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의 순간
필립 베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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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로 살면서 느끼는 고독, 그 감정이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버려진 것만도 못하다. 그것은 높고 높은 벽이다.-107쪽

"나중에는 서로를 더 참고 봐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상대를 참을 수 없었고, 상대의 존재를 참을 수 없었으며, 때로는 목소리조차 참기 힘들었다. 이런 감정은 서로의 시선과, 각자가 고집하는 침묵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침묵이 깨지면, 시비를 걸고 원망하는 말들이 폭발했다. 아이는 이 장면들의 관객이었다.-110쪽

구불구불한 길과 줄지어 늘어선 집들과 바람을 비롯한 온 세상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만이 있다. 세상이 그 한 사람으로 축소된다. 또다시.-231쪽

내게는 확신이 있었다. 설명할 수 없고, 선명하게 손에 잡히지도 않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이루어진, 이 내밀한 직감이. 이런 믿음에 대한 아주 사소한 증거조차 갖고 있지 않았는데도.
그냥 알았다. 그게 전부다. 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우리에게는 예감을 초석으로 인생을 구축할 권리가 있다.-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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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7-12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티브이 드라마를 보니 아이를 살리는 대신 검객이 자신의 팔을 내놓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세상의 거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팔과 목숨이 등가로 이루어지는 거래는 거의 없다. 옛날 동화처럼 목숨엔 목숨이다. 뭔가를 얻기위해 그만큼 진귀한 어떤 것을 내놓아야한다. 가끔 포기한 것들에 더없이 소중한 무엇이 담겨있다. 책 내용과 상관없는 감상 ㅎㅎㅎ

카스피 2011-07-1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등가교환의 법칙인가요?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말이죠^^

무해한모리군 2011-07-19 16:08   좋아요 0 | URL
ㅎㅎㅎ 가치라는게 워낙 주관적이니 등가인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요. 팔이랑 목숨이랑 바꿔줄거 같지는 않아요 --
 
인어의 노래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8-1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 1
발 맥더미드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기괴하고, 억눌리고, 너무 외롭다 못해 미쳐버린 잔인한 살인마의 속내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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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캘린더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말로 표현할 수 없던 일상의 두려움을 이렇게 예민하게 표현해 주는 작가를 가진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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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7-04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신 캘린더라~~~~~~ 드뎌 엄마 대열에 합류하는 건가요?

무해한모리군 2011-07-04 08:40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순오기님 이 책의 내용은 전혀 그런게 아닙니다 ㅎ
임신을 하면서 생기는 몸의 변화를 그로테스크하게 그렸어요.
신랑이 가지고 있던걸 우연히 읽었어요.

후애(厚愛) 2011-07-0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기 엄마가 되는 줄 알고 축하인사 하려고 했었어요.^^
잘 지내시죠?

무해한모리군 2011-07-04 19:06   좋아요 0 | URL
후애님 귀국 준비는 잘되어 가세요?
아하하 저는 계획에 없답니다..

마녀고양이 2011-07-0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우와 했더니.. 아니란 말이죠? ^^

무해한모리군 2011-07-04 19:06   좋아요 0 | URL
전혀 아닙니다 ㅋㄷㅋㄷ
 
심야식당 7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6월
구판절판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 이 만화도 인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잔소리쟁이에 술값 한번 내주지 않는 선임, 그래도 하루의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를 가장 많이 믿어주는 사람 중에 하나. 나도 내 선임을 무척 좋아한다. 골수 기독교 답답하기 그지 없는 그 보수주의자를 한 인간으로 참 좋아한다. 그 사람이 어느날 좌천된다면 우유라도 함께 마시고 나도 저렇게 엎어 주고 싶다.

이 두남자는 한여자에게 버림받은 생면부지다. 그래도 또 저렇게 같이 밥을 먹어주는 사이가 된다.

팬이라는 인연은 어떨까? 아마 스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다는 아니겠지만, 그의 노래를, 연기를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게 다는 아니더라도 그 사람의 가장 중요한 일부분이긴 할 것이다. 어찌보면 철철 넘치는 내면의 정을 곁에서는 줄 사람을 발견할 수 없어 그런다고 하더라도, 그들 통해 만난 저 두사람의 인연은 소중하다.

술주정뱅이에 아내를 때렸던 남편은 아내에게 용서를 받고 싶다. 어린시절 아내가 꼭 먹고 싶어 했다던 어린이세트를 사죄의 선물로 준비한다.

결혼생활을 시작한지 7개월 나 역시 다른 사람과 사는 어려움을 조금쯤 이해하게 됐다. 냉소적인 이 사람은 나와 매사 느끼는 바가 참 다르다. 다름이 신선함을 넘어 때로 화가 나기도 한다. 일상적 관계란 편안하기게 함부로 하기 쉬운 것이다. 세월이던, 추억이든, 자식 때문이든 서로의 잘못을 이만큼 덮어줄 수 있는 관계는 드물다. 가장 내 곂에 오래 있어줄 인연, 부부.

사람은 자식을 키우면서 내가 몰랐던 나의 어린시절을 경험한다고 한다. 또 어떤이는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랑을 부모가 되면서 처음 경험했다고도 한다. 틀림없는 것은 그 책임감 앞에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을거라는 거다.

마지막으로 벗. 우리는 함께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러 왔고, 함께 별 거 아닌 일에도 웃어왔으며, 울어왔다. 치기어린 유년의 내 모습을 나대신 기억해주고, 그렇기에 너는 괜찮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가 형편없이 느껴지는 날에도 말해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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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11-07-04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__^ (심야식당을 읽을 때 이렇게 미소 짓곤 했는데, 지금도 그래요. ^_____^)

무해한모리군 2011-07-04 19:06   좋아요 0 | URL
한동안 별로였다가 오랜만에 다시 보니 7권은 또 좋아졌어요.

... 2011-07-04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7권읽으면서 오호~~ 다시 좋아졌어! 하고 느꼈어요.

무해한모리군 2011-07-05 08:2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브론테님 ^^ 저만 그런게 아니였군요..

웽스북스 2011-07-07 23:08   좋아요 0 | URL
어, 어,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 말이죠!!!!
방금 다 읽고 휘모리님 페이퍼 너무 좋아서 왔어요!!

무해한모리군 2011-07-08 09:17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40자평에 댓글 달아야지~ ㅎ

Mephistopheles 2011-07-05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건 또 언제 나온거야...! 버럭버럭.

무해한모리군 2011-07-06 15:3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신간알리미를 신청하시면 친절하게 핸폰 문자로 보내줘요.

그 문자받고 만화전문 서점에 달려갔다가 두번 헛걸음 한적이 있긴하지만..
(예약 받는다는 내용 --)

비로그인 2011-07-0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큿~

무해한모리군 2011-07-06 15:3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안녕~

요즘 제게 피아노와 화성을 가르쳐줄 적당한 곳을 찾아헤매고 있어요..
거리랑 시간이 딱 맞는 곳이 별로 없네요.

내년엔 꼭 설장구를 배워보고 싶고,
하고 싶은게 많아서 먹고 싶은게 많아요..

왠지 바람결님께 이 고민을 전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바람결님이 큿 이라고 하셔서예요 ㅎㅎㅎ
 
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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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만에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여정남 우홍선 이수병 하재완 씨들은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누웠다. 그러나 그들의 뼈는 결코 웃을 수가 없었다. 누가 그들에게 젊은 육신의 옷을 입혀줄 수 있단 말인가.

- [젊은 그들] 전문-80쪽

이해한다는 말, 이러지 말자는 말, 사랑한다는 말, 사랑했다는 말, 그런 거짓말을 할수록 사무치던 사람, 한 번 속으면 하루가 갔고, 한번 속이면 또 하루가 갔네, 날이 저물고 밥을 먹고, 날이 밝고 밥을 먹고, 서랍 속에 개켜 있던 남자와 여자의 나란한 속옷, 서로를 반쯤 삼키는 데 한 달이면 족했고, 다아 삼키는 데에 일 년이면 족했네, 서로의 뱃속에 들어앉아 푸욱푹, 이 거추장스러운 육신 모두 삭히는 데에는 일생이 걸린다지,

- [불귀 2] 중에서-86쪽

꽃이 지니 몰라보겠다.

용서해라,
蓮.

- [목련에게] 전문-131쪽

용산의 아침 작전은 서둘러 무리했고, 소방차 한 대 없이 무대비였습니다. 시너에 대한 정보 준비도 없어 무지하고, 좁은 데 병력을 밀어넣어 무모했습니다. 용산에서 벌어진 컨테이너형 트로이 목마 기습 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졸속 그 자체였습니다. 법과 질서라는 목표에만 쫓긴 나머지 실행 프로그램이 없었고, 특히 철거민이건 경찰이건 사람이라는 요소가 송투리째 빠져 있었습니다.

- 문화방송 뉴스데스크, 2009년 1월 20일 신경민 앵커 클로징 멘트-164쪽

설사 유신 시절에 한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었다 해도 그 부국강병의 이면에서 억울한 죽음의 피비린내가 조금이라도 난다면 우리는 조국을 향해 침을 뱉어야 한다. 민주주의 그 자체를 위협하는 발언들까지 껴안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한계를 시험하지 마라. 문제는 좌편향이냐 우편향이냐가 아니라 상식이냐 몰상식이냐다.-240쪽

그가 "삶이라는 이 피할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21쪽)이라고, 그러기 위해서 모든 종류의 "선(先)해석의 커튼"(127쪽)을 찢는 것이 소설의 존재 이유라고 말할 때 이말은 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 밀란쿤데라의 [커튼]-314쪽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 같은 여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 오규원의 [한 잎의 여자]-315쪽

사랑이 시작된 이유와 사랑이 끝난 이유가 같기 때문이다. 그녀의 순수함에 매혹되었는데 이제는 그 순수함이 지긋지긋해서 떠나고 싶어진다. 사랑이 시작되고 끝나는 시간 동안 뽐므는 시종일관 뽐므였을 뿐이데 그녀는 선택되었고 또 버려졌다. 그러나 에므리를 비난할 수 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또 당혹스럽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나면 존재, 만남, 소통, 파국 드으이 단어가 어지럽게 떠올라 뒤엉키다가 이윽고 자포자기의 슬픔으로 가라앉는다. 작가 자신이 '68세대'인 까닭도 있겠지만 이 소설에는 남녀의 사랑에서 계급적, 문화적 차이가 갖는 의미에 대한 섬세한 성찰이 있다.

- 레이스 뜨는 여자-317쪽

술 깨고 싶지 않은 것이고 계속 아프고 싶은 것이다. 술자리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극복과 위로와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들과의 애틋한 거리다. 서정이라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빤하고 애뜻한 수작이다.-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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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7-03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을 긋고 보니 우습게도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그가 얘기한 대목이 좋았나보다. 레이스 뜨는 여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중 하나고, 밀란 쿤데라의 커튼 역시 즐겁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