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다. 잘 쓴 장편을 찾기가 말이다. 잘 쓴 단편은 넘치는 것도 같다. 적어도 한 주(3시간)에 쓸 한 두 편의 단편을 고르는 것은 힘들지 않다. 문단 시스템도 단편을 쓰도록, 또 고르도록 편성되어 있고 소설창작 수업도 그렇게 가는 것 같다. 문제는 장편. 어쩌면 고루하게도, 모름지기 소설이란 장편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게 참 유감이다. 고전 읽는 수업(각종 어문학과 문학 수업이 다 이런 식)이 아니라 소설 쓰는 수업에서 장편을 읽기가, 또 평하기가 쉽지 않는 거다. 그럴 수록 한 두 편을 엄선하는 데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분량이 만만한 경장편으로 기운다. 이런 시스템에 문제는 없는지, 물론 반성해볼 필요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읽어본 경장편 중 으뜸은 김영하다. 

 

 

 

 

 

 

 

 

 

 

 

 

 

 

김영하 소설은 어지간히 다 읽었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은 작가의 창작 전체를 놓고 봐도 수작, 심지어 걸작인 것 같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이래 아마 김영하의 장기가 제일 발휘된 소설. 한데 이 소설과 어느 프랑스 소설이 영향 관계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읽어보려고 주문해봤다.

 

 

 

 

 

 

 

 

  

 

 

 

 

 

또 다른 경장편의 견본으로 황정은 소설도 좋았다. 그녀는 여전히 많은, 좋은 소설을 쓰고 있다. 한데, 이건 정말 개인적 취향인데, 다소 감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왠지 재독하게 되지는 않았다. 단편은 그런 감상성이 짧으니(?) 아마 그쪽으로 읽게 될 듯하다.

 

 

 

 

 

 

 

 

 

 

 

 

 

그 밖에 뭐가 있나. 최근 읽었거나 읽으려고 샀거나 '눈팅'만 해뒀더가 한 장편을 뽑아본다. <홀>은 <식물애호>라는 상당히 잘 쓴 단편의 장편 버전이라, 구미를 자극한다. <82년생 김지영>은 작품 자체로는 재미 있었으나, 흔히 말하는 문학성이랄까, 이런 측면에서 할 말이 많지 않은 것이 나로서는 문제다. 천명관,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만 어째 이번 장편은 애매(?)하다. 왠지 <... 브루스 리>의 따분한 재탕일 것 같은 느낌. 이제 그는 '남자(만)의 세상'(느와르 장르의 소설적 변용 같은)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 결혼은 하셨는지... ㅋ 

 

 

 

 

 

 

 

 

 

 

 

 

 

 

 

또 어떤 장편 소설이 있으려나. 이렇게 검색을 해봐야 할 정도니 이건 뭔가 이상한 것 아닌가. 한편 외국 작가들이 쓰는, 그래서 국내에 번역되는 소설은 거의 다 장편이다. 우선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에 이어 <나를 보내지 마>. 내 입장에서 '취향 저격'이라고 할 소설이 아님에도(나는 건방진 작가를 좋아하는데 이 작가는 너무 겸손하다!^^;;), 작품의 무게와 주제의식,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배여 있는 장인정신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둘 다 일인칭. 그럼에도 흔히 일인칭 장편에서 우려되는 자의식의 과잉, 서사의 불균형 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보다 더 부각되는 것은 주제의식이다. 우리 인간 모두의 메타퍼로서 (대저택의 집사에 이어) 장기기증자-클론들. 사실 이거 엄청 살 떨리는 얘기인데, 너무 담담해서 더 무섭다. 1차 기증을 끝내고 회복되면 또 2차 기증으로, 그리고 회복되면 또 3차 기증.이 클론들이 이식 전에 주로(오직?) 하는 일은 그 기증자들을 간병하는 일. 이거야말로 정말 우리 인간과 삶의 메타퍼다. 불쌍한 것들.(Poor creature?)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과 같은 뜻인 것이다.

 

 

 

 

 

 

 

 

 

 

 

 

 

 

 

줄리언 반스의 신작도 뒤적여 보았다. 그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읽어봤으나 좀 지루했던 것 같다. 소련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를 소재로 쓴 <시대의 소음>은 어떤가. 이게 무척 칭찬 받은 소설임에도, 나는 참 별로였다. 아무래도 '영혼의 형식'이 아니다. 저 엄정하고 점잖은,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영국식 세계관과 문체에, 광기와 혼돈의 육화인 러시아-소련의 예술혼을 담아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 나의 개인적 생각이고, 이런 시도 자체가 문학적으로 얼마나 유의미한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문학의 소재, 문체, 시도 등은 다양할수록 좋다.

 

 

 

 

 

 

 

 

 

 

 

 

 

 

덧붙여, 이 소설 읽다보니 영국인들의 우주주의, 최대주의랄까, 그런 것을 또 한 번 상기하게 됐다. 선진국-제국다운 (참 시건방진^^;;) 담대한 시도이다. 오래 전 도스-키를 공부할 때 도-키 평전의 모범이었던 <도스-키>의 저자 역시 영국인 러시아역사학자이다. 그를 두고 오래 전 강의실에 김윤식 선생이 하셨던 말씀을 대략 복기해본다.  "러시아 역사를 연구하다 보니, 저 미개한 야만의 땅에 이토록 기똥찬(기막힌) 천재 작가 하나 있더라, 그래서 이 위대한 역사학자가 그 바쁜 와중에 평전을 하나 써주시고~ "

 

 

 

 

 

 

 

 

 

 

 

 

 

 

 

미뤄두었던 독일 소설도 한 번 펼쳐본다. 영화로 먼저 봐서 소설책에 좀 미안한 느낌. <책 읽어주는 남자>의 경우에도 인물, 스토리 모두 좋지만, 이 정도 좋은 소설은 적지 않고, 이 소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시나 주제의식인 것 같다. 전에도 쓴 것 같은데 바로 법과 정의, 죄와 벌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다.  

 

 

 

 

 

 

 

 

 

 

 

 

 

 

대학 시절에는 프랑스 소설을 많이 읽은 것 같은데, 요즘은 뭐가 읽히는지. <개미>를 처음에만 좀 좇아갔기 때문에 아예 놓친 것도 같다. 어느 순간부터 너무 가볍다, 라는 느낌도 들었던 듯하다. 하지만 어쩌면 실은 내가 너무 무거워진 것은, 그래서 처져 버린 것은 아닌지. 잠깐 반성해보는데 이것이 바뀔 수 없는 진리인지라 더 슬퍼진다.

 

 

 

 

 

 

 

 

 

 

 

 

 

 

 

장편의 역사를 더듬고 장편의 질을 높일 필요가 있어보인다. 말이 쉽지, 현실이 녹록치 않다. 작년에 비교적 정독, 재독한 장편들. 참 갈 길이 멀고나.

 

 

 

 

 

 

 

 

 

 

 

 

 

 

 

*

 

그래서 우리는 고전을 대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적어도 지금 시간낭비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불안은 적다. 그럼에도 이 소설, 정녕 안습, 노잼, 극혐이다.^^;; 번역이 참 좋은데, 이 좋은 번역이 아까울 정도의 소설. 역시 벨린스키의 평(졸작)은 진리.  곁다리로, 아이의 발달센터 근처에 커피숍 하나를 새로 발굴(?)했다. 하지만 참, 입에 맞는 떡이 없다. 커피도 맛있고 전망도 좋고 다 좋은데 오후 1시에 문을 열고, 무엇보다도, 이 엄동설한에 무척 추운 것이다. 이런 것이다. 그러니 투덜대지 말자. 핫팩을 배에만 붙이지 말고 등에도 붙이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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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인정받는 소설가도 아니고 나 스스로도 아마 내가 하는 활동 중 제일 못하는 것이 소설쓰기라고 생각하는, 문제가 심각한 소설가이다. 그럼에도 소설 창작 강의를 기꺼이 맡은 이유는, (돈이 제일 크다마는 -_-;;) 좋은 소설이 어떤 것이냐, 어떻게 해야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나, 하는 고민을 그 누구보다도 많기 하기 때문이다. 통상 수업의 전반부에는 고전(단편)을 읽고 후반부에는 요즘 소설을 읽는다. 바빴지만 그래도 지난 7월, 수업 하는 김에 꼭 읽고 싶은 소설 몇 권을 챙겼다. 같이 읽으면 좋겠다 싶은 텍스트, 단연코 으뜸은 이것.

 

 

 

 

 

 

 

 

 

 

 

 

 

 

<사랑하는...>을 쭉 읽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소설 몇 편을 학생들과 공유했다. 우선은 짧아서 좋고, 그리고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많은 작품들이 소설-산문임에도 거의 시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운율이 느껴졌다. 성석제를 오랜만에 읽는데, 그 특유의 사람과 사물에 대한 정겨운 사랑, 건강한 유머, 각종 부정적인 일에 대해 궁상 떨지 않음 등이 너무 좋았다. 이런 식의 소설을 쓰는 학생이 있었는데, 답안에 성석제 얘기를 많이 썼더라. 역시나 유유상종. 한동안 이만큼 좋은 콩트(엽편소설)는 나오기 힘들지 않나, 싶다. 왜냐면, 거듭 강조하거니와, 사람과 사물에 대해 성석제만큼 정겨운 말-이야기를 해주는 작가가 드물기 때문이다. 

 

 

 

 

 

 

 

 

 

 

 

 

 

 

 

여전히 체호프를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그리고 러시아문학이니 만큼 그 특유의 우수와 우울은 어찌할 수 없다.

 

 

 

 

 

 

 

 

 

 

 

 

 

 

 

지난 봄 학기 미뤄뒀다가 읽은 김영하는, 그가 여전히 우리 시대에 최고 작가임을 보여준다. (<알쓸신잡>에 나오는 김영하가 내 눈에는 여전히 젊어 보이는데, 이것 자체가 내가 이미 늙었음을 보여주는 슬픈 증거.) 개인적으론 그의 경장편 <살인자의 기억법>이 더 좋았지만, 이미 두 학기를 했고 또 신작이 나와서 단편 두 편을 읽었다.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 이상문학상 받은 <옥수수와 나>. 전자는 좀 지루했고(혹은 작위적으로 여겨졌고), 후자는 아, 난감했다. 이 작품은 예전에도 읽었는데 무척 재미있다는 기억을 갖고 있었던 건 완독을 안 해서였던 것이다 -_-;; 이번에 다 읽어보니, 후반부(소설가 주인공이 출판사대표-사정의 마누라와 어쩌고 하는)가 거의 파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최근 소설 중 제일 재미있는 축에 속하고,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고 또 공감을 보여 김영하의 힘을 절감했다. 한편, <살인자의 기억법>은 다들 아시겠지만, 영화로도 나왔다. 소설 속 김병수(?)는 어딘가 위트 있는 모습이었는데, 영화 속 설경구에겐 (적어도 스틸컷 상으론) 그게 안 보여서 약간 아쉽다.  아무튼 이 장편은 최근 10여년간 가장 잘 쓴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김영하의 제자(?)이기도 한 김애란의 신작도 읽었다. <침묵의 미래>, <어디로...>에 집중했는데, <달려라 아비>를 쓴 어린(!) 작가가 이토록 성장했음에 짧은 시간이지만 만감이 교차했다. 개인적으론, 지금의 김애란은 너무 감상적이지 않나, 싶지만, 우리 독자들은 이런 따사로운 감상을 원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어딘가 무라카미 하루키 냄새가 짙은데, 요즘 한국 소설 전반의 경향인가 싶기도 해서, 안타깝다.) 무엇보다도, 이미 삼십대도 중반으로 들어선(넘긴?) 그녀의 소설에 이십대 독자들이 호응한다는 점. 이 역시 좋은 일이다. 소설이란 혼자 읽으려고 쓰는 게 아니므로!

 

 

 

 

 

 

 

 

 

 

 

 

 

 

 

 반면, 이 분은 여전히 '나만의 소설'을 고집하는 듯하다. 여기에 어떤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서는 아닐 테고, 아마도 이렇게밖에 쓸 수 없어서, 일 거라고, 나 혼자 생각해본다. 아무튼 드디어 그의 신작을 읽었다. 시간에 너무 쫓겨 다는 못 읽고 표제작을 비롯하여 한 두 편, 때론 스킵. 정영문 소설의 장점-미덕 중 하나는 바로 이 '스킵'이 기법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이다, 움하하핫. 가령 <오리무중에 이르다>의 경우, '나'와 웬 여자(애인인지 아닌지 애매한)가 나와, 날도 추운데 어디 호숫가인가로 떠난다, 떠났다가 너무 추워 숙소로 기어들었다, 대략 이런 식의 스토리인데, 보다시피 스토리랄 것이 딱히 없어 아무 데나 펴서 아무렇게나 읽어도, 너무 좋은 것이다! 이 역시 정영문 식 유머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스토리가 제법 만져졌던 <어떤 작위의 세계>보다 더 재미있었다. '개의 귀', 이런 것도. 그리고 어떤 심심한-지루한 도시 얘기도. 경상도의 촌구석에서 자란 그에게, 어떻게 이토록 도시적인(?!) 공간 감각이 가능한지. 부럽다.

 

 

 

 

 

 

 

 

 

 

 

 

 

 

 

고전을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 재미는 없을 지언정 그것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반타작은 한다. 하지만 현대 소설을 읽을 때는 얘기는 전혀 다르다. 나름의 실패(돈 아까워 -_-;;)라고 생각하는 책도 있다. 기대를 갖고 읽는 정지돈의 소설. 이게 문지에서 나왔기 때문에 더 분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다음, 장르문학과 관련, 읽을 만한 단편이 마땅치 않아 도진기의 소설을 한 번 봤다. 아, 실망했다! ㅠ.ㅠ 작가가 법조인이라, 또 법조인이 쓰는 추리소설이라 너무 기대했던 것 같다. 두 부분 모두, 우리 머릿속의 전범에 비하면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법학도의 소설이라기엔 주제의식이 너무 약했고, 추리소설로 읽기엔, 님아, 스릴이 없었다오 ㅠ.ㅠ 후자와 관련하여 학생들이 추천한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 나는 읽은 게 없어 이참에 읽어보려고 주문해보았다. 요즘은 인기가 좀 시들한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아쉽게도, 나는 많은 작품을 읽지 못했으나 매학기 열성팬이 있는 듯하다. 이 작가. 이번에 읽은 <식물애호>가 영어로 번역, 어느 잡지에 소개되었다는 기사를 본 듯하다.(영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한 학생도 들뜨서 얘기하더라.) 번역으로도 그 진가가 발휘될 작품인 듯하다.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 시 몇 편을 읽었다. 심보선 시인의 신작 시집 출간 소식을 뒤늦게 들어 유감이었다. 언제 또 기회가 되겠지.

 

 

 

 

 

 

 

 

 

 

 

 

 

 

 

시뿐만 아니라 산문도 공유해볼 만한데, 마침 이런 책이 (헌책방에서 -_-;;) 걸려 들었다. 재미있더라, 왜 많이 읽히는지 알만했다.(이렇게 얇은 줄은 미처 몰랐다.) 중간에, 수업 시간에 읽은 카프카, <프로메테우스...>, 멜빌, <바틀비> 얘기도 들어 있어 더 유익했다.

 

 

 

 

 

 

 

 

 

 

 

 

 

 

 

*

 

소설 잘 쓰기 참 힘들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때론 넘친다. 대상에 대한 묘사를 주문했으나 '이야기를 구성해도 됨'이라고 단서를 달아놓았더니 열 줄 안팎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그게 인간이다. 그리고 그 몇 줄에도 문체가 있다. 역시나 그게 인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이 되는 건 아니다. 솔직히, 책을 많이 읽는다고, 또 공부를 많이 한다고 소설을 잘 쓰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럴수록 더더욱 '오리무중'에 빠질 밖에. '오리무중'에 오리가 없다니, 유감.

 

*

 

종강을 한 지 오래됐음에도(게다가 요즘 계속 제대로 된 러시아문학 강의를 못 받고/얻고 있는데 -_-;;)  웃긴 꿈을 꾸었다. 수업 시간에 맞추어 강의실에 도착, 헐, 뭔가 이상하다. 의자와 책상의 배치가 바뀌어 있고 심지어 없어지고 매트 따위가 깔려 있다. 이건 뭐지. 그러고 보니 학생들이 죄다 유치원생들로 바뀌어 있다. 고**, 송**, 조**, 안** 등등 우리 아이의 친구들, 후배들이 즐비해 있는 것이다. "여러분, 고골은요~" 이렇게 운을 떼지만,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시끌시끌, 에공...-_-;;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한참을 난감해했다.   

 

*

 

- "오늘 알림장 내용은 뭐야?"

한참 삐대다가 말한다.

- "가을이 왔어요~ 입추~"

발음이 좀 엉성하지만, 엄마는 알아듣는다, 알아듣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이게 지난 주 월요일인가 그런데, '가을이 성큼', 이런 어구가 떠오르는 날씨다. 지구가 아무리 미쳐가도 음력은 역시, 칼, 같구나. 여름 원피스를 더 입어야 하는데 -_-;;

 

- "~ 너무너무 더워요 여름 하 / 곡식을 거두워요 가을 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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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사과  한  알이 떨어졌다.   지구는  부서질  정도로  아팠다.  최후이미  여하한  정신도  발아하지  아니한다.

 

- 이상의 시를 다시 훑어보다가 이번에 발견(?)했다. 원래 일본어로 쓰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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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편의 시로 읽히는 수필(산문) [권태]의 한 부분 : "세균같이 사소한 고독" 

 

소는 잠시 반추(反芻)를 그치고 나를 응시한다. / ‘이 사람의 얼굴이 왜 이리 창백하냐. 아마 병인가 보다. 내 생명에 위해(危害)를 가하려는 거나 아닌지 나는 조심해야 되지.’ / 이렇게 소는 속으로 나를 심리(審理)하였으리라. 그러나 오 분 후에는 소는 다시 반추를 계속하였다. 소보다도 내가 마음을 놓는다. / 소는 식욕의 즐거움조차를 냉대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권태자다. 얼마나 권태에 지질렸길래 이미 위에 들어간 식물(食物)을 다시 게워 그 시금털털한 반소화물(半小貨物)의 미각을 역설적으로 향락(享樂)하는 체해 보임이리오? / 소의 체구가 크면 클수록 그의 권태도 크고 슬프다. 나는 소 앞에 누워 내 세균같이 사소한 고독을 겸손하면서 나도 사색의 반추는 가능할는지 불가능할는지 몰래 좀 생각해 본다.”(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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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날개>의 일절들. 한없이 퍼질러 자는, 그렇게 사는 삶, 권태의 극치. 정녕 '지하'의 이상 버전이다. 내가 잃어버린 낙원의 풍경을 다시 보는 것 같다!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처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2, 79)

 

"나는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도 싶었다. / 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2, 82)

 

안해는 드디어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자기 방에 재워주었다. 나는 이 기쁨을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편히 잘 잤다.”(2, 91)

 

나는 커다랗게 기지개를 한 번 켜보고 안해 베개를 내려 베고 벌떡 자빠져서는 이렇게도 편안하고도 즐거운 세월을 하느님께 흠씬 자랑하여 주고 싶었다. 나는 참 세상의 아무것과도 교섭을 가지지 않는다. 하느님도 아마 나를 칭찬할 수도 처벌할 수도 없는 것 같다.”(2,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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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설들을 강의실에서 읽고 그걸로 밥벌이를 하게 될 줄은, 20여년전 학기 중에는 (러시아어 공부를 비롯하여^^;;) 열심히 학교 다니고 방학 때마다 자취방에서 최근 소설들을 걸신 들릴 듯 탐독하던 대학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다.

 

아무튼 이번에 새로이(!) 읽게 된, 알게 된 작가 중 단연코 마음에 드는 작가는 김금희였다. <너무 한낮의 연애> 외에 저기에 수록된 소설 몇 편을 쭉 들쳐 봤는데, 마지막에(?) 수록된 <보통의 시절>도 (제목과 더불어!) 무척 좋았다. 나는 유머가 있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녀의 소설이 그랬다. 작가가 생각보다 나이도 많고 소설이 의외로 고전적이라 또 한 번 놀랐다. 소위 '실험적인 것'이 항상 답은(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가 '실험'하면 꼭 상기하는 작가가 있는데, 여전히 소중하다. 신작소설집이 나온 줄 몰라(그래서 이건 다음에 보려고 한다) 이번에도 장편에서 일부를 뜯어내봤다. 소설가로서 그를 존경하고 애독자로서 그를 응원한다.

 

 

 

 

 

 

 

 

 

 

 

 

 

 

또 한 명 응원하고 싶은 작가는 권여선. 언젠가 우리 문단에 들어온 그녀의 소설은, 나로서는 참 읽기가 재미가 없는데(비문 아님!), 계속 사도록, 계속 읽도록 만드는 어떤 오기, 끈기, 그런 힘이 있다. 수업에서는 <안녕 주정뱅이>에 수록된 <봄밤>을 읽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그 다음, 왜들 좋아하는지 알겠는 그 작가, 편혜영.

 

 

 

 

 

 

 

 

 

 

 

 

 

 

 

처음 만난 순간부터 항상 재미있게, 질투하게 읽어왔다. 그의 (경)장편을 이번에도 읽었지만, 다음 번에는 마침 신작 소설집도 나와서, 그 중에서 골라보려고 한다. 

 

 

 

 

 

 

 

 

 

 

 

 

 

 

반대로 너무 실망(ㅠ.ㅠ)한 소설은, 유감스럽게도, 너무 많은 독자들이 사랑하는 공지영의 신작. 그래도 대학 시절 그녀의 소설을 어지간히 읽었던 나로서는 그녀의 이름값과 실제 소설 사이의 괴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줄 하나 치지지 않고 고스란히 동네 헌책방에 갖다 팔았는데, 사장님도 너무 좋아하셨다^^;; "아이구, 웬일로 이런 새 책을!"

 

 

 

 

 

 

 

 

 

 

 

 

 

 

 

소위 문단 밖에서 가장 '핫'한 작가 정유정 소설, 드디어 읽었다! 너무 기대한 탓인지, 실망이 컸다. <종의 기원>을 읽었는데, 그녀의 기존 소설을 읽어온 한 학생의 말로는 <7년의 밤>이나 <28> 같은 작품이 더 괜찮은 것 같다고. 아마 범죄자-악의 심리를 파고 들기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정황, 인물들 간의 갈등 등을 그리는 데 더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 전자의 경우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좀비>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정말 살 떨리는 소설.

 

 

 

 

 

 

 

 

 

 

 

 

 

 

* 아이들이 너무 잘 써서, 부러웠다. 그리고 그들의 식욕이 부러웠다. 문자 그대로, 아이들이 밥을 너무 많이, 잘, 맛있게 먹어서 부러웠다. 이 식욕에는 성욕, 수면욕, 각종 성취욕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욕'이 없으면 이야기는 생겨나지도, 진척되지도 않는다. 존재의 최소치는 둘.(바흐친) 사건은 '함께-존재'. 

* 나는 영원토록 나 자신일 뿐, 이므로, 동어반복 같지만, 나는 언제까지 도저히 나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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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소설집 나왔다.

좀 튕길 수 있으면 좋으려만, 솔직히 말해, 너무 기쁘다! 사심 없이, 마냥.

 

 

 

 

 

 

 

 

 

 

 

 

 

 

 

표지 이미지에 고양이를 제안하며 떠올렸던 그림은 피카소의 데생 두 점.  '엎드린 개 자세'를 취하는 고양이, 그냥 멍 때리는 것 같은 고양이.

 

 

지금의 표지, 전체적인 모양, 양감과 질감, 모두 다 마음에 든다. 10여년 전 <현대문학>에 실었던 단편 하나를, 모 평론가 선생님의 충고대로, 뺀 것은 무척 잘한 일인 듯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작가 프로필 사진. 좀 더 밝고 경쾌한 사진이 쓰이길 바랐는데, 좀 진중하고 가라앉은(?), 떫은(?) 표정의 사진이 들어갔다. 그날, 그러니까 지난 여름에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중 마음에 들었던 것을 올려 본다. 사람 일 어찌 될지 모르니 제일 젊고 제일 예쁠 때(그게 바로 지금이다!) 찍어두자.

 

집 근처 구청과 일반 주택 사이를 오가며 찍었다. 굳이 멀리 갈 필요 있나. 다 거기서 거기지.

 

등단 20년(이 숫자에, 헉, 했다!), 조촐하지만 목록을 한 번 만들어 본다.

 

삼십대에 쓴 것. <고양이의 이중생활>은 200?년도 한겨레문학상 본심에 떨어진 소설이다.

 

 

 

 

 

 

 

 

 

 

 

 

 

 

이십대에 쓴 것. 정말 안 팔렸지만 <그러니 내가 어찌 나를...>은 참 아끼는 소설이다.

 

 

 

 

 

 

 

 

 

 

 

 

 

 

 

어째 삼십대가 더 부실하냐?? 네가 면죄부가 돼라.

 

 

 

 

 

 

 

 

 

 

 

 

 

 

 

 

 

 

 

 

 

 

 

 

 

 

 

 

 

 

 

이미지 넣다 보니 <악령>은 이십대 중반, 유학 가기 전에 했던 번역이다. 이후 번역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듯한데 소설은 뭐냐. 계속 전락한 셈이 됐지만, 나는 나의 소설이 무척 성실하게 시간을 좀먹어 그 나름의 진화(퇴화 역시 진화다!)를 거듭하고 있다고 믿는다. 쓰는 것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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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 2016-10-1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축하드려요~
김연경님 번역을 사랑하는 독자로 (우연인지 위에 있는 책 다 있네요) 소설도 정말 기다려졌었거든요~
얼른 사서 읽어보고 싶네요.

사진도 너무 예쁘세요.^^

걸으며자는사람 2016-10-13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도손 2016-10-14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축하드립니다!

푸른괭이 2016-10-1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댓글이 세 개나 달리다니! 다들 감사합니다!^_^

always 2016-10-18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푸른괭이 2016-10-19 14:23   좋아요 0 | URL
앗, 감사합니다! 기왕이면 주문도 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