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첫날은 치카님 만난 것 외에 별반 이야기거리가 없네요.
치카님과 아쉽게 작별하고 부랴부랴 행사장으로 가서 부스 돌아보고 컨퍼런스 듣고
저녁 먹고 또 워크샵 진행하고.
그 후 회식 및 축구 관람 일정이 있었으나, 저는 할 일 있다는 핑계로 땡땡이치고 숙소에 올라갔습니다.
숙소는 트래블러스 호텔. 말만 호텔이지 유스호스텔 수준입니다.
샴푸, 로션, 치약 등도 일일이 사야 하고,
저녁에는 콘센트를 차단하여 드라이나 핸드폰 충전기를 쓸 수 없고,
데스크나 룸서비스도 허술하여 방 문제로 툭탁거려야 했고.
좀 부아가 나서 보복하는 심리로 집에서라면 엄두도 못낼 반신욕을 실컷 즐긴 뒤,
책상으로 숨겨둔 콘센트를 기어이 찾아내 노트북을 쓸 수 있었답니다. ^^v
일이 생각보다 늦게 끝나 몇 시간 못 잤는데도 반신욕 덕분인지 별로 피곤하진 않더군요.
그래서 아침 먹기 전 호텔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우선 테라스에 나가보니...

지난밤 호텔이 뭐 이러냐고 투덜댔던 거 몽땅 취소하고 싶어지더군요.
중문단지에서 1100고지 올라가는 길에 위치한 호텔이라
주변을 둘러싼 수해와 아스라한 수평선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단에 보이는 것은 미니골프장과 지압산책로이고,
수영장은 7월 1일부터 개장한다고 합니다.

반대편 정경입니다.
수영장 뒤쪽으로는 바베큐 시설이 있고,
사진으로는 안 찍었지만 잔디축구장도 있고, 초입에 승마체험장도 있는 등
유스호스텔(?)치고는 부대시설이 잘 되어 있더군요.
하지만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산책로였습니다.
등산로로 쓰였을 법한 오솔길을 좀 넓히고 표지판 몇 개 세운 게 다인 산책로였는데,
오히려 꾸미지 않은 덕분에 산행을 하는 느낌을 줬습니다.

신기한 건 어딜 가나 민들레가 지천이라는 것.
흔히 보는 민들레랑 달리 꽃대가 무척 길어 하늘거리는 것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혹시 민들레가 아니라면... 가르쳐주세요. ^^;;

산책 도중에 하귤과 금귤을 발견, 기념으로 몇 개 수확(?)했습니다.
버섯도 지천으로 발견했는데, 독버섯일까봐 포기했습니다.
바로 이 사진인데, 혹시 먹을 수 있는 버섯이었을까요?

산책로는 꾸준히 이어졌지만, 나중엔 호텔이 보이지도 않고, 일행들도 밥 먹자 아우성하여
할 수 없이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했습니다. 그 순간 발견한 나비.
숨죽이며 사진을 찍는데 성공했다고 좋아라 했는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더군요.
알고 보니 날개 한쪽이 찢어져 날아오르지 못하고 계속 퍼들거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조만간 먹이사슬의 고리 따라 사라지겠지요.

생각보다 너무 멀리까지 갔었나 봐요.
아무리 가도 호텔이 보이지 않아 슬슬 조바심이 날 무렵
마침 이정표도 파손되어 어디로 가야 하나 잠시 헤매기도 하다가,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서야 간신히 호텔쪽으로 빠져나오니 연못으로 이어지더군요.
한국연못의 미와 제주의 돌과 서양의 분수가 어우러진 신기한 연못이었습니다. -.-;;
그래도 물가에 노니는 제비만큼은 참 이쁘더군요.
연못 오른쪽에서 물을 차고 올라가는 제비를 찾으실 수 있겠나요?
결론적으로 트래블러스 호텔은 '호텔'이라는 기대감만 안 가지면 꽤 괜찮은 곳입니다.
하긴 제주도는 워낙 풍광이 훌륭해 괜찮은 점이 없는 시설은 없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