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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아이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하이타니 겐지로란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란 소설을 통해서였다. 그 책에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서툴지만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여교사가 나온다. 그들이 서로 갈등하고 사랑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매일 아이들을 마주 대하는 나로서는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특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장애가 있는 친구를 아이들이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나의 일부분으로 여기게 되는 과정과, 세상을 외면하고 파리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괴짜 소년을 젊은 여교사가 진정한 관심과 동참을 통해 성공적으로 세상 한가운데로 불러내는 이야기, 그리고 쓰레기 처리장 문제를 통해 사람들이 '약자를 소외시키면 그 소외시킨 자가 인간적으로 못쓰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 이렇게 세가지이다.
이번에 나온 책 <내가 만난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평생 체험, 마주친 사람들, 그를 통해 작가가 깨닫게 된 것에 대해 쓴, 어찌보면 자서전 같은 이야기이다. 이 책을 보니,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 나온 저 에피소드들이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겠다.
작가는 무척 양심적인 사람이다.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면 진심으로 사과하면 되고, 남에게 선의를 베풀면 뭔가 뿌듯한 자랑스러움을 느끼며 자기 위안을 삼기 마련인데 이 사람에게서는 자기가 저지른 작은 잘못이나 자신의 위선 등등을 평생 참회하며 살아온 듯한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형의 괴로움을 외면한 것, 아이들에게 말로 상처를 준 것, 다른 사람의 선의를 이용해서 살아온 것 등을 한 순간의 실수로 치부하고 용서를 빌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의 본질이었다. 나는 그런 놈이었다'고 자책하며 그 반대편 대척점에 어린이의 낙천성과 상냥함을 위치시킨다. 그리고 끊임없이 배운다. 그리고 감탄한다. 고통받고 힘겨운 삶을 살수록 더욱더 빛나는 인간의 상냥함에 대하여.
교사라면 누구나 다음 말에 공감하며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상냥함과 낙천성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의 슬픔을 함께 나눌때만이 아이들 내면 깊이 숨어 있는 것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나는 이 작가처럼 '어린이는 가장 완벽한 창조물이며, 손상되어서는 안 되는 인류의 원형. 낙천적이고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이며, 바라보는 것만으로 우리 마음에 평화를 깃들게 하는 사상가' 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 그저 어린이도 사람이며, 그중에는 좋은 놈도 있고 나쁜 놈도 있으며, 좋은 놈도 될 수 있고 나쁜 놈도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긴다. 다만 그들은 어른들보다는 좀더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진심이 좀더 잘 통한다. 아이들과 지내보면 그걸 알 수 있다. 어른에 대한 불신으로(그건 그 아이의 삶의 과정이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반항기를 풀풀 풍기는 녀석도 진심을 담은 따뜻한 웃음과 사심없는 대화(너를 꼭 변화시키고야 말겠어! 이런 마음이 배제된)로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걸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가의 원칙과 방법론에는 동의하나, 그의 말에서 약간의 과장과 지루함이 느껴진다. 자꾸 동어반복을 하는 것도 그렇고, 자기 자신을 그렇게 자책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내가 덜 양심적인 인간이어서 그럴까?) 아이들은 하늘 저 위에, 자기 자신을 땅바닥에 놓고 그렇게 계속 비교하는 것도 좀 비현실적이다.
특히 작가가 쓰는 말 중 '상냥함'이란 표현이 꼭 목 안에 걸린 가시처럼 계속 신경 쓰인다. 우리나라에서 '상냥함'이란 단어는 어쩐지 '진심과는 상관없는, 방긋방긋 웃는 친절한 태도'를 가리키는 것 같은 어감이 들지 않는가? 일본에서는 상냥함을 그런 식으로 쓰지 않는 모양이지? 그래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할 때는 뭔가 다른 말로 번역해 주면 좋겠다. 그래서 나 혼자 그 자리에 여러가지 단어를 넣어 보았다. 따뜻함, 따스함, 사랑, 친절함......내 생각에 그 단어는 따스함과 사랑, 그 중간쯤 어디에 위치하지 싶다.
그리고 내가 교사로서 정말 부러웠던 것은 마지막 쯤에 나오는 수업장면이었다. 소크라테스를 연상시키는 그 문답식 수업. 평소 어떤 연구수업을 보고도 감탄해 본 적이 없던 나는(내가 수업을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교류가 없는 형식적인 수업이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다) 이 책과 <나는 선생님이...>에 나오는 수업장면을 보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너무나도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인간이란 무엇인가, 상냥함에 대하여,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교사와 아이들이 철저하게 상호보완적인 질의응답을 통해,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를 키우는 그런 수업장면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교직생활을 마감하기 전에 그런 수업을 해 볼 수 있다면 정말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교사 자신이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긴 하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아이들의 시행착오를 받아들이고, 아이들에게 정답을 내밀려고 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기는 정말 어렵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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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 바라는 점 :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띠지를 벗겨내서 버리는 일이 많은데, 그러기엔 이 띠지는 너무 지질이 좋고 앞뒤로, 책날개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네요. 띠지를 벗겨낸 속은 마음에 들구요. 띠지를 줄이고, 앞날개에 있는 작가소개를 다른 곳으로 옮겨 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드커버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의 내용상의 무게로 볼 때 굳이 하드커버여야 하는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뽀대나는 걸 좋아하여 하드커버를 선호하기는 하나.....그로 인해 가격차가 많이 난다면 좀 망설일 듯^^
제목 디자인은 좋은 듯하고, 책 본문의 행간은 좀 줄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