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항으로 가는 길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윈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이야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번쯤 내동댕이쳐보는 거야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
부안읍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달리면
객짓밥 먹다가 석삼 년 만에 제 집에 드는 한량처럼
거드럭거리는 바다가 보일 거야
먼 데서 오신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하자고,
조용하고 깨끗한 방도 있다고,
바다는 너의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 던지면 돼
모항에 가는 길이라고 말이야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거든
모항 가는 길은 우리들 생이 그래왔듯이
구불구불하지, 이 길은 말하자면
좌편향과 우편향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한데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싸움에 나섰다가 지친 너는,
너는 비록 지쳤으나
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
저 잘난 세상쯤이야 수평선 위에 하늘 한 폭으로 걸어두고
가는 길에 변산 해수욕장이나 채석강 쪽에서 잠시
바람 속에 마음을 말려도 좋을 거야
그러나 지체하지는 말아야 해
모항에 도착하기 전에 풍경에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촌스러우니까
조금만 더 가면 훌륭한 게 나올 거라는
믿기 싫지만, 그래도 던져버릴 수 없는 희망이
여기까지 우리를 데리고 온 것처럼
모항도 그렇게 가는 거야
모항에 도착하면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거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너는 물어오겠지
아니, 몸에다 마음을 비벼넣어 섞는 그런 것을
꼭 누가 시시콜콜 가르쳐줘야 아나?
걱정하지 마, 모항이 보이는 길 위에 서기만 하면
이미 모항이 네 몸 속에 들어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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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늦여름, 안도현의 이 시를 쫓아 모항을 향해 떠났었다. 그 아름답고, 작은 모항이 기억날 때면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고 싶다.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 그리고 그곳에서 '던져 버릴 수 없는 희망'이 있음을 느끼고 싶다. 비록 지금 그곳에서 함께했던 이는 없다고 할지라도...그렇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