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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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읽은 단편소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은 한 문예지에 김훈 작가가 쓴 단편소설이다.

노량진 입시촌을 배경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을 담담한 필치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벼랑끝에 몰린 젊은이들의 삶과 내면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기에 읽는내내 더 마음이 아프게 공감이 갔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은 후에는 너무나 먹먹해서 한 참을 그 소설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작가는 나름 꽤나 성공하고 유명세를 누리고 있을텐데 어떻게 이렇게 젊은이의 아픔에 대해서 자신이 느끼는 것처럼 이렇게 세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오랫동안 이런 질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연말이 되어서 작가가 새로 출간한 산문집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서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다.

저자 역시 처절한 시절을 살았고, 비록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을 누리고 있지만 여전히 그 처절함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과 타인의 삶, 그리고 주변의 것들에 대해 소설처럼 담담한 필치로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돈과 그 돈으로 오는 처절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돈을 증오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돈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모두 돈을 벌어야 한다.

저자는 그 돈벌이에서 오는 아픔을 애잔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돈벌이를 인간의 숙명으로 여긴다.

마치 성경에서 에덴 동산에 쫓겨난 아담에게 하나님이 내린 숙명처럼......

 

죽변항의 낡은 어선을 바라보면서 나는 수 천년 전 이 항구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신석기 사내들과 그들의 고기잡이 도구를 생각했다. 그들의 돌도끼와 돌칼도 내 마음에 떠올랐다. 박물관에서 본 신석기의 돌도끼는 그 손잡이 부분이 인간의 손바닥에 닳아서 반질반질했다. 그 돌도끼를 쥐고 사냥을 해서 처자식을 벌어먹이던 사내들의 고난과 희망, 사냥에 실패해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저녁의 슬픔, 비 오는 날 그 신석기 사내들의 몸의 비린내도 내 마음에 떠올랐다. 그 사내들은 바로 내 눈 앞에 있었다. (P54)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알겠느냐? 이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얘야,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P178)

 

 

저자는 단지 돈벌이만을 애잔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과의 관계 역시 애잔하게 바라본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바라보고, 아버지로서 아들과 딸을 바라본다.

특히 [광야를 달리는 말]이란 글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애잔한 글을 보고, 나 역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서 가슴이 먹먹했다.

어찌보면 시대의 흐름에 밀려서 야인처럼 살다간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절절이 배어 있는 글이었다.

 

내 아버지는 공회전과 원점회귀를 거듭하는 한국 현대사의 황무지에 맨몸을 갈았다. 건너가지 못하고, 그 돌밭에 몸을 갈면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생업은 신문기자이거나 소설가였는데, 밥을 온전히 먹을 수 있는 노동은 아니었다.(P37)

 

내가 중고교를 다닐 무렵에, 아버지는 두어 달에 한 번씩 집에 들어왔다가 다음날 또 어디론지 나갔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가 어디로 다니시는지를 묻지 않았고, 엄마는 아예 아버지를 상대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버지를 미워했찌만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새벽에 아버지가 돌아오면, 나는 아버지가 누운 건넛방 아이에 장작을 때서 방을 덥혀드렸고 아버지 방에 들어가 요 밑에 손을 넣어서 바닥이 따스해졌는지 확인했다. 아침에 냄비를 들고 돈암동 시장에 가서 선지해장국을 사와서 아버지께 드렸다. 아버지는 내가 사온 해장국에 목이 메는지 잘 드시지 못했고, 엄마는 내가 하는 짓을 보면서 "사내놈들은 다 똑같다. 다 한통속이다. 저 놈도 자라면 제 아버지처럼 될 놈이다."라면서 울었다.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싸우면, 나는 아버지를 그냥 내버려두라고 엄마한테 대들었는데, 엄마는 더 크게 울었다. 가난은 그 끝과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가난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처럼 누구를 나무랄 수도 없었고,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P39)

 

자신의 딸을 바라보는 시각은 더 애잔하다.

 

딸아이는 어렸을 때 침을 많이 흘렸고, 늘 젖을 토했다. 두 돌이 지나도록 턱밑에 수건을 매달았다. 안아주면 늘 삭은 젖냄새가 났다. 나는 그 젖냄새에 늘 눈물겨워했다. 이것이 내 혈육이고 내가 길러야 할 내 어린 자식의 냄새로구나, 내가 배반할 수 없는 인류의 냄새로구나......(P139)

 

술취하고 피곤한 저녁에, 잠든 아이의 머리에 코를 대고 아이의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때때로 슬펐다. 내 슬픔은 결국 여자의 태에서 태어나서 다시 여자의 태 속에 자식을 만드는 포유류의 슬픔이었다. 여자의 태는 반복과 순환을 거듭하며 생명을 빚어내는 슬픔의 요람이었다. 그 어린아이가 자라서 또 여자가 되었다. 결혼해도 좋을 만큼 자란 여자 성인이 된 것이다.(P140)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부대끼고......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그런 인생을 살다가 자신의 노력 때문인지, 아니면 타고난 재능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운 때문인지 어떤 사람은 그 아파하고 힘들어 하고 부대끼는 삶에서 벗어나 남보다 조금 더 위에 서게 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부대끼던 삶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비웃고 그 위에 군림한다.

같이 아파할 수는 없는 걸까?

같이 부대끼고 같이 힘들어하지는 않아도 같이 아파할 수는 없는 걸까?

마음만이라도 같이 아파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걸까?

이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뛰어난 다른 작품들을 제쳐놓고도 아픈 사람들과 같이 아파하는 이 글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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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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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 전에 종영된 방송이지만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제목의 방송이 기억이 난다.

흔히 이야기하는 기구하다는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재연하는 다큐식 방송이었다.

이미 아내가 있는 남편에게 속아서 결혼해 전처의 아내를 자기 자식처럼 키운 어머니의 이야기나 여러 남자에게 버림받은 기구한 여인의 이야기, 또는 고아로 힘든 삶을 살고 나이들어 번 돈을 남에게 기부하는 사람의 이야기 등이 방송이 되었다.

한 때는 그 방송을 보면서 '왜 저렇게 살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곧 나의 교만을 후회했다.

말 그대로 이것이 인생인 것이다.

때로는 우리 눈에 기구해 보이고, 비루해 보여도 그것이 인생이고, 인생은 그 자체로 가치있고 아름다운 것이다.

김훈 작가의 단편소설집 [강산무진]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본 이 방송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인생들 역시 모두 비루하기 때문일까?

 

 

첫 소설에 [배웅]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IMF 이전에는 식품납품공장을 운영하며 그런저럭 사장 소리를 듣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회사가 부도난 후에는 택시를 운전하며 사납금 몇 만원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산다.

그런 그에게 공장을 운영할 때 같이 경리로 일하면서 정을 나누었던 '윤애'라는 여인이 나타난다.

윤애를 만나는 과정, 헤어지는 과정, 그리고 다시 만나서 이별하는 모든 과정에 비루함이 뚝뚝 묻어난다.

몇 만원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안절부절하던 그가 일식집에서 윤애의 밥을 사주는 장면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두 번째 소설 [화장]에 묻어 있는 비루함은 거이 압권이다.

(비루함과 압권이라는 말이 같이 쓰일 수 있을까?)

주인공은 꽤 잘나가는 화장품업체 상무이다.

그러나 그것은 것껍대기일 뿐이다.

그의 아내는 오랜 기간 뇌종양으로 투병한다.

음식을 토하고, 설사를 하고, 악취를 풍겨낸다.

그리고는 초라하고 말라 비틀어진 몸으로 세상을 떠난다.

주인공 역시 전립선염으로 하루에 한 번 꼴로 소변을 빼내야 한다.

병원에 가서 생식기에 호수를 연결하는 비루한 과정을 통해야 겨우 소변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자신의 회사 부하직원인 '추은주'라는 여인을 사랑한다.

그녀의 머리카락, 목선, 뒷모습을 보며 그녀의 젊음과 생명력을 사랑한다.

 

네 번째 소설 [뼈]라는 작품에서 주인공은 대학 교수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보다 '오문수'라는 자신의 조교에 대한 묘사가 더 많이 등장한다.

오문수는 10년 가까이 조교로 있으면서도 아직 박사학위를 따지 못하고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학교의 젊은 여성들과 동거하며 대책없는 뜬 구름 잡는 논문만을 쓰려 한다.

 

여섯 번째 소설 [언니의 폐경]의 주인공은 이혼 당한 50대 여인이다.

자신의 늙고 생명령이 사라져 가고 있을 때 출장 갔다 온 남편의 가방 안에서 생기있는 여성의 머리카락을 발견한다.

주인공은 패경을 경험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며, 생명력이 빠져나가고 있는 여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 본다.

 

마지막 소설 [강산무진]에서 주인공은 간암판정을 받는다.

주인공은 담담히 자신의 마지막 생애를 준비한다.

그가 마지막 생애를 준비하는 것은 '노킹 온 헤븐스 도어'라는 영화에서처럼 죽기 전에 바다를 보러가는 것과 같은 드라마틱한 장면이 아니다.

조금의 퇴직금을 더 받기 위해 자신이 암이라는 것을 숨기고 퇴직하고, 손해를 보고 적금을 깨고, 이혼한 아내에게 아직 주지 못했던 위자료를 준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딸은 덤덤히 반응하고, 미국의 아들은 남은 재산을 욕심낸다.

주인공은 그렇게 비루하면서도, 또 담담하게 마지막을 준비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렇게 비루하게 살고, 비루하게 죽어가고 있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삶을 비루하게 묘사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 비루함을 아름다움으로 묘사한다.

사실 이 과정을 평론가도 아닌 일반 독자인 내가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비루함과 아름다움이 교차되는 그 작가의 묘사에 감탄을 느낀다.

 

[화장]에서 죽어가는 자신의 아내의 상태나, 전립선염으로 고생하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접대와 로비로 얼룩져진 그의 일을 묘사하다가 추은추라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아름답고 신비롭게 그리고 있다.

[강산무진]에서 자신의 마지막 생애를 돈과 거처를 정리하며 비루하게 보내는 주인공이 강산무진이라는 작품을 바라볼 때 작가는 그 비루한 인생을 장엄하게 묘사한다.

 

화가가 이 세상의 강산을 그린 것이지, 제 어미의 태 속에서 잠들 때 그 태어나지 않은 꿈속의 강산을 그린 것이지, 먹을 찍어서 그림을 그린 것이지 종이 위에 숨결을 뿜어낸 것인지 알 수 없는 거기가, 내가 혼자서 가야 할 가없는 세상과 시간의 풍경인 것처럼 보였다. - [강산무진] 중에서 -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왜 인생이 비루할까 생각해 보았다.

작가는 그것을 돈과 육체에서 찾는다.

돈은 인생을 비루하게 만든다.

돈 몇 만원을 채우려 무리하게 택시 운전을 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녀들이 돈으로 비루하게 묶여 있는 것이 인생이다.

육체의 생명이 사라지면서 인생이 초라해진다.

자신의 생리현상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구린내와 섞는 냄새 속에서 쪼그라 들어간다.

그런데 작가는 그 비루함 속에서 빛나는 찬란한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마치 해가 지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그리듯이 인생의 아름다움을 그린다.

정말 비루한 인생 속에 아름다움이 있을까?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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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9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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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부터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를 좋아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과 사람 안에 감춰있는 다른 세계를 보는 그의 예리한 시각에 항상 공감하며 감탄을 해 왔다.

하루키의 소설들은 좋아해서 많이 읽어봤지만 그의 여행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리포트와 오스트렐리아 여행기가 믹스된 하루키만의 감성을 잘 녹아져 있는 여행기이다.

 

하루키의 소설들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낯선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태엽갑는 새]에서 주인공 '오카다'는 아내가 사라진 이후부터 점점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1Q84]의 '아오마메'는 막히는 고가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비상용 사다리로 내려오다가 현실의 세계와는 다른 1Q84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최근에 한국에서 발간된 [애프터다크]라는 소설에서는 '에리'는 텔레비젼 속 이상한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어쩌면 하루키에게 오스트렐리아와 시드니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이와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시베리아 툰드라 풍경이라든가, 아바리바 사막 풍경에도 꽤 거칠고 초현실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오랜 시간 주의 깊게 보다 보면 나름대로 이해가 갔다. '이곳은 이런 풍포여서 이렇게 됐구나' 하고.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 풍경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기묘하다. 한눈에 봐도 기묘하다. 그런데도 기묘하다는 것의 개연성을 찾기가 힘들다. 집중해서 보고 있으면 내가 점점 다른(잘못된) 차원으로 이끌려가는 듯한 기묘하고 초라한 느낌이 든다. 팀 버튼의 영화의 한 장면처럼. (P38)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하루키의 시각은 단순히 기묘한 호주의 풍경뿐만이 아니다.

하루키는 그의 소설에서 항상 거대하고 조직화된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거대하고 조직화된 것이 점점 세계와 개인을 삼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다.

시드니 올림픽을 보는 하루키의 시각도 마찬가지 이다.

그는 남들은 모두들 못봐서 안달인 10만엔 짜리 올림픽 개막식을 출판사의 후원으로 참가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지루한 것들은 꽤 많지만, 단언컨대 올림픽 개막식은 그 중 톱3에 들 것이다' 라는 것이 나의 명확한 견해다. 지루한 데다 무의미하다.(P95)"

그리고 10만엔이면 차라리 아이맥을 사겠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개막식 중간에 나와 버린다.

그가 이렇게 개막식을 싫어하는 것은 올림픽의 화려함과 상업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생각때문일 것이다.

시드니 올림픽에 후원한 코카콜라는 올림픽 관람객들이 팹시를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요청하는 헤프닝까지 벌인다.

하루키는 노트북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냐는 보안직원의 말에 '이건 페시야!'라고 대답하며 올림픽의 상업주의를 비웃는다.

그는 화려한 경기장이나 이것을 유지하기 위한 후원보다는 차라리 그가 항상 즐겨찾는 일본의 고시엔 야구장처럼 아테네에 모여 소박하게 경기하는 것을 좋다고 생각한다.

육상경기에서도 치열한 기록단축과 신식장비 보다는 소박하게 뛰면서 경쟁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 항상 잊혀진 예전 것을 그리워하는 하루키의 감성이 올림픽 관전에서 은연 중에 나타났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올림픽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키하면 떠오른 것이 야구, 맥주, 재즈, 그리고 달리기이다.

그의 [예스터데이]라는 단편소설에서는 도쿄 출신의 남자가 간사이의 한신타이거즈를 응원하기 위해 간사이 사투리를 치열하게 배우는 장면이 나올 정도이다.

하루키 역시 한신타이거즈의 펜이며, 일본 야구의 성지라는 고시엔 구장을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다.

특히 그의 달리기 사랑은 유별나서 전 날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아침에는 꼭 조깅을 한다고 한다.

그런 그의 육상과 야구에 대한 사랑이 이 책에도 등장한다.

시드니 올림픽의 육상경기, 특히 남녀 마라톤 경기에 관심이 많으며, 야구 경기를 꼭 찾아서 본다.

 

특히 마라톤 경기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이 책의 초반부터 아리모도 유코나 이노부시 다카유키에 대한 시각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듯이 마라톤과 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특별나다.

특히 그는 메달을 따지 않았지만 자신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응원한다.

이노부시 선수의 경우 올림픽 메달 유망주로 기대를 받고 있었지만, 지나친 부담감으로 인해 중도에 경기를 포기한다.

이로 인해 일본 내에서 이 선수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지만 이 책에서 하루키는 따스한 시선으로 이노부시를 위로한다.

 

야구에 대한 감상은 더욱 흥미롭다.

특히 한국과의 두 번이나 대결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대성'선수도 언급하고 있다.

이 두 번 경기에서 일본은 모두 한국에게 패했고, 특히 마지막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너무 아쉽게 패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팀에 대한 조롱이나, 자신의 팀에 대한 비난이 없다.

그냥 야구팬으로서 야구를 즐길뿐이다.

그러 그의 여유롭고도 담담한 스포츠 사랑이 부럽다.

 

이 책에는 시드니 올림픽 관전기뿐만 아니라, 오스트렐리아의 문화나 환경, 동물들에 대한 묘사도 많이 등장한다.

특히 하루키 나름대로 오스트렐리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한 부분을 할애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챕터 제목도 '정신병리학적으로 본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오스트렐리아 역사를 생각해 보고, 현재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를 이해하게 해 주는 글이다.

하루키만의 시각과 감성으로 오스트렐리아를 여행하고, 시드니 올림픽을 다시 관전하고 싶다면 꼭 읽어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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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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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은 오래 전 친구들을 만날 때가 있다.

항상 어디로 튈지 몰라서 주변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엉뚱한 농담으로 상대를 혹케 하던 이들이 지금은 너무나 뻔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모두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에 매여있고, 눈에는 생기가 없어지고, 배는 나오기 시작한다.

꿈이이나 미래와 같은 이야기는 없어지고 오직 하루 하루 사는 이야기가 전부이다.

누가 사람을 이렇게 변하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변하게 하는 것일까?

가끔은 조직사회라는 것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여기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자라고 부를만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찰스 부코스키가 쓴 [우체국]이란 소설에 나오는 ''치나스키'라는 인물이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치나스키'는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한량'이자 사회 부적응자이다.

직장을 다니기는 하지만 대부분 지각과 결석이다.

상관에게 항상 대들고, 조직의 규율에 반항한다.

항상 여자를 만나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경마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아침이면 술에 덜 깬 모습으로 출근을 한다.

그나마 그런 직장 역시 오래 다니지를 못한다.

 

이 책은 작가인 찰스 부코스키가 우체국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치나스키'라는 인물이 2년간 우체국에서 배달원으로 일하고, 다시 11년간 우체국 사무직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말이 좋아 우체국 사무직이지 하루를 소포나 편지를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당시 미국의 근무조건은 매우 억압적이고 열악했다.

그 조직 속에서 인간은 마치 기계처럼 정해진 일들을 한다.

이 책은 그런 조직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을 무너뜨리는지를 잘 묘사한다.

 

현장 주임은 양철 분류함 앞에서 서서 나를 가리켰다. 사무원들은 아주 빨리 우편물을 꽂고 있었다. 그들이 미친 듯이 오른팔을 휘두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통통한 여자애도 우편물을 제자리에 쑤셔 놓고 있었다.

"이 분류함 끝에 쓰여 있는 숫자들이 보이나?"

"네"

"1분당 꽂아야 하는 개수를 가리키는 거야. 60센티미터 트레이라면 23분 안에 마쳐야 해. 자넨 5분이 늦었어."

현장 주임은 분류함에 써 있는 숫자 23을 가리켰다. "23분이 표준이라고."

"저 23은 아무 의미도 없어요." 내가 말햇다.

"무슨 뜻이야?"

"제말은 어떤 남자가 페인트 통을 들고 와서 저기다 23이라는 숫자를 써놓았을 뿐이라는 거죠."

"아니야, 아지지. 이 시간은 몇 년 동안 검증된 거고 재확인 된 거야."(P221)

 

지나간 11년이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이 일이 사람을 갉아 먹는 것을 봐왔다. 사람들은 흐늘흐늘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도지 우체국에 지미 포츠라는 직원이 있었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지미는 흰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사내였다. 이제 그 때 그 사람은 사라졌다. 그는 바닥에 가능한 한 가까이 붙어 앉아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로 버티고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이발도 못했고 3년 동안 똑같은 바지를 입었다. 일주일에 두 번 셔츠를 갈아 입었고, 아주 천천이 걸었다. 우체국이 그를 살해한 것이다. 그는 쉰다섯 살이었다. 퇴직까지는 7년이 남아 있었다. (P220)

 

이런 상황 속에서도 치나스키는 끊임없이 상사에게 대들고,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경마장에 간다.

그 사이 그는 베티, 조이스, 페티라는 세 명의 여성과 결혼하거나 동거하고 페티에게서는 마리나 루이즈라는 딸까지 낳는다.

저자는 여자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딸이 태어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너무나 담담한 필치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치나스키는 우체국 사무직을 11년째 되던 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자신이 더 이상 있을 곳이 아님을 깨닫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냥 먹고 노는 것이 꿈이 치나스키의 삶이 한심하게 느껴지다가도, 우체국이라는 규격화된 조직사회가 숨이 막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치나스키가 그 곳을 나올 때 나조차 자유를 경험하는 것 같았다.

 

과연 치나스키와 같은 인물은 우리는 부적응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저자의 표현대로 조직사회에서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사람이 진정 착실한 인간일까?

사회는 그런 사람을 성실하고 바른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일평생을 사는 것이 성실하고 바른 삶일까?

아직 인생을 조금밖에 살지 못해 어떤 삶이 정답인지 알지는 못하겠다.

다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조직사회에서 흐물흐물 녹아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때로는 치나스키처럼 그런 조직사회를 마음껏 비웃으며 자신의 멋대로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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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럼 붉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1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뉴스에서 3년 만의 폭설이라고 말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실라 시무카의 [피처럼 붉다]를 읽게 되었다.

내용이 너무나 속도감이 있어 한 나절만에 다 읽을 정도였다.

책을 다 읽었을 때는 눈이 그쳐 있었고, 책 배경이 생각나서 창밖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 책은 북유럽 구전동화인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했다.

주인공의 이름 역시 핀란드어로 백설공주라는 의미의 '루미키'이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은 백설공주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주인공인 '루미키'는 핀란드의 제2의 도시인 '탐페레'의 유명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녀는 '리히매키'라는 시골 동네에서 부모님을 떠나 혼자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루미키의 생활신조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예리한 관찰력과 주변의 상황에 반응하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그런 그녀가 우연히 학교 암실에 들어갔다가 피묻은 돈다발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의 생활신조와는 달리 투카와 카스페르, 엘리사라는 학교에서 잘 나가는 아이들이 벌인 사건에 관여하게 된다.

투카와 카스페르라는 남학생은 엘리사라는 부자 여학생이 자신의 집에서 벌인 파티에 참석했다가 피뭍은 돈을 발견했고, 그것을 학교 암실에서 세탁하는 중이었다.

돈의 주인들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사람들이었다.

루미키는 엘리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점점 사건에 깊이 관여하게 되면서 범죄 조직의 실체에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루미키가 백설공주로 분장해서 악당들의 파티에 들어가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십대들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십대의 로멘스나 낭만은 없다.

서로를 믿거나 서로에게 이끌려 사랑에 빠지지도 않는다.

루미키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경계하고 세상을 경계한다.

소설은 루미키가 계속해서 사건을 쫓아가면서 그녀의 과거들이 오버랩된다.

무서운 사람들을 피해 옷장같은 곳에 죽은듯이 숨어 있던 기억들...

상자 속에 갇혀 비명을 지르던 기억들...

한 남자를 사랑하고, 그 남자에게 알 수 없는 이별을 당했던 기억들....

1권에선 그 기억들을 실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런 경험들이 지금은 루미키를 만들고 있음을 암시한다.

결국 루미키는 학대받은 백설공주였으며, 그녀가 겪었던 삶은 동화 속의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백설공주 이야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릴 적 동화책이나 디즈니의 만화 영화로 낭만적으로만 보았던 백설공주를 다시 생각해 보면 백설공주 역시 잔인한 삶을 살았다.

어릴 적부터 계모의 학대 속에서 자랐고, 결국 계모는 사냥꾼을 시켜 그녀를 죽이고 그녀의 폐와 간을 가져오게 시킨다.

결국 어린 백설공주가 대면해야 했던 현실을 이 책의 주인공인 루미키가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의 기억 중 한 가지만은 분명한 실체를 드러낸다.

그녀는 어릴 적에 두 명의 친구들에게 잔인한 학대를 당했고,

그 학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녀 역시 잔인하게 상대를 보복하는 것 뿐이었다.

백설공주가 계모를 상대했던 방법이기도 햇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면서 세상이 동화와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동화 속처럼 착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살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도 경험하게 된다.

동화 밖으로 던져진 백설공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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