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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로쿠의 기묘한 병 - 히노 히데시 걸작 호러 단편 시리즈 2
히노 히데시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직장에 가져가서 읽었는데 옆자리 후배 두명이 나보다 먼저 보게 되었다. 여자 후배와 남자 후배. 여자 후배의 반응. 점점 얼굴이 일그러진다. 반쯤 읽다 내게 책을 준다. "그만 읽을래. 토할 것 같아" 진짜로 헛구역질을 한다. 남자 후배의 반응. 좀 읽다 고개를 든다. "이 작가 뭐예요?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네" 결론은 둘다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충격적인 작품이라 이거지. 각오를 하고 책을 잡았다. 확실히 충격이긴 하다. 피고름이 넘쳐나고 기괴한 표정의 일그러진 사람들, 떨어져 나가는 팔다리, 식인. 누구나 좋아할 예쁜 소재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기괴한, 뭐라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각각의 이야기마다(단편이다) 가슴을 치며 공감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내 취미가 이상한가.
처음 이야기 <죠로쿠...>를 읽으면서, 나는 1-2년 전에 히트했던 드라마에서 아마도 작가의 분신이라고 여겨지는 주인공이 했던 대사 한 대목이 생각났다. "내 피고름으로 쓴 대본이 어쩌구....." 그때 나는 그 대사를 듣고 실소를 흘렸는데 그 드라마가 전혀 피고름으로 썼다고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드라마는 완벽하게, 허접했다.
그러나 죠로쿠가 피고름으로 그린 그림 앞에서 나는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괴물 같은 얼굴로 세상의 비난을 묵묵히 감내하며 자신의 피와 살로 그림을 그려내는 죠로쿠는 이 세상 모든 고독한 예술가의 내면의 모습처럼 여겨졌다. 죠로쿠는 그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피고름(얼마나 의미심장한 표현인가)'을 짜내어 그림을 그릴 뿐.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친형까지도) 그를 전염병환자 취급하며 사회에서 격리시킨다.
몇년전에 한 미술교사가 자신과 부인의 누드를 홈페이지에 올려서 학교에서 쫓겨나고 지역사회에서 매장되다시피 한 사건이 있었다.(지금은 어찌되셨는지. 복직되신 걸로 알고는 있는데) 그 때 미풍양속이 어쩌구 하며 게거품을 물던 지역사회인사들의 얼굴과 죠로쿠를 쫓아낸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어찌 이리 같은가.
다행히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죠로쿠는 그 피고름 속에서 신비스러운 눈빛의 거북이로 거듭나 그들은 갈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진다.
<생쥐>는 가장 무서운 작품이었는데 가장 만만한 것, 우습게 여긴 것, 내가 언제나 극복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 어느날 날 잡아먹고 있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식인이 소재로 등장하는 <백관괴물>은 소재의 잔인함과는 달리 너무도 따뜻하고 인간적인 이야기였다. 인간의 행동은 그 '동기'가 중요한 법이다. 실제로 생존을 위해, 그리고 죽은이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식인을 한 예가 있었다고 알고 있다. 인간의 행동은 어디까지가 용서되는 것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는가.
내가 잠깐 방심한 사이 초등학교 2학년짜리 둘째딸이 이 책을 보고 말았다. 어땠냐고 물으니 내 품에 푹 안기며 나를 보고 묻는다. "엄마, 생쥐가 많이 먹으면 사람만큼 클 수 있어?" 그게 가장 걱정되었는 모양이다. "아니야, 그럴 수 없어. 지어낸 얘기야" 그러자 안심을 하고 이렇게 말한다. "근데 엄마, 마지막 얘기에서는 사람을 먹는다" "그래서 어떻디?" "응, 무서우면서 슬퍼"
무서우면서 슬프다. 이 책을 읽으면 바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