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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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김밥과 라면이 먹고 싶었다. 라면이야 항상 먹고 싶지만 김밥은 대체 왜 먹고 싶지?했다. 그러다 어제는 대왕 돈까스가 먹고 싶었다. 🐽

희안하게도 썩 맛있지 않은 익숙한 것들이 먹고 싶었다는 것.. 이를 테면 “공장에서 제조된” 듯한 따분한 맛의 소스가 끼얹어져 있는 대왕 돈까스라든가, “들기름 참기름 반반” 발라서 착착썰린 김밥이라든가, “차갑게 식어서 탱탱불은, 그래서 밀가루 냄새가 쌔하게 올라오고 국물의 짠맛이 가신” 라면이라든가.

맛없는 대왕 돈까스의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이것은 분명 만들어진 식욕이다!’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뭐지뭐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진원지는 읽고 있던 김금희 짧은 소설집이었다.

....소설 속 선미가 포장마차에서 먹던 김밥 + 칼칼한 멸치육수의 오뎅국물, 주용이 좋아하는 불은 라면 등등.... 먹고 싶으니까 먹어야지! 점심으로 분식집 김밥+라면을 시켰다. 생각해보니 꽤 오랫만의 메뉴. 항상 먹는 그맛이지만 얌냠! 🤤

<나는그것에대해아주오랫동안생각해>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사건이 시작되고 해결되기엔 분량이 너무 짧다.) 그래도 착착 감겨 읽히는 까닭은 너무 소소한 이야기이기에 내 이야기 같아서.

돈까스에서 자각한 후 다시 책을 뒤적이니 이 책.. 김밥에 에그머핀, 규카츠, 수프, 돈까스, 햄버그스테이크에 맥도날드버거, 미역국까지 참으로 오만 음식들이 등장한다. ........이 정도면 ‘나는 그 맛에 대해 생각해’로 했어야 하는거 아녀? ㅋㅋ

작가는 머릿말에 “사람의 사사로운 기억을 ‘사사롭지 않게’ 기록해두는 건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그러므로 당신들이 괜찮다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당신들에 대해 생각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라고 썼다. 끄덕끄덕.

특별하지 않은 사사로운 하루들-맛있지 않은 일상적인 음식들-그닥 예쁠것 없는 주변 사람들-은 서로 딱붙어있어서 셋중 하나를 생각하면 나머지들도 함께 떠오르게 마련이다. 나에겐 만나면 꼭 쏘맥을 말아먹게(?)되는 동네친구와 모기업의 치킨이 먹고 싶을 때 그리운 사람들과 그 치킨에 딸려오던 떡꼬치와 떡꼬치를 함께 주는 최근 뚫은 치킨집과 연관검색어처럼 연동되는 치킨 파트너 동생, 한때는 좋아했던 로제파스타를 쳐다도보기 싫게 만든 어떤 분이 있다.. 하하하ㅎㅎㅎ

일상에서 만난 아무럴 것 없는 일인데 문득문득 머물러 오랫동안 생각하게되는 소재들. 보통은 휘발되어 날아가는 그것들을 김금희는 꺼내서 참 가지런히도 썼다. 그래서 난 소설속 등장음식(?)들이 먹고 싶어졌나보다.


40
아침에 일어날 때면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기보다 마치 밭에서 무 같은 것을 뽑아올리듯 무언가가 자신을 이불 속에서 끄집어낸다는 느낌이었다.

68
파리 살롱을 다시 찾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어딘가에서 불현듯 추위를 느끼고 혼자임이 실감된다면 어디든 가장 가까운 곳에 들어가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따뜻한 것, 아주 따뜻한 것을 먹겠다고.

177
국민돈가스는 정말 크기가 쟁반만 했고 아주 진하고 풍미가 강한, 그래서 아마도 공장에서 제조된 제품을 쓰지 않을까 싶은 흥건한 소스가 끼얹어져 있었다. 돈가스를 잘라서 우걱우걱 씹다 보니 그 소스는 지긋지긋하고 막막하고 따분했던, 선명한 분노와 어긋남의 결이 있었던 할아버지와의 동거를 떠올리게 했다.
햄버그스테이크가 있는 테이블에서 맡았던 카레 가루 냄새가 여기서도 나는구나, 그러니까 그런 건 어느 누구에게나 있는 마치 공장의 제조 소스처럼 일관되고 표준화된 추억이구나 생각하면서도 콧날이 시큰해졌다. 그건 어떤 이별에 대한 뒤늦은 실감이자 그리움 같은 것이었고 동시에 미안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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