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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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가 어느덧 창밖을 보면 해가 지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벌써 하루가 갔나?'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뭐하고 지냈는데 이렇게 빨리 하루가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사가 걸린 일도 아닌데 왜 그리 집착하며 일했는지 후회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만 바라보다가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 주었던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저녁무렵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아직 중년의 나이기에 인생의 황혼에는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하루를 보내고 해가 지고 있을 때의 감정과 조금은 비슷하지 않을까?

인생 역시 하루의 해가 지는 듯한 느낌으로 저무는 것은 아닐까?

 

모두들 거장이라고 부르는 황석영 작가의 신작 [해질 무렵]은 바로 인생의 황혼에 살아 온 세월을 돌이켜 보는 소설이다.

오직 성공이라는 한 목표만을 향해 달려 온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나는 왜 여기 서 있나?'라고 묻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노년에 접어든 박민아라는 건축가와 스물아홉인 정우희라는 여성의 시각에서 교차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박민아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건축가이다.

그는 경상도 영산이라는 시골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시골 면서기였으나 민원인에게 작은 해택을 받은 대가로 쫓기듯 고향을 떠나 서울의 달동네인 달골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선자판부터 시작해 어묵 가게로 생계를 이어간다.

박민아는 그 곳에서 재명이 형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그와 그의 동생들과 형제처럼 지낸다.

또 국수집 딸이 차순아를 좋아한다.

그러나 박민아에게 달골이란 어떻게든 벗어나야 할 곳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대학교로 진학한 후 달골과 점점 멀어진다.

자연스럽게 재명이 형이나 차순아 역시 그의 인생에서 점점 사라져간다.

그리고 그는 주류사회에 편입해 오직 성공을 위해 달려간다.

이 소설에서 박민아가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그는 성공한 사업가이며 건축가로서 과거를 회상한다.

 

반면 정우희는 흔희 이야기하는 삼포세대의 전형적인 여성이다.

극단에서 일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전혀 돈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반지하에서 살면서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고 낮에는 극단에서 일을 한다.

여러 번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온갖 설움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민아라는 남자를 알게 된다.

그는 그런 그녀를 여러 가지로 보살펴 주었다.

그 역시 정우희와 비슷한 처지이면서....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자살을 한다.

 

소설은 사는 방식이나 연령이 전혀 상관이 없을 두 명의 삶이 결국은 연장선에 있음을 이야기 한다.

박민아의 과거의 삶이 정우희의 현재의 삶과 맞닿아 있음을 이야기 한다.

어쩌면 소설은 결국 정우희와 같은 젊은 세대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것이 박민아의 세대임을 이야기 한다.

그렇다고 박민아의 삶이 편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작가는 박민아의 인생을 돌이켜 보며 과연 그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이야기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 왔는데 그가 잃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책을 읽은 후에도 한참을 책에서 손을 땔 수가 없었다.

거장이 주는 그 쓸쓸하고도 황량한 적막감.......

비교적 젊은 세대에 속하는 나조차도 박민아라는 인물을 욕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 역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무언가가 자신을 몰아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택은 개인의 몫이었기에 그는 그 짐을 스스로 짊어진다.

 

가끔 윗자리에 계신 나이 드신 분들과 대화를 할 때가 있다.

경험을 통해 그 분들과 대화를 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 분들의 과거를 업적을 훼손하는 것이다.

그 분들은 자신들이 멋진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부정하거나 훼손하려는 것을 마치 생명의 위협처럼 느낀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삶이 인정받고 싶은 것이 본성인가 보다.

그럼에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인생의 황혼무렵에 회환과 아쉬움으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작가와 박민아라는 인물에게 존경을 표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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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양육 - 애착, 훈육, 자립 세 가지만 알면 충분한
홍순범 지음 / 예담Friend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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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연히 텔레비젼 방송에서 중학생 아이와 엄마의 대화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있다.

아이가 계속 게임만 하고 있기에 엄마가 대화를 시도하다가 아이가 돌변하며 엄마에게 욕을 하는 것이었다.

보고 있는 내가 화가 났다.

어떻게 아이를 저렇게 키울 수 있을까?

내 아이는 저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그러나 금새 과연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들 아이를 바르게 키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 것은 다짐이나 자신감만으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부모로서 많이 준비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아이의 양육의 핵심을 이야기 하는 좋은 책을 만났다.

홍순범 교수가 쓴 [만능양육]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자신의 치료와 상담 경험을 통해 아이의 양육의 기본 핵심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양육의 핵심은 아이의 성장 단계별로 양육의 과정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애착과 훈육과 자립이라는 세 단어로 설명한다.

즉 아기 때는 애착을 중심으로, 어린이 때는 훈육을 중심으로, 청소년 때는 자립을 중심으로 아이를 양육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는 부모가 카멜레온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의 성장과정에 따라 필요한 양육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 양육과정은 전 단계가 채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즉 아이때 충분히 애착을 받은 아이가 어린이때 훈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훈육을 받은 아이가 자립심으로 양육될 수 있다.

애착이 없는 상태에서 훈육만 하게 된다면 바른 양육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훈육'의 단계에서 무조건적인 훈육만 있는 것은 아니다.

훈육과 애착이 병행되어야 하지만, 중점은 그 발달 단계에 필요한 것이 중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양육의 첫 번째 단계는 '애착'이다.

아이때의 부모로 부터 받는 애착은 아이가 평생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과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를 돌봐주는 사람을 통해 아기는 세상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곧 세상에 대한 신뢰로 이어집니다. 아기에겐 그 사람의 품 안이 마치 세상 전체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이 신뢰감이 잘 싹을 틔워 마음에 든든하게 뿌리내리면 평생에 걸쳐 큰 힘이 되겠죠.

덕분에 우리는 한치 앞도 알 수 없고 우연이 지배하는 냉엄한 현실 속에서도 어느 정도 평온과 안정을 유지할 수 잇씁니다.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아기 때의 신뢰감이 깊이 뿌리 내기고 있기에 다시금 희망이 샘속곤 합니다. 내가 울음을 터뜨리면 세상이 다가와 편하게 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이같은 신뢰감이 자리 잡으려면 아기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사랑과 비슷한 사랑입니다. (P49-50)

 

저자가 말하는 양육의 두 번째 단계는 '훈육'이다.

아기는 전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타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가 커가면서 서서히 타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부모는 훈육을 시작하고 규칙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규칙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를 꾸중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훈육은 칭찬과 병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가지 요령은, 아이가 잘못 할 때 말고 아이가 잘 할 때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잘못할 때 가르치려 하면 꾸중을 해서 가르치게 되지만, 잘 할 때 포착해서 가르치면 칭찬을 하며 가르치게 됩니다. 물론 그러면 아이를 평소에 더 유심히 지켜봐야 하죠. 아이가 문제행동을 보일 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없이 잘 지낼 때입니다.(P70)

 

저자가 말하는 양육의 세 번째 단계는 '자립'이다.

아이는 청소년 시기에 이르러서 추상적인 사고 능력이 발달되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저자는 이 때부터 부모는 아이를 감독자의 역할 보다는 조언자, 동반자, 협력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시행착오를 통해서 스스로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는 아이와 대화하고,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여야 하며, 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인정'과 '공감'이다.

 

 

 

이 책은 아이의 세 가지 양육 단계와 함께 이 단계에서 올바른 양육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이야기 한다.

실제로 아이를 양육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두고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면 애착의 과정에서 엄마의 산후우울증은 아이에게 애착을 주는 것에 큰 장애가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남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엄마가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문제 하나 내겠습니다. 바라고 바라던 아기가 태어났을 때, 이제부터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모유 수유? 영양? 위생? 안정적인 애착? 네, 모두 정답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답은 따로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후 가장 신경 써야 할 것, 그것은 바로 '엄마'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엄마의 행복'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행복한 엄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게 다 우리 아기를 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산후우울증은 출산 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막막할 경우 더 생기기 쉽습니다. 따라서 엄마가 우울증이 안 생기도록 주변에서 도와주어야 합니다.(P93)

이 외에도 각 양육의 단계에서 장애가 되는 문제들을 실질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아이의 양육에 대한 전체적이고도 통합적인 시각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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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품격 -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다, 빌 게이츠 선정 올해의 추천도서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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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의 두 영웅을 이야기 꼽으면 맥아더와 아이젠하워를 이야기 한다.

맥아더는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고, 아이젠하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전쟁 후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이 되고, 맥아더는 대중적인 인기와는 달리 역사에서 쓸쓸히 사라진다.

과연 그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는 여러 인물들의 내면의 성장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그 중에 아이젠하워의 이야기도 나온다.

아이젠하워는 어린시절부터 매우 다혈질적이고 화를 참지 못하는 성향을 가졌었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형들만 할로윈 파티에 가게 하고 어린 아이젠하워는 가지 못하게 했다.

순간 화가 난 아이젠하워는 문밖으로 나가 나무를 주먹으로 쳐서 손의 피부가 벗겨지고 피범벅이가 되었다.

그로 인해 어린 아이젠하워는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자기 방에서 울고 있었다.

그 때 그의 어머니가 조용히 그에게 다가와서 성경의 한 구절을 읽어 주었다고 한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은 자보다 나으니라"

어머니는 어린 아들 내면에 있는 분노와 증오를 이야기 하고 그 분노와 증오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아이젠하워는 평생 자신 안에 있는 분노와 증오를 다스리는 삶을 살았다.

2차세계 대전까지의 대부분의 군생활을 참모로 생활하며 다혈질적이고 권위적인 지휘관들의 뒷처러를 감당했다.(그 중에는 맥아더도 있다.)

그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맡겨진 일을 감당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2차세계 대전의 전세를 바꿀만한 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다스리며 맡겨진 일을 감당했다.

이는 맥아더의 자기과시욕이나 독단적인 행동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이 책은 불우한 어린 시절이나 연약한 건강을 이유로 연약한 내면을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 어떻게 위대한 인물들이 되었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인물들을 통해 저자인 데이비드 브룩스가 이야기 하려는 것은 내면의 성장의 중요성이다.

저자는 현대인들의 외적인 성장만을 중요시하고 내적인 성장을 돌보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한 인간의 자아를 '아담1'과 '아담2'로 나눈다.

'아담1'은 우리 밖에 있는 외면적인 자아로서 자신의 성공과 사람들의 인정을 위해 노력한다.

반면 '아담2'는 우리 내면에 있는 자아로서 영적인 부분을 감당한다.

그러나 '아담2'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답고 도덕적인 자아가 아니다.

저자는 칸트의 말을 인용해 이 내면의 자아를 뒤틀린 목재로 본다.

우리 인간에는 자기 중심적이고, 교만과 욕망과 증오와 분노가 담긴 내면의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뒤틀린 자아의 연약함을 깨닫고 내면을 성장시키는 사람만이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뼈 속까지 성공주의에 물든 현대인의 시각으로 잘못 이해하면, 진정한 외적인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면의 성장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이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가 이야기하는 성장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인간마다 자신이 해야 할 '소명'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사명을 통해 진정한 내면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의 막후 조력자이자, 미국의 복지정책의 어머니로 불리는 '프랜시스 퍼킨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뉴욕화재때 이주 노동자들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 그것을 사람들의 방관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며, 그런 방관자 중에 자신도 한 명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평생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일에 평생을 받친다.

저자는 그것을 '소명'이나 '천직'이라고 부른다.

 

천직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천직을 고르는게 아니라는 얘기다. 천직은 소명이다. 천직이 그를 부르는 것이다. 천직에 몸담은 사람은 대체로 이 문제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낀다. 소명에 따라 천직을 추구하지 않으면 그의 인생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P58)

이라고 한다.

소명이란 자신이 성공을 위해 그 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 자체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진정한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소명으로 불려진 사람은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단련한다.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욕망과 자아를 억제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럿을 '내적 장악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내적 장악력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커다란 성공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모두 불행한 어린 시절을 살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힘든 삶을 살았으며, 그들의 연약한 성품으로 인해 결혼과 가정 생활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그런 자신의 내면의 연약함을 직시하고 그 연약함과 끊임없이 싸운 인물들이다.

그들은 이 싸움을 통해 내면이 성장하고 인류와 국가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은 성공을 해서도 그 성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성공에 파뭍혀 자신이 변질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단련했다.

저자는 랜돌프와 러스틴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흑인인권운동가들이 자신들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타락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이렇게 대결 국면의 한가운데 있었고, 랜돌프와 러스틴을 비롯한 인권운동가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순간이었음에도 그들은 자신드의 공격적 행동으로 인해 타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자기들에게 가장 유리한 순간에도 죄를 짓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의가 정당하는 이유로 독선의 죄에 빠질 수 있었고, 대의가 성공적으로 진척됨에 따라 잘난 체하는 죄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다. 또한 그룹과 그룹이 맞서면서 악의적이고 파벌적인 성향을 띠게 될 수 있었고, 추종자들을 동원하기 위한 선전 활동을 벌이면서 지나친 단순화와 교조주의로 흐를 수 있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군중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허영심에 빠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나아가 그들의 가슴은 갈등이 더덕 심각해지고 적들에 대한 증오가 깊어짐에 따라 무감각해질 수 있었고,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도덕적으로 타락한 선택을 해야만 할 수도 있었으며, 역사를 변화시키게 될수록 더욱 자만심에 빠질 수도 있었다. (P268)

 

바로 이것이 사방에서 타락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찾은 반전의 논리이다. 20세기 중반에 이러한 역설적 논리로 가장 이름을 떨친 사람이 라이홀드 리버이다. 랜돌프, 러스틴, 킹 같은 사람들은 니버 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니버는 인간이 죄를 짓는 본성에서 헤어날 수 없는 존재이며 그 스스로가 짐이자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행동은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큰 의미의 틀 안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자신이 한 일에서 비롯되는 기나긴 연쇄적 결과를 이해할 수 없고, 심지어 우리 자신의 충동의 근원마저도 이해할 수 없다. 니버는 현대인의 아인한 양심과 모든 방면에서의 도적적 안주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큰 도덕적이지 않으며, 스스로 판단하는 것만큼 순수한 동기를 지니고 있지 않다고 일깨운다.(P269)

 

결국 저자는 인간 내면의 뒤틀린 본성과 욕망을 깨닫고 그것과 끊임없이 싸우는 사람만이 그것에 잠식되지 않고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런 과정들을 다루고 있다.

어린시절의 성적타락과 무질서한 삶에서 자신을 이기고 빈민들의 어머니가 된 도러시데이나, 한쪽 눈과 한쪽 청력을 잃고 한쪽 팔까지 절단한 후 수많은 육체와 정신의 압박을 당하던 사뮤엘 존슨이 그것들을 이기고 위대한 작가가 된 스토리를 읽다보면 저절로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안치환이 부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느끼게 된다.

 

 

현대의 문화는 성공의 문화이다.

누구나 성공을 이야기 하고, 어린 아이때부터 성공을 위한 훈련을 받는다.

그 성공으로 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뒤틀린 내면은 더욱 더 뒤틀려 진다.

그리고 성공을 누렸을 때 우리 안에 뒤틀렸던 내면이 터져 나온다.

뒤틀린 자기과시와 약한 자에 대한 무시,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무한한 욕망을 누리려 한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성공하지 못했을 때이다.

자기과시와 폭력으로도 분출되지 못하고 내면에 쌓여만 가는 뒤틀린 내면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함께 타인에 대한 분노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광기'가 되어 분출된다.

자신과 타인을 모두 태워버리는 '광기'기 된다.

현대문화가 인간 내면의 자아를 방치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뒤틀리게 만드는 상황에서 저자가 이야기 하는 내면의 성장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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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
정숭호 지음 / 인간사랑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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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미국의 33대 대통령인 헨리 트루먼은 그렇게 친근한 이름이 아니다.

나 역시 트루먼 대통령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학교를 다닐 때 배운 '트루먼 독트린'이나, 가끔 한국전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맥아더 장군과의 불화에 대한 것 뿐이었다.

또한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트루먼의 우유부단한 결정과 맥아더 해임을 통해 한국전쟁이 휴전상태로 고착되고, 통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래저래 트루먼은 우리에게는 친숙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트루먼을 다시 알게 되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던 트루먼이 아니라 대통령의 무게를 짊어졌던 한 인간으로서의 트루먼을 알게 되었다.

 

우선 트루먼은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진 대통령이었다.

그는 미주리라는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변방 출신이었다.

그의 부모는 작은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서 비교적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가 성장했을 무렵 아버지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빚을 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그는 도시에 은행 생활까지 포기하고 아버지 농장으로 내려 와 가업을 이으며 아버지를 도와야 했다.

그 또한 군대 제대 후 동료와 함께 남성용품 가게를 운영하다가 큰 빚을 지게 되었다.

아버지와 자신의 빚은 거이 평생 트루먼을 따라나니며 항상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지게 하였다.

 

이런 출신과 경제적인 한계보다 더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는데 그것은 정치적인 한계이다.

트루먼이 정치로 데뷔한 것은 '톰 팬더개스트(Tom Pendergast)'의 후원을 통해서였다.

팬더캐스트는 미주리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정치 거물로서 미주리 지역의 정치 조직은 물론, 관공서와 경찰서까지 그의 인맥으로 채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역의 온갖 이권에 개입하고 막대한 부정자금의 거둬들이고 있었다.

이로 인해 후에 팬터개스트와 그의 일당들은 부정부패에 연류되 감옥에 가게 된다.

당시의 상황으로서 미주리에서 정치인으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팬더캐스트와의 관계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팬터개스트의 심부름꾼'이라는 비하는 트루먼이 정치를 하는 동안 평생을 따라 다녔다.

이런 그의 한계때문에 그가 루즈벨트의 런닝메이트로 부통령에 출마했을 때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트루먼이 걱정했던 대로 공화당은 트루먼 개인에 대한 흠집 내기를 시작했다. 공화당 쪽 신문들은 베스가 상원의원 직원으로 등재되 급여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맹렬이 비난했다. 인신공격도 많았다. 트루먼의 삶은 3류 인생이며, 흘러간 물이고, 남성용품 가게도 말아먹은 실패한 삶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셔츠 한 장도 제대로 팔아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쓴 기사도 있었다. 톰 팬터개스트와의 관계를 다시 파헤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공화당계 보수 언론의 대표격이었던 <시카고 트리뷴>이 가장 모질었다. <시카고 트리뷴>은 '만약에 다음 4년 안에 루즈벨트가 혹시 사망하거나 대통력직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우리는 파산자 트루먼, 캔자스시티를 거덜 낸 팬더개스트의 말만 듣는 트루먼의 해골이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스맨 트루먼, 정치깡패들에게 사과만 하는 트루먼의 모습을 보게 될 것니다.'라고 섰다. 베스의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보도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P158-9)

 

그로 인해 그는 반대파인 공화당에서는 물론이고, 민주당 내에서도 무시를 당했다.

트루먼의 후원자였던 팬더개스트 역시 그를 그렇게 중용하지 않았고, 루즈벨트 역시 트르먼이 부통령일 때도 중요한 결정을 그와 의논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루즈벨트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은 트루먼을 왜 부통령 후보로 선택했는지는 미국 정치사의 풀리지 않는 의문이라고 한다.

 

이런 한계 속에서도 그는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자신의 맡은 일을 감당했다.

특히 그는 팬터개스트의 조직의 대부분이 비리로 수사를 받을 때도 그만은 수사선상에서 제외될 정도로 청렴한 정치 태도를 지녔다.

이로 인해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팬터개스트의 후원을 받으면서도 그의 그룹 내의 핵심인물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성실함과 정직함은 조금씩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결국 부통령까지 당선되었다.

부통령 당선 이후 루즈벨트가 갑자기 사망하자 그는 얼떨결에 대통령직을 물려 받았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 이스라엘 국가 인정, 그리스와 터키의 지원을 통한 소련의 팽창 저지, 이스라엘 국가 공인, 한국전 참전, 맥아더 경질과 같은 시대의 굵직한 상황 등을 결정했다.

그는 보통의 정치인처럼 부담이 있는 결정은 남에게 미루고, 인기가 있는 결정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결정하고,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을 졌다.

이로 인해 그는 당시 여론이나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인기가 없었다.

 

1946년 초 백악관 트루먼의 집무실 책상에서는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한다(The buck stop here)'라는 글귀가 적힌 작은 패널이 등장한다. 이 말은 트루먼의 어록을 대표한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트루먼이 처음 만든 게 아니라 포커판에서 이미 널리 쓰이던 말이다. 여기서 'Buck'은 사슴뿔이다. 포커판에서 무슨 게임을 할지, 파돈은 얼마로 할지를 결정하는 딜러가 누구임을 알려주는 표시로 사용됐으며 자기 차례에 딜러를 하기 싫은 사람은 'Buck'을 옆 사람에게 밀어놓으면 딜러로서의 결정과 결정에 따른 책임을 면하게 된다. - 중략 - 대통령의 결단을 포커판의 딜러가 패를 돌리는 것과 비교하는 것은 뭐하지만, 트루먼은 대통령일 때 'Buck'이 자기 앞에 놓이면 절대 옆으로 패스하지 않고 대통령의 책무를 다햇다. "트루먼은 단 한번도 담장 위에 걸터앉은 적이 없다. 항상 남보다 먼저 담장 이쪽 아니면 저쪽에 있었다."는 측근들의 말은 결단을 내릴 때 절대 좌고우면하지 않았던 트루먼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P171-2)

트루먼은 회고록에서 "원자폭탄의 투하 목표와 투하 시기 결정은 나의 임무였다. 착오가 있었서는 안 되었다. 나는 원자폭탁을 하나의 무기로 생각했으며, 이것을 사용함에 있어 어떤 의문도 갖지 않았다."고 섰다. 트루먼은 죽을 때까지 원자폭탄 투하 결정은 자신이 내렸고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전쟁을 조기 종식, 25만 명의 미군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트루먼의 이 주장은 최초로, 그리고 현재까지 유일하게 원자폭탁이라는 가공할 무기를 실제로 사용해 인류를 순시간에 절멸시키고 인류의 문명에 종말을 가져올 위험에 직면한 인물이라는 그에 대한 비난의 근거가 된다. (P175-6)

 

트루먼은 미국의 기득권 세력의 비난과 비호의적인 원론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선거때마다 기적의 역전승을 거두었다.

특히 대통령 재임선거에서는 모든 원론이 패배를 예상했고, 심지어 개표날 상대 후보의 당선을 신문 1면에 오보로 낼 정도로 불가능한 선거를 역전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그만큼 그는 대중들과 친밀했고, 서민들의 편에 섰고, 항상 포기하지 않고 모든 일을 끝까지 해 냈다.

 

 

미국이나 유럽의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나 리더쉽에 대한 책들을 읽다보면, 대부분 그들의 정치적인 모습이나,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모습들만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이 책은 트루먼의 인간적인 모습들에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트루먼이 대통령을 지냈던 전후로 세계정세와 미국의 정치상황을 쉽게 설명하며, 트루먼이 왜 그런 결정들을 내렸어야 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트루먼을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 보기 보다는 한 명의 인간으로 볼 수 있었다.

그의 굴곡진 삶과 정치여정, 매 순간의 결단들, 그리고 오직 한 여자인 아내 베스를 향한 헌신적인 사랑을 보면서 정치인 트루먼 보다 인간 트루먼으로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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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찾아서 - 성석제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0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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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가끔씩 사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線)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그 '선'이라는 것이 무너졌다.

이제는 내가 살기 위해서, 또는 내 기분을 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무서워진다.

그리고 그렇지 않았던 예전이 그리워진다.

 

성석제 작가의 [왕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이 책의 주인공인 '장원두'라는 인물 역시 변해 버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이 소설은 도시에 살던 주인공이 어릴 적 친구인 재천으로 부터 '큰형님이 가셨다'라는 소식을 전화상으로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이 '큰형님'으로 부르는 사람은 고향에서 왕의 역할을 하던 '마사오'라는 사람이다.

마사오는 그 지역의 건달이었다.

'건달'이라고만 이야기하면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마사오의 정체성을 잘 표현할 것이다.

예전에는 시골에서는 주먹 꽤나 쓰는 사람이 단지 싸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네의 대소사를 관할했다.

마사오 역시 그 동네에서는 최고의 주먹이자, 동네사람들의 인심을 얻어 마을의 모든 질서를 유지하는 왕 같은 존재였다.

특히 주인공과 재천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 마사오를 신화 속의 존재처럼 우러러 보았다. 

그런 마사오가 죽게 되자 주인공은 그의 장례에 참여하러 고향으로 내려간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예전을 회상하고, 그 예전과 너무나 달라진 고향과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당혹감을 다루고 있다.

 

이 소설에서 마사오는 구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주먹으로 지역의 왕으로 군림했지만 권력이나 돈을 탐하지는 않았다.

낭만을 알고, 의리를 알고, 약한 자를 도와 줄 줄 알았다.

이에 반해 마사오를 비겁하게 린치하고 그 동네에 처음으로 조직을 만든 조창용과 조창용이 죽은 후 마을을 양분하고 싸우고 있는 재천과 황포는 현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창용은 도시 조직의 똘마니가 되어 시골을 장악하고, 이미 중풍으로 인해 힘을 쓰지 못하는 마사오를 함정에 빠뜨려 불구로 만든다.

그리고 재천은 이런 창용을 음모로 죽게 하고, 황포와 싸움을 한다.

이들은 힘을 가지기 위해 무엇이든지 한다.

군인이나 경찰과 같은 권력과 손을 잡고, 상대를 모략하고, 칼과 도끼로 상대방을 난자한다.

90년대 이후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지켜야 할 선이 없다.

그들은 이미 그 '선'을 90년대에 넘어 갔다.

이제는 그 '선'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가 올라서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기에 사람이 무섭고, 시대가 무섭다.

 

마사오는 구 시대에 지켜얄 할 선을 유지하는 인물이다.

그가 있었기에 사람들이 선을 지킬 수가 있었다.

그것은 마사오가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나, 법치적인 인물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냥 존재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지키게 하는 인물이 있다.

 

예전에 내가 살 던 시대도 그랬다.

내가 살았던 동네, 내가 살았던 학교, 내가 시간을 보냈던 집단들 속에는 마사오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존재만으로 사람들에게 선을 지키게 하는 인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인물들은 쓸쓸히 퇴장을 한다.

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모욕과 조롱을 당하면서......

 

마사오가 구시대의 인물이고, 재천이 현 시대의 인물이라면,

마사오를 존경하면서도 재천의 절친한 친구인 주인공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마사오라는 하나의 세계 속에서 살았고, 그 세계가 무너질 때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한다.

그러나 그런 마사오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세계를 세우는 재천에게 어정쩡하게 끌려 간다.

그는 창용이 마사오를 함정으로 끌어들여 린치를 가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인물이 자기 친구 재천인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정쩡하게 재천과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마사오가 죽은 고향 동네의 새로운 왕이 되려는 재천의 계획에 어정쩡하게 동조한다.

주인공은 선이 없어지는 시대에 어정쩡하게 동조하며 따라가는 평범한 사람일 것이다.

선이 있던 시대를 그리워하나 그 시대로 돌이킬 힘은 없이나 새로운 시대에 저항할 용기나 힘은 없다.

그러기에 그냥 시대의 흐름에 어정쩡하게 따라갈 뿐이다.

 

 

오늘도 하루 종일 선이 없는 시대를 살다가 왔다.

도로에서는 무턱대고 클락션을 울려대는 차들, 헨드폰에서는 말도 않 되는 사기성 문자와 전화들이 오고 있다.

거리의 뒷골목에는 타인의 청약통약 비싼 가격에 산다는 광고나, 심지어 사람의 장기를 구입한다는 광고들이 버젓이 걸려 있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무엇인가를 외쳐되고 있다.

나는 그런 시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 온다.

그리고 성석제 작가의 [왕을 찾아서]라는 소설을 읽으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킬 선(線)이 있었던 시대'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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