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교회를 오가는 버스 안에서 내가 오침을 즐길 수 없었던 건 정한아의 소설,<달의 바다> 때문이었다. 소설이 그 본성상 독자들에게 "재미"를 전해주어야 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은 내게 더할 나위없는 재미를 주었고, 그 때문에 나는 대략 서너시간의 이동 시간을 뜬 눈으로 감당해야만 했다. 비단 재미 뿐이랴. 꿈과 현실을 오가는 극적인 거리로부터 오는 존재의 괴리, 그리고 괴리 너머, 작은 희망의 조짐은 읽는 내내 나를 끄덕이게 했다. 어쨌거나 <달의 바다>는 내게 몇 번의 비수를 꽂았는데, 폐부 깊숙히 박힌 두 구절만 일단 적어본다.

"가끔 저는 꿈을 꿔요. 사방이 탁 트인 우주 속에서 거추장스러운 장비 없이 걸어다니는 저를 보는 거예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저는 푸른 지구가 보이는 곳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통통 튀어오르기도 하죠. 두 발을 박차고 팔을 휘저으면 한없이 높은 곳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어요. 엄마도 그런 곳이라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저와 함께 우주 속을 걸어다닐 수 있을 텐데요. 꿈에서 깨고 나면 갖고 있던 걸 뺏긴 것처럼 허허로운 마음이 되지만, 그래도 저는 멈추지 않고 다시 꿈을 꾸려고 이불을 끌어당겨요."(61쪽)

"이 배우들은 모두 요정들일세. 이젠 대기 속으로, 엷은 대기 속으로 사라져버렸지. 이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환상의 세계처럼 저 구름 위에 솟은 탑도, 호사스러운 궁전도, 장엄한 신전도, 이 거대한 지구도, 마침내 다 녹아서 지금 사라져버린 환상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걸세. 우리 인간은 꿈과 같은 것으로 되어 있고 이 허망한 인생은 긴 잠으로 막을 내리게 되지."(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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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가슴은, 거룩한 빛이 와서 부서지는 담벼락이 아니다.

영지자(the Gnostic)에게 그것은,

실재(Reality)로 들어가는 열린 문이다.

 

4월 18일

네 감각들에 감각 없이 취하는 한, 너는

신비로운 도취의 잔이 있는 줄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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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겉모양은 껍질이다. 그 속에 씨앗을 숨겨둔.

 

4월 16일

빛을 보되, 유리창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는 버릇을 들여라.

유리창이 깨어지는 날, 눈멀지 않으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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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8-04-18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겉에 눈길을 주지 말고,
그 안에 시선을 두라.
사람아,
중심을 보며 살아라.
 

봄은 성장의 계절이다. 그대, 자라고 싶은가? 그렇거든, 어머니 젖꼭지를 빨듯이 이 가르침들을 빨아라. 그 달콤한 맛에 이끌려 기쁨 동산으로 들어가라.세상 감옥에 갇힌 몸으로 일생을 허비하지 말라. 자유는, 스스로 진화를 계속코자 하는 자들을 위해 있는 것. 마침내 '그 빛'(the Light)을 비출 때까지 그대 영혼의 거울로 닦고 닦아라. 낡아빠진 중고품 견해들에 매달려 시들지 말라. 네 머리로 생각하여 네 가슴으로 알아라. 그림자들을 좇지 말라. '신비'(the Mystery)를 품어 안아라. 물병에 감탄하지 말고 거기 담겨 있는 물을 마셔라. 파산자로 낙인찍히기 전에, 그대에게 허락된 시간을 지혜롭게 써라. 내일을 기다리지 말라. 지금까지 내일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지금이 모든 것이다. 변형(變形)의 강물(the River of Transformation)에  뛰어들어 알라의 바다로 헤엄쳐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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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의 주교로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반-종교개혁운동을 이끈 지도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평신도의 영성 수련을 갱신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하여 '경건생활 지침서'를 썼는데 그 안에는 인간의 상황에 대한 일련의 명상들과,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를 밝히는 기도문들이 들어 있다.>

*

좋으신 예수님, 당신과 온전히 하나 되는 은총을 입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상에서 제가 겪는 온갖 다양한 일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제가 갈망하는 일은 당신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저의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제 영혼의 친구여, 저의 초라한 영혼을 당신의 온전하심에 일치시켜주십시오. 당신은 저의 모든 것인데 저는 언제 당신의 것이 될까요? 사랑하는 주 예수님, 제 심장의 자석磁石이 되시어, 저를 당신의 성스런 심장에 영원히 밀착시켜 하나로 만드소서. 당신을 위하여 저를 지으셨으니 저를 당신과 하나로 만들어주십시오. 때가 되거든 이 가냘픈 목숨의 물거품을 터뜨려 영원한 선善의 바다에 흡수시켜주소서.

**

주님,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당신께 제물로 바치는 일을 얼마나 더 뒤로 미루어야 할까요? 우리가 이토록 집요하게 붙잡고 있는 자유의지란 놈을 얼마나 더 오래 움켜잡고 있어야 합니까? 당신을 찢었던 가시와 창에 찔리도록 우리 의지를 당신 십자가 위에 내거는 일에 얼마나 더 망설여야 하는 겁니까? 우리 의지를 당신의 온전하시고 사랑하시는 뜻의 불로 삼켜주십시오. 우리 의지를 영원토록 당신께 바치는 번제물로 태워주십시오.

***

사랑 아니면 죽음! 죽음 그리고 사랑! 그 외의 모든 사랑들에 대한 죽음! 주, 예수님. 제가 영원한 죽음을 면하고자 당신이 사랑만을 위하여 삽니다. 제 영혼을 죄에서 해방하신 당신의 완벽하신 사랑 안에서 살아갑니다.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립니다. 영원토록 살아계시고 다스리소서.

 

<풍경소리 2008년 3월 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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