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뱅이의 역습을 읽다보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아져 입이 근질근질 해졌다. 사실 가난한 음주기와 가난한 여행기야 말로 나의 이십대를 설명할 수 있는 두 개의 기둥인데, 이런 얘기를 쓰면 '저녀석 저러니까 아직 애인도 없이 혼자지'라는 얘기를 들을 게 뻔해서 안해왔는데, 이 책의 저자의 솔직함에 고무되어 나도 몇 자 끄적거려 본다.

★ 관공서야 말로 삥뜯기 가장 좋은 장소다.

주변에서 여행을 다녀오면 여행기를 올리라고 하지만 왠지 국내에서의 궁상기를 해외로 퍼트리는듯해서 말하기 찜찜하지만 몇 가지만 나의 노하우를 공개한다. 

나는 쫌 산다하는 나라에 가면 무조건 그 나라 구청이나 시청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잘곳이 없다'라고 말하면 보통 쬐끄만 동양여자애가 길에 다니다 칼맞은 시체를 치우기 싫어서인지 적당한 숙소를 소개해 준다. 공짜거나 거의 공짜나 다름 없는 곳도 있는데 YWCA숙소 같은 곳은 거의 1/5 가격 정도면 머물 수 있다. (심지어 이동비까지 대주는 곳도 많다!!)  

이건 국내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데, 급히 차비가 떨어졌다거나 할 때 동사무소나 구청을 방문하면 예비비로 교통비를 지급해준다. 어짜피 연말까지 남겨봐야 구청장 가구 바꾸는데나 쓸 돈 급할 때 종종 이용해 주자. 

★ 공짜 공간은 도처에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여러가지 노숙의 기술을 이야기 하지만 여성에게 노숙은 그야말로 위험천만하다. 그러나 때로는 늦은 밤 차가 끊기기도 하고, 도리 없이 떠맡은 주정뱅이를 처리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럴 때 내가 쓰는 방법은 이렇다. 

3~4시간 정도 시간을 때울 량이면 동네마다 있는 파출소가 아주 유용하다. 전경 총각이 타주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시민 편의를 위해 설치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뭐 시설이 열악하거나 주정뱅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안전하고 공짜고, 다리펴고 누울 수 있는 긴 의자도 있으니 아주 훌륭한 공간이다. 

다음으로는 의식이 없는 주정뱅이 친구가 있을 땐 응급실이다. 당연히 정식 수속을 밟는 건 안되지만, (정식 수속을 밟고 들어가서 슬쩍 도망나와도 된다.) 일단 침대에 눕히고 간호사 언니를 불러 굴러떨어지지 않게 안전하게 침대에 묶어주는 안전장치도 해준다. 그리고 아침에 자연스럽게 나와버리면 된다 ^^ (수차례 해봤지만 의외로 한번도 걸리지 않았다) 

또 대낮에 특별히 갈 곳이 없다면 실업센터야 말로 천국이다. 편안하게 앉을 자리와 음료와 인터넷도 공짜다. 가장 좋은 곳은 종로에 있는 곳인데, 종로에서 명동으로 걸어가다 힘이 들때면 자주 이용하곤한다. 동네의 무슨무슨 센터들도 복사나 인터넷을 이용하기 좋지만 주말에 일찍 닫는 통에 별로 이용해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인사동과 삼청동 일대에 흝어져 있는 조그마한 전시공간들을 누비는 것도 큰 기쁨이다. 공짜고 분위기도 좋고 감성도 자극해주고 말이다.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대학 역시 노숙과 노식이 가능한 최상의 공간이다. 나는 충청도 모 대학 강의실에서 친구들과 다정히 라면을 끓여 먹은 적도 있고, 나의 모교만 해도 5~6군데 편안하게 밤을 보낼 장소들이 있다. (여학생 휴게실, 동아리방, 학과 사무실, 생활과학 도서관 등) 최근 올레길로 유명해진 천주교 피정의 집처럼 종교기관에서 제공하는 숙소나 방학중 학교소유 기숙사나 콘도를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물론 나는 주로 친구들 집에서 많이 자는 편이고, 밥 먹으러 갔다 공짜로 잠 잘 곳을 얻는 등 온정에 호소하는 편이다)

★ 우리 편이 하는 곳에 많이 많이 가주자. 

이 책의 저자도 말하고 있듯이 없이 사는 사람일수록 단골은 중요하다. 돈을 좀 벌기 시작하면서 촌놈의 본능대로 단골을 만드는데 집착하기 시작했다. 동네 떡뽁이 아줌마, 세탁소 아저씨는 물론이고 걸어서 삼십분 정도 거리 안이라면 '우리편'이 하는 가게를 가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편이란 큰 자본 없이 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이웃들의 가게다. 우연히 다니게 된 가게 주인 분들 중엔 여성운동 하셨던 분도 있고, 70년대 데모하시다 신학교를 그만두신 분도 있고 재미있는 얘기가 끝도 없다.  

★ 나의 꿈  

나는 동네에 공동으로 쓸 수 있는 공방을 하나 만들면 참 좋겠다 싶다. 돈이 많이 드는 재봉틀이라든가 이런저런 공구들을 동네사람들과 공동으로 쓰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이드님 같은 분이 뜨게질도 가르쳐주고, 휘모리도 인형 만드는 법 같은 것도 알려드리고 하면서 말이다. 

사실 나한텐 점찍어 놓은 공간도 있다. 각 동네마다 있는 해병대 전우회 콘테이너다. 그곳에 어린이들을 위한 간단한 도서관 공간으로 꾸며도 좋고 저런 공방을 만들어도 얼마나 좋겠는가. 필요도 없는 교통사고 현장에 나타나실 게 아니라 아이들하고 놀아주셔도 좋고 말이다.   

이대통령께서는 일찍이 서울 시장때 시청 1층이 칙칙하다며 커피숍을 유치하셨다고 하는데 이런식으로 공공공간이 자꾸만 상업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걸 우리 가난뱅이들이 눈 똑바로 뜨고 지켜야 하는 법니다.

아~~ 오늘은 개인편이라 이쯤 해두고 2탄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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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난뱅이의 역습
    from 으악! 2009-09-13 22:52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직접 해보거나 다른 사람들이 했던 작전들을 소개해준다. 책에 나와있는 오프라인 작전들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 작전들은 평화적이면서 재미도 있어보이고 사람들 사이의 정도 느껴지는 것 같아서 따라해보고 싶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느냐, 이거다. (p.201)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생각만 하는 것이..
 
 
Mephistopheles 2009-06-2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이...혼자인 이유....감 잡았다는...

무해한모리군 2009-06-20 23:49   좋아요 0 | URL
이런 반응 나올 줄 알았다는 --;;
1/5만 말했는데~~ 어떻게 공짜술을 만드나 이런 얘기는 시작도 안했다구요 ㅋㄷ

Mephistopheles 2009-06-21 00:37   좋아요 0 | URL
그 이유가..혼자서도 너무 재미있게(?) 사시는 것 같아서...인데유??

무해한모리군 2009-06-21 00:56   좋아요 0 | URL
혼자서도 이 정돈데 옆에 누가 있어보십시요~~
매일 저렴한 이벤트를 퍼레이드 처럼 펼쳐줄텐데요~~
이 재능을 썩히는게 너무 애석합니다 ㅎㅎㅎ

카스피 2009-06-21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휘모리님 대단한 기술이시네요^^ 근데 해외여행 많이 다니셨나봐요.넘 부럽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6-21 00:31   좋아요 0 | URL
그냥 기술이 아니라 얼굴이 두꺼운거 같아요 ^^

바람돌이 2009-06-21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때는 제가 정말 가난뱅이라서 돈없이도 잘 개긴다고 생각했는데 휘모리님한테는 명함도 못내밀겠슴다....^^;;
2탄 기대하고 있어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6-21 21:04   좋아요 0 | URL
가난뱅이의 역습의 핵심은 소비자의 위치에서 벗어난다는데 있는거겠죠 ^^
2탄은 개인적인거 말고 떼로 하는 걸로 해보겠습니다 ^^

머큐리 2009-06-21 0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저렇게 하고 다니고 계심을 뵙고나서 더욱 더 신실하게 믿사오며...비오는 어제는 고생 안하셨는지...ㅎㅎ 그나저나 제발볼땐 휘모리님이야 말로 제대로된(?)가난뱅이 남자들의 이상형인데 말입니다...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6-21 21:0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생활력있지 집안 유복하지 걸리는게 하나도 없는데~ 왜 유부님들은 이렇게 지지를 해주는데 좋다는 총각은 없을까요 ㅎㅎㅎ 좀 더 여성스럽게 해다녀볼까요?

비로그인 2009-06-21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쾌한 글이네요.
골목골목 까지 장악한/장악하려드는 프랜차이즈나 체인점 이용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 겠죠.

무해한모리군 2009-06-22 08:02   좋아요 0 | URL
무엇보다 마트가 가장 큰 문제인듯 합니다.
마트하나면 온갖 가게들이 박살나는데다, 아휴 그 지독한 교통체증까지~~

바라 2009-06-22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2탄도 기대되요. 공감되는 것도 있고 별찜하고갑니다 ㅋ

무해한모리군 2009-06-22 08:03   좋아요 0 | URL
어머 바라님이 놀러오셨네요~~ 반갑습니다 ㅎㅎ

별족 2009-06-22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해운대 호텔들 앞에 벤치가 흉물스럽게 변해있어서 그제야-아, 저기 노숙하기 정말 좋았겠군- 생각했답니다. 나무 벤치 중간에 금속 막대기를 구부려 세워놓았더라구요.

무해한모리군 2009-06-22 11:39   좋아요 0 | URL
아 악랄한데요~
좀 자면 어떻다고 가운데 금속 막대기를 박아두다니..

깜소 2009-06-24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아 달수가 없군요....저도 노숙의 생활화..ㅋㅋㅋ 요즘은 촛불 드느라 좋아하는 산행/도보 가본게 언젠지~~ 가물거리지만 말입니다..저 같은경운 남자다보니 그냥 노숙을 주로하구요..ㅋㅋㅋ 돈 떨어지면 아니 있어도 파출소는 종종 가줍니다..ㅎㅎ 차 잡아달라고 그러고 냉수도 받으러가공..겨울철엔 각지역 마을회관이나 노인정..학교숙직실등..아~~ 다시 길을 나서고 싶어지네요^^ 반갑습니다~~~ㅎ

무해한모리군 2009-06-24 08:04   좋아요 0 | URL
오 깜소님~~ ^^*
전 주로 집에서 생활하고 가끔만 길에서 생활합니다.
본격적인 노하우를 공개해주세욧!!

다이조부 2009-09-1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공서야 말로 삥뜯기 좋다?

와 정말 이런 실용정보는 처음이네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9-15 08:53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매버릭꾸랑님 믿으십시요~

다이조부 2009-09-15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례지만 주인장님 혹시 창영동 사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09-15 18:45   좋아요 0 | URL
아니요 ^^
관악구 삽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