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여행 후기가 심심하다는 강력한 항의가 줄을 잇고(사실은 한 사람에게서 반복 항의가...-.-;) 있다. 어찌 안 심심하게 해 드리지? 여행의 추억을 한 번 더 되새겨 보니, 정말 중요한 에피소드를 하나 깜박하고 있었다.
알라딘 옆 모 여관에서 푹 자고 난 다음 날, 오랜만에 늦잠을 자 보자는 결심과는 달리 일곱 시도 안 되어 둘 다 눈을 반짝 떴다. 잠자리가 낯설어서인지, 아무리 뭉그적 거려도 잠은 오지 않고...결국, 일찌감치 씻고 나서기로 했다. 시간이 넉넉하니 공들여 화장을 했다. 그리고 남편이 씻고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화장대 위의 빗과 드라이어기가 눈에 띄었다.
여자 분들은 알 것이다. 요렇게 생긴 드라이 빗. 그러나, 보통 여관 같은데는 이런 비싼 돼지털 빗이 아닌 플라스틱이 성기게 붙어있는 빗이 놓여 있다. 멍하니 빗을 보고 있자니 안 하던 짓...드라이를 하고 싶어졌다. 셋팅 파마 된 긴 머리를 도르르 말아 드라이를 하고 풀면 훨씬 자연스러워 지겠지? 나는 룰루랄라 콧노래와 함께 오른쪽 옆 머리를 말아 올려 드라이 바람을 쐬었다. 그리고 풀려는데.....
어. 안 풀린다. 에이, 또 엉켰네. 내 신체부위 중 유일하게 가느다란 것이 머리카락인지라, 이렇게 빗에 엉키는 일이 가끔 있다. 손으로 뜯어 보았다. 어....많이 엉켰네. 남편을 불렀다. "오빠, 이것 좀 풀어봐. 엉켰나봐." 해 놓고는 TV에서 아침부터 틀어주던 재미없는 영화를 멍 하니 보고 있었다. 그런데...몇 분이 흘러도 진전이 없다. 갑자기 초조해졌다. "잘 좀 풀어보지. 왜, 안 돼?" "야, 이거 어떻게 된게 단단히 엉켰다." 허걱, 만만히 볼 사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급기야 남편은 드라이 빗의 대를 부러뜨리고 머리부분만 잡고 풀어 보려 애 썼다. 그러나, 이놈의 머리는 갈수록 엉켜들기만 하고...그런 소득 없는 시간이 30분 가량 흐르자 나도 초조해졌다. '이러다...머리에 땜통 생기는 거 아냐?' 힘으로 해결을 시도해서 두피도 몽땅 일어날 지경이었다. 즐거운 여행길이 때아닌 실수로 망가지는 것 같은 짜증, 안 그래도 못난 외모로 땜통까지 극복해야 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 땡기는 두피의 아픔이 점철되어 급기야 나는 징징 울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해~~~~TT" 아, 그 와중에도 분명히 머리 한 켠에는 '이렇게 땜통 생겨서 17일 서재 모임에도 못 나가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자리 하고 있었다.
그렇게 징징 울어대면서 잡고 늘어져도 감감 무소식. 그래도 남편이 힘을 쓴 보람이 있어 두피에서 대략 5cm 정도의 길이는 확보가 되었다. "오빠, 안 되겠다. 자르자.TT" 결정을 하고 가위를 빌려 왔다. 마지막으로 안간힘을 쓰며 최대의 길이를 확보하고 잘라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공들여 바른 마스카라는 다 번지고, 오른쪽 머리는 부스스 일어나서 헝클어져 있고....흡. 그래도 워낙 긴머리 인지라 생각했던 것 보다는 티가 안 났다. 다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자 여관에서는 결국 9시가 다 되어서야 나갈 수 있었다.
그 날의 교훈 하나. 긴머리, 가는 모발은 섣불리 드라이 빗으로 말지 맙시다.
교훈 둘. 총체적으로, 안 하던 짓 하지 맙시다. (그냥 계획대로 늦잠을 잤어야 했어...)
교훈 셋. 남편은 힘 센 사람으로 얻읍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