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주문하여 읽고 있다. (나에게는^^;) 좀 권위 있는 분이 좋다고 하셔서 우선은 <빛그늘>부터 펼쳤다. '산문시'라던가. 이야기가 있는 시들이 좋았다, 그냥(?) 시보다. 다 옮겨 적으려니 힘에(-이) 부쳐 일부만 쓰지만, '이야기'가 좋은 '시'였다. 이야기가 좋으니 말맛(시의 맛, 시어의 맛)도 살아난다. 내용과 형식은 한 몸.

 

 

 

 

 

 

 

 

 

 

 

 

 

 

 

 

 

<이불 장수>

 

동대문시장 이불 장수가 나를 붙잡는다. (...)

 

사십년 이불 장사 베타랑의 수완에 말려들어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많은데 마음에 드는 게 없다니, 가격이 맘에 안 드나요? (....) 가격을 올린다. 어느새 둘둘 말아 포장을 한다. 카드를 내미니 현금 내면 십 프로 할인해준다고 한다. 호랑이도 장미꽃도 공작새도 다 가짜라는 거 안다. 이불 덮고 항우울제를 삼키고 눕게 될 것이다. 벌떡 일어나 소비자고발센터에 전화라도 해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꼼짝 못한다. 시장에서의 현급 결제는 반품이 안 된다고 했다.

 

이불 덮고 누워 곰팡이 코르디셉스를 읽는다. 코르디셉스는 왕개미 거미 속에 들어가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그러면 개미는 한낮에 나무로 올라가 나뭇잎을 물고 매달린다. 꼼짝 못하다 저녁 무렵 죽는다. 곰팡이는 밤사이 개미 머리를 뚫고 자라나 포자를 흩뿌린다. 포자는 나무 아래를 지나는 또다른 개미들에게 낙하 침투한다. 포자가 침투할 최고의 장소로 개미를 유혹해 나뭇잎에 매달리게 한 것은 곰팡이 코르디셉스. 어떤 화학작용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것일까, 호랑이 이불을 덮고 곰팡이 코르디셉스를 읽는다.

 

 

<기다란 그것>

 

그것은 논둑길을 가로질러 걸쳐져 있었다. 도망 중인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길을 막고 쉬는 것 같기도 하고. 놀라서 비명을 지른 것은 나였다. 중학생 사촌이 그것을 막대 채찍으로 때리고 때리고 때렸다. 뱀은 아무 잘못이 없었으나 꼼짝하지 않았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의기양양해진 사촌이 뱀을 막대기로 들어 올려 길가 물푸레나무 가지에 걸쳐놓았다. 그날 이후 그 나무 지나치지도 못하겠고 고개 들지도 못하겠고,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걸쳐 있던 뱀은 어딘가로 가고 없고 얇고 투명한 껍질만 걸려 나부끼던 그 장면, 죽은 척 살았던 그것, 죽어서도 살아 달아났던 그것.

 

베개 위에 누운 기다란 머리카락, 구부정 누운 한가닥, 지난밤에 죽은 듯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는, 잠시만 내 몸이었던 것, 당신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내게도 일어난다. 기다린 그것이 빠져나갈 동안 당신이나 나나 기댈 곳은 없고.

 

<어디가 세상의 끝인지>

 

산에 나무를 심으러 간다고 간 것이었는데 어린 토끼와 마주치게 되었다. 식목일이었고, 우왕좌왕하는 토끼 한마리를 향해 아이들이 고함치며 달려들고 있었다. 어린 토끼는 처음 맞는 이상한 광경에 어리둥절 달아나지도 못하고, 이런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라 아마 딴 세상의 소풍일 거라 짐작했다. 누가 토끼에게 바위 밑 구멍을 가리켜준 듯 토끼는 재빨리 구멍 속으로 파고들었고, 귀에 고함 소리 가득했으나 무슨 뜻인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그 소리 다 흩어질 때까지, 그들이 다 자라 어른이 될 때까지, 졸업 삼십주년이 될 때까지. 누군가 구멍 속으로 연기를 피워 넣자고 했고, 젖은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웠고, 그러면 토끼가 튀어나올 것이라 했다. 그러나 죽어본 적 없는 어린 토끼 뭐가 뭔지 몰라 무작정 굴속에서 기다렸다. 외롭고 어둡고 어지러운 이상한 소풍날, 기다리기만 하면 이 마술의 끝이 올 것만 같았는데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고, 빨간 눈을 뜨고 어둠 속에서 그냥 죽었다.

 

구멍에 손을 뻗어 휘젓다가 축 늘어진 토끼를 꺼낸 것은 은기였다. 졸업 삼십주년 동창회에서 은기가 말했다. 학수는 선생들이 토끼탕을 먹는 것을 보았다고, 토끼가 펄펄 끓던 학교 가마솥을 누구보다도 잘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토끼를 마주친 것은 식목일이 아니라 눈발 날리는 초겨울이었다고 성만이 말했다.(....)

 

<물고기 얼굴>

(...)

유사성이란 별똥별처럼 휙 지나며 눈앞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던데 보고 싶은 대로만 보니 물고기 얼굴에 인간 얼굴이 찍히며 펄떡, 펄떡, 펄떡.

 

 

* *

 

기본적으로 정가가 아니라(백화점) 흥정을 해서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을 많이 (따라) 다닌지라 <이불 장수>는 내내 기시감을 불러 일으켰다. 마지막, 곰팡이균 얘기, 흐억. <기다란 그것>의 뱀(을 목격한 아이들), <어디가 세상의 끝인지>의 토끼(와 어른이 된 아이들) 역시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는 비슷한 느낌. 토끼 묘사, 너무 좋아! 공포나 고통보다는 당혹감, 공감된다. 그밖에 신문 기사에서도 많이 인용된 <1mg의 진통제> 같은 이른바 '병원시'는 뭐, 말할 것도 없이 좋다. <참깨순> 같은 것.

 

 "참깨순 나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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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8세.)  

 

 

<무질서한 이야기들>

 

"네 멋대로 자고, 담배 피우고 입 다물고, 우울한 채 있으려므나"

출처를 잃어버린 인용을 좋아해

단단한 성벽에서 떨어진 회색 벽돌을 좋아해

매운 생강과자를 좋아해

헐어가는 입과 커다란 발을

(....)

 

(사족: '출처를 잃어버린 인용'^^; '좋아해', '뭐뭐해'라는 비교적 경쾌한, 그런 느낌을 주려는 어미, 기괴한 듯 말이 안 되는 듯하면서 또 말이 되는 언어 조합. "네 멋대로 자고, 담배 피우고 입 다물고, 우울한 채 있으려므나." 아, 그리운 '무질서한'! 시절.  밑에 <나는>도 언어 조합이 좋다.  

 

<나는>

 

너무 삶은 시금치, 빨다 버린 막대사탕, 나는 촌충으로 둘둘 말린 집, 부러진 가위, 가짜 석유를 파는 주유소, 도마 위에 흩어진 생선비늘, 계속 회전하는 나침반, 나는 썩은 과일 도둑, 오래도록 오지 않는 잠, 밀가루 포대 속에 집어넣은 젖은 손, 외다리 남자의 부러진 목발, 노란 풍선 꼭지, 어느 입술이 닿던 날 너무 부풀어올랐다 찢어진

 

<러브 어페어>

 

그런 남자랑 사귀고 싶다.

아메리카 국경을 넘다

사막에 쓰러진 흰 셔츠 멕시코 청년

너와

결혼하고 싶다.

바그다드로 가서

푸른 장미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폭탄처럼 크게 들리는 고요한 시간에

당신과 입맞춤하고 싶다.

학살당한 손들이 치는

다정한 박수를 받으면서.

 

크고 투명한 물방울 속에

우리는 함께 누워

물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은빛 물고기에게,

학살자의 나라에서도

시가 씌어지는 아름답고도 이상한 이유를.

 

(사족: 어쩌면 에로틱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도 진은영 특유의 매력인 듯. 특히 여성 시인들로만 논의를 한정하면 더더욱 그런 듯. <훔쳐가는 노래>의 '가난한 아가씨'^^; / "크고 투명한 물방울 속에 /(...) 함께 누워" 이런 이미지, 사랑, 러브 어페어의 이미지로 참 좋다. 나도 한때는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ㅋ)

 

*

 

철학 공부하는 사람답게 인용문도 좋다.

니체 인용: "나는 내 자신의 생각들로 너무 달궈져 화상을 입고 있다."

스피노자 인용: "나는 인간 행동을 조롱하지도 한탄하지도 저주하지도 않고 오히려 인식하기 위해 진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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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문지의 술집 모임에서 오다가다 마주쳤다. 몇 마디 대화도 했을 법하다. 길고 마른, 굉장히 건조하고 지적인 느낌의 여자. 삼십대, 또한번 마주쳤다. 만났다, 라고 해도 될 만큼 그녀의 느낌, 말들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아파서 담배를 끊었는데 다시 피우고 싶다고. "담배를 좋아했던 거죠."(-가봐요.) 나는 그때 완전 골초였다. 세월이 흘러흘러, 사십대 또 그녀를 봤다. 짧은 스침이지만 인상은 강렬했다. 그녀는 여전히 말랐고 길었고 건조하고 조용하고 이지적이고, 무엇보다도, 또 몸이 좋지 않았다. 많은 여성 시인들이 여성성을 한껏 뽐낼 때 진은영은 뭔가 딴 세상 사는 사람인 듯(실제로도 그런가?!^^;) 이런 시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두 시집 중 잘 쓴 걸 꼽으라면 <우리는 매일매일>일 테지만, 왠지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에 더 정이 가는 것은, 글쎄, 이십대의 치기^^가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몸의 느낌과 비슷하게, 손가락도 길고 가늘어 인상적이었는데, 시에도 곧잘 등장한다. 분석할 재간은 안 되고 스마트폰으로도 수시로 읽어 볼 수 있게, 여기다 옮겨둔다.   

 

 

 

 

 

 

 

 

 

 

 

 

 

 

 

 

(2003년, 33세.)

 

<서른 살>

 

(...)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듯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

 

 

<봄이 왔다>

 

사내가 초록 페인트 통을 엎지른다

나는 붉은색이 없다

손목을 잘라야겠다

 

 

<견습생 마법사>

 

대마법사 하느님이 잠깐

외출하시면서

나에게 맡기신 창세기

수리수리 사과나무 서툰 주문에,

자꾸만 복숭아, 복숭아 나무

(...)

복숭아나무 아래 떨어지는 분홍 꽃잎, 꽃잎

뉴턴은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도 상대성 원리도 우주선도 사라진다

(...)

그래도 나는 오늘, 한 그루 말[言]의 복숭아나무를 심으리라

 

(사족: 말도 많고 장난기도 느껴지고 이른바 현학취도 보인다, 그녀에게도 이런 것이 있었나 보다.)

 

<대학시절>

 

내 가슴엔

멜랑멜랑한 꼬리를 가진 우울한 염소가 한 마리

살고 있어

종일토록 종이들만 먹어치우곤

시시한 시들만 토해냈네

켜켜이 쏟아지는 햇빛 속을 단정한 몸짓으로 지나쳐

가는 아이들의 속도에 가끔 겁나기도 했지만

빈둥빈둥 노는 듯하던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하며

담담하게 담배만 피우던 시절

 

(사족: 처음에 '멜랑꼴리한'이라고 읽었는데 옮기면서 보니 '멜랑멜랑한'이다. '-꼴리'는 뒤에 따라오는 단어 '꼬리'에 표현된다. 꼬리, 우울, 염소, 시시한 시, 종이, 고흐, 담배 등 여러 이미지가 너무 좋다, 진은영스럽다.)  

 

 

<긴 손가락의 詩> 

 

시를 쓰는 건

내 손가락을 쓰는 일이 머리를 쓰는 일보다 중요하기 때문. 내 손가락, 내 몸에서 가장 멀리 뻗어나와 있다. 나무를 봐, 몸통에서 가장 멀리 있는 가지처럼, 나는 건드린다, 고요한 밤의 숨결, 흘러가는 물소리를, 불타는 다른 나무의 뜨거움을.

 

모두 다른 것을 가리킨다. 방향을 틀어 제 목에 대는 것은 가지가 아니다. 가장 멀리 있는 가지는 가장 여리다. 잘 부러진다. 가지는 물을 빨아들이지도 못하고 나무를 지탱하지도 않는다. 빗방울 떨어진다. 그래도 나는 쓴다. 내게서 제일 멀리 나와 있다. 손가락 끝에서 시간의 잎들이 피어난다.

 

(사족: 이 시는 내용보다 제목이 좋다. 시인 자신의 길고 척박해 보이는, 그러나 또 단단해 보이는 손가락과 잘 어울린다. 아무나 쓸 수 없는 시. 오직 손가락이(그리고 몸도!) 긴 시인만 쓸 수 있는 시. 겸사겸사, 사십이 넘으니 손가락(정확히 관절)이 상하는 일이 많아, 그것의 중요성을 알겠다. 사람이란 수족, 특히 손을 못 쓰면 제 뒤처리도 못하는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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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1 13: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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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1 1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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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1 14: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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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시집 세 권을 샀다. 이 중 한 권은 두번째 주문이다. <훔쳐가는 노래>부터 읽었다. 눈에 들어오는 시들이 몇 편 있지만, 단연코 웃겼던, 재미있었던 것은 <멸치의 아이러니>. 고급한^^; 말 속에 든 엄마의 한마디, 압권이오!

 

 

<멸치의 아이러니>

 

 

멸치가 싫다

그것은 작고 비리고 시시하게 반짝인다

 

시를 쓰면서

멸치가 더 싫어졌다

안 먹겠다

절대 안 먹겠다

 

(도시락..)

 

대학에 입학하자 나는 거룩하고 순수한 음식에 대해

밥상머리에서 몇달간 떠들기 시작했다

문학과 정치, 영혼과 노동, 해방에 대하여, 뛰어넘을 수 없는 반찬 칸과 같은 생물들에 대하여

잠자코 듣고만 계시던 어머니 결국 한 말씀 하셨습니다

"멸치도 안 먹는 년이 무슨 노동해방이냐"

 

그 말이 듣기 싫어 나는 멸치를 먹었다

멸치가 싫다, 기분상으로, 구조적으로

그것은 작고 비리고 문득, 반짝이지만 결코 폼 잡을 수 없는 것

 

(....)

 

표제시 <훔쳐가는 노래>: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N개의 기억이 고요해진다> - 시 자체보다도 심보선의 무슨 시에 나오는 낱말들로 구성했다다니, 이런 시쓰기도 가능하구나 싶다.   <빌뇌브의 피에타> : 최근 시 <스타바트 마테르>가 생각난다. 이런 식의 이미지, 모티브가 계속 시인에게 있었던 것이다. 쭉 읽다가 아,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역시나 또(!) 시인의 말. 시인들은 자신의 책의 처음과 끝을 이렇게 장식(시작, 마무리)하는구나. "이 불미스러운 장수와 질 나쁜 불멸에 나는 곧 무감해질 테지."

 

서른살 무렵,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카프카가 죽은 나이까지는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하느님은 내 소원을 잘못 알아들으신 것 같다. 카프카가 쓴 것처럼 쓸 수 있을 때까지 살게 해달라는 이야기로. 그리하여 나는 그 누구보다 오래 살고, 어쩌면 영원히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이 불미스러운 장수와 질 나쁜 불멸에 나는 곧 무감해질 테지. 문학은 나에게 친구와 연인과 동지 몇몇 을 훔쳐다주었고 이내 빼앗아버렸다. (...) 2012년 8월 진은영

 

신문 기사를 보니 올해 작가의 신작 시집이 나오는 모양인데 그 전에 빨리 마저 읽어야겠다. 대체로, 시를 읽는 것이 굉장히 오랜만, 한 20년만인데 참 좋다. (유시민이 암시한 대로^^;) 가장 고급한, 수준 높은 글쓰기는 시, 그다음 소설, 그다음 에세이인 것 같다. 학술논문과 학술서는 그다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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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참척慘慽을 당하고 가장 힘들었던 일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원망을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거였다. 원망스럽기만 한 게 아니라 부끄러움까지 겹쳤다. 저 여자는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기에 저런 일을 당했을까? 수군거리면서 손가락질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이 나만 보고 흉보는 것 같아 두문불출하고 있어도 하늘이 부끄럽고 땅이 부끄러웠다. 슬픔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게 원망과 치욕감이었다. 하늘도 부끄럽고 땅도 부끄러워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피할 곳이 없으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때 만난 어떤 수녀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뭐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https://blog.naver.com/lotr12/222154400838

(박완서가 남편, 아들과 찍은 사진을 볼 수 있음)

 

*

 

크고 작은 불행은 겪으면 누구나 던지게 되는 질문. 왜 하필 나야?! - 왜 너는 안 되는데? Why me? Why not? - 이렇다고 조 바이든 관련 글들에서 보이는 문구. 박완서는 큰 아픔을 겪은 사람(여자/엄마/작가)답게 그 이야기를 여기 저기에 많이 써놓았다. 아들 졸업 사진, 남편 아들과의 식사 등까지 남아 있고 (짐작컨대) TV 방송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정말이지 인기 작가였나 보다. 아마 혹자는 (정말이지 못됐지만 이 역시 우리 안의 본능일 터!) '샘통',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으리라.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더 큰 문학을 이룩한 것은 역시, 그녀의 힘. 여러 사람(+여자+엄마+작가) 기죽인다^^;

 

위의 인용문 중 특히 "저 여자는..."이라는, 가상의 타자들의 수군거림. 아직도 비틀거리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감히 비유하자면, '니들도 한 번 당해봐라~'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다른 한편, 어떤 불행에 처한 사람을 보았을 때 '무슨 죄'를 지었겠지, 라고 생각하면, 우리 마음이 편해지는 측면이 있다. 그 '무슨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그 불행은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자꾸 원인을 찾으려는(흉을 보려는) 것이다. 가령, 노산이 아니었다면 다운증후군은 없고, 흡연 안 했으면 기형아 출산도 없고, 운전대를 안 잡았으면 교통 사고도 없고, 밤에 술자리에 안 갔으면 성추행도 안 당했고 등등. 하지만 대략 마흔(사람마다 다르겠지만)은 그런 나이인 것 같다.

 

과연 '무슨 죄'를 지어야 '벌-불행'을 받나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고 또 일정 부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박완서는 작가지만, 즉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워할^^; 직업이 아니지만, 미모의 판사 출신 전 국회의원 정치인이라면 다르다. 많은 이들이 나경원과 다운증후군 딸을 '샘통'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마치 의인의 타락을 기다리듯, 그런 마음으로. 얼마 전 인구에 회자된 방송을 얼핏 보며 든 생각. 아, 나경원은 정말이지 여자들, 엄마들, (특히) 장애아 내지는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기죽이는구나^^; 위의 글을 인용하자면, 출산과 동시에 자신이 장애아를 낳았음을, 혹은 내 첫 아이가 장애아임을 알게 된 그녀에게는, 이후에도, '슬픔'은 있었겠지만, '원망'과 '치욕감'(부끄러움)은 별로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왜 없었을까. 하지만 그녀 나름으로 그것을 중화(?)시키는 방법마저 터득했던 것이리라. 환갑도 멀지 않은 나이에 굳이 서울 시장 하고 싶을까? 이건 게을러터진 우리 같은 범인(보통 사람^^;)의 생각이고, 일반적이지 않게 태어난 아이를 저 정도로 키우고 자기 일까지 열심히 하는 그녀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진정한 위너, 이긴 하다. 

 

*

 

수필집이긴 하지만 박완서의 글을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의외로 문장이 짧지 않다. 은근히 중언부언도 많고 고집스레 반복되는 어휘로 인해 문장이 꼬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건 좋은 문장이다. 역시 중요한 건 내용. 이른바 미문이 결코 좋은 문장인 것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또 하나는 그녀의 소설이 거의 백프로 자전소설인데, 언제부터 가톨릭 신자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서유럽의 고백문학과 많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고백의 대상이 주로 생활 속의 죄악^^, 속악이긴 한데 큰 맥락은 그렇다는 것이다. 

 

 

 

 

 

 

 

 

 

 

 

 

 

 

 

루소 역시 인간의 표본으로서 자신을 내세우며 미주알고주알 있는 얘기 없는 얘기를 다 늘어놓는다. 박완서는 생활 속에서 자신이 겪는 얘기들, 마주치는 사람들, 보고 들은 풍경들 등을 일일이, 역시나 미주알고주알 쓰고, 그것에 구조=형식을 부여한다. 후자는 물론 문학적 재능이고, 전자는, 작년 문단에서 화제가 된 작가의 표현의 자유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쓰려면, 본의 아니게?! 타인의 얘기가 들어가게 되고, 그 타인에는 내가 만난, 들은 사람이 포함된다. 박완서는 어쩌면 낯뜨거운가, 아무튼 자신의 남편과 자식들, 친인척들 얘기도 거침 없이 쓰고, 가령 (지난 수필처럼) 어쩌다 마주친 택배기사(소년) 얘기도 가감없이 넣는다. 아니, 문학적 가감 있이(!) 넣는다.

 

또 하나. 나아가 비교적 가볍든 아주 무겁든, 이런저런 얘기를 쓰면서, 그렇게 씀으로써 그녀는 자신의 죄악을 스스로 용서하고 또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른바 글쓰기 치료, 라고 할 만하다. 직업이 읽고 쓰고 (그것을 갖고) 떠드는 것인 나는, 요즘 더더욱 그것의 효과를 절감한다. 너무 아프고 힘들 때는 쓸 수도 없다, 다들 알지 않는가. 아픈 것, 힘든 것에 대해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치료의 시작. 그리고 쓰면서 절반 이상 치료된다. 나머지 상처, 슬픔은  다음 쓸 거리를 위해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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