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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뜨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위험한 비너스> 가 드디어 국내 독자들에게 새 인사를 하네요. 뜨는 작가라기 보다는 사실은 이미 국내 독자들층에 미야베 미유키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매니아층을 갖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계의 대표적인 작가라는 말이 타당할 것입니다. 추리스릴러장르의 작가로 상당한 팬덤을 가지고 있고 오랜세월동안 그것도 상당히 다작인 작가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너무나 잘 알듯이 추리 그 자체에 대한 천착보다는 추리와 인간 그리고 나아가 사회전반을 하나로 묶는 독특한 필력에 있지 않나라는 나름의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사건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인간 중심의 내러티브 (심지어 추리장르의 계열을 뛰어넘어 외도에 가까운 작품들 역시 결국 모든 내러티브의 중심에는 항상 따뜻한 인간이 있다는 것이죠) 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그런면에서 이번 작품 역시 색다른 면 (혹여나 어떤 독자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뜬금없는 변신을 기대할 수 도 있겠지남요) 은 찾아 보기 힘들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의 작품이 기대치를 갖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순간적인 외도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위험한 비너스> 는 역자가 후기에 밝혔듯이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품의 영화화를 염두해 두고 창작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여타의 추리스릴러계통의 작품과는 차별되는 부분들이 있죠. 상당히 오락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작품을 읽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게 하면서도 그다지 임팩트가 크지 않는 스토리같지만 치밀한 스토리 (이 부분도 상당히 주모면밀하게 내러티브 전체에 뿌려 놓으므로서 한가지의 스토리가 아닌 네가지 정도의 스토리를 가지고서 독자들을 공격하고 있죠) 의 다변화와 각각의 스토리에 가장 적합한 등장인물들의 선정,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완벽한 연기력을 끌어내는 전체적인 내러티브의 스릴감... 정말이지 역자의 추측이 빗나가지 않음을 느끼게 합니다. 또한 그 동안 하가시노 게이고의 팬들에게 익숙한 사건해결사의 이미지와는 완전 생뚱맞은 인물을 등장시켜 실소와 연민 그리고 일종의 동질감을 자연스럽게 끌어낸다는 점이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이번에 등장하는 사건해결사는 수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마음씨 좋은 노총각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는데요. 우선 이 부분이 독자들의 관심을 촉발합니다. 추리력이나 사건해결의 추진력, 명석한 두뇌회전 뭐 기본적으로 사건해결사가 갖추어야 최소한의 덕목조차 겸비하지 못한 인물인데요. 마치 미야베 미유키의 행복한 탐정시리즈에 등장하는 스기무라 사부로를 연상케 하는데요, 마음씨 착하고 도덕성까지 겸비하고 있지만 왠지 하쿠로는 스기무라 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것이죠. 특히 남성의 입장에서 보면 야!!! 라고 무릎을 칠 정도로 친숙하다는 것이죠.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노인과 미인, 어린아이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한다는 점은 정말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솔직한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콤비역으로 등장하는 미모의 제수씨 가에데는 하쿠로와 반대편의 이미지를 전해주죠. 미모에 지성에 여기에 왠만한 남성도 범접하기 힘든 추진력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는 그야말로 하쿠로의 의붓동생이자 열등감의 대상이었던 아키토의 현현이자 대리인으로 설정했다는 그야말로 캐스팅 자체에서 이미 영화화를 작심한 행태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죠. 여기에 만만치 않는 유마라는 조연들이 등장하여 그 흥미를 배가 시킵니다. 한마디로 등장인물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흥미로운 구성이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뭐 이번작품이 단순한 인물구도의 특색만으로 끌어간다면 이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라 할 수 없겠죠. 기본적으로 네가지의 스토리가 각각의 미스테리를 담고 있다는 스트럭쳐에 각각의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을 서서히 증폭시키면서 결말부분의 반전을 통해서 한꺼번에 그 실마리가 풀어진다는 점, 그리고 각각의 스토리가 연동되고 전혀 어슬프지 않게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히가시노 게이고의 구성력을 확인하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히가시노게 게이고의 전매특허인 인간중심의 사유는 어디로 실종했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이 이번 작품의 가장 획기적인 트릭으로 보면 될 듯합니다. 작가는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사유를 설렁설렁 뿌려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핏 봐서는 스토리와 인물에 집중하다 보니 놓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먼저 제목인 <위험한 비너스> 입니다. 왜 제목을 이렇게 선정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작품에 몰입하다보면 정말 작품의 제목을 망각해버립니다. 그만큼 내러티브에 끌리는 힘이 강하기 때문인데요. 두가지 관점에서 보게 되면 비너스라는 상징성에 대한 고찰일 것입니다. 신화속의 여신으로 인간이 넘어설 수 없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 존재이기도 한데요. 주인공 하쿠로는 제수씨 가에데의 미모에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그러지 않을 남성이 과연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비너스 그 자체로 표현되니까요) 아주버님과 제수씨라는 극복할 수 없는 도덕적인 틀 속에서 자꾸만 이성으로 다가오는 여인 즉 개인적인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경종같은 사유를 보여주죠. 여기에 큰 범위에서 인간의 삶을 연장하고 병을 치료한다는 목적에서 잔혹한 동물실험과 인체실험이라는 범 인류적인 도덕성의 갈등 문제가 같이 오버랩되어 <위험한 비너스> 라는 사유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물론 작중 작품인 '관서의 망' 이라는 작품 역시 일맥상통하는 전달체로 등장하죠. 비너스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발을 들이밀어서는 안되는 영역의 존재로 도덕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 어떤 불행한 결과가 올지 모른다는 일종의 경종으로 봐야할 듯 하네요.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 있는 현대의 우리에게 작가가 보내는 메세지이지 않나 싶네요.
또한 이번 작품을 좀 더 재미있게 하는 요소들이 군데 군데 있습니다. 아비시니안 고양이, 피그미마모셋 원숭이, 다람쥐, 닥스훈트, 미니피그, 방귀가 멈추지 않는 스컹크 등이 등장하면서 독자들의 눈과 가슴을 즐겁게 하는데요. 그 동안의 작품에서도 느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 다양한 분야에 대한 천착이랄까 한번 파고들면 거의 전문가적인 관점에서의 서사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번 역시 동물병원을 통해서 다양한 애완동물들을 접해볼 기회를 주네요. 여기에 서번트증후군을 대변하는 뇌과학분야 그리고 프랙털도형이나 소수의 문제를 비롯한 수학계의 난제들등의 생소한 분야들이 등장해서 작품을 읽는 내내 인터넷을 검색하는 고충까지 더해주죠. 물론 흥미로운 고충이지만요. 또 한가지 유심히 보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요. 바로 '다이호 대학' 이라는 가상의 대학이 등장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니아들이라면 어디서 많이 들어봤을텐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죠. 전작인『라플라스 마녀』『질풍론도』에서 등장했던 과학기술력이 우수한 연구원이나 교수들의 대학으로 등장하죠. 이번 기회로 다이호 대학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과학관련 논거의 에비던스처럼 활용되고 앞으로도 그렇게 활용되지 않을까 싶네요.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오락성이 작품 전반을 강하게 좌지우지 하고 있음에는 틀림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각각의 스토리와 작품 전체적으로 표출되는 거대한 사유는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심도깊은 사유가 깔려있느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애완동물 즉 반려동물에 대한 입장도 같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죠. 비단 반려동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좀더 확장하면 우리가 사는 인간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죠. "수의사가 상대해야 하는 건 동물만이 아니야. 그 보호자와의 관계도 중요하지. 어떤 의미에서는 이쪽이 더 중요하고 까다로워. 세상에는 별의별 보호자가 다 있거든.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반려동물에게 애정을 쏟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쩔 수 없이 기르는 사람도 있어" 라는 말의 숨겨진 의미를 되새겨보게 되면 반려동물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까지 그 사유가 확장되어 버리죠. 여하튼간에 이번 작품 역시 독자들의 바램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만큼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의 일말의 외도를 기대했지만 그런 기대는 다음 작품으로 미루어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