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열두 방향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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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슐러 르귄처럼 고요하고 우아한 SF를 쓸 수 있는 작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SF라 하면 스페이스 오페라 정도를 상상하고 광선총이 난무하는 격전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마 이 작품을 읽으면 어리둥절할 것이다. 강물처럼 흐르며 나뭇잎의 속삭임처럼 소곤거리는 문체로 인간심리를 집요할 정도로 파고드는 글을 접하면 말이다.



이 책은 어슐러 르귄 초기 단편집이라 하는데, 단편집이라고 만만히 볼 것은 절대 못된다. 다 읽고 나서도 도무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모르겠는 것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르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어스시 시리즈나 어둠의 왼손을 먼저 볼 것을 권한다. 이 단편은 문장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루할 만한 글들이 꽤 되고 완성도도 다 각각이니 말이다.




 <셈레이의 목걸이><겨울의 왕>



광속 여행. 그로 인한 시간차, 내가 광속으로 여행하고 돌아오면 나는 늙지 않으나 내 고향 지구는 몇백년의 나이를 먹어버린다는 물리학의 명제를 가지고 이렇게 우아하며 우수어린, 슬픔으로 가득찬 환타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사람들은 이 세계의 전설과 사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과거는 신화의 영역이 되고 여행에서 돌아온 자들은 불과 몇 년 전 자신들이 벌였던 행동이 신의 몸짓이 되어버린 사실을 깨닫는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전설과 사실을 구분할 수 있을까? 우리의 광속 우주선이 다리를 놓은 시간의 틈을 어두은 광기가 잠식하고, 그 어둠 속에서 불확실과 불균형이 잡초처럼 자라난다" 위의 두 이야기들은 바로 이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 신기해하며 들었던 전설이나 동화, "그곳에서 일주일 잘 보내다 왔는데 돌아와보니 70년이 흘렀다"는 이야기 같은. 우주시대의 전설 같은.





<아홉 생명>


 


복제인간에 대한 소설은 여러번 접해 봤지만 르귄의 아홉 쌍둥이는 과학적 사실과는 그렇게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설정만을 빌려왔을 뿐. 르귄은 여기서 인간의 태생적인 고독(나를 완벽하게 이해해 줄 파트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간은 원래 혼자라는)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나는 느꼈다. 그런 인간이 보기에 이 아홉쌍둥이는 너무도 완벽하다. 그들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설명이 불필요하며 능률적이다. 태어나서부터 쏘울메이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 때문에 자멸한다. 인간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존해 온 것이다. 고독은 인간에게 저주이면서 축복이다.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렘의 장편 <솔라리스>와 같은 이야기이다. 행성 전체가 하나의 생명인 것, 그리고 인간의 정신에 간여하는 것, 마치 거울처럼 인간의 감정을 반사하는 것. 인간이 그 존재를 만나 의심과 공포를 발산하였기에 그 존재는 그 감정을 그대로 인간에게 반사한다. 인간은 낯선 자(혹은 미지의 것)에게 신뢰와 호감을 보낼 수는 없는 것인가? 인간의 불신과 의혹은 결국 항상 제 발등을 찍어오지 않았던가? 이 이야기는 결국 우리들 마음 속의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숲이, 아직 아무도 탐험하지 않은 끝이 없는 숲이 있다. 우리 각자는 매일 밤 홀로 그 숲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인간의 마음은 우주처럼 미지의 것이다.





<땅 속의 별들>



이 이야기는 땅 밑 어둠 속에서조차 별을 발견해 낸 한 창조적 정신을 가진 사람에 대한 찬사일까? 아니면 어떤 현상에든지 자신의 모습을, 기대를 투영해 내는 인간정신에 대한 연민일까?




<시야>


 


인간이 전 우주를 관통하는 진실(‘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을 깨닫게 되는 것(‘해탈’이라고 할 수 있겠다)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이 단편에서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느님 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눈을 뜨고 신의 얼굴을 보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단지 한 인간의 얼굴을, 나무 한 그루를 다시 볼 수 있다면 내 인생 전부를 버릴 겁니다...... 내가 원하는 건 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나는 내 삶이 다시 돌아오기를, 내 원래 죽음을 원한단 말입니다!” 인간은 여러 방면으로 탐구하고 질문해 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궁극적인 해답은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질문거리가 없는 삶이란, 언뜻 생각하기에도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이 이야기를 읽고서 마음 깊이 속울음을 울지 않을 자 누가 있을까? 이것은 인류가 살아온, 지금의 문화를 이루어 온 과정에 대한 슬픈 우화이다. 너무나 적나라한. 우리는 오멜라스에 살고 있으며, 거기 살고 있는 행복하고도 고상하고 우아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 눈 닿는 도처에는 오멜라스의 한 지하실에 살고 있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고통이 나머지 모든 인류의 행복을 보장한다. 우리는 그 아이를 위해 깊이 슬퍼하고, 참회하며, 고통스러워 하나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진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연민은 그대로 우리의 자양분이 되어 우리의 문화예술을 이룬다. 그것을 견딜 수 없는 몇몇은 오멜라스를 떠난다. 도스도예프스키가 <까라마조프>에서 격정에 차 이야기한 ‘희생양’ 이야기가 여기서 너무나도 처연하게 변주된다. 우리는 그걸 보고 운다. 그러나 오멜라스를 떠나진 않는다. 거길 떠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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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12-01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요... 근데 줄이 좀....알라딘의 버그겠죠?

로드무비 2004-12-0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연민은 우리의 자양분이 되어 문화예술을 이룬다

고작 연민, 문화예술 질료의 그 어이없음이라니!

근사한 리븁니다. 추천!

깍두기 2004-12-02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그러게요, 이 줄간격 좀 빨리 해결해 주세요. 마태님이 알라딘 대주주 아닌가요?^^

로드무비님/맨날 근사하대. 창피하게^^
 
내가 만난 아이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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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이타니 겐지로란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란 소설을 통해서였다. 그 책에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서툴지만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여교사가 나온다. 그들이 서로 갈등하고 사랑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매일 아이들을 마주 대하는 나로서는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특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장애가 있는 친구를 아이들이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나의 일부분으로 여기게 되는 과정과, 세상을 외면하고 파리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괴짜 소년을 젊은 여교사가 진정한 관심과 동참을 통해 성공적으로 세상 한가운데로 불러내는 이야기, 그리고 쓰레기 처리장 문제를 통해 사람들이 '약자를 소외시키면 그 소외시킨 자가 인간적으로 못쓰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 이렇게 세가지이다.


이번에 나온 책 <내가 만난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평생 체험, 마주친 사람들, 그를 통해 작가가 깨닫게 된 것에 대해 쓴, 어찌보면 자서전 같은 이야기이다. 이 책을 보니,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 나온 저 에피소드들이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겠다.


작가는 무척 양심적인 사람이다.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면 진심으로 사과하면 되고, 남에게 선의를 베풀면 뭔가 뿌듯한 자랑스러움을 느끼며 자기 위안을 삼기 마련인데 이 사람에게서는 자기가 저지른 작은 잘못이나 자신의 위선 등등을 평생 참회하며 살아온 듯한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형의 괴로움을 외면한 것, 아이들에게 말로 상처를 준 것, 다른 사람의 선의를 이용해서 살아온 것 등을 한 순간의 실수로 치부하고 용서를 빌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의 본질이었다. 나는 그런 놈이었다'고 자책하며 그 반대편 대척점에 어린이의 낙천성과 상냥함을 위치시킨다. 그리고 끊임없이 배운다. 그리고 감탄한다. 고통받고 힘겨운 삶을 살수록 더욱더 빛나는 인간의 상냥함에 대하여.


교사라면 누구나 다음 말에 공감하며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상냥함과 낙천성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의 슬픔을 함께 나눌때만이 아이들 내면 깊이 숨어 있는 것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나는 이 작가처럼 '어린이는 가장 완벽한 창조물이며, 손상되어서는 안 되는 인류의 원형. 낙천적이고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이며, 바라보는 것만으로 우리 마음에 평화를 깃들게 하는 사상가' 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 그저 어린이도 사람이며, 그중에는 좋은 놈도 있고 나쁜 놈도 있으며, 좋은 놈도 될 수 있고 나쁜 놈도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긴다. 다만 그들은 어른들보다는 좀더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진심이 좀더 잘 통한다. 아이들과 지내보면 그걸 알 수 있다. 어른에 대한 불신으로(그건 그 아이의 삶의 과정이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반항기를 풀풀 풍기는 녀석도 진심을 담은 따뜻한 웃음과 사심없는 대화(너를 꼭 변화시키고야 말겠어! 이런 마음이 배제된)로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걸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가의 원칙과 방법론에는 동의하나, 그의 말에서 약간의 과장과 지루함이 느껴진다. 자꾸 동어반복을 하는 것도 그렇고, 자기 자신을 그렇게 자책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내가 덜 양심적인 인간이어서 그럴까?) 아이들은 하늘 저 위에, 자기 자신을 땅바닥에 놓고 그렇게 계속 비교하는 것도 좀 비현실적이다.


특히 작가가 쓰는 말 중 '상냥함'이란 표현이 꼭 목 안에 걸린 가시처럼 계속 신경 쓰인다. 우리나라에서 '상냥함'이란 단어는 어쩐지 '진심과는 상관없는, 방긋방긋 웃는 친절한 태도'를 가리키는 것 같은 어감이 들지 않는가? 일본에서는 상냥함을 그런 식으로 쓰지 않는 모양이지? 그래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할 때는 뭔가 다른 말로 번역해 주면 좋겠다. 그래서 나 혼자 그 자리에 여러가지 단어를 넣어 보았다. 따뜻함, 따스함, 사랑, 친절함......내 생각에 그 단어는 따스함과 사랑, 그 중간쯤 어디에 위치하지 싶다.


그리고 내가 교사로서 정말 부러웠던 것은 마지막 쯤에 나오는 수업장면이었다. 소크라테스를 연상시키는 그 문답식 수업. 평소 어떤 연구수업을 보고도 감탄해 본 적이 없던 나는(내가 수업을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교류가 없는 형식적인 수업이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다) 이 책과 <나는 선생님이...>에 나오는 수업장면을 보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너무나도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인간이란 무엇인가, 상냥함에 대하여,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교사와 아이들이 철저하게 상호보완적인 질의응답을 통해,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를 키우는 그런 수업장면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교직생활을 마감하기 전에 그런 수업을 해 볼 수 있다면 정말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교사 자신이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긴 하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아이들의 시행착오를 받아들이고, 아이들에게 정답을 내밀려고 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기는 정말 어렵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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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 바라는 점 :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띠지를 벗겨내서 버리는 일이 많은데, 그러기엔 이 띠지는 너무 지질이 좋고 앞뒤로, 책날개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네요. 띠지를 벗겨낸 속은 마음에 들구요. 띠지를 줄이고, 앞날개에 있는 작가소개를 다른 곳으로 옮겨 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드커버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의 내용상의 무게로 볼 때 굳이 하드커버여야 하는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뽀대나는 걸 좋아하여 하드커버를 선호하기는 하나.....그로 인해 가격차가 많이 난다면 좀 망설일 듯^^


제목 디자인은 좋은 듯하고, 책 본문의 행간은 좀 줄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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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2-01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이미 좋은 선생님이십니다. 이렇게 따뜻한 시선을 지니신 분인걸요^^

하얀마녀 2004-12-0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그런 수업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깍두기 2004-12-01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두분이 제게 양심의 가책과 마음의 부담을 팍팍 주시네.....^^

꿈처럼 2004-12-04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비평 감사합니다.... 책을 새로 만들때, 많은 참고가 될 것같습니다... 하이타니 선생님의 글에서 자책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셨군요... 저는 그저 자신과 타협하고 싶어하지 않는 치열함으로 느꼈었는데.... 읽는 분들 마다의 느낌이 다르니까요.... 그리고 저희도 '상냥함'에 대한 표현을 어찌 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그 말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시는 군요.... 저자가 이야기하는 상냥함은 본성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우리말로 옮기는데 그 이상의 대안을 찾지 못했던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저는 '상냥함'을 '자기자신과 다른 사람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혹은 '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다른 사람과 진정한 화해를 하는 것', '배려하는 것' ... 등등 으로 받아들였거든요.... 그것은 때로는 생명, 그 자체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러는 것이 생명의 이상과 맞기에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저자는 아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선한 존재'로 생각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사회적,개인적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된 정도가 아주 적은 생명의 존재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교육의 가치를 이야기 하는 것같구요.... 쓰다보니 글이 번졌네요..^*^ 다시 한번 좋은 비평에 감사드리며 좋은 책을 만들도록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알라딘을 통해 좋은 글들을 만나게 되어 너무 고맙습니다..

깍두기 2004-12-0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장까지.....감사합니다. 책을 먼저 읽어보고 평해야 한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책임감이 느껴져서요. 제 리뷰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만들어주세요.

픽팍 2005-03-18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어 보고 싶네요 소녀의 마음도 상당히 괜찮았는데
하이타니 겐지로 역시 책에서 진심이 묻어나온다고 할까요?
경험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못 쓸 글들인 듯 합니다
 
어른의 문제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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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내가 5살 때. 아빠가 자신이 ‘게이’임을 자각해 버렸던 것이다. 그 후 10여년이 지나 아빠는 결혼을 하셨는데, 글쎄 상대는 나보다 겨우 여섯 살 위의 청년(A라고 하자). 그러니까 A는 나의 새엄마? 거기다 동성결혼은 법적으로 허용이 안되므로 아버지는 A를 양자로 입적했는데 그럼 그 청년은 나의 형? 설상가상으로 엄마는 그 A의 형(물론 유부남. B라고 하자)을 좋아하게 되어버려서 B는 이혼을 하고 훨씬 연상인 나의 엄마와 결혼을 했다. 그럼 나의 새엄마이자 형인 A는 이제 나의 작은아버지가 되는 건가?




이런 콩가루 집안이 있다. 그럼 그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질 것 같은가? 그 이야기 자체를 남에게 얘기할 때 어떤 분위기일 것 같은가? 부모가 이혼만 해도 상처가 되고 남에게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만일 저게 실제 상황이라면 그 가족을 보는 주변의 시선은 너무도 차가울 테고 인간 같지도 않게 여길 것이고, 변태들의 집합소라고 끼리끼리 모여 화제에 올리며 수군거릴 게 뻔하다. 그게 만약 자신의 이야기라면 부모를 당연히 원망할 것이고, 자신에게 더러운 피가 흐르고 있지 않은가 고민할 것이며 자살을 해도 주변에서 그럴 만 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멋진 작가는 ‘가족은 증식해 가는 것이다.....어릴 때부터 우리 집엔 남에겐 말할 수 없는 사정이 많이 있었다.....어느 가족에게나 조금씩은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라는 쌈박한 결론으로 저 복잡하고도 심각한 문제를 간단히 정리해 버렸다. 아, 왜 이렇게 맘에 드는 거냐구!!!




결혼은 오직 한번만이 정상적인 것이며 재혼부터는 뭔가 얘깃거리가 되고, 처음 결혼에서 이루어진 부부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외의 다른 가족 형태(한부모 가정, 재혼해서 각자의 자녀를 같이 키우는 가정, 동성 부부 등등)는 모두 뒤돌아서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 이 사회의 획일성이 나는 너무 갑갑하다. 심지어는 결혼 안하고 혼자 사는 독신가정도 비정상 취급을 받지 않는가. 그래서 가족의 새로운 대안이 나오는 이야기에는 나는 무조건 별점을 주는 경향이 있다. 현실에서 갑갑한 내 숨통을 그 이야기가 좀 터주는 것 같아서 고마워서 말이다.




드라마 <아일랜드>에서도 그 비슷한 이야기가 제시될 듯 하여 기대를 많이 했는데 결국은 두루뭉수리하게 끝나 버려 좀 김이 샜었고, 옛날에 읽었던 하인라인의 SF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 제시된 새로운 결혼,가족 제도에 솔깃한 적도 있었다. 얼마 전 김형경의 <성에>에서도 한 여자와 두 남자가 이룬 가족에 대해 욕할 사람은 욕하겠지만 가족제도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홈런이다. 현실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여러 가지 상황을 주인공은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너무도 비도덕적이야!’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가족이 가진 갖가지 문제(사실 문제 없는 가족이 어디 있단 말인가!) 중 하나로 생각하며 그냥 가볍게 지지고 볶는다.




내가 써놓고도 너무 정확한 표현이다. 정말 말 그대로 지지고 볶는다. 주인공의 철없는 아빠는 A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주인공과 엄마에게 달려와 해결해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고, 요리를 못하는 엄마는 맛난 게 먹고 싶으면 전 남편의 파트너-A 말이다-를 집으로 불러 맛있는 걸 해달라고 조른다. A가 게이임을 알게 된 A누나의 사돈될 사람들이 파혼을 통보하자 A는 눈물로 호소하며 사귀고 있는 사람과 헤어지고 새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하여 누나의 결혼을 성사시킨다. 주인공이 “정말 우리 아빠랑 헤어질 거야?”라며 놀라자 “일단 어떻게든 속여서 결혼하고 나면 끝이잖아”라는 뻔뻔하고도 무심한 대답이 되돌아온다. 사실 그렇다. 동생이 게이라는 사실이 누나의 결혼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이 사회에서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는가’라는 의문보다, ‘인간에게 무엇을 허하고 무엇을 금지해야 하는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사람들이 서로에게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 세상에 용서 못 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콩가루 집안의 스토리도 절대 허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은 아니다. 그저 어느 가족에게나 조금씩은 있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사정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남에게 자연스레 말할 수 있는 사회, 난 이 지구가 그런 아름다운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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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11-25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 동감!!^^ 잘 읽고 추천 날려요!!ㅎㅎ

로드무비 2004-11-25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에의 연장으로 읽히는군요.

추천합니다.^^

미완성 2004-11-2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너무 재밌는 리뷰여요 저도 잘 읽고 갑니다-

깍두기 2004-11-25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다들^^

<성에>의 연장....요즘 제가 잡는 책에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오네요. <사랑해야 하는 딸들>도 그렇고.

수업 비는 시간에 리뷰 한 편 쓰고 나니 알토란 같은 빈 시간이 훌떡 지나 버리네요. 그래도 뿌듯~

sooninara 2004-11-25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너무 잼나요..책도 미치게 보고 싶어지네요..

혹시 이책하고 무슨 관계 있으신거 아녀요? ^^

하얀마녀 2004-11-25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왜 이렇게 잘 쓰셨나요. ^^

날개 2004-11-25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얘기들을 너무나 잘 옮겨주셨군요.. 추천하고 갑니다..^^*

깍두기 2004-11-25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님/책 빌려 드릴까요? 말씀만 하세요^^

마녀님/그러게나 말입니다^^(오호홋, 이 교만)

날개님/반갑습니다. 제가 워낙 알던 분과만 이야기하는 터라 날개님과 처음 인사하네요. 민망하구만요^^

sooninara 2004-11-25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빌릴려면 택배비가 더 비싸요..제가 사서 볼께요..

세상의 모든 딸들도 리뷰땜에 샀는데..너무 좋더군요^^ 제가 만화는 안사서 보는데..

(돈없는 전업주부라서요)

sweetrain 2004-11-25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절대 동감입니다.^^

파란여우 2004-11-25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싶게 쓰시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깍두기 많이 먹으면 되나요?^^

깍두기 2004-11-26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무슨 그런 말씀을~ 사실 저 깍두기 별로 안 먹어요^^ 이 책이 워낙 재미있어서 그런 거죠^^

단비님, 그렇죠 그렇죠? 알라딘에 오면 내 의견에 찬성해 주는 사람이 많아서 좋더라~

 
성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아는 이가 이 책을 읽고 있었다. 다 읽은 후 내가 물었다. "재밌어?" 그녀는 단호하게 별로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는지 자기는 이해가 안간다는 것이었다. 그녀와 나와의 독서취향이 그다지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냉큼 빌려 달라고 해서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그녀가 이 책이 별로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녀에게는 별로였을 것이다. 아직도 지고지순한 사랑과 로맨스를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책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나에게도 이 책이 백퍼센트 맘에 드는 건 아니다. 작가가 설명을 너무 장황하게 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고 의욕과잉이라는 생각도 들고 주인공 남녀에게 너무 많은 말을 시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가 하려는 말의 '내용'에는 동의한다. 그 말은 즉, 나는 영원한 사랑과 로맨스를 믿지 않는다는 뜻이 되겠다.

작가 김형경의 전작,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몇년 전에 나름대로는 힘들었던 나에게 냉정한 위로를 던져준 적이 있다. 냉정한 위로란, 작가가 이 자전적인 소설에서 자기자신에게 비교적 냉정한 태도를 취했다고 생각하기에 하는 말이다. 지금은 그 줄거리도 결론도 희미하지만 작가가 자신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나도 내 안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힘을 얻었던 것이다.

이번에 읽은 <성에>는, 내가 그동안 어렴풋이만 생각하고 있던 사랑과 성, 가족, 환상에 대한 입장을 좀더 정확하게 정리하도록 도와주었다. 무슨 인류학 서적도 아니고 소설을 읽고 입장 정리가 되다니, 그러니까 이 책은 상당히 탐구적인 소설인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무언가를 강력 주장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작가가 자연물(참나무, 청설모, 박새, 바람 등)의 입을 빌어 하는 이야기가 특히 인상깊었다. 그들은 인류가 그동안 사랑과 가족에 덧입혀온 치장을 걷어내고 그 속살을 바라보게 해 준다. 일부일처제의 허상 같은 것 말이다. 사실 일부일처제와 그 결과 구성된 가족공동체에 대해 인류가 그동안 미화하고 도덕적으로 가치를 부여한 것에 대해 나는 약간은 냉소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얘기를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로 올리면 다들 나를 기이하게 쳐다보기 때문에 이 소설이 내 생각과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아는 사람 몇몇과의 대화 중에 내가 "나는 가족이 지금보다 좀더 해체되었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했다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이없다는 시선을 받은 적이 있다. 젊은 사람들이 쉽게쉽게 이혼하고 해서 아이들이 상처받는다, 가족은 사람들의 최후의 보루이자 보금자리이다, 뭐 이런 얘기가 결론으로 제시되었다. 내가 그 얘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만, 나는 가족이 해체되는 것 자체로 사람들이 상처받는다기보다는 가족의 해체, 혹은 그 해체로 인하여 뭔가가 결손된 가정에 대해 사회에서 보내는 부정적인 시선이 사람들에게 더 상처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지금보다는 가볍게 취급되고, 지금보다는 좀더 다양한 가족관계가 용인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TV에서, 어이없는 남자들이 성매매 단속법이 관습법 및 남자들의 행복추구권에 위배된다는 둥 말도 안되는 발언을 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걸 볼 때는 현재의 일부일처제란 안보이는 곳에서 얼마든지 딴짓을 할 수 있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얽어매기 위해 신주단지 모시듯 미화하고 절대적 가치로 숭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성에>에서 작가는 나에게 지고지순한 사랑도, 꿈꾸는 이상사회도, 우리가 믿고 있는 영원한 그 무엇도 사실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단호히 말해 주었다. 주인공 연희가 십몇년 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치열한 사랑의 기억도 실은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이었으며, 연희의 친구가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했던 짝사랑의 추억도 알고 보면 '사랑에 대한 사랑'에 불과했고, 주인공 남자인 세중이나 월남 귀순자가 평생 꿈꾸어 왔던 것도 결국은 이룰 수 없는, 만일 이룬다면 오히려 더 절망해 버릴 환상이었던 것이다. 이 세상 모든 혁명가가 꿈꾸는 이상사회도 역시. 환상이란 환멸의 다른 이름이다. 이루고 나면 환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걸 확인한 것이 슬프지는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기에. 그리고 그걸 안다는 것은 인생이 참 안심되고 차분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가도 말했듯이 그것이 환상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걸 버려야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신기루가 신기루인지 모르고 무작정 달려드는 것은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찌 보면 득도한 자의 수련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는지.

그러나, 알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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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11-21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더 가족이 해체되면....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 경직된 사회에 대한 일침입니다. 그리고, 일부일처제의 말도 안되는 구조에도. 다른 부분도 좋은데, 제 눈엔 왜 그것만 크게 들어오는지..ㅋㅋ 추천임다.

깍두기 2004-11-2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마냐님, 님도 일부일처제가 싫으시군요? 우리 좀 더 개방적이고 나은 가족제도를 같이 생각해 보아요^^

그동안 리뷰 쓰기 싫어서 몸부림치다가 정말 간만에 리뷰를 써올리고 나니 속이 후련합니다. 참, 누가 쓰라했나 저도 왜 이러는 걸까요?^^

로드무비 2004-11-2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 지어다--말지어다

띄어쓰기^^

로드무비 2004-11-21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리뷰 참 재밌게 읽었어요.

김형경 씨도 제가 포기한 작가인데(사랑을 선택하는...을 마지막으로 읽고)

이 책은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추천하고 갑니다.

깍두기 2004-11-21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홋, 고칠게요^^


2004-11-21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4-11-2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지금까지 김형경 씨 소설은 하나도 안 읽었는데, 만약 조만간 읽게 된다면 깍두기님 덕입니다.

플레져 2004-11-2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장 저리가 되었다는 님의 말씀에 공감해요. 사랑을 선택하는... 을 일고 나서 저두 한동안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김형경씨를 좋아해요. 올해가 가기 전에 헤치워야 할텐데. 저두 추천 누릅니다!

하얀마녀 2004-11-22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깍두기님 리뷰가 후련하던데요. ^^

깍두기 2004-11-22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제 안목을 너무 믿지는 마세요^^

플레져님/김형경이 노력하는 작가임은 분명한 것 같아요. 공부한 흔적이 보이거든요. 하지만 진짜 아는 사람은 아는 티가 잘 안나는데 그게 좀 아쉬워요^^

마녀님/저는 마녀님의 페이퍼가 후련하던데요^^

진/우맘 2004-11-22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우아, 제가 느낀 것과 굉장히 흡사한 경험을 하신 듯 하여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야밤에 읽고 흥분해서 난해한 신파 리뷰를 양산했는데, 깍두기님은 차분하고 정연하게 정리를 잘 하셨네요.^^

성에는, 맞아요, 탐구적인 소설이었어요. 그리고 그 치열한 탐구의 끝에 얻은 성찰 하나가 제 마음에 쏙 들었기에, 몇 개의 흠에도 불구하고 여섯 개라도 별을 붙이고 싶었답니다.^^

깍두기 2004-11-22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이 쓰신 리뷰 읽었어요. '난해한 신파 리뷰' 좋던데요^^ 감정이 팍팍 느껴지고.... 그리고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신 것 같네요, 정말로. 저도 반가워요^^
 

 

 

 

 

드디어 숙제를 다 끝냈다. 이 책을 다 읽었다는 얘기다.

2주 동안 이 책을 읽느라 다른 책에 손도 못댔다. 만화 두권을 읽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후반부에 가니 속도감이 붙어선지 괜찮았다. 아마 매트릭스 같은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이 책도 흥미로울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미지를 상상할 필요가 없는데 비해 책은 비슷한 내용이라도 자기가 이미지를 만들어 가며 읽어야 하니 그게 좀 딸렸다.

신선하며 내가 생각하기에는 황당한 설정도 있었다. 그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컴퓨터 바이러스를 바벨탑 신화와 접목시킨 대목이다. 대충 내가 이해한 것을 적어보면(나 자신을 위하여. 아직도 정리가 안되기 때문)

인간은 원래 단 하나의 언어를 갖고 있었다. 이 언어는 뭐랄까,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인간의 심층의식을 점령하고 있는 언어로서 이 언어를 사용하면 창의적 사고는 필요없고 지식의 무한전수만 이뤄지게 된다. 즉,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뜻.

그래서 고대의 위대한 해커(어느 의미에서는)가 인간이 각각 다른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게 만드는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그것이 바벨이다. 그러므로 바벨은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축복이다.

그런데 현대(이 소설의 시점)에 와서 한 종교가가 인간의식의 심층부에 존재하는 고대언어(이것은 가끔 '방언'이라는 형태로 종교적으로 표출된다고 소설에선 얘기한다)를 표층으로 끌어올려 사고를 정지시키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었고 이 소설의 주인공 히로는 고대의 위대한 해커 역할을 수행한다. 즉 그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메타바이러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의 이 요약이 맞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줄거리는 이러한 설정과 더불어 눈이 핑핑 도는 스피드로 질주하는 오토바이, 스케이트 보드, 헬기, 생체로봇 개 등등과 함께 암울하고 디스토피아적인 근미래를 그려낸다. 누가 이 책을 영화로 만든다면 빵구난 내 상상력을 좀 메꿔 보련만.

 

(혹시 이 책을 읽으신 분 있으면 제게 해설 좀 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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