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을 때, 그가 원하는 대로 나를 바꾸고 싶었지. 그래도 포기가 안되는 것들이 있었고, 너 자신을 찾으라고 책들은 말했지. 사랑을 위해서 나를 더 이상은 조절하거나 바꾸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사랑은 끝난 것일까. 사랑이 끝났기 때문에 더는 나를 바꾸고 싶지 않아졌던 것일까. 그것들의 인과관계는 잘 알 수 없지만 나는 종종 생각한다. “(p.148) 사과받고 싶다고. 딱 한번 이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일어난다 해도 나 자신이 변할 일은 없다.

*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 집에서 한 번, 그리고 이 연작 소설집에서 또 한 번.
<우럭한 점>은 총 두 번을 읽었는 데, 읽을 때 마다 같은 부분에서 목이 메인다.
˝(179) 그러니까 말이야, 엄마 있잖아, 단 한번이라도 내게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엄마의 본심이 아니었다는 것도,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알지만, 나는 엄마를, 당신을, -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뭘? - 정말 미안한데, 아마도 영영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왜 <우럭한 점>이 ‘그’로 시작해 ‘엄마’로 끝나는 지, 무어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돌고 돌아 결국 ‘엄마’에게 ‘사과’를 받고 싶은 내가 얼마나 비겁한지도 너무, 잘 알아.

*

읽는 동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이 생겼던, 만감이 교차하는 소설이었으나, 덮은 순간은 그 하고 싶던 많은 말들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개빻은 산부인과 의사의 조언에 병원의 자궁모형을 들고튀던 그녀 재희의 모습과, 정규직 전환을 꿈꾸던 비정규직의 쇼맨쉽으로 묻지 않은 자기소개를 자동반사적으로 예의바르게 떠들던 나와, 종종 길바닥에 드러누워 비오기전 우글거리는 질감의 하늘을 덮고 있었다는 규호는 이미지처럼 선명하게 기억에 남겨둘 예정이다.

*


여전히 나는 엉망진창이지만, 그런 나를 견딜 수 있어진 것은 다행이다.

겨우, 
정말인지 겨우.
여기까지. 

왔다.




재희의 말을 들은 의사는 피임과 정결한 삶의 중요성에 대해 20분도 넘게 일장 연설을 했다고 했다. 차트를 넘겨보며 주기적으로 방광염에 걸리는 것도 무분별한 성관계가 원인일 수 있다며 재희의 느슨한 순결 의식과 주색에 경도된 망나니 같은 삶 전반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재희는 벽에 걸린 십자가를 보며, 분노를 꾹꾹 삼키며, 말했다.
-저 같은 애도 있어야 선생님이 먹고 살죠. - P37

그리고 침묵. 당시의 나는 (정규직 전환을 꿈꿨던) 비정규직의 쇼매십을 온몸에 품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그러라고 한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먼저 나서서 저는 대학생이고, 불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요즘 재밌게 본 드라마는 무엇입니다, 취미는 독서이고, 이 수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계속 하나 마나 한 말들을 떠들어댔다. - P84

도대체 뭐가 신선하다는 건지. 박근혜가 옛날 사람인 건 전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 왜 나이든 꼰대들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만 만나면 자기가 아는 사람의 이름을 백명쯤불러대고, 자신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어젠다를 천개쯤 대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걸까. 알아서 뭐 하게. 알면 뭐가 달라져. 비슷한 것을 알고 있고, 비슷한 생각을 하면 나이 차이가 줄어들기라도 해? 다른 생각을 하면 어쩌게. 역시 애 같은 생각을 하는 군, 내가 살아온 세월이 헛되지 않았군, 여기며 엉망진창이 된 얼굴이며 몸 같은 것들을 자위질해대려고? - P132

그와 만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삶을 알아갈수록 그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했다. 애초에 그는 나와 뭔가를 맞출 생각이 없었고, 다만 아무도 없는 칠흑 같은 밤마다 순진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는 어린애인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나와 몸을 섞는 일을 즐거워했을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나를 바꾸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여겼으나, 불행히도 나는 누군가에 의해 쉽게 바뀌는 성격이 아니었다. - P153

내가 놀부처럼 생기긴 했어도 또 남들이 하자는 대로 곧잘 하거든. 정규 교육과정을 무사히 이수한 한국인이거든. - P221

회사 입장에서도 내 입장에서도 (야근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결정이라 할 만했으나 나는 매일 출처 없는 분노감을느꼈으며, 출근을 할 때면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하루를 끝낼 수 있기를 빌었다. - P259

혹시 한국어로 ‘즉페이칭사이‘가 무슨 뜻입니까?
네? 그게 무슨말씀이신지?
호텔밖에서 내내 그런 소리가 들려서요. 시위대가 외치는 말이었습니다. - P2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