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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메리지
앤 타일러 지음, 민승남 옮김 / 시공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결혼에 관한 한 할 말들이 참 많은 것 같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서인지 가깝거나 자주 볼 수 없는 지인들을 만날 때에도 그렇지만, 영화나 소설에서도 결혼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 관심이 집중된다. 신혼부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결혼의 장점 보다는 단점을 나열하기에 바쁘다. 정말 결혼은 미친 짓 혹은 무덤 속 걸어 들어가기 인걸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그렇다면 해보고 후회하자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여기 또 한 쌍의 부부가 있다.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가 시작이고 최근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들 부부의 일상을 담았다. 전쟁이 발발했다고 해서 거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그러했다고는 하나 어차피 세상을 엮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개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다만 시작은 영화같았음을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극적으로 터진 전쟁과 전장에 나아가는 젊은이를 사모하는 여인들...그렇듯 사랑은 비이성적이고 갑작스럽게 마음을 장악해 버리고 말았다.
마이클과 폴린의 경우처럼 말이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앤턴 식품점으로 들어선 빨간 코트의 폴린에게 마이클은 한 눈에 반해버렸다. 폴린의 마음에 들고자 전쟁터에 자진해 나갔을 만큼 말이다. 전쟁에서 부상을 당해 다시 돌아와 결혼식을 올린 이들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므로 약간의 부딪힘 정도는 대수롭지 여겼다. 항상 결혼 후의 후회가 그렇듯 연애시절에는 모두 사랑스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결혼 생활은 지루했다. 아니 역동적이었다.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는 이들에게 이유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성격차이가 이혼의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면 대단할 일도 아닐 것이다. 허나 이 부부의 경우 정도가 지나치다. 아직 미혼인 나로서는 이 정도일까?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 부부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나무랄 점은 없는 편이었다. 언제나 상냥하고 활동적인 폴린. 감정적이긴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태도 그리고 가정을 위해 노력하는 여느 주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나치게 이성적이긴 하지만 자신의 일에 성실한 반듯한 가장인 마이클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둘이 함께 일 때에는 언제나 말썽이었다. 폴린은 마이클을 마이클은 폴린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작은 습관까지도 고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작은 틈새는 커지고 더 커져서 커다란 구멍이 되었고, 그 구멍으로 그들의 큰 딸 린디가 사라져버린다. 딸의 가출과 실종. 그것은 가족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오랜 세월 단란한 가족임을 내세웠지만 가족 내의 상처는 곪아 가고 있었다. 곪은 곳은 터뜨려야 치유가 되듯 이 모든 상황을 종료해 버리고 만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부부 싸움 후에 마이클이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설마...다시 돌아오겠지 그리고 지루하고 역동적인 결혼 생활을 이어가며 늙은 부부로 삶을 마칠꺼야...하는 나의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마이클은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폴린과는 정반대의 이성적이고 독립적인 애나와 재혼을 결심한다. 폴린은 혼자 늙어가며 상실감에 젖어버린다. 밤에는 수면제에 의지해 불면증을 이겨내려는 노인의 모습에서 스산함마저 느껴진다. 한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왔건만 이처럼 고독한 노년의 모습이라니...잠들지 못하는 밤. 폴린의 회상은 후회로 가득 찬다. 마이클과의 매끄럽지 못한 관계에 대한 후회,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후회,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던 죄책감 등. 마이클 또한 나름의 후회로 가득 찬 인생을 돌아보며 폴린의 죽음 앞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진다. 물론 폴린과의 이혼은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가출했던 린디가 다시 돌아와 부모로 인해 황폐했던 어린 시절을 폭로할 때 마이클이 했던 말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린디, 우리를 관대한 눈으로 봐다오. 우린 최선을 다했으니까. 나름으론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우린 다만...미숙했던 것뿐이야. 요령을 잘 몰랐지. 노력이 부족했던 건 아니야.” 과연 결혼에 관해서만 미숙했던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폴린이 죽음 직전까지도 잠들지 못했던 회한의 기억들을 되짚어 보면 결혼 뿐 만 아니라 우리가 미숙한 것은 인생 전부인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일은 어디에나 산적해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