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귀야행 1~13 세트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1999년 3월
평점 :
품절
백귀야행, 온갖가지 귀신들이 한밤중에 돌아다닌다는 이 만화에서 귀신들은 밤 뿐 아니라 낮에도 서슴없이 돌아다닌다. 그 요괴들을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볼 수 없는 사람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특별한 눈이 있어 그들을 볼 수 있거나, 아니면 미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그들은 보이고, 영향을 끼친다. 강건한 사람에게 귀신은 없거나 있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 만화에는 수십 수백 종류의 요괴와 혼령과 귀신이 나오지만 결국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이다. 어떤 미련을 못 버려 성불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가, 어떤 좋지 못한 집착이 그런 혼령을 불러들여 사건을 일으키는가, 주로 이런 이야기들이 한편 한편 에피소드로 이어져 12권의 길고 긴 만화가 되었다.(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인간의 아집과 독선과 미련과 집착은 한도 끝도 없으니 이 만화도 아마 한없이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자칫 어둡고 무섭기만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생기와 유머를 불어넣는 것은 작가가 창조한 특이한 캐릭터들이다. 어려서부터 남에게는 안보이는 것이 눈에 보여 괴로웠던 주인공 리쓰는 주변의 그 산란한 것들 때문에 정신이 사나워 공부도, 인간관계도 제대로 맺지 못한다. 그래도 귀신의 도움으로 대학은 간다. 비슷한 능력이 있으나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하고 본 것이 무언지도 파악 못하는 리쓰의 사촌누이는 게다가 술고래다. 그 누이의 술친구는 평소에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무의 수호령이다. 리쓰의 아버지는 리쓰가 어릴 적 돌아가셨는데 혼은 저 세상에 가셨지만 그 아버지의 껍데기(육신)은 웬 요괴가 차지하고 들어앉아 있다. 그 요괴는 다른 요괴들로부터 리쓰를 지켜준다. 오래된 집에 이 이상한 식구들이 사방에 드글드글한 요괴들과 공생공존한다.
이 어이없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별 거부감없이, 마치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을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귀신과 얽히면서 전개되는 사건이 인간의 나약함, 추함, 고귀함 등을 너무도 리얼하게 드러내어 주기 때문이다. 시기, 질투, 욕심, 애증 등 사기(邪氣)를 불러들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번뇌와 그 속에서 찰나의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각 에피소드마다 모습을 달리하여 우리를 찾아온다.
삶이란, 또 죽음의 모습이란 너무도 다양하여 아마 이 만화는 끝도 없이 계속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그때 주인공들이 각각 어떤 인연을 맺을지 그것도 궁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