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어 다크, 다크 우드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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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국내 독자들에겐 생소한 영국 작가인 루스 웨어지만 이미 영국과 전 세계적으로 독자들의 뇌리속에 깊이 파고들고 있는 떠오르는 신성이랄까요. 단 한편의 스릴러 (큰 틀안에서 범죄스릴러계열으로 봐야겠죠) 작품으로 이만큼의 호응과 주목을 받는 작가는 상당히 드물죠. 여기에 이미 영화화가 결정된 상태로 내러티브 자체가 상업적으로도 매력이 있다는 뜻이겠죠. 뭐 이러면 상당히 엔터테이먼트적인 작품으로 오인 받을 소지도 충분이 있겠지만요. 그렇더라도 한번은 루스 웨어의 작품세계를 검증 아닌 검증을 해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과연 어떠 부분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영화화할 만큼의 매력적인 요소들이 있는지에 대해서요 여기에 이번 작품으로 하나로 반짝 인기에 끝날지 이후의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도 같이 반영될 듯 하기도 합니다.


          <인 어 다크, 다크 우드> 굳이 직역하지 않겠지만 제목에서 부터 심상치 않는 느낌을 우선 던져 주네요. 왠지 으스스하고 불길한 (어둠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에피타이저 맛을 자아내니까요) 느낌을 먼저 던집니다. 어느날 갑자기 십년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로부터 한통의 메일이 (정확히 그 친구는 아니지만 별로 좋지 못한 기억속의 친구가 결혼을 한다면서 그리고 결혼식은 아니고 신부의 싱글파티에 초대 한다는...) 오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많은 고민끝에 싱글파티가 열리는 곳으로 가게 되고 그 장소가 선뜻 다가가기 힘든 외딴 곳의 별장으로 서두에서도 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 내러티브가 시작되죠. 뭐 이렇게 보면 아주 단순하면서도 흔히 우려먹는 컨셉트인데요. 루스 웨어는 여기서 그 우려먹던 컨셉트를 아주 효율적으로 창조적이자 자신만의 컨셉트로 치환시켜 버립니다. 우선 스토리의 장소적인 배경에서부터 아주 과감하게 선정하는데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공간적인 배경을 굉장히 미니멀하게 한정합니다. 별장이라는 한정된 장소 여기에 별장의 구조 자체가 외부에서 훤히 볼 수 있는 유리창의 구조로 된 별장 (왠지 외부자의 감시하에 놓여있다는 점과 더불어 그 감시자나 외부자가 다름아닌 독자일 수 있다는 복선을 깔아버리죠) 그리고 또 극히 한정된 등장인물 (최대 6명) 를 등장시켜 범인의 범위를 아주 간결하게 좁혀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얼핏 한정된 장소와 한정된 등장인물 그리고 터지는 예기치 않는 진실과 사건... 뭐 답이 뻔한 것 아닌가 이런 선입관이 독자들 뇌리를 스치게 되는데요. 대게의 실패한 작품들이 그렇다는 거죠. 하지만 루스 웨어는 이러한 뻔한 구조를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미니멀화된 스트럭쳐라고 해야할까요. 극히 축소화된 공간적 배경과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롱숏에 가까운 기법을 혼합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거대한 장소와 더불어 수 많은 등장인물들이 출연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등장인물들의 심도 깊고 절묘한 심리묘사가 더해져서 가능하게 되는데요. 우선 누가 범인인지 대한 축측을 불허 할 만큼 등장 인물들 각각의 심리가 독립적으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혼합되어 묘한 스릴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로라 쇼의 의식 세계에서부터 뭔가 꼬여 버리는데요. 루스 웨어의 신의 한수라고 할 만큼 이번 작품은 범죄심리스릴러로써 표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굉장히 빠른 속도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더불어 상황묘사나 배경묘사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멘트 하나 하나에 따라 알듯 모를듯한 묘한 공포감을 불러 오는 작품으로 한정적인 인물과 협소한 공간을 무한 확대하는 착각을 일으키는 유니크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제2의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찬사가 명불허전이 아니라는 느낌을 강렬하게 전하는 작가이기도 하네요. 한 동안 전 세계 독자들에게 회자될 인물임에 틀림없는 것 같고 그래서 차기작이 더 기대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작품 전체가 주는 스산한 분위기와 등장인물들 각자가 연출해내는 기시감 같은 멘트들이 전반적으로 하나로 융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해 줍니다. 한번 손에 잡으면 끝을 보게 만드는 스토리의 빠른 전개가 행여 밤잠을 설치게 할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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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 바디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8
헨릭 시엔키에비츠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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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오 바디스 (Quo Vadis ;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참 많이 들어본 말이죠. 종교인이던 비종교인던간에 말입니다. 190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쿠오 바디스> 는 고전 중에 고전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여러차례 영화로도 선을 보였고 연극으로도 리메이커된 작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고전이라는 작품들이 대게 그렇듯이 정작 원작인 <쿠오 바디스> 보다 영화와 연극으로 리메이크된 <쿠오 바디스> 에 길들여저 있어 정작 원작이 가지고 있는 맛은 음미할 틈조차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의『레 미제라블』이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처럼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쿠오 바디스> 라는 작품 역시 원작보다는 축약본이나 엔터테이먼트가 강하게 비쥬얼화된 영상작품이 더 인기를 끌고 사랑을 받았다는 점인데요. 뭐 부인할 수 없지만 이상하리만큼 원작은 묻혀 버리고 말았죠. 그렇다고 원작의 격이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고 오히려 원작의 격이 뒷받침 되었기에 후대의 그런 작업들이 가능하지 않았게나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리메이크된『레 미제라블』에 익수한 독자들이 원작을 대할때의 느낌과 충격이 다르듯이 <쿠오 바디스> 의 느낌도 일맥상통하게 다가오리라 여겨 지네요. 워낙 악동인 네로황제 시대의 기독교인과 이를 박해하는 세력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감초 역활을 하는 사랑이야기라는 대강의 써머리를 머리속에 자연스럽게 저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대하는 원전의 맛은 과연 어떠한 느낌을 자아낼지도 비교대상이 되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갖게 합니다.


          이교도의 상징이자 악의 화신으로 대변되는 가수이자 시인이면서 전차경기 선수이기도 한 네로를 서사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작품 초반부에서 네로의 이미지 중 특히 리기아가 궁중연회에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네로와 포페아의 이미지를 서사하는 장면은 왠지 그 동안 영화나 구전으로 듣고 보아왔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죠. 특히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보면 더욱 더 묘한 서사이기도 합니다. 이부분이 작가의 의도된 설정으로 보여지는데요 리기아 (즉 기독교에서 성모마리아와 같은 신성한 종교적 상징) 의 시각이 과연 어느쪽의 시각일까라는 부분과 네로와 포페아의 진실은 어쩌면 듣고 보아왔던 전설과 다를수있다는 뉘양스 아닌 뉘양스를 줍니다. 물론 작품의 결말쪽으로 다가가 되면 일방적인 리기아의 이미지로 승화되지만 초반부의 이미지로만 보게 되면 아리송한 면도 함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서사의 복선은 의도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상반되는 가치관의 충돌을 통하지만 상대방의 가치관을 이분법적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작품 전반을 통해서 페트로니우스의 말들을 인용함으로써 작가는 더욱 더 이분법적인 사고로 점철될 수 있는 사고의 경계와 균형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죠.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제우스를 비롯한 당시 로마제국이 숭배했던 다양한 신들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자신의 기도를 올리는 모습으로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는 유일하게 그리스도를 찾아 기도하는 모습을 매치함으로써 작품을 두 가지 힘의 충돌로 설정하고 있죠 (네로 황제와 포페아 황후 그리고 검투사 크로톤으로 대표되는 정형적인 로마 가치관과 사도 베드로와 리기아 또 우르수스로 대변되는 기독교 가치관의 충돌을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죠). 그런데 말이죠. 단순하게 두 가지의 가치관 충돌을 작품의 주 메뉴로 설정했다면 작품의 내러티브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독자들 입장에서도 정말 뻔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하지만, 여기서 작가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절묘한 신의 한수가 등장 합니다. 다름 아닌 그 신의 한수는 '고상한 판관' 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페트로니우스의 등장입니다. 어찌 보면 페트르니우스의 역활은 이번 작품에서 굉장한 의미와 더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인데요. 역사적인 평판으로도 '현명한 판관' 이라는 평가를 받은 실존인물을 거의 주인공격으로 캐스팅함으로써 로마와 기독교라는 두 가치관의 충돌을 어느 일방적인 승리로 이끌어 가지 않는다는 암시를 깔아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록 헨릭 시엔키에비츠는 자신의 조국인 폴란드를 상징하는 (기독교의 가치관으로 포장은 했지만) 리기아와 우르수스라는 가공의 인물을 통해서 폴란드의 저항과 독립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지만 자칫 뻔한 스토리와 결말을 나름의 공정하고 현명한 방법으로 이끌고 있다는 모습을 페트로니우스라는 인물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이번 작품의 또 다른 묘미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뻔한 스토리라고 단정짓게 되고 그리고 막상 내러티브속으로 들어가보면 그 뻔함을 재확인하게 되지만 그러면서도 고전이라는 색다른 묘한 매력에 사로 잡히게 됩니다. 전형적인 고전의 스토리와 서사방식 그리고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엿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대목이 리기아를 빼앗긴 이후 화풀이를 하는 비니키우스의 서사와 리기아가 해가 떠오르는 궁전뜰에서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기도장면을 서사한 씬은 가히 압권의 경지라고 할 수 있죠. 전형적인 고전의 덕목을 갖추고 있으면서 여기에 기독교라는 종교의 향신료까지 더해져서 정말이지 매끈하게 단어들을 주무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부분들이 눈에 거슬릴 수도 있죠. 독자개인의 취향에 따라선 유치하게 보일 수 도 있지만 다름아닌 바로 이런 부분들이 고전의 참 맛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일종의 오아시스같은 청량감을 제공해 주고 있기에 고전이란 언제 어느시기에 읽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휴식같은 느낌을 줍니다.


         여기에 기독교 가치관 (혹은 폴란드의 저항과 독립이라는 복선적 의미) 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맺을 수 있는 스토리를 페트로니우스라는 인물로 인해 독자들의 균형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절묘한 설정을 보게 됩니다. 기독교의 가치관에 일방적으로 손을 들지 않고 (물론 손을 들어준 것 처럼 보이지만요) 슬그머니 로마 가치관에 대한 묘한 뉘양스를 남겨둠으로써 일종의 면피 아닌 면피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지 않았라나는 생각이 들고요. 무엇보다 당시 로마시대를 역사적으로 고증하고 원형을 최대한 반영해서 당시 로마 시내를 재현했다는 점은 당시의 고고학적 자료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는 겁니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디테일한 서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당시 로마 시내를 들여다 보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정형적인 권선징악의 결말을 담고 있는 작품이고 결말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만큼의 무슨 거대한 반전의 임펙트는 존재하고 있지 않지만 팩트와 픽션을 절묘하게 융합하고 실재적인 고증을 통한 디테일한 서사를 통해 역사소설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쿠오 바디스> 는 명작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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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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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넘어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새를 타고 있는 작가, 최근 들어 매해마다 노벨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작가, 신작이 나올때 마다 출판계와 서점가를 둘러싼 마치 전쟁이라도 한판 치를듯한 부산함속에 독자들의 애잔한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작가... 그는 다름아닌 바로 일본를 대표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매니아층을 갖고 있을 정도로 초판 예약분만 보더라도 까무러칠 정도로 (정말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도 30만부 초판본이 거덜날 정도였다니. 국내에 이렇게 많은 책읽는 사람들이 있기나 하는가에 의구심이 들기도 하죠. 그 만큼 하루키의 열풍은 매번 신작이 나올때 마다 국내 출판계를 들었다놨다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이죠. 그의 대표작이었던『1Q84』이후 제대로된 장편을 접하지 못했던 참에 이번에 세상밖으로 나온 <기사단장 죽이기> 는 상당한 힘으로 독자들을 밀어붙일 것 같은 예감이 먼저 들게 합니다. 왠지『1Q84』 의 마무리가 석연찮았다는 점 그리고 또 왠지 그 후속 이야기가 존재할거라는 강한 믿음 아닌 믿음을 갖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번 <기사단장 죽이기> 를 통해서 일말의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의견도 개진해보게 됩니다.


          <기사단장 죽이기> 는 그야말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짙은 필체와 메타포가 담겨져 있는 작품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교묘한 경계선상 (이미 『1Q84』에서 보왔듯이 그 경계가 허물어지지 않으면서도 그리고 전혀 어색함이나 인공적인 터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도 절묘하게 그 경계선상에서 아리아를 연주하듯이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것이죠) 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꽁꽁 매어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루키만의 특색 있고 냄새가 짙은 서사적인 표현들은 가히 절정에 다다른 예술인의 풍미마져 느끼게 하네요. 그림속의 등장인물들이 방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현실세계로 뿅하고 나타난다는 다소 황당스러운 컨셉트를 가지고 있지만 왠지 이런 황당스러운 면이 작품을 읽어 나가면서 전혀 황당스럽게 다가온다거나 머리속에 각인되지 않는다는 점, 이 역시 하루키만이 그려낼 수 있는 그림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됩니다. 모짜르트의 <돈 조바니> 오페라와 <기사단장 죽이기> 라는 가상의 그림을 절묘하게 연결하여 내러티브 전반을 감싸는 판타스틱한 배경을 선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연결매체는 다름 아닌 주인공 '나' (사실 작품의 결말 부분까지 단 한번도 정확한 주인공의 이름을 모르고 막을 내린다는 점이 다소 아쉽기는 하죠) 라는 점을 확실하게 밝혀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그 자체를 망각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하루키의 다양한 설정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현실과 가상이라는 두 영역을 마음 껏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 또 다른 동력원으로 자리잡고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 하루키의 전매 특허이기도 한 다양한 음악원들이 맛깔스럽게 군데 군데 양념을 쳐대고 있죠.『1Q84』에서 우리는 야냐체크의 '신포니에타' 라는 장중하면서도 딱 작품에 어울리는 음악원을 선물받았다면 이번 작품속에는 그야말로 하루키의 뮤직룸을 통채로 접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1980년대 유행했던 팝에서도 부터 재즈, 클래식,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장르의 음악원들을 접하게 되고 동시에 필히 한번은 들어보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게 하죠. 그리고 작품의 마지막 장을 덮고 일일이 메모해 두었던 음악원들을 들어보면 또 다른 느낌이 와닿는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음악원들이 등장하는 배경 배경 그 하나 하나가 자연스럽게 머리속에 그려지면서 정말 적재적소에 딱 맞는 음악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죠. 아마도 이번 작품을 더 돋보이기에 하는 설정들로 가히 하루키일 수 밖에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하네요.


          이번 작품이 뮤직룸이라는 소품 하나로 끝난다면 왠지 서운한 감정이 남는걸, 걱정이라도 했듯이 하루키는 또 하나의 맛깔스러운 양념을 뿌려대고 있습니다. 발랄라이카 칵테일을 비롯한 소소하지만 다양한 음식의 세계와 더불어 재규어로 대표되는 자동차에 대한 듬뿍어린 애정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죠. 여기에 등장인물들이 걸치고 있는 의상, 신발, 악세사리등등 정말 다양한 세계 맛집의 양념들은 한번에 다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디테일과 리얼함이 어쩌면 독자들로 하여금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에 있는 자체를 망각시키는 교묘한 설정으로 비쳐질 수 도 있지만 또 하나 이번 작품을 대하는 작은 재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림에 대한 부분을 빼놓을 수 가 없죠. 아마다 도모히코의 미발표작 <기사단장 죽이기> 이라는 그림에서 시작되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마치 그 그림을 현장에서 리얼타임으로 보는 듯한 착각 아닌 착각이 들 정도로 하루키의 서사들은 가히 압도적일 만큼 디테일하고 리얼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반복적인 암시들이 그런 착시를 보여줄 수 도 있겠지만 그림에 대해서 문외한인 독자들이라도 <기사단장 죽이기> 라는 그림을 금새 머리속에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강인한 느낌을 받게 하는 서사들이 참 가슴에 와닿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그대로 화폭에 옮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정도니까요. 이렇듯 이번 작품속에는 하루키 자신이 현현한 이데아 (작품속 주인공 '나' 라고 봐야할 듯 한데요. 물론 '멘시키'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 듯 합니다) 같은 설정들이 실생활과 더불어 흩어져 있기도 합니다. 난징학살에 대한 사유와 그에 대한 반성과 사죄라는 어두운 역사적인 담론도 담겨져 있고 '긴얼굴'의 메타포와 나누는 소소하면서도 유머스러운 장면들고 포착되고 있죠. 이러한 모든 설정들과 사유들이 하루키 자신의 이데아와 메타포를 담고 있다고 보면 너무 나간 주장일수도 있겠지만 왠지 자꾸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자꾸 전작인『1Q84』를 떠올리면서 비교되는 부분이 생기는데요. (당연히 그럼 느낌을 받게 됩니다.『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대하면서 자연스럽게『노르웨이의 숲』을 떠올리듯 말이죠)『1Q84』가 현실과 가상이라는 경계선에서 다소 가상쪽으로 옮겨간 몽환적인 분위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적확하게 그 경계선상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황당한 소재와 컨셉트를 가지고 있지만 왠지 그게 가상의 세계가 아님을 느끼게 하면서 동시에 현실의 세계임도 증명할 수 없는 그런 묘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환상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는 현실의 세계와 가상의 세계가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에서 어느쪽으로 기울어지면 안되는 그 균형점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그 균형점속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또 다른 도피처 (이것이 이데아일 도 있고 메타포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렇다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닐 입니다) 를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가져보게 합니다. 정말 오랬만에 하루키다운 작품을 대면하게 되었고 다시한번 잊혀지지 않는 작품을 하나 더 간직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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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7-19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고 싶은데 혹시 스포는 없나요ㅎ?
 
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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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서야 그 유명한 조정래 선생의 <정글만리> 를 읽어봤네요... 지금도 여전히 서점가에서 스테디 셀러 한켠을 장식하고 있을만큼 세월의 흐름에도 꾸준히 독자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작가이자 작품이기도 합니다. 정말 사전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독자들이라면 책 제목만 보고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듯 떠올리기가 막막한데요,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에서 고분분투하는 종합상사 영업직원들의 애환을 그린 작품으로 중국이라는 대륙자체가 다름아닌 정글처럼 거대하고 그 속을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하여튼 이번 작품은 중국에 대해서 막연하게 정말 어렴풋하게 갖고 있던 생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역활도 하네요. 문학작품이라기보다 일종의 중국 길라잡이 같은 느낌을 강하게 전달해주죠. 그 만큼 현실성이 픽션에 절묘하게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라는 반증이기도 하겠구요.


          우선 우리 국내 독자들에게 중국이라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죠. 그 숫자를 가늠하긴 힘들 만큼의 인구수 (작가는 작중에 이런 엄청난 인구를 '사람멀미' 라는 표현으로 서사했죠), 만만디 정신, 짝퉁, 꽌시, 동북공정 그리고 요즘들어 한류 바람과 싸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뭐 이런 종류의 이미지가 오버랩되죠. 중국이라는 나라와 우리는 오랜 역사와 세월을 사이에 두고 수 없이 많은 관계성을 갖고 있는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경우이기도 합니다. 중화 문화권이라는 미명하에 도매값으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이래 저래 중국과의 관계는 불과 백년의 세월도 안되는 한미간의 관계보다 오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실상 중국에 대해한 우리의 인지범위는 그 세월만큼 견고하지 못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근대와 현대에 들어 상반된 정치 체제하에서 단절되고 많은 왜곡된 정보들로 인해 오천년이라는 세월의 깊이보다 더 멀리 있는 느낌을 받게 하는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번 조정래작가의 <정글만리> 는 바로 중국의 현재와 그리고 미래를 엿 볼 수 있는 견인차 역활을 한다는 점에서 독자들로 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할 수 있겠네요. 문학작품을 통해서 은근한 흥미와 더불어 중국을 보는 시각과 중국과 우리의 관계 정립에 대한 사유를 재정립해 볼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실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고 더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무시할려고 했던) 중국이라는 대륙과 그 구성원들이 전면에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부상하게 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축이라는 미국을 뛰어넘을 기세로 빠르고 강한 임펙트를 드리우면서 부각되고 있죠. 그 동안 중국의 이미지는 이데올로기의 반대편에 상존하다 보니 자본주의와 다른 이미지 정확하게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의 대명사로 인지되었죠. 여기에 문맹률이 높고 자국의 인구가 얼마인지도 모를 정도로 무능한 정부에 그 국민 그리고 짝퉁과 부정부패, 불량품의 천국이라는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면모를 다 갖춘 그저 그런 나라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죠. 그러다보니 지금 G2을 넘어 G1 으로 생각해도 될만한데도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인정하지 않을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것도 사실입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경우 더 그런 생각들이 알게 모르게 자리잡고 있죠. 그런데 말이죠. 지금의 중국은 그야말로 세계 경제의 동력원이자 세계 소비의 중심이라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는 것이 문제이죠. 이번 작품은 바로 이런 우리의 무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새롭게 눈을 뜨게 한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 중국과 중국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라는 문제에 정답까지는 아니지만 일종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중에는 송재형과 리예링의 해피엔딩으로 두 문명권의 화합을 그려내고 있는 설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작가가 주장하고픈 사유의 총합이라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남녀간의 결혼은 같은 민족이나 국가간에도 수 많은 장벽과 더불어 서로 양측의 합의가 있어야 원만한 결혼이 가능하듯이 한국과 중국의 관계성 또한 이런것은 아닐까라는 일종의 암시로 보여집니다.


          그 동안 조정래 작가의 역사대하소설에 입맛이 길들여진 독자들에겐 사뭇 다른 느낌의 맛을 제공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색다른 느낌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작가 나름의 또 다른 작품세계의 시도였고 개인적으로도 이번의 시도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현실성이 너무 큰 비중을 (작품의 전개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죠) 차지하다보니 왠지 르포나 드라마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합니다. 참 여기서 작가만의 역사적 견해를 다시한번 엿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설정들이 있죠. 우리와 경쟁하는 일본의 종합상사 직원들중에 '이토' 와 '토요토미' 라는 인물이 출연하죠. 뭔가 퍼뜩 뇌리를 스치는 연쇄작용이 발현됩니다. 두 인간은 다름아닌 한반도와 중국을 침략할려고 했던 그러니까 역사적 시간대만 다르지만 공통적인 분모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로서 중국이나 우리에겐 잊혀지지 않는 인물들이죠. 이번 작품속에서도 왠지 밉상으로 설정되는 이 두 인물로 인해서 조정래작가는 특유의 민족적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난징학살등 일제의 만행과 고구려 역사등 우리의 고대사에 대한 인식의 범위 (전대광의 조카가 전공을 경영학에서 중국사로 변경하는 설정) 등에 대한 담론을 깔고 있다는 것인데요. 상당히 의미심장한 테제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조정래작가의 변신은 무죄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하네요. 여하튼 이번 작품을 계기로 우리의 중국에 대한 시각과 관계성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한 때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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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뜨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위험한 비너스> 가 드디어 국내 독자들에게 새 인사를 하네요. 뜨는 작가라기 보다는 사실은 이미 국내 독자들층에 미야베 미유키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매니아층을 갖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계의 대표적인 작가라는 말이 타당할 것입니다. 추리스릴러장르의 작가로 상당한 팬덤을 가지고 있고 오랜세월동안 그것도 상당히 다작인 작가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너무나 잘 알듯이 추리 그 자체에 대한 천착보다는 추리와 인간 그리고 나아가 사회전반을 하나로 묶는 독특한 필력에 있지 않나라는 나름의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사건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인간 중심의 내러티브 (심지어 추리장르의 계열을 뛰어넘어 외도에 가까운 작품들 역시 결국 모든 내러티브의 중심에는 항상 따뜻한 인간이 있다는 것이죠) 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그런면에서 이번 작품 역시 색다른 면 (혹여나 어떤 독자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뜬금없는 변신을 기대할 수 도 있겠지남요) 은 찾아 보기 힘들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의 작품이 기대치를 갖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순간적인 외도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위험한 비너스> 는 역자가 후기에 밝혔듯이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품의 영화화를 염두해 두고 창작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여타의 추리스릴러계통의 작품과는 차별되는 부분들이 있죠. 상당히 오락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작품을 읽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게 하면서도 그다지 임팩트가 크지 않는 스토리같지만 치밀한 스토리 (이 부분도 상당히 주모면밀하게 내러티브 전체에 뿌려 놓으므로서 한가지의 스토리가 아닌 네가지 정도의 스토리를 가지고서 독자들을 공격하고 있죠) 의 다변화와 각각의 스토리에 가장 적합한 등장인물들의 선정,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완벽한 연기력을 끌어내는 전체적인 내러티브의 스릴감... 정말이지 역자의 추측이 빗나가지 않음을 느끼게 합니다. 또한 그 동안 하가시노 게이고의 팬들에게 익숙한 사건해결사의 이미지와는 완전 생뚱맞은 인물을 등장시켜 실소와 연민 그리고 일종의 동질감을 자연스럽게 끌어낸다는 점이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이번에 등장하는 사건해결사는 수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마음씨 좋은 노총각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는데요. 우선 이 부분이 독자들의 관심을 촉발합니다. 추리력이나 사건해결의 추진력, 명석한 두뇌회전 뭐 기본적으로 사건해결사가 갖추어야 최소한의 덕목조차 겸비하지 못한 인물인데요. 마치 미야베 미유키의 행복한 탐정시리즈에 등장하는 스기무라 사부로를 연상케 하는데요, 마음씨 착하고 도덕성까지 겸비하고 있지만 왠지 하쿠로는 스기무라 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것이죠. 특히 남성의 입장에서 보면 야!!! 라고 무릎을 칠 정도로 친숙하다는 것이죠.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노인과 미인, 어린아이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한다는 점은 정말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솔직한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콤비역으로 등장하는 미모의 제수씨 가에데는 하쿠로와 반대편의 이미지를 전해주죠. 미모에 지성에 여기에 왠만한 남성도 범접하기 힘든 추진력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는 그야말로 하쿠로의 의붓동생이자 열등감의 대상이었던 아키토의 현현이자 대리인으로 설정했다는 그야말로 캐스팅 자체에서 이미 영화화를 작심한 행태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죠. 여기에 만만치 않는 유마라는 조연들이 등장하여 그 흥미를 배가 시킵니다. 한마디로 등장인물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흥미로운 구성이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뭐 이번작품이 단순한 인물구도의 특색만으로 끌어간다면 이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라 할 수 없겠죠. 기본적으로 네가지의 스토리가 각각의 미스테리를 담고 있다는 스트럭쳐에 각각의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을 서서히 증폭시키면서 결말부분의 반전을 통해서 한꺼번에 그 실마리가 풀어진다는 점, 그리고 각각의 스토리가 연동되고 전혀 어슬프지 않게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히가시노 게이고의 구성력을 확인하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히가시노게 게이고의 전매특허인 인간중심의 사유는 어디로 실종했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이 이번 작품의 가장 획기적인 트릭으로 보면 될 듯합니다. 작가는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사유를 설렁설렁 뿌려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핏 봐서는 스토리와 인물에 집중하다 보니 놓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먼저 제목인 <위험한 비너스> 입니다. 왜 제목을 이렇게 선정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작품에 몰입하다보면 정말 작품의 제목을 망각해버립니다. 그만큼 내러티브에 끌리는 힘이 강하기 때문인데요. 두가지 관점에서 보게 되면 비너스라는 상징성에 대한 고찰일 것입니다. 신화속의 여신으로 인간이 넘어설 수 없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 존재이기도 한데요. 주인공 하쿠로는 제수씨 가에데의 미모에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그러지 않을 남성이 과연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비너스 그 자체로 표현되니까요) 아주버님과 제수씨라는 극복할 수 없는 도덕적인 틀 속에서 자꾸만 이성으로 다가오는 여인 즉 개인적인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경종같은 사유를 보여주죠. 여기에 큰 범위에서 인간의 삶을 연장하고 병을 치료한다는 목적에서 잔혹한 동물실험과 인체실험이라는 범 인류적인 도덕성의 갈등 문제가 같이 오버랩되어 <위험한 비너스> 라는 사유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물론 작중 작품인 '관서의 망' 이라는 작품 역시 일맥상통하는 전달체로 등장하죠. 비너스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발을 들이밀어서는 안되는 영역의 존재로 도덕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 어떤 불행한 결과가 올지 모른다는 일종의 경종으로 봐야할 듯 하네요.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 있는 현대의 우리에게 작가가 보내는 메세지이지 않나 싶네요.


           또한 이번 작품을 좀 더 재미있게 하는 요소들이 군데 군데 있습니다. 아비시니안 고양이, 피그미마모셋 원숭이, 다람쥐, 닥스훈트, 미니피그, 방귀가 멈추지 않는 스컹크 등이 등장하면서 독자들의 눈과 가슴을 즐겁게 하는데요. 그 동안의 작품에서도 느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 다양한 분야에 대한 천착이랄까 한번 파고들면 거의 전문가적인 관점에서의 서사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번 역시 동물병원을 통해서 다양한 애완동물들을 접해볼 기회를 주네요. 여기에 서번트증후군을 대변하는 뇌과학분야 그리고 프랙털도형이나 소수의 문제를 비롯한 수학계의 난제들등의 생소한 분야들이 등장해서 작품을 읽는 내내 인터넷을 검색하는 고충까지 더해주죠. 물론 흥미로운 고충이지만요. 또 한가지 유심히 보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요. 바로 '다이호 대학' 이라는 가상의 대학이 등장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니아들이라면 어디서 많이 들어봤을텐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죠. 전작인『라플라스 마녀』『질풍론도』에서 등장했던 과학기술력이 우수한 연구원이나 교수들의 대학으로 등장하죠. 이번 기회로 다이호 대학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과학관련 논거의 에비던스처럼 활용되고 앞으로도 그렇게 활용되지 않을까 싶네요.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오락성이 작품 전반을 강하게 좌지우지 하고 있음에는 틀림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각각의 스토리와 작품 전체적으로 표출되는 거대한 사유는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심도깊은 사유가 깔려있느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애완동물 즉 반려동물에 대한 입장도 같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죠. 비단 반려동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좀더 확장하면 우리가 사는 인간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죠. "수의사가 상대해야 하는 건 동물만이 아니야. 그 보호자와의 관계도 중요하지. 어떤 의미에서는 이쪽이 더 중요하고 까다로워. 세상에는 별의별 보호자가 다 있거든.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반려동물에게 애정을 쏟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쩔 수 없이 기르는 사람도 있어" 라는 말의 숨겨진 의미를 되새겨보게 되면 반려동물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까지 그 사유가 확장되어 버리죠. 여하튼간에 이번 작품 역시 독자들의 바램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만큼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의 일말의 외도를 기대했지만 그런 기대는 다음 작품으로 미루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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