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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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의 구로-가디 지하철은 얼마나 지독하던지. 영화 부산행처럼 문을 비집고 질서 없이 들고 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허우적 대었다. 지하철 인구밀도가 심각한 날이면, 나는 예의 그 소설을 떠올린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셔야겠지만,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전철을 타야 하고,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타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곳을 택하겠는가.
처음 열차가 들어오던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열차라기보다는, 공포스러울 정도의 거대한 동물이 파아, 하아, 플랫폼에 기어와 마치 구토물을 쏟아내듯 옆구리를 찢고 사람들을 토해냈다. 아아,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뭔가 댐 같은 것이 무너지는 광경이었고, 눈과 귀와 코를 통해 머리 속 가득 구토물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야! 코치 형이 고함을 질러주지 않았으면, 나는 아마도 놈의 먹이가 되었을테지. 정신이 들고 보니, 놈의 옆구리가 흥건히 고여 있던 구토물을 다시금 빨아들이고 있었다. 발전(發電)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힘! 그때 코치 형이 고함을 질렀다. 해서, 엉겁결에 - 영차,영차 무언가 물컹하거나 무언가 딱딱한 것들을 마구마구 밀어넣긴 했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어찌 내 입으로 그것이 인류(人類)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박민규, 카스테라

*

부득이한 인류들.
각자의 사정으로 서둘러야 하는.
굳이 한발 재겨설 수 없는 그 틈으로 온몸을 우겨넣어야 하는.
어제 회식한 것이 분명한, 누군가의 코트에 배인 찌든 고기와 알콜냄새를 한껏 맡으며 생각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미간을 찌푸려 안쓰러워하며 오져하며 물어볼 것 같다고. 
“고생이다야, 그래도 어떻게 먹고는 살아보겠다고 나왔냐잉?” 
그러면 또 난 대답할 거다. 
“넵넵! 전 아직 괜찮은 데, 이렇게 많이 이 모냥으로 만드는 건 무슨 악취미래요? 하나님 좀 너무함.”

*

누군가를 쉽게 연민할 수 있었던 시기의 나를 떠올려 본다. 내가 감히 그러했구나 하고. 그때 내 주머니 속에는 이만원이 있었는데, 밀린 방값 육십만원이 없어서 우는 친구가 너무 불쌍했었다. 무슨 용감함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방값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는 게. 어쩐지 부끄러웠었다. 
그 순간 그게 왜 떠올랐을까. 그때의 내가 정말 이상하다. 하나님과 나의 거리만큼.

*

자수성가가 자랑인 사람들을 종종 본다. 때때로 존경심을 갖기도 했던. 그 시절 그들의 운과 그들의 출발선은 극복할 수 있을것도 같았다면, 다만 나에겐 젊음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겠구나, 한다.

*

집 가까운 곳에서 불이 난 적이 있다. 그때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느 뉴스에서 본 고양이가 인덕션과 함께 재가 되었다더라,를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인덕션에 락을 걸면서, 나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이 되었네? 했었다. 잘 포장해봐야 박스 세네개 겠지만, 그만큼을 잃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하염없었다. 
다 내손으로 이룬거야 하기엔 아직 갚고 싶은 빚이 많이 있다.

*

자수성가하지 못해서 다행이다. 아직은 어떤 식으로든 감사함을 느끼니까. 당연한 것이 없으니까.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는 믿음을 설파하기 어려우니까. 술잔이 졸고 누군가가 자신의 성공담과 실패담에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인생은 그런거야 라고 단정지을 수가 없어져서, 막막함을 함께 까무룩 막막할 수 있으니까, 그 속상함이 주는 위안이 있다.

시대를 지나는 모두가 자기 세대는 과도기라고 생각한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생각이 깊어졌다.연민은 줄고, 책임 질 것들은 많아지고, 더 얻고 싶은 것은 없으나 잃을 것들에 대해서 셈하고 있다.

*

매일을 겪어내면서, 고단해지면서, 용감함이 사라지면서, 지킬 것들을 지켜가면서, 미워할 것들은 미워하면서.
부득이하게 폐를 끼치기도 하면서.
쉽게 슬퍼하기보다는 자주자주 미안해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더디 갈 수는 없어 꾸역꾸역 몸을 밀어넣던 그 사람들과 함께.


*

금요일의 심야버스는 생각보다 사람이 없어서, 잠들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어보게 되더이다. 서로 미안해하며 몸을 밀착시키던 오늘의 지하철과, 치열하게 빠져나가기 위해 결전의 태세를 갖추던 나와, 이만원. 택시를 타지않아 아낀 내돈 이만원. 등등.

누군가의 곤란함에 대해 수월하게 연민하지않게된 것은, 불행일까 다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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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3 1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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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3 18: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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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3 1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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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3 1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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