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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부터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지더니 뭔가 무척 쓰고 싶은 아침에, 1999년 언젠가, 2001년(즉, 모스크바) 언젠가 무지막지하게 써놓았던 글 두 편을 다듬어 본다. 이십대 중반, 그 꽃다운(!) 나이에 나는 정말 괴상하고 살벌한 생각을 하며 살았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세 번째 '악몽'을 써본다. 이 악몽 속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아주 다른 나다. "확실한 내 꿈에 나는 결석하였고...." / "내가 결석한 나의 꿈." 최근 계속 맴돌던 싯구를 찾아본다.

 

오감도: 시 제 15

 

1

나는 거울 없는 실내에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역시 외출중이다. 나는 지금 거울 속의 나를 무서워하며 떨고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어디 가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음모를 하는 중일까.

 

2.

죄를 품고 식은 침상에서 잤다. 확실한 내 꿈에 나는 결석하였고 의족을 담은 군용 장화가 내 꿈의 백지를 더럽혀 놓았다.

 

3. (...)

 

4.

내가 결석한 나의 꿈. 내 위조가 등장하지 않는 내 거울. 무능이라도 좋은 나의 고독의 갈망자다. 나는 드디어 거울 속의 나에게 자살을 권유하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그에게 시야도 없는 들창을 가리키었다. 그들 창은 자살만을 위한 들창이다. 그러나 내가 자살하지 아니하면 그가 자살할 수 없음을 그는 내게 가르친다. 거울 속의 나는 불사조에 가깝다.

 

5(...)

 

6.

모형 심장에서 붉은 잉크가 엎질러졌다. 내가 지각한 내 꿈에서 나는 극형을 받았다. 내 꿈을 지배하는 자는 내가 아니다. 악수할 수조차 없는 두 사람을 봉쇄한 거대한 죄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아마 메모하기가 힘들었는지 3연, 5연은 빠져 있다.  출처는 권영민 편집 전집. 옛날에는 <문학사상사> 전집으로 읽었고 작년에 <뿔> 전집으로 읽었다. 잘 만든 책인데, 또 좋은 출판사였는데 없어져서(?) 뿔난다 ㅠ.ㅠ

 

좀 많이 읽어 식상한 감은 있으나 <거울>과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거울>이 저 <오감도>의 온건(?) 버전 쯤으로 읽힌다.  

 

 

거울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딱한 귀가 두 개나 있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오 /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오

 

거울 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지를 못하는 구료마는 / 거울 아니었던 들 내가 어찌 거울 속의 나를 만나보기만이라도 했겠소

 

나는 지금 거울을 안 가졌소마는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소 / 잘은 모르지만 외로 된 사업에 골몰할 게요

 

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요마는 / 또 꽤 닮았소 /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

 

 

 염상섭의 <삼대>를 아주 느린 속도로(ㅠ.ㅠ) 조근조근(^^;;) 읽어가며, 이토록 타자 (+ 사회) 지향적인 작가가 있구나, 생각한다. 반면  10년 안팎(?)으로 설치다  간  저 어린 작가는 시종일관 '나-자의식'을 팠구나, 싶다. 물론, 산문을 읽어보면 전혀 다른 이상, 즉 김해경을 만날 수 있다. 이런 분열 내지는 이중인격이야말로 이상의 문학의 핵심일 법하다. <권태> 같은 좋은 수필들은 제쳐놓고, 이런 편지만 봐도 뭔가 아찔하다. 생활인-자연인 이상과 문학가 이상은 이토록 다른 것이다.

 

 

 

- 편지 중 마지막. <9>

 

어제 동림이 편지로 비로소 네가 취직되었다는 소식 듣고 어찌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이곳에 와서 나는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이 집안 걱정을 하여왔다. 울화가 치미는 때는 너에게 불쾌한 편지도 썼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을 놓겠다. 불민한 형이다. 인자(人者)의 도리를 못 밟는 이 형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가정보다도 하여야 할 일이 있다. /쪼록 늙으신 어머님 아버님을 너의 정성을 위로하여 드려라. 내 자세한 글, 너에게만은 부디 들려주고 싶은 자세한 말은 2, 3일 내로 다시 쓰겠다.

- 1937. 2. 8. 동생 김운경(金雲卿)에게 보낸 마지막 엽서. (4, 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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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즐겁지만 어렵고 또 어렵지만 즐겁다.

오래 전, 그러니까 학부 시절이니 20여년 전에 읽었던 문학사 책을 펼쳐본다. 그때 읽었던 것도 있고 읽으려 했다가 놓친 것도 있고 아마 읽었으나 그 사실 자체를 까먹은 책도 있고 반대로 안 읽고서도 읽었다고 착각하는 책도 있고 뭐 그럴 것이다. 도서관(새로 정리된 서고가 익숙치 않아, '길치'인 나로서는, 정말 짜증난다오 ㅠ.ㅠ) 한 번 돈 다음 꼭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되는 책은 주문해서 보는 중이다. 

 

 

 

 

 

 

 

 

 

 

 

 

 

 

 

전부 다(!) 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 현대문학사, 그 중에서도 소설 부분에만 집중한다. 권영민 선생은 정녕 교과서의 대마왕(^^)임을 보여준다. 내용의 알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세 줄 넘어가는 문장도 없이 무척 간결하고 정확하게 서술되어 있다. 최대한 정독 중. 조동일 선생의 저 유명한 저서는 앞 부분은 딱 자르고 5권만 주문. 조만간 읽기 시작할 터. 하지만 아무래도 '소설' 관련 그의 역작은 이것일 터. 언젠가 재미있게 읽은 듯하다.

 

 

 

 

 

 

 

 

 

 

 

 

 

 

한편, 이 참에 꼼꼼하게 읽어야지 다짐했다가 어마어마한 분량과 (익히 아는!) 너무도 진지한(ㅠ.ㅠ) 문체에 짓눌려 지레 포기한 역작은 이것. 하지만 경제 사정이 회복되는(과연 언제?ㅠ.ㅠ) 대로, 바라건대 겨울 방학 쯤엔 사서 볼 수 있길 바란다. (지난 여름, 정말로 우연찮게(!!) 아이의 유치원 근처에서 이 책의 필자를 만났다, 헐. 우리 아이한테 만원 주셨다...^^;;)

 

 

 

 

 

 

 

 

 

 

 

 

 

그 다음, 우리의 현대 문학 연구에서 결코 빼먹을 수 있는 그, 그의 그 많은 책들. 김윤식 선생이 김현 선생과 쓴 <한국 문학사>는 작년인가, 김유정에 관한 글을 쓰면서 비교적 정독한 바 있어, 다른 책을 더 주문했다.

 

 

 

 

 

 

 

 

 

 

 

 

 

 

 

사실 그는 각종 문학사도 많이 썼지만, 작가론-저서도 많아서 좇아가기가 힘들 정도다. 다시 읽고 싶은 책으론 아무래도 이광수 연구, 염상섭 연구, 그리고 좀 뜬금없지만, 임화 연구이다.(이상 연구는 비교적 최근에 다시 읽고 여전히 감동(!) 받았다.) 

 

 

 

 

 

 

 

 

 

 

 

 

 

 

물론 문학 연구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인바, 어떤 훌륭한 연구서도 연구되는 대상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즉, 해당 작품을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그럴 시간이 없으니 연구서를 읽는 것이다. 문학사를 뒤적이며 꼭 (다시) 읽고 싶은 몇몇 소설을 뽑아본다.

 

 

 

 

 

 

 

 

 

 

 

 

 

 

 

물론 일순위는 춘원 이광수. 내게 그는 아무래도 연애소설 작가처럼 남아 있는데, <무정>도 그렇고 <사랑>인가, <유정>인가 아무튼 고등학교 읽은 무슨 장편소설 한 편이 정녕 순애보처럼 기억되어 있어서 그렇다. <흙>, <단종애사>, 이런 걸 읽은 뒤의 느낌도 그렇다.

 

 

 

 

 

 

 

 

 

 

 

 

 

 

 

염상섭은 교과서에 실렸던 <삼대>를 비롯하여 대학 시절에 읽은 다른 소설까지, 단 한 번도 재미를 느끼지 못한 소설가이다. 그를 다시 읽으려는 것은 역시나 공부(^^;;), 즉 의무감에서이다. 모르겠다, 지금 다시 읽으면 그의 진가가 보일지도.

 

 

 

 

 

 

 

 

 

 

 

 

 

 

 

그밖에 언젠가 읽었던 이런 소설도 꼽아본다. 

잘 썼다, 못 썼다, 를 떠나 너무도 강렬했던 소설인 최서해의 <탈출기>, <기아와 살육>, <홍염>(?) 뭐 이런 것도 다시 읽으면 어떨까, 궁금하다. 그 다음, 처음 읽는 순간부터 너무 좋았던 김동인. 그는 단편을 잘 썼지만, <운현궁의 봄>, <젊은 그들> 같은 장편도 어릴 때는 재미있게 읽었다.

 

 

 

 

 

 

 

 

 

 

 

 

 

 

시간을 어디까지 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열심히 읽어보자, 다짐해 본다. 공부는 적절한 강제가 필요하니 강의 커리큘럼도 여기에 맞추어 조금씩 변경한다. 읽을 작품의 목록은 계속 추가될 것이다.

 

-

 

'추석'의 '추'가 '가을'을 의미함을 증명하듯,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 추석 날 오후부터 하루 반을 앓아누웠다. 꽉 막힌 코를 풀어가며, 까마득한 옛날(ㅠ.ㅠ)에 초고를 잡아둔 러시아문학 연구서를 다듬으며, 음, 반성해 본다. 국문학자들은 아무리 게을러도 외국문학자들에 비하면 반타작은 족히 하는 듯하다. 어지간하면 다 연구서 몇 권. 반면, 외국문학자는 (과연 외국어 배우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투자해서??ㅠ.ㅠ) 평생 퇴직할 때까지 연구서 한 두 권 없는 교수가 태반이다. 아, 물론, 평생 '퇴'할 '직'도 얻지 못하기 일쑤지만, 이것이 게으름을 정당화해주는 못한다. 그럴수록 더더욱 공부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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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년 전이냐, <문지문화원 - 사이>에서 세계문학읽기 강의를 했다. 저녁 시간, 일주일에 한 번. 오가는 길은 힘들었으나 강의는 참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공부를 많이 했고(그 밑천으로 지면이 주어질 때마다 세계문학 읽기를 연재했다) 수강생들과의 상호작용이 좋았다. 그때 첫 학기 수강생들이었나, 아무튼 그 당시 중년의 초입에 있던 분들이 소설가 됐다.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됐는데, 이 분도 소설 쓰신다. 그것도 엄청 열심히.

 

 

 

 

 

 

 

 

 

 

 

 

 

 

 제일 최근에 나온 작품집 중 맨 처음에 수록된 소설은 안락사(존엄사)의 한 양상을 다룬다. 일종의 미래 소설(심지어 SF)임에도, 혹은 그렇기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스스로 죽음의 순간을 택한 자들, 그와 관계된 자들(주로 자식), 마지막을 처리하는 ,뭐랄까, 직업적 저승사자(?)의 대화와 풍경이 흥미롭다. 엄청 사실적이다! 끝으로, 안락 서비스를 제공하는 남자가, 맨 마지막 (예상되는 것이긴 한데!) 다섯 살 때 자기를 버리고 떠난, 그 이후 자기를 한 번도 찾지 않는 엄마(늙은 여자)를 만나면서 전개되는 극적인 장면은, 너무 극적이어서, 오히려 좀 아쉬웠달까. 그밖에 표제작 <존슨...>, <타미카 레드> 등도 이런 판타지, SF의 느낌이다. <타미카 레드>는 일종의 로봇 창녀(?)가 나오는데, 전체적으로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느낌을 좀 받았다. 아무튼 이런 끼(!)를 지금껏 숨기고 있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런 세팅의 관점에서는, 얼마전에 읽은 배명훈의 소설을 연상시킨다. <첫 숨>보다는 <신의 궤도>가 좀 더 재미있게 읽힌다. '은경이'가 나도 마음에 드나 보다.

 

 

 

 

 

 

 

 

 

 

 

 

 

소설이 뭔지. 소설을 쓴다는 것이 뭔지.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소설을 쓰고 싶어 했고, 또 직업적 작가(=등단)가 된 것도 돌이켜 보면 아주 어려서이지만, 이렇게 어떤 식으로든 일가를 이룬 사람이 인생이 절반 이상 꺾어진 지점에서 소설을 쓰는 것을 보면  소설 쓰기의 묘한 마력을 새삼, 절감한다. 한편, '못 가본 길' 혹은 '가다 만 길'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어느 국문학자의 이런 소설집도 떠오른다.   

 

 

 

 

 

 

 

 

 

 

 

 

 

물론 잘 쓰기는 쉽지 않다. 이건 뭐 어릴 때부터 계속, 꾸준히 써온 사람도 마찬가지.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최수철의 최근작은 영 마뜩치 않다. 신작이 나와서 얼른 사 봤지만, 지루하다. 아, 물론, 그의 소설은 지루함이 특기이자 장점이다. 나는 그가 예전처럼 좀 독하게(?!) 지루해졌으면 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심지어 두 권짜리 두툼한 <페스트> 역시, 한 시절 열광하며 완독한 장편 <불멸과 소멸>에 이어 그득한 만족감을 준 장편.

 

 

 

 

 

 

 

 

 

 

 

 

 

 

 

--

 

사실상 개강. 지난 학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월한 학기다. 그 때문인지 계속 우울하고 나른하다. 그런 가운데 쓰이는 소설은, 한없이 날렵하고 가볍길 바란다, 라니, 너무 욕심인가. 이러나저러나 쓰자, 쓰자, 쓰자.

 

하루만에 자취를 감춰 버린 무더위가 사람을 머쓱하게 만든다. 너, 그렇게 쉽게 갈 거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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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제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 중에서 그 어떤 곳도 내가 당신을 떠나는 이류를 직접 설명해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밤이 염세적이다. 밤이 무거운 신음을 토한다. 벽의 몸으로 둘러싸인 밤의 내부와 외부, 내부의 외부, 내부에 둘러싸인 외부, 그 밤에 관해서 이제 이야기한다. 내가 살던 나라는 벽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그들이 살던 나라, 수니가 살던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282)

(...)

물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는 임의적이다. 우리는 물고기의 자의식 속으로 들어간다. 십이년 동안 목소리가 없는 수니. 벽에 매달린 수니의 혀. 수난은 달콤한 굴종이니, 내 혀를 잘라다오, 아니면 내 머리나, 그리하여 나를 없애다오, 내 시간을, 내 기억을, 내 해석을, 내 말을 없애다오. 그들은 나를 재판했다. (298)

 

- 배수아, <밤이 염세적이다>(<올빼미의 없음> 중)

 

 

 

 

 

 

 

 

 

 

 

 

 

 

 

배수아의 <올빼미의 없음>을, 예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어쩌다 놓친(<에세이스트의 책상>은 읽은 기억이 난다!) 책을 읽었다. 훑었다, 라고 해야겠다. 갑자기 미친 척, 눈을 찌르는 작품은 맨 마지막 수록된 <밤이 염세적이다>이다. 실은 제목이, 뭐랄까, 너무 찌르는 제목이라 제일 먼저 읽었다. 아, 간만에 이런 소설, 너무 좋아! (그 다음은 표제작인 <올빼미의 없음>. 마지막, 카프카의 작품 인용, 너무 좋다.)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인가. 아무튼 그 시절부터 배수아 소설을 간헐적으로, 쭉 읽어왔다. 이제 쉰을 넘긴 그녀. 점점 더 달라지는(혹은 다름이 보이는) 그녀의 모습, 역시 좋다. 더 과격해져라! 이렇게 쓰고도 책을 낼 출판사가 있으니, 살짝(많이, 인가?), 부럽다. 

 

소설은 물론 '이야기'이지만, 이야기의 얽힘(나아가 독자 입장에서는 접수)을 방해하는 이런 시건방지고 심드렁하고 도도한 문체, 간만에 너무 좋다. 누가 당신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짜라고 했던가. 결국 그 강박(!) 역시, 내가 나에게 부여한 것일 터. 서사의 강박으로부터의 자유.

 

19세기 소설(그야 소설의 교과서니까 당연히!)을 많이, 열심히 읽어온 까닭에 참 쉽지 않은 문제다. 나를 나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도 결국 나다. 아무도 나로 하여금 나 이외의 것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내 보기에 요즘 잘 살고 있는 작가 중 하나는 이 사람.

 

 

 

 

 

 

 

 

 

 

 

 

 

 

 

언젠가 그가 소설을 쓴다기에 놀랐다. 뭐, 솔직히 재밌지도 않았다. <고백의 제왕>은 지루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제일 최근 소설집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좋았다. 언젠가 몇 자 쓸 시간이 나면 좋겠다. 가사도우미가 무슨 클래식을 듣는 소설, 확 꽂히는 뭔가가 있었다.

 

소설가가 된 그가 최근 시집 냈다. 역시, 천생이 시인! <정오의 희망곡> 이후 훨씬 시다워진(?!) 이장욱을 본다. 그의 문장-시를 나도 반복해본다.

 

"나는 의욕을 가질 것이다."

 

세일즈포인트가 많은 것을, 어쩌면 모든 것을 이야기해준다. 님은 아마 소설이 아니라 시가 실존, 영혼의 형식인 듯. 흠, 이렇게 쓰고 보니, 나의 실존은 그럼 번역인가? 정녕 극혐, 노잼이다! 진짜 죽지 못해 하고 있다, 번역. 심지어 오늘도 오직 번역하기 싫어서, 그 이유 때문에 논문 쓴 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소설이 쓰이지 않아서, 더 정확히 초고가 잡힌 소설을 다시 보니 정녕 견적이 잡하지 않아서. - 넌 어쩜 소설을 이렇게 쓰느냐, 그 동안의 소설 공부는 똥구멍으로 한 것이더냐, 헐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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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이 읽는데 나는 통 안 읽히는 소설들이 있다. 심지어 많이 있다. 즉, 장안의 화제라 내 돈으로 사서 읽는데, 심지어 '끝장'까지 봤는데 아무런 인상을 못 남기는 책들. 예를 들면 이런 작품들. 

 

 

 

 

 

 

 

 

 

 

 

 

 

 

그의 작품들은 대학생들이 항상 언급하는(심지어 좋아하는) 것이라, 나도 <표백>부터 들춰봤다. 그러다 덮고, 여전히 인기가 있어 최근작을 봤으나 여전히 나로서는 너무 지루한 소설이었다. 그의 최근 인터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는 75년생 나와 동갑인데, 인터뷰 내용과 사진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젊음'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직 40대밖에 안 됐고 건강하고 쓸 얘기는 많고~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이런 책도 나왔더라. 제목만도 신선하다! 그러니 읽히는(팔리는) 것이다!^^

 

 

 

 

 

 

 

 

 

 

 

 

 

지난 학기에 문예창작 강의를 한 터에 현대소설을 읽었다. 정말이지 체계없이! 없는 체계에 체계를 준 것은 우선은 문단 권력의 취향-체계. 즉, 문학상 수상집을 읽는 것이다.

 

 

 

 

 

 

 

 

 

 

 

 

 

 

 

학기 중(말쯤?) 한강이 <맨부커> 상을 받는 바람에, 저 작품을 읽는 것이 다행인, 그런 재미나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아무튼 두 작품 모두 아이들의 취향은 아니었다. 너무 진지해서? 너무 고루해서? 문제는 유감스럽게도, 나의 취향도 별로 아니었다는 것이다..ㅠ.ㅠ 그래도 김경욱보다는 한강 쪽이 나로서는 더 재미있었다. 대체로 나는 그녀의 소설을 싫어하지 않는다.

 

 

 

 

 

 

 

 

 

 

 

 

 

 

 

 

 

 

 

 

 

 

 

 

 

 

 

 

 

 

 

 

 

 

좋은 작가들이 많다. 시간이 없어 많이는 못 읽었다. 그래도, 안 팔리기(읽히기) 때문에 악착같이 커리큘럼에 넣은 작가는 정영문. 음, 기대대로, 그는 역시 '소수문학'의 대변자가 될 수밖에 없으리라. 요즘은 뭐하고 계신지요.^^;

 

실제 문창과에서는 어떻게 강의를 진행하는지 모르겠으나, 장편이 참 문제이다. 주제에(ㅠ.ㅠ) 장편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더 그렇다. 아이들과 읽은 두 편의 장편, 정확히 '경'장편은 이렇다. 두 작품 다 참 좋았지만, 나의 취향에는 아무래도 날렵하고 이지적인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좀 더 맞았다.

 

 

 

 

 

 

 

 

 

 

 

 

 

그밖에 나 혼자 완독하고 아이들과 일부 텍스트만 공유한, 지난 몇 년간 내가 읽은 좋은 장편들. 우리 작가들이 역사 팩션 내지는 뭐랄까, 기왕지사 스토리가 있는 작품을 새로이(!) 써온 경우가 많음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은 경우 최고의 장편을 꼽으라면 천명관의 <고래>. 박민규의 장편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으나, 어째 나는 그의 이후 소설들이 잘 접수되지 않았다. 역시 요즘은 뭐하시는지.

 

 

 

 

 

 

 

 

 

 

 

 

 

소위 문단밖에서 가장 '핫'한 작가 정유정을 제대로 읽지 못해 유감이다. 책을 구입하여 몇 장을 넘겨봤는데, 문장의 밀도에 무척 놀랐다.(팔리는 건 다 이유 있다!) 모조리 다 장편이라, 언제 진지하게 시간을 낼 수 있길 바란다.

 

 

 

 

 

 

 

 

 

 

 

 

 

 

'대중문학 / 순문학' 관련 주제로 읽을 커리큘럼을 찾다가 2004년도 내가 처음 강의를 할 때 수강생이었던 영문과 학생이 어느덧, 진짜로(그는 그때 소설을 쓰고 싶어 했고 체호프를 좋아한다고 했으며 실제로 그런 풍의 소설 - 택시 기사 얘기- 을 써서 가져왔다) 소설가가 됐음을 알게 됐다. 워낙에 내 스타일은 아니나, 미국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실망하지 않을 법하다. 특히 <P의 도시>. 이제 제자도 나보다 더 잘 쓴다! -_-;; 하지만 이건 원래 문학-예술의 생리다. 이쪽엔 나이가 딱히 서열이 되지 못한다.(않는다.) 

 

 

 

 

 

 

 

 

 

 

 

 

 

 

소설들이 계속 쏟아진다. 참 다들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사놓고 못 읽는 책들이 부지기수. 다음에 또 문예창작 강의가 주어진다면 꼭 읽어보고 싶은 작가, 작품을 꼽아본다.

 

 

 

 

 

 

 

 

 

 

 

 

 

 

은희경과 배수아는 원래 읽어온 작가이고, 배명훈은 아직 읽은 바 없다. 한데 아이들이 제법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 사진이나 인터뷰 속의 그는 워낙에 말끔하게 생긴 외모 덕에 오히려 덜 문학적으로 보이는(이런 편견은 뭔가?! ㅋㅋ) 경향이 있다. 책만 잔뜩 사 놓았는데 언제 읽으려나. 아무래도 강제적으로 시간을 마련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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