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찾아서 - 성석제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0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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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가끔씩 사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線)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그 '선'이라는 것이 무너졌다.

이제는 내가 살기 위해서, 또는 내 기분을 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무서워진다.

그리고 그렇지 않았던 예전이 그리워진다.

 

성석제 작가의 [왕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이 책의 주인공인 '장원두'라는 인물 역시 변해 버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이 소설은 도시에 살던 주인공이 어릴 적 친구인 재천으로 부터 '큰형님이 가셨다'라는 소식을 전화상으로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이 '큰형님'으로 부르는 사람은 고향에서 왕의 역할을 하던 '마사오'라는 사람이다.

마사오는 그 지역의 건달이었다.

'건달'이라고만 이야기하면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마사오의 정체성을 잘 표현할 것이다.

예전에는 시골에서는 주먹 꽤나 쓰는 사람이 단지 싸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네의 대소사를 관할했다.

마사오 역시 그 동네에서는 최고의 주먹이자, 동네사람들의 인심을 얻어 마을의 모든 질서를 유지하는 왕 같은 존재였다.

특히 주인공과 재천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 마사오를 신화 속의 존재처럼 우러러 보았다. 

그런 마사오가 죽게 되자 주인공은 그의 장례에 참여하러 고향으로 내려간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예전을 회상하고, 그 예전과 너무나 달라진 고향과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당혹감을 다루고 있다.

 

이 소설에서 마사오는 구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주먹으로 지역의 왕으로 군림했지만 권력이나 돈을 탐하지는 않았다.

낭만을 알고, 의리를 알고, 약한 자를 도와 줄 줄 알았다.

이에 반해 마사오를 비겁하게 린치하고 그 동네에 처음으로 조직을 만든 조창용과 조창용이 죽은 후 마을을 양분하고 싸우고 있는 재천과 황포는 현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창용은 도시 조직의 똘마니가 되어 시골을 장악하고, 이미 중풍으로 인해 힘을 쓰지 못하는 마사오를 함정에 빠뜨려 불구로 만든다.

그리고 재천은 이런 창용을 음모로 죽게 하고, 황포와 싸움을 한다.

이들은 힘을 가지기 위해 무엇이든지 한다.

군인이나 경찰과 같은 권력과 손을 잡고, 상대를 모략하고, 칼과 도끼로 상대방을 난자한다.

90년대 이후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지켜야 할 선이 없다.

그들은 이미 그 '선'을 90년대에 넘어 갔다.

이제는 그 '선'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가 올라서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기에 사람이 무섭고, 시대가 무섭다.

 

마사오는 구 시대에 지켜얄 할 선을 유지하는 인물이다.

그가 있었기에 사람들이 선을 지킬 수가 있었다.

그것은 마사오가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나, 법치적인 인물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냥 존재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지키게 하는 인물이 있다.

 

예전에 내가 살 던 시대도 그랬다.

내가 살았던 동네, 내가 살았던 학교, 내가 시간을 보냈던 집단들 속에는 마사오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존재만으로 사람들에게 선을 지키게 하는 인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인물들은 쓸쓸히 퇴장을 한다.

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모욕과 조롱을 당하면서......

 

마사오가 구시대의 인물이고, 재천이 현 시대의 인물이라면,

마사오를 존경하면서도 재천의 절친한 친구인 주인공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마사오라는 하나의 세계 속에서 살았고, 그 세계가 무너질 때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한다.

그러나 그런 마사오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세계를 세우는 재천에게 어정쩡하게 끌려 간다.

그는 창용이 마사오를 함정으로 끌어들여 린치를 가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인물이 자기 친구 재천인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정쩡하게 재천과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마사오가 죽은 고향 동네의 새로운 왕이 되려는 재천의 계획에 어정쩡하게 동조한다.

주인공은 선이 없어지는 시대에 어정쩡하게 동조하며 따라가는 평범한 사람일 것이다.

선이 있던 시대를 그리워하나 그 시대로 돌이킬 힘은 없이나 새로운 시대에 저항할 용기나 힘은 없다.

그러기에 그냥 시대의 흐름에 어정쩡하게 따라갈 뿐이다.

 

 

오늘도 하루 종일 선이 없는 시대를 살다가 왔다.

도로에서는 무턱대고 클락션을 울려대는 차들, 헨드폰에서는 말도 않 되는 사기성 문자와 전화들이 오고 있다.

거리의 뒷골목에는 타인의 청약통약 비싼 가격에 산다는 광고나, 심지어 사람의 장기를 구입한다는 광고들이 버젓이 걸려 있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무엇인가를 외쳐되고 있다.

나는 그런 시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 온다.

그리고 성석제 작가의 [왕을 찾아서]라는 소설을 읽으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킬 선(線)이 있었던 시대'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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