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재난 영화를 좋아해서 자주 보는 편이다. 그런데 재난 영화에는 비교적 일관된 패턴이 있다. 먼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이를 먼저 눈치챈 주인공이 -주로 과학자나 기자 등이 주인공의 역할로 나온다- 정부 관료나 책임자를 찾아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린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재난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이들은 그런 경고를 무시한다. 대부분 영화에서는 관료적인 안일함에 빠져있는 책임자들이 이를 무시하고 비웃는다. 그리고 재난이 닥친다. 그때부터 대혼란이 다가온다. 경고를 무시하던 지도층들은 제일 먼저 탈출하고, 지휘계통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우왕좌왕한다. 결국 주인공을 비롯한 일반 시민들이 나서서 재난과 싸운다는 것이 보통 재난 영화의 스토리이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투모로우]나 우리나라 영화 [해운대]가 이런 재난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아카넷에서 출간한 [징비록]을 읽으면서 왜 이런 재난 영화가 떠오를까? 임진왜란 전에 많은 경고가 있었지만, 선조와 신하들은 이를 모두 무시한다. 당시 조선은 여러 차례 북방의 여진족과 남쪽의 왜의 침략을 받았지만, 모두 지역전이 전투였다. 20만이 넘는 대군이 바다를 건너온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 밖의 일이었다. 그러기에 조선은 전쟁에 대비를 하지도 않고, 만약 전쟁이 일어나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다. [징비록]의 번역자인 김시덕 교수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물론 미래에서 과거를 보자면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자신감이 화를 초래했지만, 16세기 말 일본이 20여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공격한다거나, 17세기 전기에 누루하지가 여진을 통일해서 몽골, 조선, 명, 티베트, 위구르를 정복한다는 것은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민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면에서 류성룡은 임진왜란의 최대 패인을, 조선이 일본의 정세 변화를 세밀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기존의 대 왜구 전략을 고수하거나 북방에서의 성공을 과신한 데에서 찾는 것이다." - [징비록] P145


 

이렇게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이라는 국가 시스템은 일순간에 마비가 되고, 군사들과 백성들은 모두 혼란에 처한다.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이라는 국가 시스템이 무너지는 과정은 사건별로 크게 네 단계로 나누어질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부산과 동래를 비롯한 경상도 지역이 점령당하는 단계이다. 최근에 읽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이병주 작가의 [천명]이란 소설에서는 당시 적이 부산 앞바다에 도착했을 때, 조정에 올리는 보고들을 언급하고 있다. 경상 우수사 원균은 적선 90척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가, 후에 150척이 나타났다고 보고한다. 그 후 경상감사 김수는 왜선 4백 척이 나타났다고 보고한다. 배 한 척마다 몇 십 명이 타고 있으니 병력은 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모든 재난상황에서 초기 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최근의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에서도 알 수 있다. 임진 왜란 초기의 상황인식이 이처럼 안일했다. 그리고 그 결과 파죽지세도 부산포, 동래성, 양산 등이 점령 당한다. 이 과정에서 전쟁 다운 전쟁 한 번 못해보고, 약삭빠른 지휘관들을 재빨리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두 번째 단계는 상주에서 이일 장군이 패하는 과정이다. 징비록에서는 당시 조선의 방어 체계가 제승방략(制勝方略) 체제임을 이야기한다. 제승방략은 전쟁이 나면 일대의 군대가 한 한 곳으로 모여서 대기하고, 중앙에서 지휘관을 파견하는 제도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각 지역별로 방어를 하는 진관제도가 중앙권력을 분산시키고, 토호세력을 양산할 수 있기에 이런 제도를 만든 것 같다. 그런데 일단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런 시스템은 순식간에 허점을 드러낸다. 조정에서는 전쟁의 소식을 듣고, 이일에게 군사를 데리고 가서 막게 한다. 이일은 한양에서 정예병 3백 명을 데리고 지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대와 합류하려 한다. 그러나 한양에서 3백 명은 모이지 않고, 과거용 시험지를 들고 있던 유생 몇 명과 대신 끌려 나온 양반집 하인들 몇 명만 모여 있을 뿐이었다. 결국 너무나 소중한 사흘이란 시간을 기다리던 이일은 군대도 모으지 못하고 혼자 몸으로 내려간다. 대구에서 중앙 지휘관을 기다리고 있던 병사들은 시일이 지나도 지휘관은 오지 않고, 적은 가까이 오자 대부분 달아나고, 이일이 상주에 모였을 때 모인 군사는 수백 명뿐이었다. 그나마 도망가던 백성들을 잡아서 모아온 것이 전부였다. 더군다나 적이 온다는 것을 알리는 백성을 헛소문을 낸다며 처형시킨다. 그리고 불시에 적이 몰려오자 이일은 살겠다고 혼자 알몸으로 도망을 간다.

세 번째 단계는 신립이 충주에서 패하는 과정이다. 조정에서는 이일로서는 부족한 줄 알고 신립이 뒤에 보낸다. 그리고 신립은 충주에 도착해서 군사를 모은다. 징비록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역사가들은 신립이 주변의 권고도 무시하고, 천혜의 요새인 문경새재를 버리고 탄금대 앞에서 배수진을 치고 전쟁에 임한 것을 패인의 원인으로 본다. 당시 신립은 여진족과 싸워 명성을 떨친 이름난 명장이었지만, 유성룡은 신립이 매우 교만하고 자만심이 넘치는 인물로 묘사한다. 그 결과 그는 독단적인 결정을 하게 되고, 그 결과 많은 군사들이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마지막 과정은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과정이다. 신립이 패전했다는 소식을 듣자 임금과 신하들은 달아날 준비를 하고, 한양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경북궁이 불타고, 한양을 구하러 올라오던 전라도와 충청도 경상도의 삼도의 병사 5만 명은 싸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패하여 뿔뿔이 흩어진다. 이런 와중에서도 신각이란 장수가 첫승을 거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참수를 시켜 버린다. 마지막으로 임진강에서 방어를 하기 위해 한응인과 김명원을 보내지만 지휘권의 혼란으로 패하고 만다. 총체적인 혼란과 국가 시스템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이 과정을 보니 얼마 전 발생한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를 보는 것 같다. 자신만만하다가 위기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대응 시스템이 무너져 우왕좌왕하는 꼴을 보는 것 같다. 이것이 단순한 침몰사고나 전염병 사태가 아닌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이나 국가적인 재난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결국 국가가 전쟁이나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려면 지도자의 명철한 판단력과 함께 이에 대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들이 있어도 지도자가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시스템이 엉망이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역사의 비극이 반복되지를 않기를 바라며 징비록을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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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강남역의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인해 여성혐오라는 주제가 이슈가 되고 있네요. 여성혐오뿐만 아니라 약자에 대한 폭력성 또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 저자가 일본 사회에 뿌리 깊은 왜곡된 성의식과 여성혐오에 대해 쓰고 있는 이 책이 우리에게도 많은 공감을 줍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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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장하고 있는 김영사와 비채의 책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책꽂이에 책을 정리할 때 출판사별로 정리하기 보다는 장르별로 정리를 하기 때문에 책꽂이 곳곳에 따로 꽂혀있는 책들을 책상 위에 모아봤습니다. 몇 권이 더 있을텐데...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사를 해야 나올 것 같습니다.

 

 

맨 왼쪽은 제가 좋아하는 요네스뵈의 작품들입니다. 해리홀레 시리즈 초기작인 [박쥐]부터 시작해서, 오슬로3부작으로 불리는 [레드브레스트] [네메시스] [데빌스타]가 있네요. 그리고 해리홀레 시리즈는 아니지만, 요즘 오슬로 1970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는 [블러드 온 스노우]나 [미드낫인선]도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모중석 스릴러 입니다. 항상 새롭고 흥미진진한 스릴러를 출간하고 있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입니다. 개인적으로 제프리디버와 할렌코벤을 좋아합니다.

 

 

오른쪽 맨 밑에는 김영사사의 책들입니다. 지금의 다른 출판사로 판권이 넘어갔지만, 한때 인문학시장을 휩쓸었던 마이클샌델의 [정의란무엇인가]라는 책이 맽 밑에 보입니다.

 

김영사의 지식인 마을 시리즈도 제가 좋아하는 인문학 서적입니다. 인문학 책들을 많이 읽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 시리즈가 너무 기초적인 지식만 이야기 하고 있다며 비판적인 서평을 쓰시는 분들도 있던데, 저는 지식인 마을 시리즈가 인문학을 매우 색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며, 알기 쉬운 언어로 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네요. 인문학도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공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쉬운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소통하는 것이 인문학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문학자들의 책을 읽을 때면, 미리 지식인 마을 시리즈에 목록을 찾아보고, 구입해서 읽습니다. 어려운 인문서적을 이해하는 선지식을 주는 것 같아 유용하게 읽고 있네요. 특히 이 시리즈를 읽으며 기획자와 편집자, 그리고 저자의 노고들이 보여서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많은 정성이 들어간 책임을 읽으면서 느끼고 있습니다.

 

맨 위는 제가 좋아하는 비채의 모던&클래식 시리즈... 고전과 현대 서구소설들 중에서 뛰어난 작품들만 엄선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의 표지 디자인을 매우 좋아합니다. 산뜻하면서도 깊이 있는 듯한 디자인... 책을 읽고 싶은 욕구를 마구 느끼게 합니다. 작품 선정도 매우 신선해서, 인생과 인간의 내면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책들이 많아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리즈 중에서 1995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스톤 다이어리]를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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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최근에 몇 가지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 등으로 나라가 시끄럽고, 국가 시스템의 총체적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런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국가적인 위기다!' '재난 매뉴얼이 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때뿐이고 금세 잊힌다는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게 된다. 왜 그럴까?

개인적으로 이런 같은 위기가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위기를 통해 배우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적인 위기 상황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큰 피해를 당하면, 위기에 대응하면서 느꼈던 부족함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자료나 책으로 출간하여 이를 보완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이런 노력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슷한 역사적 위기가 계속해서 반복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는 일본을 '왜'라고 부르며 얕보았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사신으로 중 황윤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반드시 전쟁이 있을 것이다."라고 보고를 했지만, 선조를 비롯한 조정은 이 보고를 무시한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발생해 7년 동안 국토가 유린당한다. 이런 뼈아픈 경험을 당했으면 다시금 전쟁을 대비해야겠지만, 얼마 후 병자호란이 발생했을 때는 임진왜란보다 더 순식간에 국토가 유린당한다. 7년 동안의 국가비상사태를 통해 배우고 준비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허술한 역사인식이 한일합방의 슬픈 역사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의 7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징비록]은 우리에게 매우 가치 있는 책이다. 이번에 아카넷에서 출간된 [징비록] 완역판을 읽으며 그 가치를 더욱더 소중히 느낀다.

사실 징비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까지 알려진 당시의 베스트셀러였다. 이 책의 번역하고 해석한 김시덕 교수는 이 책의 해제에서 임진왜란 후 징비록이 일본에 흘러간 경위를 설명한다. 당시 임진왜란은 명나라와 조선, 일본이 격돌하는 국제전이었고, 징비록은 이 전쟁을 가장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책이었다. 그래서 징비록을 통해 일본은 조선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다시 한 번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이 책을 오랫동안 연구했다는 것이다. 뼈아픈 전쟁을 교훈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쓴 징비록이 한국에서는 외면당하고, 일본에서는 연구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같은 위기를 반복적으로 당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국가적 위기의 반복은 또한 리더십의 부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징비록]의 초반부에는 임진왜란 전에 일본에 사신으로 간 황윤길과 김성일의 보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황윤길은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했지만, 김성일은 그렇지 않다고 보고했다. 역사적인 해석은 둘이 당파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보고를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징비록에 유성룡은 이런 보고를 한 김성일을 변호한다.

내가 김성일에게 "그대의 말이 정사 황윤길의 말과 같지 않으니,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어찌할 것입니까?"라고 물으니, 그는 "저라고 어찌 왜인들이 끝내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황윤길의 말이 너무 중대하여 경향 각지가 놀라고 미혹될 것이기에 이를 풀고자 할 따름입니다"라고 말하였다. (P116)

징비록은 전쟁 후의 기록이고, 유성룡의 사견이 들어갔기에 이런 말이 전부 인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전쟁 전의 안이한 태도를 김성일 개인에게만 지울 순 없다고 생각한다. 책임을 묻자면 김성일의 보고를 그대로 받은 당시의 왕인 선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징비록을 읽으며 당시의 역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민음사에서 출간한 [역사 저널 그날 시리즈]를 같이 읽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일본으로 간 사신이 황윤길과 김성일뿐만 아니라, 허성이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황윤길은 서인이고, 김성일과 허성은 동인이었다. 그럼에도 허성은 자신의 당파가 아닌, 황윤길의 의견에 따라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사신들의 주된 의견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보고였다. 그럼에도 선조는 자신이 듣고 싶은 보고만을 하는 김성일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이것이 제왕적 리더십의 한계이다. 제왕적 리더십은 무능한 리더가 위에 있으면, 전 조직이 무능해지는 것이다. 아무리 옳은 의견을 내놓아도 리더가 거부하면 소용이 없다. 그리고 참모진들도 리더가 싫어하는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리더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놓는 사람을 자신에 대항하는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옳은 소리를 하면 찍힌다는 이야기다. 현대사회에서 리더에게 찍히면 퇴사 정도가 전부이지만, 왕이 다스리던 시대에는 유배를 가거나 사약을 마셔야 했고, 심지어는 반역으로 몰려 삼족이 멸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일본의 침략을 뻔히 알면서도 왕의 결정에 아무도 반대하지 못 했을 가능성이 있다.



징비록을 읽으며, 역사적 위기의 반복이 단지 조선시대만으로 그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낀다. 위기를 당해도, 그 위기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고, 그것을 현명하게 극복할 리더십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인 것 같아 씁쓸하게 이 책을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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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사기열전 1 - 인물들의 흥망사 완역 사기 시리즈 (위즈덤하우스)
사마천 지음, 신동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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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이란 책을 쓸 때 그의 상황이 너무 빈궁했다고 한다. 그래서 두 어린아이가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을 섰다고 한다. 옆에서 아이가 밥 달라고 칭얼거리며 죽어가는 상황에서 책을 쓴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런데 이보다 더 비참한 상황에서 책을 쓴 사람이 또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다. 그는 한나라 무제 밑에서 신하로 있으면서, 당시 흉노족에게 투항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가 왕의 진노를 산다. 그리고 당시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에 처하고, 감옥에 갇힌 후 환관이 된다. 이런 치욕스러움 속에서도 그는 삶을 이어갔고, 이런 삶 속에서 [사기]라는 역사서를 남겼다. 과연 그가 이런 치욕을 견디면서 쓰고자 했던 역사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위즈덤하우스에서 사기 전권을 새롭게 완역하여 출간한 사기 5권 중(사기본기, 사기표, 사기서, 사기세가, 사기열전)에서 사기열전의 1권이다. 사기열전은 사기 130권 분량 중에서 반 절 이상인 70권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내용이 방대하다. 이번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한 사기열전 1권은 사기열전의 반 절 분량만을 담고 있음에도 10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을 가지고 있다. (정확히는 마지막 페이지가 955페이지다.) 사기열전 1권은 은나라와 주나라의 교체기인 백이와 숙제의 기록인 '백이열전'을 시작으로 한나라의 개국공신인 번쾌, 역상, 하우영, 관영 등을 다루고 있는 '번역등관열전'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H 카'는 역사란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란 여러 가지의 사실 중에서 역사가가 그 시대와 상황에 필요한 사실들을 수집에 그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결국 역사란 그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의 관점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마천 역시 방대한 중국 역사와 인물들 중에서 자신의 관점으로 걸러내어 역사와 인물들을 기록했다. 사마천의 관점은 무엇일까? 이 책의 첫 번째 내용인 '백이열전'에 어느 정도 힌트가 있다. 백이와 숙제라는 인물은 주나라의 역성혁명을 인정하지 않고 산에 들어가서 고사리를 뜯어 먹다가 죽었다. 사마천은 이런 백이와 숙제를 칭송하기보다는 인(仁)을 행하는 군자가 이런 상황에 처해지는 시대상을 안타깝게 이야기한다.

 

 

노자는 [도덕경] 제79장에 이같이 말했다. "천도는 사사롭게 가까이하는 바가 없고, 늘 선한 사람과 함께한다." 그렇다면 백이와 숙제는 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인을 쌓고 행실을 깨끗이 했는데도 굶어 죽었다. 또 공자는 일흔 명의 제자 가운데 오직 안연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했으나 안연 역시 늘 가난해 술지게미와 쌀겨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끝내 요절하고 말았다. 하늘이 선한 사람에게 복을 내려준다면 어찌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춘추시대 말기 도척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 간을 회 쳐서 먹었다. 포악무도한 짓을 자행하며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천하를 횡행했지만 끝내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이는 도대체 이는 어떤 덕행에 따른 것인가? 이는 여러 사례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만 언급한 것이다.
근래의 사례를 보면 하는 일이 정도를 벗어나고, 법령이 금하는 일을 일삼는데도 편히 즐기며 그 부귀가 대대로 이어지는 자가 있다. 반면 걸을 때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할 때도 때를 기다려 하고, 길을 갈 때도 옆길로 가지 않고, 일을 할 때도 공정하지 않으면 분발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자가 부지기수로 많다. 이는 매우 당혹스럽다. 만일 이것이 이른바 천도라면, 그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아니면 그른 것인가? (P25-5)
 

 

그래서인가 [사기열전]에서는 대부분 왕을 도와 나라를 일으킨 충신들을 언급하지만, 대부분은 왕이나 간신들에 의해 배신을 당해 버림받거나 죽임을 당한 일들이 기록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또 하나의 인물이 '노자한비자열전'에 등장하는 한비자이다. 한비자는 한나라 왕을 섬겼으나 그의 충고는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고,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를 시기한 이사의 간계에 의해 사형을 당한다. 반대로 간계를 통해 왕을 농락하고, 권력을 잡은 '오자서'나 '여불위'같은 인물들의 성공담도 등장한다. (물론 모두들 말로는 비참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진한 교체기의 인물인 장이와 진여의 이야기를 다룬 '장이진여열전'이다. 장이와 진여는 젊은 시절부터 우의를 맺었고, 어린 진여가 장이를 아버지처럼 섬겼다. 둘은 진나라가 천하 통일을 한 후 두 사람을 위험인물로 간주해 잡으려 할 때도 둘이 함께 피난하며 서로를 도왔다. 진나라가 멸망하고 여러 군웅들이 할거 할 때도 이들은 여러 명의 왕이나 장군에게 의탁하며 서로를 의지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세력이 생기자 서로를 견제하게 되고, 결국은 서로를 죽이려는 사태까지 가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장이가 유방의 밑으로 가게 되었다. 유방이 한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와 싸울 때 진여의 도움이 필요해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때 진여는 "한나라가 장이를 죽이면 따르겠소"라고 말한다. 목숨까지 내어줄 것 같던 친구를 이제는 죽여 달라는 것이다. 사마천은 당시의 매정하고 씁쓸한 세상의 분위기를 '장이진여열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어쩌면 사마천 역시 이런 당시 세상의 매정함을 처절히 경험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장이진여열전' 마지막 부분에서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장이와 진여는 현자로 알려진 자들이다. 이들은 빈백과 종까지도 천하의 준걸이 아닌 자가 없었다. 각기 자신이 사는 나라에서 경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당초 장이와 진여가 빈궁한 때는 서로 죽음을 무릅쓰고 신의를 지켰다. 어찌 서로를 돌아보며 의심하는 일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나라를 움켜쥐고 권력을 다투게 되자 마침내 서로를 멸망시키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찌해서 전에는 서로 사모하며 믿는 것이 그리도 진실하더니 뒤에는 그리도 심하게 서로를 배반하며 뒤틀리게 되었는가? 권세와 이익을 좇아 사귄 탓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명성이 높고 빈객이 많았을지라도 이들이 걸어온 길은 오나라 시조 태백이나 오왕 수몽의 아들 계찰의 행보와는 사뭇 달랐다. (P767)


[사기열전]을 읽으면서 이 책의 방대함과 사마천의 날카로운 역사비판 의식, 그리고 인물평가에 감탄을 한다. 그럼에도 아직 사마천의 [사기]의 일부분만을 맛본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사마천의 [사기]의 완독을 꿈꾸며 [사기열전]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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