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만화 전2권 세트 강풀 순정만화 5
강도영 지음 / 문학세계사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순정' 만화라면 말이야, 샬랄라 샤방샤방하는 드레스를 휘날리며 초롱초롱 반짝반짝하는 눈망울에 눈물을 그득담고 그윽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며........정도는 아니어도, 일단 예쁜 여주인공(물론 설정상으로는 안 예쁘다고 해도 그림으로는 여전히 예쁜)과 초절정 꽃미남과의 가슴 설레는 로맨스 정도는 기대해도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이 만화는 그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머리는 부스스하고 넥타이도 제대로 맬 줄 모르는 숏다리 평범 회사원 남자주인공. 거기다 심통가득한 표정의 고등학생인 여주인공의 첫 대사는

"아이 씨발 조땐네"

게다가 이 남녀는 맺어지기에는 너무 껄적지근한 커플이 아닌가 말이다. 30살의 회사원과 18살의 여고생. 뭐라? 그것이 바로 원조교제 아니더냐? 게다가 또 한 커플은 18살의 남자고등학생과 20대 후반은 되어보이는 아가씨이다. 이거 뭐하자는 시츄에이션? 

그러나 이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는 그야말로
초절정 완벽 '순정' 만화이다.
얼마나 순정스러운지
웬만한 순정에는 코웃음을 치는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 만화는 통속적이며, 적당히 판타지적인 요소로 우리를 달래주는,
인간관계도 서로 지나치게 얽히고 설켜 이 사람의 전 애인이 저 사람의 친구고
내가 알고 있던 남자애가 나중에 알고보니 저 언니의 남자친구고 하며
자연스럽지만은 않은 상황을 연출하지만
이제 그런 통속성을 거부하기엔
난 이제 나이도 들고, 적당히 통속적이고, 적당히 달관한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거든.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이 아주 마음에 든다)
어쨌든 그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의 하이라이트는
주인공 남자(연우)의 히스테리컬한 직장상사와
주인공 여자애(수영)의 마찬가지로 히스테리컬한 담임선생님이
한 이불 속에 누워 서로의 부하직원과 제자를 걱정하는 장면이었다.(푸하하)
그때 나는 진정으로 이 만화의 작위적인 인간관계를 깨끗이 용서할 수 있었으니......

몇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강풀강풀 할 때에
나는 사실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책이나 만화를 보는 건 나에게는 아직 낯설다.
그리고 강풀의 그림체는 첫눈에 사람을 휙 잡아끌진 않는다.
어수룩하고 안 예쁜 사람들하며 웬지 산만한 것 같은 구도하며
그러나 다섯장만 넘어가면 그 다음엔 밥먹는 것도 잊게 만드는 힘이 있다.
수시로 터지는 폭소와 따뜻한 눈물을 동시에 선사하는 참 드문 만화다.
(강풀은....약간 천재가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역시 만화는 스토리.....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 만화를 큰딸내미에게 보여주었다.
만화를 그리고 있는 딸내미가 그림체 말고 스토리에도 신경 쓰길 바라며....  

수영...용기있게 먼저 한발 다가설 수 있는 아이, 욕을 입에 달고 살아도 생각은 예쁜 아이, 자기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아이.
연우....나이는 먹었으나 소년같은 남자. 여고생을 사귀면서 끝까지 존대를 하는 남자, 자신이 외로워도 남을 먼저 챙기는 남자.

이 둘의 사랑에, 또 이 이야기에 나온 다른 이들의 사랑에 내가 위로받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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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11-16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강풀의 순정만화'가 뭔지도 모르고 여태 지냈어요. 흑흑.
이거, 꼭 봐야겠군요.

깍두기 2005-11-16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참 괜찮았어요.
제 주변 모두의 평이 그래요. 우리 딸들도....^^

mong 2005-11-16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이 신선합니다
^^

깍두기 2005-11-1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너무 충격적인가요?^^

로드무비 2005-11-1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도 내용도 마음에 쏙 드네요.^^

글샘 2005-11-16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똑같은 욕이라도 여고생이 하면 '상큼했죠?'
그런 통찰력을 가진 작가가 강풀이죠. ^^

날개 2005-11-16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제가 한참 전 옛날에 이벤트로 내놓았을때 타가지 그러셨어요!! 재밌다니깐~^^

하루(春) 2005-11-16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정말 재밌죠? 전 날개님이 주신 거 갖고 있어요. 1권 마지막 읽을 때는 눈물도 찔끔 흘렸다는... ^^

깍두기 2005-11-1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저도 어느 장면에선가 눈시울이....^^
날개님, 흑흑.....ㅠ.ㅠ(그걸 하루님이 타셨구만요^^)
글샘님, 만화에서는 상큼하던데, 실제로 보면 전혀 상큼하지 않던걸요^^
로드무비님, 저도 제목이 맘에 들어요. 좀 망설이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