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소유물로 대하는 부모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추게 된 이후, 나는 나의 부모를 많이 미워했었다. 이해한다. 그 분들 또한 교육받은 적 없고 조부모의 모습으로 미루어 보건대,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와 상처는 별개다.
익숙한(받아온) 사랑방식으로 살다보니, 나의 관계맺기와 사랑에 빈번하게 문제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좀처럼(지금도) 통제나 소유가 아닌 ‘존중’에 기반한 사랑이 참 힘들고 어렵다.
엄마 아빠 개개인이 나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사회구조의 문제야”정도로 뭉뚱그리기도 아쉬웠다.


하루에도 몇건의 인면수심 패륜범죄들이 올라온다. sns를 하다보면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가 그늘진 글을 자주보게 된다. 결혼을 ‘포기’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청년들도 많다.

#스웨덴식사랑이론
스웨덴은 아이들의 인격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적영역’으로 간주해왔던 가정 안에 국가가 섬세하게 개입했다. 법과 제도로 가족 내에서의 자율과 평등을 강제 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족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낮은 스웨덴은 가족이 감당하던 대부분의 복지를 국가가 담당한다. 그렇다고 사회적 연대를 위해 개인을 양보하거나 희생시키지도 않는다. 매우 개인주의적인 사회이나, 가족이 해체되지 않았으며, 스웨덴의 젊은이들은 부모되기를 어느 나라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제도의 기저에는 “여성이 엄마되기를 강요받지 않아야”하며 “자발적 부모되기”를 강조했던 뮈르달 부부의 사상이 깔려있다고.

스웨덴은 자율과 평등이 가족안에까지 깊게 스며들었다. 가부장의 권위와 아내의 헌신, 자녀의 복종이 가족의 규범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도, 양육의 부담으로도 의존적이지 않은 부부와 가능한 이른 나이에 독립하는 아이들 - 국가는 가족의 부담을 최대한 덜어주며, 개인의 자율성을 수호하는 조력자로 작용한다.

‘건강한 지향을 가진’ 국가가 사적영역으로 일컬어는 가족에 제도적으로 개입할 수록 구성원들의 공존 능력과 사회적 신뢰는 높아졌다. 스웨덴의 국가주의적 개인주의를 cool trust 라고 칭한다. (친밀한 관계의 복종, 희생과 상호의존에 의해 형성되는 ‘뜨거운 신뢰 hot trust’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

언제나 hhooottttt한 한국사회에 스웨덴식 모형을 대입하자 라고 주장하기는 무리일것이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시작부터 기형적인 폭력덩어리 였으므로.. 
국가가 저지른 상처에 대한 치유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세운 촛불 정부는, 아니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미래의 대한민국은 국민 특유의 역동성으로 여타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다. 스웨덴 역시 저출산 문제를 겪던 1930년대 부터 제도의 기틀을 다지며 천천히 오랜기간 신뢰를 만들어왔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개인과 가족에게 무리한 짐을 지우지 않았으면 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꾸리는 게 아닌, 국가 덕에 존중과 신뢰와 사랑을 배울 수 있게 된다면.
늘 사랑이 어려웠던 나에게도,
그래서 부모님을 원망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도,
제대로 사랑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지 않나.

문재인 대통령이 정독했다니까 ㅋㅋ 나도 #국가덕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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