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를 리뷰해주세요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나 사건을 대할 때면, 당연히 분개하고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X이 무서워서 피하나...더러워서지..’라는 말로 화를 가라앉히고는 한다. 하루에 한 번 일수도 있고 여러 번 일수도 있는 이러한 되새김은 가끔 버릇이 되어 버린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도 만든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무서워서라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한 것 같다. 보기 좋게 포장해 나를 감싸려고 하지만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내 자신을 속일 수는 없을 것 같다. 내 위치가 나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그것은 결국 현실과 타협하게 만드는 그런 요소인 것이다.




무진으로 쫓기듯 떠나온 남자 강인호의 모습은 현실과 비타협적이려 하지만 안주해 버리고 마는 나의 모습과 닮았다. 무진은 안개의 밀도에 질식해 버릴 듯 한 음습함을 가진 곳이기도 했다. 자발적이지 않은 방문 그리고 당당하지 못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인호는 이방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안개가 짙기 때문일까. 아니면 말도 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학교이기 때문일까. 통하지 않는다는 이 느낌은.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는 듯 갑갑하다.




별안간 들려오는 비명소리. 들리지 않는 아이들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태연한 학교사람들.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교장, 행정실장, 박교사의 태도. 그리고 아이들의 죽음. 남은 아이들의 숨길 수 없는 고통. 상식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에서의 일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독자인 나는 주먹을 꽉 쥔 채로였다. 허나 더 커다란 분노는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이후였다. 아이들을 성적 노리개로 취급한 교장과 행정실장 그리고 박교사에 대한 법의 심판의 과정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모든 것이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 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너무 닮아있지 않은가?




죄를 지은 자들이 거짓과 위선의 말을 내뱉고 진실은 은폐되거나 축소되어간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만다. 결국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이었으며 힘들고 어려울수록 쉽게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사회 저변에 깔려있다. 마치 무진의 안개가 그 밀도로 인해 가라앉는 것이 맞는 것처럼 말이다. 안개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를 차단하고 침묵하게 만든다. 침묵의 카르텔.




물론 모든 이가 이 침묵에 동조한 것은 아니다. 서유진과 같은 여자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용기 있게 일어선 자도 결국은 강인호가 되는 것이 진실이 아닐까. 그렇다고 인호의 행동을 비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미래가 있는 것이니까. 도망치듯 무진을 떠난 인호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본 것 같아 그를 두둔하고 싶어지는지도 모르겠다.




도망치듯 떠나버린 인호와 합의서를 제출한 가족들의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다시피 이야기는 소설답지 못한 결말을 맺는다. 죄를 받아야 할 인물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오고 학생들과 교사들은 투쟁 중이다. 이 얼마나 현실적인가...그렇다고 분노만 남은 것은 아니다. 떠난 인호에게 유진이 메일로 보낸 내용처럼 아이들은 변했다. 예전의 유린당하고 폭행으로 인해 멍든 아이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한 아이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변하게 하는데 일조할 것이다. 안개는 어디에나 산적해 있는 것이지만 소리마저 막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더 큰 힘이 됨을 잊고 살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을 전해주는 공지영의 소설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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