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동창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가에 둘어앉아 동무들의 넋두리를 듣는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인 스토너는 농사에 보탬이 될까하는 아버지 바램으로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에 처음 올라오던 날 그와 상관없이 보이는 웅장한 건물과 간신히 도착한 친척집의 창고방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당연하게도 십여년전 내눈에 보였던 앙상한 나무들과 넓은 도로와 좁고 텅비어있던 자취방이 떠올랐다. 부모의 세계에서 떨어져나와 가난하고 외롭고 두려워 웅크리던 그 시기가 떠올라 과연 열페이지쯤 읽었을때 눈물이 났다. 


 대부분 제법 자리잡은 우리는 어찌된 영문인지 어딘가 몰려있다. 그녀는 대단한 중앙부처 공무원인데 왜때문인지 신혼초부터 그녀를 미워하는 시댁에 끊임없이 정신적 학대를 당한 끝에 십년만에 연을 끊었고, 또다른 그녀는 아직 자신이 이반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에게도 말하지 못해 바로 곁에 그의 연인을 소개하지 못한다. 나는 육아휴직 끝에 승진 누락을 받아든대다 죽거나 혼자살고 싶다는 상념과 싸우고 있다.


스토너는 별 성과를 내지 못한 학자고, 인정받지 못했던 교육자다. 행복하지 못한 가정생활을 했고, 단 한번 찾아온 사랑을 웅켜잡지 못했다. 그는 첫사랑에 빠졌던 일을 하며 살다 죽고, 죽는 순간 그리워할 사람 몇도 가진 삶을 산다.  


그대 내게서 계절을 보리

추위에 떠는 나뭇가지에 

노란 이파리들이 몇 잎 또는 하나도 없는 계절

얼마 전 예쁜 새들이 노래했으나 살풍경한 폐허가 된 성가대석을 

내게서 그대 그 날의 황혼을 보리

석양이 서쪽에서 희미해졌을 때처럼

머지않아 암흑의 밤이 가져갈 황혼

모든 것을 안식에 봉인하는 죽음의 두 번째 자아

그 암흑의 밤이 닥쳐올 황혼을.

내게서 그대 그렇게 타는 불꽃의 빛을 보리.

양분이 되었던 것과 함께 소진되어

반드시 목숨을 다해야 할 죽음의 침상처럼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놓은 불꽃.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 윌리엄 세익스피어


 이 소네트를 읽고 우는 서른몇이 되어서 나쁘지 않다. 중고교 시절에 봤던 동경했던 동무들의 반짝임을 여전히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저무는 것이 아프지만 모두에게 던져진 이 숙제를 담담히 견뎌보려는 자신이 싫지 않다. 물론 꼴은 사납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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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5-30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

무해한모리군 2016-05-30 09:52   좋아요 0 | URL
꽤나 전에 읽었는데 왠지 상가에 다녀온 날 이 리뷰가 쓰고 싶었어요.
 
환혹의 죽음과 용도 S & M (사이카와 & 모에) 시리즈 6
모리 히로시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내 멋대로 손좀 잡아라 이것들아 하면서 연애소설처럼 읽는 시리즈인데, 상상도 할 수 없는 트릭인데다가 다 읽고 나서도 `왜`와 진짜 가능할까가 잘 이해가 안되는 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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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며 종이접기 : 공룡 이야기하며 종이접기 시리즈
올챙이 지음, 정승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저는 너무 어려웠어요. 결국 한마리도 완성시키지 못했어요. 설명이 제게는 너무 어려워요 ㅠ.ㅠ 그래도 유첨된 색종이는 정말 색이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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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파란 하늘 : 바닷마을 다이어리 7 바닷마을 다이어리 7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나 거기에서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삶에서 내가 경험한 가장 큰 축복이다. 사랑은 또 이 네 자매를 얼마나 성장시킬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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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길을 사로잡는 모습이 있다. 꼬부랑 할머니의 고운 레이스스타킹, 자기마한 아기를 안은 커다란 남자, 여리디여린 여성의 배에 세겨진 복근. 


 <파기환송>은 재미있다. 이 작품은 법정공방이 주는 압박감을 잘그려내는 변호사 미키할러 시리즈의 장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거기에 작가의 또다른 시리즈의 주인공이자 할러의 의붓형인 해리보슈가 협연한다. 천하의 양아치 변호사일거 같은 할러는 법정내외의 권모술수를 능숙하게 다루며, 권위주의가 판치는 법정에서 한 없이 약자인 약간 나쁜놈들을 돕고(돈을 왕창번다) 진짜 나쁜놈은 쳐넣는 일하나는 똑부러지게 하는 남자다. 해리는 거칠고 끈질기며 범죄에 대한 상상력마저 있어 나쁜놈들을 끝까지 잡고마는 형사다. 이 덩치큰 사내들은 딸이 있고, 헐리웃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그렇듯 여자와 아이에 약하다. 일에는 불도저 같은 이들이 살짝살짝 보이는 인간적 면모가 매력적이다. 그들은 이번 케이스에서 아이에게 못된 짓을 한 쓰레기를 감옥 밖으로 나가게 하고 싶지 않다. 할러는 임시검사가 되어 생명을 빼앗긴 아이의 유일한 대변인으로서의 무게를 느낀다. 


이십년전 아동살해범으로 판결받고 형을 살고 있던 죄수는 새로운 증거의 발견으로 다시 재판을 받게된다. 할러는 재판중 그의 보석을 허가한다. 내가 무죄인 사람을 쳐넣은 것은 아닌지? 내가 보석을 허가해서 이 미친놈이 누군가를 해치는건 아닌지? 저 미친놈이 진범인데 그의 변호사가 심은 사소한 의심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서 미친놈을 세상에 풀어놓는건 아닌지? 


두 남자가 스스로의 끊임없는 의심과 싸우며 진실에 다가가는 모습이 흥미롭다.


 <나는 언제나 옳다>에서 길리언 플린은 단편이란 어떻게 쓰는 건지 제대로 보여준다. 이야기는 간단하고 전형적으로 보이는데, 단숨에 전복되고 독자를 혼란에 빠트린다. 얇은 두께와 큰 글씨의 불만스러운 첫인상을 단숨에 만회한다. 길리언 플린은 언제나 옳다.


 점점 겁쟁이가 되고 있다. 의사나 검찰같은 사소한 결정이나 실수가 다른 사람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노무현 전대통령 7주기다. 당시 노전대통령 수사팀 검사는 오피스텔을 오십채가 넘게 사서 임대사업중이란다. 2년만에 저런 돈을 벌 수 있어도,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아 다행이다. 최소한 그런 인간은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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