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탄생 -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최정운 지음 / 미지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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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쓰연 4번째 책

함께 읽는 4명 중에 3명을 괴롭혔으나, 정작 나는 전혀 괴롭지 않았던 읽쓰연의 네 번째 책. 치즈 곱창을 먹으면서 모임의 H는 물었다, “언니, 대체 이거 왜 읽자고 한 거예요?” 소주로 입을 헹구면서 대답했지.

“(네가 저번에 읽자고 한) 민족주의 책 읽고.. 한국인과 한국의 민족주의가 궁금해져서 검색해봤는데, 이게 제일 괜찮을 거 같아서.” 라 말했는 데, 뭔가 분위기가 싸했다. 그러니까 ...... 두께도 두께지만, 너무 재미도, 의미도 없다는 책에 대한 반응들.

뭐라고????!!!!!!!!!즈엉말?????????? 😳😳
나는... 재/밌/었/는/데????????????????
🤯🤯개충격🤭

H는 말을 이었다. “정희진 샘이 책 고르는 기준이 있는데 백인, 중산층, 지식인, 남성이 쓴 책은 일단 거른대요. 이 책은 심지어 서/울/대 교수고 ‘노’학자예요. 어떻게 보면 주류중의 주류?! 그래서 언니가 이 책을 골랐다는 것부터가 좀 놀랐어요.”

정희진 머모님의 그 기준은 나도 알고 있었다. 실생활에서 적용해봐야겠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음음. 보자, 좋아하는 저자의 책을 고르고, 사고 싶은 책을 사고..... 읽던 것을 읽고.. 그러고 보면 스무살 이후 내가 익숙하게 읽어온 책들이라는 건. 대부분. 남성 / (고학력의) 지식인 / 전문가-중산층 ... 뚜뚜뚜...

집에 있는 책장을 살펴봤다. 최근에 사들이기 시작한 페미니즘 책들 말고는 다들 ..... 뚜..뚜..뚜... 정말, 내가 열심히(?) 사모은 저자들일수록 더욱더.. 뚜....뚜...뚜..

그 날, 책장을 살핀 후 머릿 속을 생각했다. 헹굴 수 있다면 좀 흐르는 물에 헹구고 싶었다. 그리고 내 몸을 생각했다. 내 몸이 겪어온 서른 몇 해 동안, 당연히 체득해온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자연스럽게 흡수해왔던 윤리들을. 그것들은 모조리 누구의 것이었을까? 누구의 입맛에 맞게 살아왔던 걸까.

그러니까, 정체성. ....
한국인의.. 아니 그 이전의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

책 이야기를 하자. 난 재밌었다.
‘한국인’이라고 하면서 ‘근대’를 그것도 ‘소설’을 톺아봤다는 방식 자체가 신선하다고 여겼다. 저자가 ‘오월의 사회과학’이라는 책을 집필했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국가는 없는 데 민족의식이 싹트던 시절 조선인들은 무엇을 욕망했을까.. 궁금해하며 소설이 반영하는 당대의 사람살이를 추측해본 독서경험이었다. 저자가 구한말의 시기를 ‘홉스적 자연상태’ 쯤으로 추상화해서 논지를 전개했던 부분도 흥미로웠고, 인용된 전/신/근대 소설들을 읽는 만으로도 것도 즐거움~

망국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근대,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들은 누구보다 ‘강한 조선인’을 열망했고, 문인과 지식인들은 그 모델을 발굴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으며, 이러저러한 과정을 통해 ‘망한’‘헬조선’인들은 해방 이후 ‘무엇과도 싸울 준비가 된’‘한국인’으로 거듭나 있었다는 결론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임꺽정과 반지성주의를 연결한 부분도 좋았다.

물론 ‘작품을 선정한 기준이 뭘까?’‘아,여성작가는 1도 없네’‘이광수 너무 미화하셨네, 일제강점기 최애 시인 윤동주도 분석해주세요!’정도의 불만은 있었지만, 아주 작은 불만이어서 걸끄럽지 않았다. 아마, 같이 읽는 모임이 아니었다면, 후편인 <한국인의 발견>을 마저 읽으려 했을 것이다.

*



하지만 난 친구들과 함께 읽어버렸고, 그들의 평을 듣고 책을 읽을 때보다 더 세게 머리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지금은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를 읽고 있다. <문학을~>의 부제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 문학사’이다.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신소설은 ‘여성적인 장르’이다(p.21)” 이 글은 신소설을 통해 근대초기에 여성을 둘러싼 담론의 변화를 추적한다.

반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아보자는 <한국인의 탄생>은 신소설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신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주체성, 자의식, 개성 등을 갖추지 못한 여성들이었다. 이처럼 피동적이고 내용이 전혀 없는 껍데기만 있는 ‘여성피해자’들이 바로 우리 역사에서 나타난 최초의 근대인의 모습이었다.(p.79)”

두권의 책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주제의식은 다르다. 한 문장만 따로 떼서 평면적으로 놓고 비교할 수도 없다. 신소설의 여성주인공들을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의 영역은 내 그릇을 벗어난다.

다만, 음.
내가 적는 이 글은 다른 무엇도 아니고 ‘내 정체성’에 관한 내용이니까.

*

‘정체성’이라는 것은 어떤 집단에 대한 동일시 일 것이다.
내가 동일시하고 소속감을 느끼고 있는 집단을 살펴본다. 1차적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의 경우 민족단위의) ‘국가’일 테고 그래서 난 이 책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한국인.
인생의 대부분은 ‘학생’으로 지냈고, 지금은 자기 먹을 밥은 자기가 버는 노동자다. 전라도출신 서울시민, 장녀, N포세대. 이념의 스펙트럼으로 따지면 진보로. 민주당과 녹색당과 민중당 어디쯤에 있는 것 같은데, 어디에 서야할지 몰라서 정당활동은 안한다.
읽어온 책만 놓고 보면 586 아재들의 뇌를 장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내가 ‘동일시’하는 집단, 혹은 정체성에 ‘여성’이라는 카테고리가 추가된 것이 아주 최근래의 일이라는 사실이.

난 얼짱녀도, 된장녀도, 그렇다고 메갈/워마드도 아니었으므로. 그 흔한 OO녀라는 멸칭들이 붇는 ‘여성’들에는 동일시를 할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은 정말 여혐민국이었고, 그 안에서 살아온 나에게 ‘여성성’은 언제나 ‘연약함’으로 상징되는 극복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책 부제의 말마따나 강한 인간이 되고 싶었는데, 남자가 아니니까 그건 좀 불가능 했던 것 같고 씩씩하고 또 싹싹하다는 수식어 정도에 만족.

혐오, 혐오, 혐오.
내안 남겨진 가부장제의 시각을 직면할 때 마다 소름이 끼친다. 심지어는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믿은 책읽기나 공부조차 그것들을 내면화하는 과정이었다.

*

그날의 모임은 이렇게 끝났다.
이 책은 ‘한국(지식인 남성)인의 탄생’에서 괄호를 과감하게 삭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쓴 ‘한국인’에 대한 책쯤으로 여기자고. “한국인=기본값이 성인 남성!!?”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저자가 일반화해서 ‘한국인’이라 언급한 인물들에 나(나의 어머니/할머니/아버지)는 없었다. ‘그래도 2013년에 나온 책이었으므로, 감안해주면 안될까’ 소심하게 의견을 피력해 보았지만, 독서 모임 친구들은 ‘시대에 맞게 지식인이면 더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게요.......
최정운 선생님, 업데이트들 하셔야겠어요........
그리고..... 나는 책 고르는 수준을 좀 더 업데이트......

요즘 읽고 쓰면서 되게 많이 반성하는 데, 독서라는 행위가 가진 속성이 ‘반성’인건지, 나이가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지.. 김중혁 작가가 했던 말마따나 초딩때 쓰던, 언제나 반성으로 끝나는 일기의 습성이 남은 건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남겨두려고 쓴다. 업데이트, 동기화.




(50)
‘사랑’이라는 말이나 관념을 가지고 있는 민족은 흔하지 않다. 서구의 ‘사랑’과 꼭 같지는 않지만, 우리의 전통문화에도 ‘사랑’이라는 말과 개념이 있다. 흥미롭게도 우리를 제외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비슷한 말은 있지만 남자와 여자 간의 성관계를 포함하는 특별한 관계와 감정으로서 정확히 대응되는 개념은 거의 없다. 한자의 ‘애愛’도 고전의 용례에서는 ‘아끼는 마음’, 예를 들어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었다. 일본에서 근대 이전에 많이 등장하는 ‘이로色’라는 말은 게이샤나 유녀들과의 관계를 이르는 말로 우리 문화나 서구 문화에서의 사랑, love와는 아주 다른 뜻이었다. .... 그러나 몇가지 중요한 특징중 상대방에 대한 욕망, 각별한 감성, 상대에 대한 배타적 정의와 의리, 그리고 특정한 ‘사랑’의 관계에 대한 결의 등은 공통적이다.

(73)
신소설은 서양식 소설을 흉내 내기 위해 시작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일차적으로 당시에 우리 조선 말고는 어디에도 없는 희한한 이야깃거리가 나타났기 때문에 시작된 예술 장르였는 지 모른다.

(132)
근대 사회 또는 근대성이란 다양한 얼굴을 갖지만, 한반도에서는 중세가 망가지고 흩어진 파편들로서의 개인들이 근대로 나타났다. 그곳은 지옥같은 ‘정글’이었으며 거기에서 처음 발견된 근대의 생명체는 속 빈 넝마 인형 같은, 인물성이 부정된 ‘피해자여성’들 뿐이었다. 그러나 몇년 후 그 지옥의 정글에서 자라난 생명체, 즉 한국인은 생명력 그 자체였다. 생존의 대가survivalist로서의 최초의한국 근대인, 특히 여성은 누가 창조한 인위적인 피조물이 아니라 그 지옥같은 자연에서 살아남고 진화한 최적fittest의 생명체였다. 그들은 말하자면 인물성이 부정된 껍데기 밖에 없던 피해자에서 그런 존재성이 다시 부정되어 진화한 강한 자의식과 개성을 갖춘 강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나타난 고독한 남성 투사는 가족생활에 무책임하며 능력 없고, 사회정치적 행위의 합리성은 전혀 갖추지 못한 채 이 모든 것에 자존심을 앞세우는 그런 인물이었다.

(255)
1910년대에 나타난 초기 민족주의자의 두 초상의 공통점은그들은 그들의 정체의 형식을 채울 내용(內容)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각자 민족을 위해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요건을 갖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조건의 부재(不在)의 아쉬움을 아프게 느끼고 있었다....무엇이 없음(不在)을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그것을 욕망하고 있다는 것 이다.우리의 초기 민족주의자들은 욕망의 화신이었다.

(426)
1933년 이광수의 『유정이 발표되자 강한 조선인을 만드는비결(秘訣)이 드디어 공표되었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랑으로 욕망과이성의 갈등이 시작되고 두 힘 사이에 상승 작용이 일어난다. 그리고 두 힘을 최대한으로 확대시켜 그 사람을 죽게 한다. 그러면 그 죽은 이의 영혼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주변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것이고, 그들은 끝까지 싸우는 불멸의 전사가 된다. 이것이 바로 그비결이었다..... 1930년대 중반이 되면 조선에서 사랑의 의미는 전적으로 변화하였다. 사랑은 행복을 위하여 이성과 행복한 교제를 하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 사랑은 뜨겁게 그러나 끝없이 자제해야 하는 일이며, 이는 행복한 삶을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강한 인간, 강한 의지로 끝없이 참고 이루는 인간을 만드는 더욱 진지한 일이었다. 사랑은 고통스럽지만 보람 있고 생산적인 일이었다.

(486-7)
공통적으로 ‘민중’이라는 말은 ‘백성 민(民)’에 ‘무리 중(衆)’을 합하여 ‘국가에 속하는 수많은 군중들, 큰 무리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쓰였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지혜라기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밀어붙이는 힘, 엄청난 규모의 물리적 완력에 초점이 맞추어진 말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백만민중(百萬民衆)’이라는 쓰임새는 단적으로 많은 사람이라는 군중의 규모에 착안한 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중’이란 ‘정치적 의미를 갖는 육체적 힘으로 구성된 수많은 군중들’ 정도의 뜻으로 만들어진 말이며 그렇게 쓰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20년대 전까지는 ‘민중’이라는 말은 서서히 정치적 혁명적 의미의 작은 조각들이 그 안에 모여들고 쌓여가는 과정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민중이라는 말은 혁명을 생각하던 사람들, 나아가서 혁명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511)
전통적인 영웅이 고결한 존재였다면 임꺽정이 대표하는 우리이 그대 영웅은 누구나 부러워하고 질투할 수 있는 ‘관능적 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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