역사적 아픔을 마치 에브니저를 통해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면서 부각시키는 것 같이 서술되지만 한발 비켜서서 관망하는 모습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무슨 거대한 담론 (가해자와 피해자) 을 끌어 낼려고 하는 조직적인 의도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주인공인 에브니저 쿠크의 심성에서 간파할 수 있는데요. 거의 돈키호테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에브니저를 통해 이 무거운 담론들을 지고 가게하는 설정 자체에서 우리는 존 바스의 의도를 엿볼 수 있죠. 그렇다고 돈키호테의 현현을 보는 듯한 에브니저의 사고와 행동들이 막연하게 흥미위주의 가십거리로만 상징될 수 는 없다고 봐야합니다. 순수와 순진 그리고 지식 여기에 제3자적 역사관찰자의 시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의 패러다임이 녹아 있는 인물로 상징되기에 돈키호테만큼의 애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에브니저 쿠크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면면 역시 이질적이고 이분법적인 모토를 상징하는 인물들을 대거 등장시켜 그야말로 향연의 파티속으로 이끌고 있죠. 조안 토스트를 필두로 상당히 저속한 (당시 계급사회 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부류의 인물들의 등장과 옷매무새나 생김새의 묘사등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상당히 격이 떨어지는 계층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어휘나 용어는 굉장히 철학적이고 정치적이면서 세상을 통달한 면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상류계층 (니콜슨 총독이 대변하는) 이라할 수 있는 귀족들의 언어가 통속적이고 상스럽게 묘사되고 있는 반면 이들의 대화내용은 상당한 수준의 의미를 내포한 심오한 삶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한때 매춘부였으며 순회 포주 역활을 하는 메리 멍고모리의 인생관을 대변하는 일련의 서사들에서 이번 작품의 모토이기도 한 역사의 가공이라는 작가의 의도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정말 유니크하고 개성넘치는 등장인물들의 등장과 이 등장인물들의 제각각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거대한 프레임을 형성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이번 작품의 백미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을 가지고 있기에 완독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등장인물들 각각의 이야기와 세편의 역사적 문건에 대한 이야기까지 겹쳐서 줄거리의 맥락을 잡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 밝혀지는 내러티브의 정체를 느끼게 되는 일종의 쾌감은 가히 압도적이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