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알약 p92 ~ 98 중에서

: 왜 날 좋아하는 거야? 

: 횡단보도를 건널 때, 당신이 온 거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크루아상 냄새를 맡는 모습도 보기 좋고 

이게 다야. 

: 하하하! 대체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나오지? 

: 뭐라고! 지금 날 놀리는 거야? 

: 아, 아냐 너무 근사해서!  

그러지 말고 진지하게 말해봐, 왜 날 좋아하는지. 

: 좋아, 근데 당신 질문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야! 

왜 사랑하냐고? 우리가 무슨 '작은 아씨들'의 주인공쯤 되는 줄 알아? 

: 이런! 우리 얼음 장군이 본격적으로 싸워볼 기세로군! 

그럼 내 곁에 있는 이유가 뭐야? 대답해봐. 

어서! 솔직히 말해보라니까! 우리 둘 밖에 없잖아! 

: 좋아.... 당신 옆에 있으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지. 

또 날 웃게 만드니까.. 항상 날 존중해주고 기분 상하게 하지도 않고..  

또 날 흥분시키고.. 현명하고.. 정직하고.. 

게다가 당신 눈과 엉덩이도 맘에 들고, 당신 턱과 목덜미, 살결, 거친 손, 내리깐 속눈썹.., 이런 걸 만지는 것도 좋기 때문이지. 

무엇보다 당신은 내가 장난삼아 관계하지 않은 유일한 여자야. 섹시하기도 하고 강하면서도 약한 여자지.  

게다가 늘 자신을 되돌아 보고.. 내게 멋진 세상을 꿈구게 하고.. 

마치 내가 근사한 남자가 된 것처럼 날 으쓱하게 만들거든. 

사실 당신은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에, 삶에 필요한 재능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야. 

: 아아, 그렇군. 그럼 내 발은? 

: 당신 발? 음..., 그것도 좋아. 

: 그럼 아이를 갖게 해줄 거야? 

: 아니, 왜 웃어? 왜 변덕이지? 

차라리 조금 전 오르가슴 후에 침울해 있던 모습이 더 나은 걸! 

: 난 가서 뭘 좀 마셔야겠어. 당신은? 

: 난 됐어. 

====================================== 

연애하는 방법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옛날 연애사를 좀 들춰봤다.

나는 이 구절을 인용해서 프로포즈를 했었다. 

왜냐면 그친구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삶에 필요한 기술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었고, 

그 친구 몸내음이 너무 좋아서 티셔츠에 코를 박고 있고 싶을 정도 였고 

흰티에 청바지를 입은 뒷태의 엉덩이가 너무 예뻐서 

저 사람이 내 남자친구예요 외쳐도 보고 싶었다. 

그 친구가 연주하는 기타소리 보다 기타를 연주하는 그 친구를 보기가 더 좋았다.  

내 프로포즈의 그 친구 대답은 이랬다. 

'임마 넌 그래서 안돼. 그냥 좋으면 좋은거지. 그런거에도 왜 그렇게 이유가 많냐?'

봄비오는 날이라 그런가보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늘빵 2009-04-1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 알약을 드릴까요, 푸른 알약을 드릴까요?

무해한모리군 2009-04-16 08:11   좋아요 0 | URL
아프님 이 만화 보셨나요? 여기 푸른 알약은 에이즈약이예요 ^^
전 붉은 알약으로 할래요.
명확하게 본질을 알면서 죽어가고 싶어요 ^^

Alicia 2009-04-15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 사랑도 빛깔이 예쁜걸요? ^-`

저도 연애하고 싶어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요, 프로포즈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사람이 내 남자친구에요-라고 막 외치고 싶어요. 봄밤이에요.
:)


무해한모리군 2009-04-16 08:13   좋아요 0 | URL
이게 다 봄밤에 장기하를 들어서 저런 글을 쓴거예요 --

paintsilence 2009-04-16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연애가.... 영원하면 좋은데...

무해한모리군 2009-04-16 08:13   좋아요 0 | URL
영원하지 않아도 저런 기억은 참 좋잖아요 ㅎㅎㅎ

다락방 2009-04-16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좋다. 임마 넌 그래서 안돼. 아침부터 막 두근두근해요.
연애는 재밌죠. 또 연애는 이렇듯 돌이켜봤을때도 좋고 말예요.

우마 서먼 주연의 [프라임 러브]라는 영화를 보면, 우마 서먼이 아홉살이나 어린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사랑이 시작되는 그 초반에 남자에게 티셔츠를 벗어달라고 해요. 남자가 티셔츠를 벗어주자 냄새를 흠뻑 맡아보죠. 휘모리님의 이 글을 읽으니 그 영화의 그 장면이 떠올라요. 제가 참 좋아하는 영화에요.

연애해야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4-16 10:5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감성을 따라잡을 멋진 인간이 어디 있을라나~

... 2009-04-16 11:40   좋아요 0 | URL
저는 <프라임 러브>의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눈 오는 날 친구들과 레스토랑에 있는 우마서먼을 밖에서 주인공 남자가 보고있다 가는 장면이요 (내 기억이 맞나?) 은근하게 좋은 영화였어요.

다락방 2009-04-16 13:04   좋아요 0 | URL
아, 브론테님!!

제가 그 영화를 그 마지막 장면 때문에 좋아해요. 모자를 가지러 가야 했던가, 머플러를 가지러 가야 했던가 그랬잖아요. 밖에서 쳐다보기만 하는데 결국 안에 있던 우마 서먼도 남자를 발견하죠. 눈이 마주친채 우마 서먼이 웃어주는데, 아악, 저 정말 그 장면이 미치게 좋았어요. 극장에서 보고 그 장면이 잊혀지질 않아 결국 DVD(VCD던가?) 도 사버렸어요. 그 장면을 브론테님도 좋아하시는군요!! 이렇게 감격스럴데가 ㅠ.ㅠ

무해한모리군 2009-04-16 13:53   좋아요 0 | URL
오~ 저도 다시 봐야겠네요..
생각이 잘 --;;

hnine 2009-04-16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그 사람을 왜 좋아하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과 헤어지고 싶을 때 드러나지않나 생각되어요. 내가 도대체 왜 저 사람을 좋아했을까 이런 모드일때 하나 하나 그 이유라고 할 만한것들이 떠오르지, 사랑하고 있는 동안에는 결코 그렇게 분석적이 될 수 없거든요.

무해한모리군 2009-04-16 10:56   좋아요 0 | URL
전 연애하는 중간중간 마음이 터지게 좋은 순간들이 있는거 같아요.
시간이 그냥 딱 그대로 있었으면 좋을 거 같은 순간들..
아 이사람 내음이 너무 좋다.
이 사람의 불분명한 발음이 프랑스 샹송가수의 노래처럼 들리는구나 이런 ㅎ

Arch 2009-04-1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대는 아는가요, 내겐 아무 상관없다는 것을.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에도 보면 편지에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는 상대방에게 남자가 그래요, '내겐 아무 상관 없다고.' 아마 푸른 알약으로 프로포즈를 하는 휘모리님의 맘이 너무 예뻤지만, 그런거 상관없이 휘모리님이 좋으니까 그 사람, 괜히 그래본게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봄이 거즘 지나간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연애의욕만 심어주는 페이퍼로 다시 봄이 찾아오겠는걸요! 저도 푸른 알약, 정말 찡하게 봤었어요.^^

다락방 2009-04-16 18:01   좋아요 0 | URL
알았어요, Arch님.
저도 이 푸른 알약 볼게요. 좀 늦었지만.

무해한모리군 2009-04-16 18:09   좋아요 0 | URL
아~ 처자들의 연애본심이 개화하고 있군요 ㅎㅎㅎ

아치님 그친군 공돌이라 그런지 뭔가 서정적으로 말해보려고 하면 두드러기를~ 전 연애를 하면 시 읽어주기를 즐기는데 어찌나 지루해하던지..

Arch 2009-04-17 00:13   좋아요 0 | URL
전 말이죠, 연애는 그냥 여자들끼리 하면 어떨까란 생각을 해봐요. 여자들끼리 연애하면 자신 안의 연애 에너지들이 정말 충분하게 전해지고 받을 수 있고, 공감될텐데 말이죠.
게이는 아니지만 게이 취향이 다분한 녀석의 말을 빌리자면 자기 주변의 남자들이 싫은 이유로,
남자들끼리 모이면 당구치기와 술마시기 밖에 없다는 것, 모여서 여자 없는지 서로에게 묻는다는 것, 아랫도리로 사고하고 단순한데다 무식하기까지 하단 얘기를 하던데.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어어, 나도 여자들끼리 모이면 남자 불러내라고 진상피운다고.
그 아이가 하는 말이 100% 옳은건 아니지만 일견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고, 연애노선의 감정노동은 여자들이 일임하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하고.

그나저나 시 읽어주는 연애쟁이들은 정말, 앗흥^^

다락방님, 미리 말씀드리지만 좀 슬플 수 있어요. 슬프지만 그보다 더 멋지고 좋지만.

무해한모리군 2009-04-17 07:47   좋아요 0 | URL
음 언젠가 길게 한번 써 보고 싶은 주제예요.
연애관계에 있어서 여성이 차지하는 감성노동에 대한 남성의 습관적 저평가에 대해 ㅎㅎ
우연히도 어제 모군과 만났는데 마흔된 총각인 그 냥반은 자긴 감성노동에 빵점이라고 전 여자친구에게 평가받았다며 의기소침하더군요.
중요성을 모르기도 하고, 알아도 어찌할지 모르겠는 것..
아 우리는 정녕 다른 행성에 사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