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는 나다!’라고 말할 때 존재는 찢어진다. (여기서 존재Seyn는 주체와 객체의 결합을 표현한 말이다) —> 휠덜린의 질문을 헤겔은 아래와 같이 정리하는 데…

p.49 (반성하는 주체를 반성 이전의 존재로부터 분리시키는 비극적 간극을 존재 자체 속으로 옮겨 놓으며)  *‘존재’는 분리가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할 때 나타난다*.”

여기서 타자화와 대상화의 문제 ㅋㅋㅋㅋ 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고요… 아주 간단한 깨달음을 적고자 하는데😩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당신이 헤겔 철학을 읽는 사람이라면… 진지한 서양 철학의 독자들은 다 기독교인 (혹은 천주교인 혹은 종교인?)인걸까요. (지금 멘붕)

그르니까 나 같은 쌩유교걸은 없나요? (내면은 없고 수행성만 있는 본투비유교걸ㅋㅋㅋㅋ 수행성 개념보다 주체와 자아의 개념이 페미니즘 공부하면서 이해하기 더 어려웠던 존재 자체가 포스트모던인자 ㅋㅋㅋ who? 바로 나.)

가설을 세우고 있다.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까지 가지는 못하겠지만. 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 기도하는 내면이 없는 사람에게.  근대란? 자아란? 아니 한국의 (플랫폼+) 신자유주의라는 조건이란? 아 우리는 성공하는 개인이 되기에는 너무 너무 너무 집단이(천만 영화) 아닌가. 
질문 하나인데 파생된 질문 백 다섯개ㅋㅋㅋ

서울사람(;;;ㅋㅋ 더는 속지 않을 테다ㅋㅋ)이 되기로 결단하면서 글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n회 차의 상담을 끝내면서 주체가 되고 자아와 내면이 생긴 기분이더라. 그러고나니 읽는 책들은 모두 해체를... 권하고... 응? 여튼 내가 스스로를 구축/탈구축해 오면서 가장 걱정했던 건. 한국인에게. 나 같은 (신앙이 없는, 돈도 없는, 학부생 정도의 교육만을 받은, 읽거나 쓰는 것에 습관이 들지 않은,  자기만의 방 혹은 사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던)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다. 

내가 제3세계 유교걸 어쩌고 하는 질문을 할 때면 친구는 여기는 이제 1세계라고 했다. 그러니까 한국의 문제는. 민주화와 산업화(근대화) 모두에 성공해버렸다는 것. 그때부턴 내가 헤쳐온 어떤 상황들이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책을 읽을 때 느끼는 재미(라고 해야 하나. 고통과 쾌락이라고 해두자)는 한국이 겪고 있는 문제를 미리 1세계의 선배들이 다 겪고 싸우고 때로는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치열하게. 무튼 그렇게 살아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때다. 그건 현재 진행 중이며. 여성으로서의 나는 그들의 언어와 투쟁에 빚지고 있으며, (“초기 개척자의 사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읽기로 연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나를 포함한 한국 여성들의 몫이다.) 

지젝이 설명하는 독일관념론(철학) 흥미롭다. 음… 이걸 진지하게 읽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이 질문-존재-이 중요했을 종교적 베이스를 갖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 본다. 한국에 이런 책이 번역까지 되어 있는 걸 보면 이게 궁금한 사람들이 공부를 했기 때문일터인데 이런 걸 누가 읽고 왜 읽는지가 문득 궁금ㅋㅋㅋ 존재라니요? 읭??? 심지어. 존재-언어. 그러니까 철학을 왜 공부하는 걸까. (나는 덜 진지한 편… 여전히 말장난 같다는 느낌을 받는 현타가 오는 거다. 중요한 거는 알겠는 데 마음이... 내 ... 마음이.... 대충 띄엄띄엄 읽기로 마음 먹음ㅋㅋㅋㅋ)
책에서 지젝은 최근 헤겔의 진지한 독자이며 관련된 명저를 쓰는 사람들이 모두 여성(말라부, 코메이 + 내가 알기로는 총명한 헤겔리안 주디스 버틀러ㅋㅋ)이라는 코멘트를 달고 있다. 왜 그럴까 나도 궁금하네. 

할튼 실은 라캉의 성차이론이 궁금했던 나는 어쩌다보니 좌파 지젝 less than nothing을 또 지 맘대로 스피박의 전략적 본질주의ㅋㅋㅋ와 겹쳐서 읽는 중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 문장에서의 고집스러운 질문들의 포인트는. 뭐랄까. 내 안에서 헤어지는 것의 어려움 사실은 분리되고 싶지 않음  따위라고 해두자.  

<서백남들이 차린 망하기 직전의 레스토랑ㅋㅋㅋ 표지가 재밌어서 찍어뒀다.>


궁극적 분리는 주체-객체의 분리가 아니라 바로 (주체-객체의) 분리와 통일 사이의 분리이다. 따라서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동일성’이라는 공식을 ‘분리와 비분리의 분리’로 보충해야 할 것이다. 일단 이러한 단계를 완수하면 접근 불가능한 재귀 이전의 근거로서의 존재는 사라진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존재는 궁극적인 재귀적 범주로서, 자기 관계적인 분리의 결과로 모습을 드러낸다. *즉 ‘존재’는 분리가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할 때 나타난다.* - P49

나는 정신분석과 헤겔 변증법이 상호작용(라캉을 통해 헤겔을 읽고 거꾸로 헤겔을 통해 라캉을 읽는 것)을 통해 서로를 구출하리라는 것에, 익숙해진 허물을 벗고 전혀 예기치 못한 새로운 모습으로 출현하리라는 것에 내기를 걸었다(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다음과 같은 바디우의 주장이 이 책의 좌우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철학자 라캉은 철학의 재탄생의 조건이다. 오늘날 철학은 오직 라캉과 양립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 P53

즉 라캉은 자본주의의 가짜 위반들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현실이 기반하고 있는 환상들의 진상을 밝혀냈다. 하지만 라캉의 최종적인 결론은 우리는 운명적으로 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니 라캉을 통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큰 과제는 이런저런 버전의 주인 담화에 의해 다시 포획되지 않을 저항의 공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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