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사이드 - 여성혐오 살해의 모든 것
다이애나 E. H. 러셀.질 래드퍼드 엮음, 전경훈 옮김 / 책세상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2월의 페미니즘 읽기책 <페미사이드>의 늦은 리뷰를 올립니다.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심각하게 읽었던 부분은 4부(매스미디어, 포르노그래피, 고어노그래피) 입니다. 종종 ‘포르노그래피’를 표현의 자유로 정당화하는 논리들에 가끔 꿀먹은 벙어리가 되곤 했기 때문이죠. 일상에서는 “그거 다 여혐이야~!”라고 나이브하게 맞받아치긴 하지만 야동을 보는 것 보다 안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요즘세상에 모든 인간관계에 “님 노답! 차단!”을 맥일 수도 없고.. 감정적 대응 이전에 나름 합리적인 설명을 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책 덕분에 조금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단 저자는 포르노그래피와 성애물erotica을 구분합니다. 여기서 성애물은 성차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성을 묘사한 것이라면 포르노그래피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394)포르노그래피는 성적으로 노골적인 성차별의 선전물이다. 앤드리아 드워킨과 캐서린 매키넌Catharine MacKinnon은 포르노그래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포르노그래피는 ‘이미지 그리고/또는 언어를 통해 여성의 성적인 예속을 노골적으로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 사항 중 하나 이상이 포함된다.
① 여성이 성적 대상, 물건 또는 상품으로서 비인간화되어 제시된다. ② 여성이 고통이나 모욕을 즐기는 성적 대상으로 제시된다. ③ 여성이 강간당할 때 성적 쾌감을 경험하는 성적 대상으로 제시된다. ④ 여성이 묶여 있거나, 난자당하거나, 신체를 절단당하거나, 멍들거나, 육체적으로 상처를 입은 성적 대상으로 제시되다. ⑤ 여성이 성적으로 복종 또는 굴종하거나 전시되는 자세나 위치로 제시된다. ⑥ 여성의 신체부위들이 - 질이나 가슴이나엉덩이를 포함하되 거기에만 한정되지는 않고 - 전시되어 여성의 존재가 그 신체부위들로 축소된다. ⑦ 여성의 본성이 창녀인것으로 제시된다. ⑧ 여성이 물건이나 동물에 의해 삽입당하는 모습으로 제시된다. ⑨ 여성이 비하, 상해, 고문을 당해 피를 흘리거나 멍들거나 상처 입은 모습으로 불결하거나 열등하게 제시된다. 맥락상 이러한 상태에 성적 매력을 부여한다(Dworkin andMacKinnon 1988, 36)’ 헬렌 론지노Helen Longino는 포르노그래피를 ‘비하적이거나 가학적인 성적 행위를 재현하거나 묘사하여 그와 같은 행위를 승인하는, 그리고/또는 권장하는 성적으로 노골적인자료(Longino 1980, 44)라고 정의한다.”


“(411) 페미니스트들은 포르노그래피를 선전의 한 형식”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여성을 소유하고 사용하고 소비할 수 있는 대상, 상품, 물건으로 보는 관점을 유포하며, 그에 수반되는 믿음을 강요”한다고요. 물론 주류학계에서 이러한 주장들은 무시됩니다. 그러나 생각을 좀 달리해서 우리가 거북해하지 않게 받아들이곤 하는 이론들을 검토해봅시다. 저자는 ‘광고’와 ‘욕망’을 끌어오죠.

갤브레이스는 《부유한 사회 The Affluent Society》에서 “(413)[현대 광고의] 중심 기능은 욕망을 창조하는 것 -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욕구를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라고 말합니다. 그 밖에도 광고가 대중들의 의식과 욕망을 형성한다는 류의 언설은 특별히 새로운 이론이 아닙니다.

그리고 “(412) 이것은 정확하게 러셀이 ‘어떤 남성들에게 여성들을 강간하길 원하는 성향을 갖게 하는 역할’이라 부른 포르노그래피의 능력이다. 포르노그래피가 이런 역할을 행하는한 가지 방법은 ‘이전에 강간 묘사 장면에 자극되지 않았던 남자들에게 자극적인 여성 누드를 반복적으로 강간과 연결하여 보여준 뒤 나중에는 강간 장면에 자극되도록’가르치는 것이다.”

저는 이 부분이 사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비재 광고’가 ‘자본주의’의 선전방식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면 현대의 ‘포르노’란 ‘가부장제’의 또 다른 선전방식일 수 있다는 주장도 비약은 아니다 라는.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서웠습니다. 가부장제의 선전물들이 얼마나 여성을 끔찍하게 다루는지 대충은 알고 있으니까요.

현실은 더 시궁창입니다. 강간을 넘어 살해로. 포르노그래피는 페미사이드로 연결됩니다.

“(398) 페미사이드와 포르노그래피 사이에 그나마 존재하던 구멍이 숭숭 뚫린 경계는 스너프 필름(snuff 여배우를 고문하고 사지를 절단하고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모든 포르노그래피가 스너프 필름은 아닙니다만, 궁극의 포르노(?)에 스너프가 위치한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저자의 글에 따르면 미국의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어렵지 않게 ‘성인’ 혹은 ‘호러’섹션에서 소프트 스너프 영화들을 구할 수 있다고 해요. 예상하셨겠지만, 소프트가 연출된 살해라면 하드 스너프는 정말로 살해하는 장면을 담은 필름으로 이 경우는 비밀리에 비싸게 거래된다는 군요. 오늘날 처럼 데이터를 공유 복제하기 쉬운 사회에서 스너프 류의 영상들은 더 구하기 쉬워졌겠죠. 마치 몰카가 ‘국산야동’으로 둔갑해 흔해져버린 것 처럼요.

물론 포르노를 보는 모든 남성들이 여성을 강간하지는 않습니다. 포르노그래피가 ‘페미사이드-여성혐오살해’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당연히 ‘모든’이들이 그럴리 없죠.

그러나 아주 ‘일부’라도 영향을 받는다면? 
그에 대한 피해를 여성들이 일방적(그것도 강간과 살해라는 방식)으로 치러야 하는 것이라면?

범람하는 ‘포르노의 시대’.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에 대한 강간 - 그리하여 결국 여성에 대한 살해로 이어지는 야만에는 그러한 욕망을 부추기는 미디어들의 선전이 분명 작용합니다. 저 역시 이전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상징되는 권력의 작품 검열과 규제에 대해서는 반대하며,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입니다만, 어디까지가 ‘자유’와 ‘권리’로 허용되어야 하는지... 정말 어렵네요.

다만 이것 하나는 알겠습니다. 포르노그래피와 스너프 필름은 적어도 여성인 제가 자유롭게 세상을 활보할 수 있는 권리를 신장해주지는 않는 다는 것을요. 꼭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도 토막나고, 난자당하고, 사지가 절단되는 류의 작품을 요즘처럼 흔하게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관련한 페미사이드의 한 단락을 가져옵니다.

“(378-9) 포르노그래피가 “기술적으로 정교화된 여성 인신매매”라면, 더 나아가 스너프는 일종의 하이테크 린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실제 성차별 살인을 담은 영화나 비디오를 시청하는 남성들의 행위가 미국 내에서 문화적 관례로 ‘정상화될’수 있다는 악몽 같은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실제 살인을 촬영한 영상물과 구분되지 않는 ‘연예 오락’자료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되는 한, 정부 역시 연쇄살인의 공모에 직접연루된 것이다.
미국 헌법은 기업의 통제를 받는 미디어가 없던 시절에 작성되었다. 그때는 사진이나 영화도 없었고, 대량파괴용 기술도 없었으며, 여성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헌법이 여성들에게 제공한 미심쩍은 혜택 가운데 으뜸가는 것은, 오락과 광고가 포함되는 ‘매스mass’미디어에서 동료 여성이 모멸을 겪고 사지를 절단당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권리다. 그에 버금가는 혜택은 공격무기를 지닌 남성에게 공격당할 권리다. 이 두가지 권리 모두 포르노그래피 비즈니스와 총기판매 사업에 종사하는 백인 남성들에 의해 철저히 보호받는다. 이들은 진보적인 변화를 막기 위해 정계에 로비하고 선전활동을 벌이는데 수백만 달러를 지출한다.
권리장전은 글로벌 공동체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의 기술수준을 지닌 다원주의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다. 업데이트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