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있었던 일.
일년에도 몇 번씩 단기자금압박이 생기는 벤처회사라는 흠은 있지만,
꽤나 인간적인 회사라 정붙이고 오래 다녔다.
여직원은 몇 명 안 되지만, 하나같이 대가 세서 좋았고.
커피의 경우 '개인 커피는 상하 막론하고 직접 타먹는다 또는 자판기에서 뽑아먹는다'가 정착되어 있었고,
손님이 올 경우 '부서의 막내 사원이 대접한다'로 규칙이 정해져 있었다.
또 설겆이의 경우 전 여직원이 1주일씩 돌아가면서 했다.
대신 남직원들은 에어콘 물버리기, 정수기 물통 바꾸기 등을 그때 그때 알아서 했고,
(물론 손가락 하나 까닥 안 하려는 남직원도 있지만, 어떻게든 여직원들이 기회를 만들어 부려먹었다 ^^v)
화분 가꾸는 것은 사장님 몫이었다.
가끔 소소한 문제는 있었지만 괜찮게 돌아갔는데 어느날 일대 파란이 생겼다.
연구소에 들어온 여직원이 항거(?)를 한 것이다.
커피심부름이나 하고 설겆이나 하려고 대학원을 나온 것이 아니라며 히스테리를 부렸고,
그 불똥이 경영기획실 여직원들에게 튀고 말았다.
다른 부서의 손님대접을 하게 된 경영기획실 여직원들은 자신들을 고졸이라고 무시하는 거냐며 화를 냈고,
연구소 여직원을 왕따시켰고,
난 중간에 껴서 양쪽의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그 소동으로 깨달은 것은 한 회사내에서 그럭저럭 공정한 규칙이 생겨봤자,
경리는 비전문직종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만연하고,
따라서 상고를 졸업한 여직원이 저임금으로 취업하는 사회적 위계화가 존재하는 한,
어느 회사에라도 갈등의 여지는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