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데 집중도가 좀 필요하긴 하지만 몹시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
근래의 헬(탈)조선 담론과 청년들의 높은 자살이 오버랩되어 혼자 피식거리다가 가져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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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구한말, 망하기 초직전의 조선, 지금의 헬조선이 아닌 진정한 헬이나 다름없던 대혼란의 시기. “신소설” 이라는 근대소설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전근대 소설이라고도 할 수 없는 괴랄한 소설 문학이 등장한다.

저자는 보통은 “문학적 수준이 결여된 낮은 작품”들로 이해되는 이 소설들이 어쩌면 “조선 말고는 어디에도 없는 희한한 이야깃거리가 나타났기 때문에 시작된 예술장르였는지 모른다.(p.73)”라는 관점을 건넨다. 개연성이라고는 없는 사건들, 도통 정상을 찾아보기 힘든 등장 인물, 그리고 그들의 엽기적인 행동들. 신소설에 나타나는 천태만상은 픽션이 아닌 당시의 조선사회의 진짜 모습이었고, 조선의 20세기 첫 10년은 “홉스적 자연상태”에 가까웠다는 추측.

붕괴된 사회, 분해된 개인. 등쳐먹고 살거나, 죽지 못해 살거나, 그렇게 생존이 목적이 되는 인간들만이 보이는 세상.
그 시절을 살아본 적도 제대로 공부해본 적도 없지만,
난 문득 2010년대의 초반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의 우리들이 자살을 하거나 탈조선을 외쳤던 것 처럼 구한말의 조선인들도 “최고의 선택은 한반도를 떠나는 것 특히 유학이었고, 그다음은 자신의 개화된 의지를 증명하는 자살(p.132)”이라고 생각했었나보다.

두가지 선택지 조차 가능하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세상을 떠날 수 없는 이들-은 거의 삶을 포기한 채로 악행에 서슴없어지거나, 세상을 닮지 않기 위해 자기를 걸어 잠구고 겨우 자기 하나 정도를 지키는 것에 집중하는 “‘에고 과대증, ‘독불장군’의 비사회적 인물(p.132)”이 되어갔다고 한다. 뭐지 이 뼈때리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전형?!?! 1900년인데.. 100년동안 뭐한거니 우리..

그런 인물들을 만들어내고 그런 인물들이 만들어간 조선은 ^결국^ 망했다!!! !!! !!!!! 정말로 역사는 되풀이 되는 건가. 한번은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희극이겠지? 희극일거야. 희극으로...


“(p.124-6)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에 신소설에 등장하는 최고의 해결책은 한반도를 떠나는 것이었다. (...) 우리 민족에게 한반도를 떠나는 꿈은 이때 공식화 되었고 아직도 해외 유학의 열정은 뜨겁기만 하다. 우리민족의 디아스포라 diaspora는 이미 1870년을 전후해서 시작되었고 (...) 이런 현실에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유교사회에서 자살은 부모에 대한 최악의 죄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자살이란 갑오경장 이후에 개인의 권리와 자유라는 관념이 등장한 이후에 ‘개화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목숨이란 ‘자기의 것’이라는 생각은 갑오년 이전에는 불가능 한 것이었다. (...) 하지만 평소에 존엄성과 적극성을 증명하지 못하던 여성들이 마지막 단 한번 만이라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행위가 강물에 뛰어드는 자살이었다. 이 내면의 극적인 꿈틀댐이 바로 신소설이 보여주는 이 시대 여성들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신소설에서 여주인공의 자살은 한반도에서 여성들이 깨어나는 몸부림이었다.”

“(p.132-3)
한반도에는 영웅, 주인공이 먼저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의 배경이 될 현실로서의 자연상태가 먼저 나타나있었다. 근대 사회 또는 근대성이란 다양한 얼굴을 갖지만, 한반도에서는 중세가 망가지고 흩어진 파편들로서의 개인들이 근대로 나타났다. 그곳은 지옥같은 ‘정글’이었으며 거기에서 처음 발견된 근대의 생명체는 속 빈 넝마 인형 같은, 인물성이 부정된 ‘피해자 여성’들 뿐이었다. 그러나 몇년 후 그 지옥의 정글에서 자라난 생명체, 즉 한국인은 생명력 그 자체였다. 생존의 대가survivalist로서의 최초의 한국 근대인, 특히 여성은 누가 창조한 인위적인 피조물이 아니라 그 지옥같은 자연에서 살아남고 진화한 최적fittest의 생명체였다. 그들은 말하자면 인물성이 부정된 껍데기 밖에 없던 피해자에서 그런 존재성이 다시 부정되어 진화한 강한 자의식과 개성을 갖춘 강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나타난 고독한 남성 투사는 가족생활에 무책임하며 능력 없고, 사회정치적 행위의 합리성은 전혀 갖추지 못한 채 이 모든 것에 자존심을 앞세우는 그런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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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 조선,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우리 한국인은 태어났다!해방 한국, 한국인은 무엇과도 싸울 준비가 되어있었다!” 라는 부제에 걸맞게 이 예뻐할 수 없는 신소설 속 인물들이 망한 조선에서 어떻게 진화하는 지 더 읽어나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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