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초대석]'건물없는 교회' 실천하는 이현주 목사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납치되거나 희생된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오늘 아침도 그분들이 하루속히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아내와 기도했습니다. 간밤에 아내가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으신지 눈물만 흘리시더랍니다.”

 충북 충주 엄정면 추평리 한 쇠락한 농가를 손질해 집필실로 쓰고 있는 이현주(63) 목사를 찾은 지난달 30일 ‘아프간 비극’ 때문인지 집 뒤 대나무 숲조차 미동 없이 고요했다. 삼베옷을 입고 있는 이 목사 얼굴에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감리교 신학대학을 나와 지방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이 목사는 스승인 고 변선환(1927∼1995·전 감신대학장) 박사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과격한 발언’을 했다가 교단에서 파문 당하자, 그 자신도 교단을 떠나 지금까지 야인으로 살고 있다.

 그는 일선 목회는 하지 않지만, 저술 활동으로 인간의 심성을 맑히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몇년 전부터는 ‘드림 실험교회’를 만들어 ‘건물 없는 교회’를 실험 중에 있다. 매주 전국을 찾아다니며 산이나 들에서 뜻맞는 사람과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 때에 따라 4명에서 6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다. 목사도 없고 장로도 없다. 그러니 예산도 결산도 필요없다. 2000년 전 예수가 이끌던 초대교회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떠올려 봤다. 초야에 묻혀 사는 그에게 가지고 간 질문 보따리가 다소 무거웠으나, 피해가지 않고 성의껏 답해줬다.

―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샘물교회 신도 피랍·살해 사건으로 한국 교회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정신적 외상을 입고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들도 종교인일 텐데 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냐고 규탄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느 종교나 창시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일을 벌일 수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도 자유스러울 수는 없습니다.”

― 아랍권 선교가 순교를 각오한 정황도 간파되고 있습니다. 과연 선교 활동이 자기 목숨이나 가족보다 귀중한 것인지요.

 “기독교 역사를 보면 선교 중에 영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많습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순교자가 많이 나왔습니다. 누구도 순교 행위를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지금과 같은 아랍권 선교를 동의하지 않지만, 종교적 신념으로 죽음의 길을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비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있습니다. 과거 성 프란체스코는 아랍권 최고지도자 술탄을 만나러 갔다가 칙사 대접까지 받고 돌아왔습니다. 아랍권에 갔다가 살아돌아온 첫 사례일 겁니다. 그런데 그의 귀환 후 첫마디가 ‘나는 내 형제를 만나고 왔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형제가 형제를 만나러 왔다는데, 왜 죽이겠습니까. 그에게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별개의 문화나 종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형제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분이 있다고 봅니다.”

― 기독교인들이 중시하는 십계명에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구절 때문에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모두 미신이나 이단으로 치부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역으로 기독교도 비기독교인이나 이웃 종교로부터 배타적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어요. 과연 이 구절에서 말하는 ‘다른 신’은 타 종교가 믿는 모든 신앙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기한 것인지요.

 “벌써 3000년도 넘은 유대 나라 계명이 왜 오늘날에도 금과옥조로 지켜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십계명보다 예수의 가르침을 더 따라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아버지가 한 분이라는 사실이 진리라면, 어찌 종교가 다르다고 너와 내가 남남일 수 있겠습니까. ‘다른 것’ ‘타자’는 생각할 수도 없지요. 예수에게는 타자가 없었습니다. 예수가 와서 그 생각을 바꾸어 놓았던 거지요. 그런데 그를 스승으로 모시는 기독교 신자들이 아직도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법은 모세의 법과 다릅니다. 모세는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아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예수는 오른 뺨을 맞거든 왼뺨을 내놓으라고 했어요. 복수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오늘날 기독교신자들이 모두 복수를 택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9·11테러’ 사건만 해도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 복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모세의 가르침을 극복했던 것인데,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모세법을 따르고 있는 셈이지요. 예수는 누구를 벌주는 분이 아니라, 한없이 기다리는 분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아프간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무력을 무력으로 극복하려면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통과 통신이 눈부시게 발달한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동의한다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인류의 의식이 빠르게 전환될 것입니다. 간디의 비폭력 운동 등 지금까지 많은 종교적 스승들이 실험했던 방법이 옳다는 것을 납득하기만 한다면, 아프간 사태가 인류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 선교를 하려면 다른 것들에 대한 인정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기독교는 하루아침에 와해되고 만다고 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기독교 내부에서 대중적으로 설득되고 납득되면 기독교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는 인류가 추앙해야 할 위대한 스승이요, 기독교는 그분의 가르침이 녹아 있는 곳입니다. 다만, 과거의 잘못된 기독교 모습이 사라질 뿐입니다.

― 피랍 사건이 마무리되면 개신교 내부에서 크나큰 자성이 뒤따를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한데요.

 “사도바울 같은 위대한 선지자도 끊임없이 배우고 자기완성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더욱 충실해야 합니다.미완성된 자기 모습을 너무 강요하지 말고, 자기 성숙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신앙인들은 겸손해야 하지요.”

― 누구보다 심적 고통이 클 개신교 신자나 피랍자 가족들에게 한말씀 해주신다면.

 “오늘의 아프간 사태는 어느 종교이건 스승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데서 생긴 일입니다. 이번 사건의 원인을 국제사회나 탈레반에서 찾는다면 답은 없습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깨닫게 하려고 일어난 사건입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피랍자 가족들에게는 예수님이 여러분 곁 가까이서 함께 아파하며 눈물 흘리고 계시다는 말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 목사는 요즘 세계 지성들이 쓴 ‘기도문’을 탈고하기 위해 새벽까지 번역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근래 미국에서 발간된 기도문인데, 신·구교와 이웃종교 지도자들의 기도 내용이 망라돼 있다. 그가 기독교윤리학의 거두 라인홀트 니버(1896∼1971)의 기도문 한 구절을 들려준다. “내가 어떤 사람의 앙심과 분노를 직면한다면, 그 분노와 적개심이 내 가슴에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감정, 분노에 대해 앙갚음한다면 이 세상의 비극에 비극 하나를 더 보태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반골’로 살아온 이현주 목사. 그가 손해 나는 일인 줄 알면서도 일관되게 날을 세워온 것은 무엇일까. 세속화된 교회의 변화가 아닐까.

대담=정성수 종교전문기자
사진= 남제현 기자

_출처: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8031630000193

세계일보닷컴에서 바람결이 옮겨 베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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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8-05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성숙에 많은 시간을 쏟을 때, 그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에 가까워진다. 그러므로 무릇 신앙인은 겸손해야 한다. 아...큰 울림이다. 스승님(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이라야 참다운 기독자요, 종교인이다.

Mephistopheles 2007-08-05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개신교측의 종교인다운 면모를 보이시는 분을 페이퍼를 통해 만나게 되었군요..^^

바람결 2007-08-06 00:10   좋아요 0 | URL
이아무개(이현주)목사님도 실은 교단(감리교)에서 쫓겨나셨죠. 참 서글픈 일이에요. 메피님 말대로 '종교인다운 면모를 보이시는 분'들이 설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이 그저 안타깝습니다ㅠ 아마 한국의 개신교는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

Jade 2007-08-0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랍자들 관련 글들 보면, 일반적인 네티즌 반응도 안좋고 암튼 기분이 별로였는데, 이 글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아지네요 ^^ 물론 남은 사람들이 빨리 무사귀환 해야겠지만요 ^^

바람결 2007-08-06 00:16   좋아요 0 | URL
그래요, 제이드님. 이현주 목사님께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자명한 진리를 말씀해주셨는데, 참 새삼스럽습니다. 그건 아마도 항간을 떠도는 '애정결핍'의 말들 때문이겠지요. 세상은 소란스러운데 인간에 대한 애정을 삭혀낸 말들은 잘 보이질 않는 듯 싶어요. 저도 이 글을 읽으면서 참담했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었어요. 남은 분들의 무사귀환을 그저 기도할 뿐입니다.

하양물감 2007-08-06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탁 와닿는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고 있던 기독교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가 되는것 같습니다.

바람결 2007-08-08 17:52   좋아요 0 | URL
짧은 기사가 해갈의 기회였다면 더할 나위없는 기쁨입니다.^^

지돌스타 2007-08-06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UncleJoe 2007-08-06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세계일보 기사네..
세계일보의 신문기사 내용이 때론 통일교 옹호성 글이 있다고 하던데...
기사가 그런거와는 상관없는거겠죠?

바람결 2007-08-08 17:57   좋아요 0 | URL
일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정설로 여겨지고 있는 듯 싶습니다.
한동안 세계일보가 통일교 재단이라는 소문이 돌아 많은 기독교인들이
구독 거부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난리들을 쳤드랬지요.
재단이 어떻든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기사를 통해 진정으로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고,
그것이 오늘날의 시대에 적합한 화두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적어도 그 부분만큼은 좋은 기사(혹은 신문의 일면)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8월 5일

화가가 그의 화실에 숨어 있다.

들어가서 훔쳐보아라.

그의 작품 속에 그가 숨어 있다.

화실 바깥에서는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림 밖으로 한 걸음 나와야

너는 비로소 화가와 그의 초상을 이해할 것이다.

이 화실 안에는 누드 모델만이 들어갈 수 있다.

바깥에 있는  자들은 눈가리개를 착용해야 한다.

 

8월 6일

한 사람이 아름다운 꽃을 찾아 장미 정원으로 갔다.

그러나, 그가 갈망한 아름다움을 발견한 곳은 정원사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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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8-05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움은 '얼굴'에 있다. 그래서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이 나를 부른다"고 했고, 다석 유영모 선생은 얼굴은 '얼골', 즉 '얼의 골짜기'라 하셨다. 인간의 얼굴 속에 모든 아름다움이 있다. 인생에서 아름다움을 찾지 말고, 인생을 짊어지고 가는 저 사람에게서 아름다움을 찾으라.
 

8월 4일

한 사람이 밤을 새워 입술에 피가 맺히도록 "알라"를 불렀다.

그때 악마가 와서 말했다. "여어, 멍청하게 잘도 속아 넘어가는 친구여. 그렇게 밤새도록 알라를 불렀지만 '그래, 나 여기 있다'는 말 한 마디 듣지 못했지? 그토록 열심히 부르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무엇인가? 내가 말해주지. '무'(無)! 이것이 자네가 들은 유일한 대답일세."

그러자 그는 갑자기 허탈해져서 모든 것을 포기했다.

잔뜩 실망하여 몸을 땅바닥에 눕히고 쓰러져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아브라함을 만났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물었다. "어째서 알라의 이름 찬미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가?"

그가 대답했다. "알라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만, '나 여기 있다'는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했다. "알라께서 말씀하셨네. '네가 내 이름을 부르는, 그것이 내 대답이다. 나를 향한 너의 그리움, 그것이 너에게 주는 내 메시지다. 내게 와서 닿고자 하는 너의 모든 시도들은, 실로, 너에게 가서 닿으려는 내 시도들이다. 너의 두려움과 사랑은 나를 잡는 올무다. 알라를 부르는 모든 음성을 에워싼 침묵 속에, 나 여기 있다는 수천 마디 대답이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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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8-05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움으로 비로소 나와 알라는 둘이 아닌 하나가 되었더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나의 시도는 너의 시도와 한 말이다. 너의 시도도 무릇 나의 시도이다. 하나다!
 

탈레반 사령관은 말한다. "한국인 인질들을 감옥에 있는 우리 병사들과 맞바꾸자."
잡혀있는 탈레반 병사들을 살려주면 한국인 인질들도 살려주겠다는 말이다.

아프간 대통령은 말한다. "한국인 인질들을 살리기 위해서 탈레반 병사들을 내어줄 수 없다."
한국인 인질을 죽이게 놔두는 한이 있어도 탈레반 병사들을 풀어줄 수 없다는 말이다.

그 뒤에서 미국 대통령은 말한다. "테러범들의 말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일절 들어줄 수 없다."
사람을 살리자는 말이든 사람을 죽이자는 말이든, 테러리스트의 말이니까 아예 듣지를 않겠다는 거다.

나는 말한다. "탈레반 병사들을 풀어주어 한국인 인질들을 살려내어라."
병사들도 살리고 인질들도 살리자는 얘기다.

탈레반 병사도 사람이고 한국인 인질도 사람이고 아프간 대통령도 사람이고 미국 대통령도 사람이다.나도 물론 사람이다. 저 우주의 한 별에서 사람 아닌 누가 내려다 본다면, 탈레반 사령관과 아프간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과 나 이렇게 넷 가운데 누가 사람다운 사람이냐? 누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에 더 근본주의냐?

속히 탈레반 병사들을 풀어주어 인질들을 살려라. 이 땅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면! 그리 했다가 나중에 어찌 되겠느냐는 터무니없는 핑게 집어치우고. 이것이 '사람의 아들'이신 우리 스승의 가르침이다!

_다음까페 '主式會社 드림'에서 관옥님이 적고 바람결이 베껴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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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8-03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앞뒤전후 따지고, 재는 일이 필요없다. 그저 지금 저 한 목숨을 구하는 일만이 필요할 뿐이다.
 

8월 3일

기도는, 하나님의 현존하심 안에서 드릴 때에 비로소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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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8-03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이들이 기도를 드린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하지만 그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현존하심 안에서 드리는 것인지는 고민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