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 빈센트 반 고흐 전기, 혹은 그를 찾는 여행의 기록
프레데릭 파작 지음, 김병욱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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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람을 한면만 보고 멋대로 이상화하면 안된다. <반고흐, 영혼의 편지> 속에 나타난 고흐는 이상을 위해 자기 자신을 너무 몰아붙여 안쓰러운, 선량하고 미련한 사람이었으나. 프레데릭 파작이 쓴 전기 속에 나타난 고흐는 일종의 구원자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실패자이자, 세상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집요하게 자신을 완성하려는 괴팍한 고집쟁이 그 자체다. 게다가 연애는 드럽게 못하고, 무슨 사창가는 왤케 많이 다니는 거며, 평생 가난에 시달렸다면서.... 빈대생활 와중에 길에서 거둔 여자와 살림도 차리고, 그녀의 사생아‘들‘까지 거두어 갓난아이까지 키워내는 정녕 박애...주의자... (내 가족이었으면 진짜 뒷목 잡고 쓰러졌다.) 그를 후원해준 동생 테오에 대한 궁금증이 더 깊어짐. 부처의 환생인가.


라고 마구마구 화내며 적었지만,

읽으면서 ‘빈센트’라는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의 입체적 매력에 더 흠뻑 빠졌다. 파작의 유려한 문체도 한 몫 했지만, 고흐의 글들이 그의 생애와 함께 적절히 인용·배치되어 조금 더 깊이 이 인물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문장들.

“(61) 처음에 사람들은 호기심에 이끌려 이 신참 전도사의 설교를 들으러 왔으나, 그의 설교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오기를 망설인다. 그의 설교를 듣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욕설을 하는 일이 잦아진다. 금방 줄이 듬성듬성해진다. 빈센트는 이에 개의치 않고 더욱더 열심히 설교한다. 그는 정원의 오두막에서 자기로 결심한다. 그의 그런 자기 희생에 사람들이 불안해한다. 방의 안락함을 거부하고 밀짚 위에서 잠을 자는 이 ‘하느님의 미치광이’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누구이기에 빵과 쌀과 당밀만 먹고, 차가운 날씨에 맨발로 걷고, 포장용 천 조각만 걸친단 말인가?”

ㅎㅎㅎ
이런 부분이 딱 이 부분만 있지는 않아서, ‘이 인간 참 징하다!’ 고 감탄(!)했다. 그가 화가여서 다행이지만, 꼭 화가가 아니라도 뭐라도 되었을 것 같다.... 😨😨

다만 현실에서 이런 전도사를 보면 좀 무서울 것 같고, 이런 선생님을 보면 도망다닐 것 같으며, 그가 보험설계사나 뭐 비슷한 계통의 세일즈를 했다고 생각하면.... 후우... 화가여서.. 창작자여서 다행이다.. 😞 빈센트씨, 진로를 잘 설정하셨군요..

“(254) 형의 주머니에서 테오는 형이 쓴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편지는 다음과 같은 말들로 마무리된다. ‘글쎄, 내가 해야 하는 일, 난 거기에 내 인생을 걸었고, 그 일로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버렸어 - 그래, 좋아 -한데 내가 아는 한 너도 장사꾼 부류는 아냐. 그래서 내 생각엔 너도 마음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정으로 인류와 더불어 행동하면서 말이야. 대체 뭘 어쩌려는 거야?’”

광기와 맞닿아 있는 듯한 집요한 정열. 꾸준한 열심. 자신이 아는 만큼을 삶에 구현하려 했던 현실에서 만나기 진짜 힘든 사람. 그래서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겠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에게는 생애를 통틀어 쓸 수 있는 일정량의 ‘생의 에너지’ 같은 것이 있어서,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그 에너지를 다 써버린 이들은 빠르게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이를테면 고흐나 벌써 올해 30주기라는 기형도 같은. 그들의 시간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들 안에서는 매우 천천히 흘러서 ㅡ 고작 서른 몇 해 뿐 일지라도 남들이 평생 느낄 것을 다 느끼며, 순간순간을 강렬하게, 아주 밀도 있게 자기 몫을 다살고 간 것은 아닐까하고.

범인인 나는 밀도 있는 삶보다는 가늘고 길고 몸이 건강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어떤 작품 속이든 혹은 역사 속 인물이든 고흐같은 삶에 눈을 떼지 못하게 되는 것을 보면 역시 인생이 한,번, 뿐인 것이 아쉽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욕심. 그 삶들이 탐나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을 때가 많다. (엿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불러서 엄두는 안나는 듯?ㅋㅋ)

늦은 저녁 카페테리아, 압생트를 앞에 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에 대한 논쟁적 이야기를 끊임없이 횡설수설 하고 있을 사회성이 없어보이는 고흐를 상상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나는 그의 전혀 신경쓰지 않은 외모에 놀라지 않을 것이며, 따뜻한 시선으로 그 맥락없는 이야기를 채근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며 끝까지 들어주고 싶다. 물론 다음 날 눈뜬 빈센트는 취한 어제가 기억 안나겠지만, 그래도 다른 아침들보다는 후련한 마음 상태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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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갑자기 미안하네...;;; 전날이 기억은 안나지만 기분만큼은 후련했던 20대의 숱한(!!!!)아침들.
아, 따뜻한 눈의 내 사람들아~ 이제와서 사과할게...미안. 난 고흐도 아니었는데.....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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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아! 광기 발작 이후의 차가운 평온을 말 해주는 그의 자화상, 무감동한 시선으로, 입에 파이프를 물고 있는 그의 그 귀 잘린 자화상 앞에서 나는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던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밭두렁 길에 잘린 밀밭,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하늘, 그리고 풍경의 거짓 정적에 흠집을 내는, 검은 십자가 같은 그 까마귀들은 또 얼마나 감동적 이었던가.
물론 나는 미술관들에서 그를 다시 보곤 했다. 그는 환한 빛 속으로 솟아올라, 언제나 곧장 나의 두 눈에 부딪히곤 했지만, 그러나 나는 그를 잊고 있었다.
그의 남프랑스 그림은 나의 숨을 멎게 하곤 했다. 그 많은 물감, 그 많은 색깔, 그 많은 태양이라니.

(50)
1878년 7월 5일, ㅡ너무 힘든 공부에 낙담한 빈센트는 에턴의 부모님 댁으로 돌아간다. 암스테르담에서 보낸 이 열다섯 달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기다. "내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
그는 자신을 실패한 설교자로, 아니 실패자 그 자체로 여긴다. 그런 감정이 그에게 소학교 시절의 불행들을 상기시키고, 자신의 실패를 곰곰이 되씹으며 그는 지독한 엄격주의자 프로테스탄트로 행동한다. 자신의 수치를 한입 가득 들이마시는 것이다.

(216)
이제 빈센트는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그에겐 포도주잔이 거부된다. 그는 압생트에 만취하던 때를 기억한다. 그에게 생생한 색깔을 고취시킨 것은 바로 파리의 카페들에서 미친 듯이 마시던 알코올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림을 좀 더 칙칙하게 그리고 싶어"한다. 때때로 그는 창문의 쇠창살 앞에서 되씹는다. "무슨 짓을 해도, 돈 문제는 여전히 군대 앞의 적처럼 저기 있구나."

(255)
빈센트가 죽은 지 6개월 후, 1891년 1월 25일, 테오 반 고흐도 위트레흐트의 한 요양소에서 구금생활을 하다가 사망한다. 두 형제의 시신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작은 공동묘지에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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